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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무명

이광수 저 | 동서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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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9716558 / 560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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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무정>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근대적 개인을 발견하다! <무정>은 20세기 이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고 가장 자주 출간된 작품이다. 1917년 1월 1일부터 126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고, 1918년 광익서관(廣益書館)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근대문학사상 첫 장편소설로 여겨지며 춘원의 작가적 명성을 굳히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무정>은 한국문학 최초로 근대적 ‘개인’을 발견해 낸 기념비적 작품으로도 꼽힌다. <무정>은 형식과 영채, 선형을 둘러싼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은 김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 개인교습을 한다. 김장로는 근대화한 인물로서 딸을 유학 보낼 예정으로 영어교육을 시키고, 자유결혼관을 이해하기도 한다. 선형의 가정교사 노릇을 하던 중 형식은 어릴 때 알던 은사의 딸인 영채의 소식을 듣는다. 그는 양반가문의 딸인 영채와는 정혼한 사이이다. 영채는 투옥된 애국지사인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으면서도 형식을 찾아다녔고, 상경한 영채는 경성학교 배학감에게 순결을 빼앗기고는 형식에게 유서를 남기고 다시 사라진다. 자살을 기도한 영채는 우연히 동경 유학생인 신여성 병욱을 만나 자살을 단념하게 되고 신세계에 대한 자각을 시작한다. 영채는 음악과 무용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날 계획까지 세운다. 그동안 영채와 선형 사이에서 고민하던 형식은 단안을 내려 선형과 약혼한다. 미국 유학길을 떠난 기차에서 우연히 형식과 영채는 재회하고, 그들은 저마다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고국에 돌아와 문명사상의 보급 등에 함께 힘쓸 것을 다짐한다. 자아 각성을 바탕으로 한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를 민족에 대한 각성으로까지 확대한 <무정>은, 그즈음 신소설에 비하여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를 구체화했고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강력한 권위에 복종하는 데에서 이형식에게 의존하는 데로 이행하며, ‘효(孝)’와 ‘정(貞)’이라는 삶의 목표를 잃고 좌절하자 자살을 결행하는 영채의 모습 속에는 춘원이 의도한 전통과 근대의 대립 양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연애 문제, 새로운 결혼관 등을 통하여 당대에 최고의 시대적 선(善)으로 받아들여진 문명개화를 표방한 문학사상 기념비가 되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늘 새롭게 읽히는 한국인의 필독 초베스트셀러! <무정>은 출간되자마자 1만 부 이상 팔리며 그 무렵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는 작품이 연애를 중심으로 한 오락적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형식과 선형, 영채의 삼각관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갈대처럼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그려져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무정>이 갖는 중요한 의의는 1910년대 유행했던 흔한 연애 소설에서 벗어나 ‘근대성’, ‘계몽성’까지 담고 있다는 점이다. <무정>을 쓰던 무렵 춘원은 불완전한 개인이 성장해 가면서 민족 주체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광수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결정하는 법을 배워 가는 청년들이 조선의 앞날을 새롭게 써 나가기를 희망했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저마다 떠나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형식과 선형, 영채는 조선의 앞날을 걱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과 과학으로 조선 민중을 계몽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렇듯 조선의 앞날을 희망적으로 그린 <무정>은 늘 조선 독립을 꿈꿨던 이광수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시대적 한계 속에서 춘원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는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춘원 이광수 고뇌가 담긴 불멸의 작품 <무명> <무명>은 1939년 《문장》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이광수는 도산 안창호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음 달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며, 동우회사건(同友會事件)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해 병원에서 구술로 탈고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 삼아 계몽문학으로 일관해온 춘원 이광수가 불교적 인식으로서 전환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정신사적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 입감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병감으로 보내진다. 과식과 악담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기범 윤과 마름 노릇을 하던 방화범 민 노인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민이 병감으로 옮긴 뒤, 정이라는 평안도 출신의 사기범이 들어오자 윤과 정은 쉴 새 없이 다툰다. 나와 윤과 정이 다시 옮겨간 방에서 다시 민을 만나고, 기자 출신으로 공갈 취재를 하였다는 강을 만나자 윤과 정은 기가 죽고 만다. 민이 복막염으로 병보석으로 출감한 뒤, 옆방에서는 장질부사를 앓던 청년 하나가 죽어 나가고 윤은 폐결핵으로 다시 전방된다. 무죄방면을 바라고 《무량수경》을 얻어다 읽던 정은 징역 일 년 반을 선고받고, 강도 징역 이년 판결을 받는다. 강이 상소권을 포기하고 선선히 복죄해버린 것에 대조되어 정은 멸시받게 된다. 윤도 마침내 병보석으로 출감한다. 내가 출옥한 뒤 석 달이나 지나서 출옥한 간병부의 말을 들으니, 민도 죽고, 윤도 죽고, 강은 목수 일을 하고 있고 정은 병이 악화되어 본감 병감에 가 있는데, 도저히 공판정에 나가볼 가망조차 없다고 한다. <무명>은 이광수 그 자신이 소설다운 소설로 자부했듯이 부정적 인물들의 군상이 치밀하게 그려진다. 죄수들의 이기심과 탐욕의 양상을 전형화해 인간 성격의 어두운 측면을 숨김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일방적인 교화와는 특히 차이가 난다. 그들의 탐욕과 분노는 바로 그들의 무지의 소산인데 이것이 바로 작품명인 <무명(無明)>의 배경이다. 수감된 죄수들의 관계 속에 인간의 소유욕에 뿌리를 두고 일어나는 고통의 번뇌인 욕망과 집착과 무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윤·민·정 세 사람의 성격적 결함과 탐욕·분노로 빚어지는 암투와 시기·아첨·자기과시·거짓말 등이 빚는 사건전개가 중추를 이루며 빛나는 문학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다. 한국 신문학의 아버지 춘원 이광수! “춘원은 우리가 귀중히 받드는 최초요, 최대의 작가입니다. 여기서 ‘최초’라 말하는 것은 우리의 신문학이 춘원으로부터 시작된 까닭이요, ‘최대’라 말하는 것은 신문학 발전 50년 동안 지금까지 춘원만큼 커다란 존재가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김팔봉) “나는 서슴지 않고 춘원 이광수를 한국 신문학 50년 사상 최대의 작가라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김붕구) “춘원 이광수는 한국현대문학의 개척자이며 선구자이다.” (백철) “한국현대문학 어두움의 새벽을 여는 첫닭 울음소리, 춘원 이광수” (이어령) “누가 함부로 말하는가, 춘원 이광수는 선각자로서 독립운동가요 민족계몽가이며 한국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한 한민족 불멸의 대문호임을 누가 부정한단 말인가.” (고산고정일) 여러 문학 평론가들의 견해는 춘원 이광수를 신문학 50년사에서 최초 최대의 작가로 보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처럼 춘원 이광수가 높은 평가를 얻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서구적인 개념의 소설을 처음으로 쓴 것이 춘원이며, 평이한 조선말로 그 시대 조선인의 이념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춘원 이광수이다. 더욱이 춘원은 서구의 개인주의를 조선인에게 불어넣은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 신문학사의 아버지이자 우리 문학의 축복인 춘원 이광수《무정》 《흙》 《사랑》 《유정》 《무명》을 비롯하여 영원한 그의 숲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살 수 있으리.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목차

[사진으로 보는 이광수의 생애]

무정
나의 최초의 저서 … 37
무정 …39

무명
무명…433

민족 속에 스스로 갇힌 지식인-복거일…491
춘원 이광수 삶의 길-고산고정일…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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