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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권하다 전 30권세트 한국문학 총서 중 최다 작품 수록

시리즈 : 한국문학을 권하다 [43]

이광수, 염상섭, 김동인 외 저 | 애플북스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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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639078 / 500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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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재미있게 읽는 ‘내 생애 첫 한국문학’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문학의 즐거움 재조명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대한 인상기, 혹은 기성작가를 추억하며 쓴 오마주 작품을 어려운 해설 대신 수록하였다.
더불어 이광수, 현진건, 채만식, 이효석 등 우리 한국문학의 큰 기둥이 되었던 14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최대한 모았다. 몇몇 ‘교과서에서 언급된’, 혹은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주요작품만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문학 세계를 맘껏 맛볼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작품을 모았으며, 오래전에 절판되어 현재 단행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발굴해 묶었다.
가령, 채만식의 대표단편선에 속한 <허생전>은 현재 전자책밖에 없는 책을 종이책으로 인쇄되어 출간했으며, 이효석 · 김유정 · 김동인 등 대표 단편 작가들의 작품들은 유명한 몇몇 단편들만 모은 것이 아니라 작품 발표 연대순으로 작품들을 모아서 작가의 발전, 문학사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작가가 최초로 발표했던 연재본 및 다른 판본과의 대조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였다. 특별히 이광수 장편들의 경우 오랜 기간 신문 연재로 발표되었다는 점 때문에 연재 번호가 중복되어 기존의 몇몇 판본들이 한두 작품을 빼고 조판했는데, 애플북스 한국문학전집은 다른 판본들이 놓친 작품들까지 일일이 대조하여 찾아 발굴해 실었다.

출간 의의 및 특징

작품 감상을 돕는 정확하고 깔끔한 텍스트가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의 장점이다. 작품의 최초 발표본과 작가 생애 최후의 판본,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간된 판본 등을 참조해 작가의 원문을 최대한 살리도록 노력했다.
또한 문학 작품 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작가 고유의 표현은 살리고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 맞춤법을 적용함으로써 시대에 따른 격차를 최대한 줄여 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울러 생소한 단어의 이해를 위한 주석은 중고등학생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 충실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동안 문학전집 출판은 순수 문학 독자를 위한 ‘전집’이 아닌 연구자나 미래의 수험생을 포함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작품 모음집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작가의 삶에 대한 겉핥기식의 요약과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인 비평들은 오히려 작품을 어렵게 느끼도록 만들어 문학의 즐거움을 방해한 측면도 있다. 게다가 교과 과정에서 특별히 다룬 작품들만 모아놓아서, 그동안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지 못하고 사장된 부분도 있었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는 매우 두꺼운 장정이다. 단편소설전집은 작가의 발표된 작품들을 최대한 모았으며, 장편소설은 초판 판본을 일일이 대조하여 누락된 원고를 찾아내 모두 담았다. 한국문학 총서 중 작가별 최다 작품을 수록했으며,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으로도 함께 출간되어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기업 자료실에도 꼭 필요한 책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직 작가들이 권하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 읽기
어려운 해설이 아니라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구병모, 고명철, 고정욱, 김이윤, 박상률, 방현희, 이경자, 이명랑, 임영태, 임정진 총 10명의 작가들이 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인상기는 지금까지 시험 대비로만 읽어왔던 작품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문학을 문학 그 자체로 읽고 즐기는 새로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춘원의 《무정》은 분명 내 삶을 지금까지 규정하고 있다. 밤을 새워 그의 작품을 읽고
난 뒤 나는 가슴이 설레어 잠도 잘 수 없었다.” _고정욱, 소설가

“염상섭만큼 세대 간의 가치충돌과 가족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낸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탁월한 이야기꾼을 만난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_임정진, 소설가

“김동인의 진짜 재능은 세속적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서 만개한다. 그는 글을 써서 살아가는 나를 반사하는 거울 같다.” _구병모, 소설가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현진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내 삶의 폭을 한층 넓혀주었다. 그를 통해 이른바 공감 능력이 생긴 것이다.” _박상률, 소설가

“심훈의 작품은 거의 하얀 도화지 같던 내 정신에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공동체에 도움되는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내 정신에 새겨졌다.” _이경자, 소설가

“채만식이 보여준 모순에 눈 맞추면, 모순을 타파하는 길도 짚어갈 수 있지 않을까? 쉽지 않은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가 건네는 확대경을 들여다보자.” _김이윤, 소설가

“사람과의 관계에 피로감을 느낄 때 이태준의 소설은 삶의 청량제이다. 단편소설의 완성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놀랍다.” _고명철, 평론가

“봉평의 새하얀 달빛과 숨이 막힐 듯한 메밀꽃 향기,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_방현희, 소설가

“김유정의 소설은 내가 읽은 최초의 로맨스 소설이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연애의 기본 정석을 배웠고,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_이명랑, 소설가

“이상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형식과 역설의 재치와 독특한 난해함들... 그는 그 시대의 개성 있는 작가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주목된다.” _ 임영태, 소설가

“나도향의 인간의 욕망과 본능에 대한 철저한 해부작업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들 정도로 적나라하다.” _ 노경실, 소설가

“정지용의 시들은 살아가는 고달픔에 침윤되어 있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_ 이진명, 시인

“최서해의 소설은 지식인의 붓끝이 아니라 혈액과 채액으로 써내려간 명작이다.” _ 이경혜,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을 읽으며 책 읽는 맛을 알게 되었고, 내 몫의 세월을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_ 임영태, 소설가

저자 소개

1922년 중앙고보를 거쳐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관동 대진재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하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했다. 1925년 단편 '세 길로'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발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단편 '화물자동차', '부촌' 등 동반작가적인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다가 자전적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을 발표하면서 풍자성이 강한 사회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어서 '치숙', 《탁류》 《태평천하》 등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특유의 풍자와 비판을 형상화시킴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120여 편의 소설 및 희곡과 50여 편의 평론 및 수필을 남겼다. 희곡 26편을 남길 정도로 다작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이 중에는 촌극이나 스케치 같은 짧은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여건으로는 공연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아 그중 <예수나 안 믿었드면> 한 편만 1937년 7월 중앙무대에서 공연되었다. 주목할 만한 희곡으로는 <제향날>, <심 봉사>, <당랑의 전설> 등이 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내려가 힘겹게 생활하다가 지병인 폐결핵으로 인해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19년 제일고보 재학 당시 3.1 운동에 참가하여 4개월간 복역하고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그후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항주(杭州)에 이르러 지강(之江)대학에서 수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훗날 '극문회(劇文會)'를 만들게 된다. 1923년 귀국 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와 소설을 쓰고, 1925년에는 동아일보에 장편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했다. 이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투신, 『먼동이 틀 때』를 원작, 각색, 감독하였다. 1930년 이후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와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고, 1935년에 이르러 장편 『직녀성』과 『상록수』를 발표하여 문단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 당선작인 『상록수』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충남 당진으로 잠적하여 쓴 농촌 계몽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민족 의식과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대표작으로 시집 『그날이 오면』, 장편소설 『상록수』『동방의 애인』 『불사조』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이 있다.
1897년 서울에서 출생아여 1917년 게이오 대학 문과에 입학하였다. 재학중에는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기도 한다. 스스로 에밀 졸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그의 본격 작품활동은 1920년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만세전> <삼대> <두파산> <젊은 세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초기의 자연주의에서 풀발하여 사실주의 경향으로 시종일관한 것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그의 사실주의적 작품경향은 본격적인 전형 인물의 설정과 충분한 객관성을 띤 내용에서 분명해지는데 특히 <삼대>에서 침된 이럴이스트의 경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가산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28년 '조선지광'지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효석의 문학은 시적 서정을 소설의 세계로 승화함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하는 그의 문체는 우리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돈''메밀꽃 필 무렵'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性)의 탐색을 통해 그는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순결한 세계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性)과 결합시킨 시적 서정소설로 새로이 개척해냈다. 이로써,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당시 이태준, 박태원 등과 함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던 이효석은 그러나 그의 황금 같은 문학적 결실을 다 누려보지도 못한 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열두 살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를 짝사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고향인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1935년 이무영, 이상, 정지용 등이 속한 순수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고, 같은 해 , <조선일보>에 , <소낙비>, , <중외일보>에 , <노다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짧은 문단 생활 중에도 김유정은 병과 가난과 싸우면서 30여 편의 단편을 남기고, 1937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금따는 콩밭>, <봄봄><따라지>, <두꺼비>, <동백꽃>, <땡볕> 등이 있다.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금동, 금동인, 춘사 등을 사용했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하고,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귀국 후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되었고 사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해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춘원 이광수의 계몽적인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했으며, 1925년 무렵부터 유행한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운동을 벌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으로 입사했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우익적 성향의 문인단체 결성을 주도하고, 제헌국회의 부의장을 지내는 등 해방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으나 중풍으로 쓰러져 1951년 초 하왕십리의 자택에서 병사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이 1955년 제정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1900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를 마치고 중국 상해 호강江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다 3·1 운동을 맞아 귀국하였다. 《개벽》 《동명》 《시대일보》 등을 거치며 세계 문학 사조와 문화론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단편 소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을 통해 현실 문제를 세련된 형식과 언어 감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하며 당대 최고의 기교주의 작가로 꼽혔다. 단편 소설로는 일제하 민족 문제를 포괄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고민에서 점차 장편 소설로 창작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 결과 작가 활동 후반에 이르러 단편 소설의 담박한 문장 구성과 장편 소설의 역사적 시간관이 결합된 장편 소설 『무영탑』을 썼다. 단편 소설의 구성과 언어에 있어 뛰어난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장편 소설의 현실 지향성을 작품 세계 속에 포괄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다. 1930년을 전후하여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바 있으며, 이 시기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1943년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 출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 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 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유학 시절에는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귀국 후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일했다. 
1930년에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서 활동했고, 1939년에는 《문장》의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의 행적에 여러 설이 있으나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는 도향·소정지옹(笑亭之翁)·은하(隱荷), 필명은 빈(彬). 처음에는 감상과 낭만을 주조로 했으나, 차츰 당대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썼다. 본명은 경손(慶孫). 아버지 성연(聖淵)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손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병규(炳奎)가 41세에 얻은 아들에게서 회갑에 손자를 얻자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기독교청년회관 안에 있던 공옥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계명〉 편집일을 했고, 1922년 홍사용·현진건·이상화·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로 일했다. 

190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에 [동명]의 '소년칼럼'에 [달맞이]가 뽑혔으며, 춘원 이광수에게 개인적으로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일본 동경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33년에는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에 반기를 든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5년 첫 장편소설 [청춘송]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1936년에는 [조광]에 [천변풍경]을 연재했다. 1946년에 남로당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했으나, 1948년에는 좌익 인사를 감시, 관리하던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중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53년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취임했으나,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면서 창작 금지 조처를 받았다. 1960년에 창작 금지 조처가 풀려 작가로 복귀하면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였지만 당뇨병으로 인한 안질환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는 등 시련을 겪는 가운데 1977년과 1980년에 [갑오농민전쟁] 1,2부를 출간한 후,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3부가 출간되었다.

본명은 학송이고 서해는 호이다.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으며 1911년 성진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가난으로 5학년 때 중퇴하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였다. 1917년 간도(間島)로 이주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랑하다가 1923년 귀국하였다. 1918년 3월 《학지광》에 시 [우후정원의 월광], [추교의 모색], [반도청년에게]를 발표하여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24년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동아일보에 [토혈]을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1925년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를 발표해 당시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탈출기]는 살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이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1932년 7월 지병인 위문협착증으로 사망한다.

목차

1. 소년의 비애 이광수 중단편선집
무정 | 어린 희생 | 소년의 비애 | 어린 벗에게 | 방황 | 가실 | 거룩한 죽음 | 어린 영혼 | 사랑에 주렸던 이들 | 떡덩이 영감 | 무명씨전 | 모르는 여인 | 나 | 육장기 | 영당 할머니

2. 삼대 염상섭 장편소설

3. 감자 김동인 단편전집 1
약한 자의 슬픔 | 목숨 | 유성기 | 폭군 | 배따라기 | 태형笞刑 | 이 잔을 | 눈을 겨우 뜰 때 | 피고 | 감자 | ○씨 | 명문 | 시골 황 서방 | 명화 리디아 | 딸의 업을 이으려 | 눈보라 | K 박사의 연구 | 송동이 | 광염 소나타 | 구두 | 포플러 | 순정 | 배회排徊 | 벗기운 대금업자 | 수정 비둘기 | 소녀의 노래 | 수녀 | 화환 | 죽음 | 무능자의 아내 | 약혼자에게 | 증거 | 죄와 벌 | 여인담 | 거지 | 결혼식

4. 운수 좋은 날 현진건 단편전집
희생화 | 빈처 | 술 권하는 사회 | 타락자 | 유린 | 피아노 | 우편국에서 | 할머니의 죽음 | 까막잡기 | 그리운 흘긴 눈 | 발 | 운수 좋은 날 | 불 | B사감과 러브레터 | 사립 정신병원장 | 동정 | 고향 | 신문지와 철장 | 정조와 약가 | 서투른 도적 | 연애의 청산

5. 상록수 심훈 장편소설

6. 태평천하 채만식 대표작품집 1
태평천하 | 냉동어 | 허생전

7. 달밤 이태준 중단편전집 1
오몽녀 | 행복 | 모던 걸의 만찬 | 그림자 | 온실 화초 | 누이 | 기생 산월이 | 백과전서의 신의의 | 은희 부처 | 어떤 날 새벽 | 결혼의 악마성 | 고향 | 아무 일도 없소 | 봄 | 불우 선생 | 천사의 분노 | 실낙원 이야기 | 서글픈 이야기 | 코스모스 이야기 | 슬픈 승리자 | 꽃나무는 심어놓고 | 미어기 | 아담의 후예 | 어떤 젊은 어미 | 어떤 화제 | 마부와 교수 | 달밤 | 방물장사 늙은이 | 빙점하의 우울 | 촌뜨기 | 점경 | 우암 노인 | 애욕의 금렵구 | 색시 | 손거부 | 순정

8.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단편전집 1
메밀꽃 필 무렵 | 낙엽기 | 성찬 | 마음에 남는 풍경 | 삽화 | 개살구 | 거리의 목가 | 장미 병들다 | 막 | 공상구락부 | 부록 | 소라 | 해바라기 | 가을과 산양 | 산정 | 황제 | 향수 | 일표의 공능 | 사냥 | 여수 | 소복과 청자 | 하얼빈 | 라오콘의 후예 | 산협 | 봄 의상 | 엉겅퀴의 장 | 일요일 | 풀잎 | 만보

9. 봄봄 김유정 단편전집
산골 나그네 | 총각과 맹꽁이 | 소낙비 | 금 따는 콩밭 | 노다지 | 금 | 떡 | 산골 | 만무방 | 솥 | 봄봄 | 아내 | 심청 | 봄과 따라지 | 가을 | 두꺼비 | 봄밤 | 이런 음악회 | 동백꽃 | 야앵 | 옥토끼 | 생의 반려 | 정조貞操 | 슬픈 이야기 | 따라지 | 땡볕 | 연기 | 두포전 | 형 | 애기

10. 날개 이상 소설전집
12월 12일 | 지도의 암실 | 휴업과 사정 | 지팡이 역사 | 지주회시 | 날개 | 봉별기 | 동해 | 황소와 도깨비 | 공포의 기록 | 종생기 | 환시기 | 실화 | 단발 | 김유정 | 불행한 계승

11. 두 파산 염상섭 단편전집
만세전 | 표본실의 청개구리 | E 선생 | 숙박기 | 해방의 아들 | 양과자갑 | 임종 | 두 파산 | 굴레 | 절곡

12.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대표작품집 2
레디메이드 인생 | 치숙 | 두 순정 | 쑥국새 | 소망 | 패배자의 무덤 | 순공 있는 일요일 | 당랑의 전설 | 해후 | 맹 순사 | 미스터 방 | 논 이야기 | 처자 2 | 낙조 | 민족의 죄인

13. 도시와 유령 이효석 단편전집 2
여인 | 황야 | 누구의 죄 | 나는 말 못했다 | 달의 파란 웃음 | 홍소 | 맥진 | 필요 | 노인의 죽음 | 가로의 요술사 | 주리면… | 도시와 유령 | 행진곡 | 기우 | 노령 근해 | 깨트려진 홍등 | 추억 | 상륙 | 마작철학 | 악령기 | 북국 사신 | 오후의 해조 | 프렐류드 | 북국점경 | 오리온과 능금 | 시월에 피는 능금꽃 | 돈 | 수탉 | 독백 | 마음의 의장 | 일기 | 수난 | 성수부 | 계절 | 성화 | 데생 | 산 | 분녀 | 들 | 천사와 산문시 | 인간산문 | 석류 | 고사리

14. 무정 이광수 장편소설

15. 유정 이광수 대표작품집
유정 | 꿈 | 무명

16. 흙 이광수 장편소설

17.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 단편전집 2
발가락이 닮았다 | 붉은 산 | 사기사 | 소설 급고 | 사진과 편지 | 대동강은 속삭인다 | 최 선생 | 몽상록 | 어떤 날 밤 | 광화사 | 가두 | 가신 어머님 | 대탕지 아주머니 | 김연실전 | 선구녀 | 곰네 | 집주릅 | 아부용 | 송 첨지 | 석방 | 학병 수첩 | 김덕수 | 반역자 | 망국인기 | 속 망국인기 | 주춧돌 | 환가

18. 해방전후 이태준 단편전집 2
삼월 | 까마귀 | 바다 | 장마 | 철로 | 복덕방 | 코스모스 피는 정원 | 사막의 화원 | 패강랭 | 영월 영감 | 아련 | 농군 | 밤길 | 토끼 이야기 | 사냥 | 석양 | 무연 | 돌다리 | 뒷방마님 | 해방 전후 | 농토 | 어린 수문장 | 불쌍한 소년 미술가 | 슬픈 명일 추석 | 쓸쓸한 밤길 | 불쌍한 삼형제 | 외로운 아이 | 몰라쟁이 엄마

19. 사랑 이광수 장편소설

20. 운현궁의 봄 김동인 장편소설

21. 무영탑 현진건 장편소설

22. 탁류 채만식 장편소설

23. 오감도·권태 이상 시·산문전집
<시> 이상한가역반응 | 파편의경치 | ▽의유희 | 수염 | BOITEUXㆍBOITEUSE | 공복 | 조감도: 2인… 1… / 2인… 2… / 신경질적으로비만한삼각형 / LE URINE / 얼굴 / 운동 / 광녀의 고백 / 흥행물천사 | 삼차각설계도: 선에관한각서 1 / 선에관한각서 2 / 선에관한각서 3 / 선에관한각서 4 / 선에관한각서 5 / 선에관한각서 6 / 선에관한각서 7 | 건축무한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 / 열하약도 No.2 / 진단 0:1 / 22년 / 출판법 / 차8씨의출발 / 대낮 ―어느ESQUISSE― | 꽃나무 | 이런시 | 1933, 6, 1 | 거울 | 보통기념 | 오감도: 시제1호 / 시제2호 / 시제3호 / 시제4호 / 시제5호 / 시제6호 / 시제7호 / 시제8호 해부 / 시제9호 총구 / 시제10호 나비 / 시제11호 / 시제12호 / 시제13호 / 시제14호 / 시제15호 | ·소·영·위·제· | 정식 | 지비紙碑 | 지비 | 역단: 화로 / 아침 / 가정 / 역단 / 행로 | 가외가전 | 명경 | 위독: O 금제 / O 추구 / O 침몰 / O 절벽 / O 백화 / O 문벌 / O 위치 / O 매춘 / O 생애 / O 내부 / O 육친 / O 자상 | I WED A TOY BRIDE | 파첩 | 무제 1 | 무제 2 | 청령 | 한개의밤 | 척각 | 거리 | 수인이만들은소정원 | 육친의장 | 내과 | 골편에관한무제 | 가구의추위 | 아침 | 최후 | 무제 3 | 1931년 | 습작 쇼윈도 수점 | 회한의 장 | 요다 준이치 | 쓰키하라 도이치로 <산문> 혈서 삼태 | 산책의 가을 | 산촌여정 | 서망율도 | 조춘점묘 | 여상 | 약수 | EPIGRAM | 행복 | 추등잡필 | 십구 세기식 | 권태 | 슬픈 이야기 | 실낙원 | 병상 이후 | 동경 | 최저낙원 | 무제 | 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 모색 | 어리석은 석반 | 첫 번째 방랑 | 단상 <서간> 동생 옥희 보아라 | 김기림에게 1 | 김기림에게 2 | 김기림에게 3 | 김기림에게 4 | 김기림에게 5 | 김기림에게 6 | 김기림에게 7 | H 형에게 | 남동생 김운경에게

24. 단종애사 이광수 장편소설

25. 원효대사 이광수 장편소설

26. 재생 이광수 장편소설

27. 벙어리 삼룡이 나도향 중단편전집
젊은이의 시절 |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 | 은화?백동화 | 십칠 원 오십 전 | 당착 | 춘성 | 속 모르는 만년필 장사 | 여이발사 | 행랑 자식 | 자기를 찾기 전 |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 계집 하인 | 벙어리 삼룡이 | 물레방아 | 꿈 | 뽕 | 피 묻은 편지 몇 쪽 | 지형근 | 화염에 싸인 원한 | 청춘

28. 향수 정지용 시전집
카페 프란스 | 슬픈 인상화 | 파충류 동물 | 지는 해 | 띠 | 홍시 | 병 | 삼월 삼짇날 | 딸레 | ‘마음의 일기’에서 | Dahlia | 홍춘紅椿 | 산엣 색시 들녘 사내 | 산에서 온 새 | 넘어가는 해 | 겨울 밤 |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 | 굴뚝새 | 옛이야기 구절 | 갑판 위 | 바다 | 바다 2 | 바다 3 | 바다 4 | 호면湖面 | 새빨간 기관차 | 내 맘에 맞는 이 | 무어래요? | 숨기 내기 | 비둘기 | 이른 봄 아침 | 향수 | 바다 5 | 자류?榴 | 종달새 | 산소 | 벚나무 열매 | 엽서에 쓴 글 | 슬픈 기차 | 할아버지 | 산 너머 저쪽 | 해바라기 씨 | 오월 소식 | 황마차幌馬車 | 선취船醉 1 | 압천鴨川 | 발열 | 말 1 | 풍랑몽風浪夢 1 | 태극선太極扇 | 말 2 | 우리나라 여인들은 | 갈매기 | 바람 1 | 겨울 | 유리창 1 | 바다 6 | 피리 | 저녁 햇살 | 호수 1 | 호수 2 | 아침 | 바다 7 | 바다 8 | 절정 | 별똥 | 유리창 2 | 성부활주일 | 그의 반 | 풍랑몽 2 | 촛불과 손 | 무서운 시계 | 난초 | 밤 | 바람 2 | 봄 | 바다 9 | 석취石臭 | 달 | 조약돌 | 기차 | 고향 | 은혜 | 해협 | 비로봉 1 | 임종 | 별 1 | 갈릴래아 바다 | 시계를 죽임 | 귀로 | 다른 하늘 | 또 하나 다른 태양 | 불사조 | 나무 | 권운층 위에서 | 승리자 김 안드레아 | 홍역 | 비극 | 다시 해협 | 지도 | 말 3 | 바다 10 | 유선애상流線哀傷 | 파라솔 | 폭포 | 비로봉 2 | 구성동九城洞 | 옥류동玉流洞 | 슬픈 우상 | 삽사리 | 온정溫井 | 소곡小曲 | 장수산 1 | 장수산 2 | 춘설 | 백록담 | 천주당天主堂 | 조찬朝餐 | 비 | 인동차忍冬茶 | 붉은 손 | 꽃과 벗 | 도굴盜掘 | 예장禮裝 | 나비 | 호랑나비 | 진달래 | 선취 2 | 별 2 | 창 | 이토異土 | 애국의 노래 | 그대들 돌아오시니 | 추도가追悼歌 | 무제 | 꽃 없는 봄 | 기자奇字 | 처妻 | 여제자 | 녹번리碌磻里 | 내 마흔아홉이 벅차겠구나 | 곡마단 | 늙은 범 | 네 몸매 | 꽃분 | 산山달 | 나비 | 그리워

29. 탈출기 최서해 단편전집1
토혈 | 고국 | 십삼 원 | 탈출기 | 향수 | 박돌의 죽음 | 기아와 살육 | 보석 반지 | 기아 | 큰물 진 뒤 | 폭군 | 설날 밤 | 백금 | 의사 | 해돋이 | 그믐밤 | 담요 | 금붕어 | 누가 망하나 | 만두 | 팔 개월 | 저류 | 동대문 | 이역원혼

30. 천변풍경 박태원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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