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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 김유정 저 | 홍재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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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6227241 / 320쪽 208 x 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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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상, 김유정 서거 81주기 추모… 19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두 문학 천재의 삶과 우정, 문학! 이상과 김유정.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혼을 이해했던 절친한 문우이자 단짝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채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19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는 이상, 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주옥같은 글 중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엄선, 당시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삶의 순간순간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작품을 연대순으로 실었으며, 속어와 방언 역시 그대로 살려서 작품의 맛과 읽는 재미를 살렸다. 또한, 두 사람 사후 그의 벗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그들을 추억하는 글을 함께 담아 감동과 가슴 먹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아, 이상! 아, 김유정!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삶을 살면서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 1937년 4월 17일. 한 젊은이가 일본 도쿄에서 돌연 사망한다. 그에 앞서, 20여 일 전에도 스물아홉의 젊은이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혼을 이해했던 절친한 문우이자 단짝이었다. 연이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의 가족과 벗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이에 얼마 후 합동 추도식을 올리며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상과 김유정. 혜성같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짧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거나 어린아이의 말장난, 혹은 촌스럽고 수준 낮은 잡설이라고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 모두 가난과 고독과 싸우며 신산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1935년 봄, 김유정의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김유정이 낯을 심하게 가린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다면, 이상은 말 그대로 모던보이요, 투사와도 같았다. 그러니 성격적으로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사이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유독 잘 어울렸고, 우정 역시 남달랐다. 둘 다 몹시 가난한 데다, 폐병과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 등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연대순으로 엄선, 신산했던 삶의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해학과 풍자로 대변되는 김유정의 글과 허무와 초현실주의로 대변되는 이상의 글을 생각하면 얼핏 두 사람 사이의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역시 매우 컸고, 때로는 작품 속에 서로의 삶을 투영하기도 했다. 예컨대, 이상이 소설체로 쓴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보면 김유정의 모습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삶을 살다간 그들의 삶에 관한 안타까운 반추이리라.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는 이상, 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남긴 주옥같은 글 중 삶이 직접 투영된 에세이만을 엄선, 당시 그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 삶의 순간순간 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작품을 연대순으로 실었으며, 속어와 방언 역시 그대로 살려서 작품의 맛과 읽는 재미를 살렸다. 또한, 두 사람 사후 그의 벗들이 슬픔을 억누르며 그들을 추억하는 글을 함께 담아 감동과 가슴 먹먹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감동과 가슴 먹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 김유정 문학의 에스프리!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일찍 떠나야만 했을까. 또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하던 시는, 소설은 어찌 잊고 갔을까. 김기림과 채만식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과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먼저 간 벗에 관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끄집어낸다. 짐짓, 태연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 (중략) …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유정은 단지 원고료 때문에 소설을 쓰고, 수필을 썼다. 4백 자 한 장에 대돈 50전야라를 받는 원고료를 바라고, 그는 피 섞인 침을 뱉어가면서도 소설을, 수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쓴 원고의 원고료를 받아서 그는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유정은 죽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사람이 밥을 먹은 것이냐? 버젓하게 밥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지. - 채만식, <밥이 사람을 먹다 ─ 유정의 굳김을 놓고> 중에서 모든 죽음은 큰 슬픔을 머금고 있다. ‘그’라는 존재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전함과 공허함이 마음을 쑤셔놓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쓴 작가 박태원은 “이상이 없는 서울은 너무도 쓸쓸하다”고 했으며, 채만식 역시 김유정의 죽음을 두고 “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가슴 아팠을 그들의 절절한 슬픔과 외로움이 두 사람의 굴곡진 삶과 함께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열두 살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를 짝사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고향인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1935년 이무영, 이상, 정지용 등이 속한 순수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고, 같은 해 , <조선일보>에 , <소낙비>, , <중외일보>에 , <노다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짧은 문단 생활 중에도 김유정은 병과 가난과 싸우면서 30여 편의 단편을 남기고, 1937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금따는 콩밭>, <봄봄><따라지>, <두꺼비>, <동백꽃>, <땡볕>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이봐, 누가 좀 불을 켜주게나. 더듬거리면서 겨우 여기까지 왔네그려. 이렇게 캄캄해서야. 이젠 아주 글렀네. 무서워서 한 발자국인들 내놓을 수 있겠는가? 이봐, 누가 좀 불을 켜주게나.
- 이 상, <누가 좀 불을 켜주게나> 전문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 이 상, <어느 시대에도> 전문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라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2천 점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어놓고 하도 야단해서 뱀 꼬랑지는커녕 쥐 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 이 상, <산묵집 ─ 오감도 작자의 말> 중에서

나는 요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를 위하여 따로 한 길이 옆에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 길이 얼마나 멀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내가 그 길을 완전히 걷는 날, 그날까지는 나의 몸과 생명이 결코 꺾임이 없을 것을 굳게굳게 믿는 바다.
- 김유정, <길 ─ 아무도 모르는 내 비밀> 중에서

눈이 내리는 걸 바라보는 것은 요즘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눈이 내린다고 나의 마음에 별반 소득이 있을 것도 아니다. 다만 눈이 내리면 검은 자리가 희게 되고, 마른 땅에가 얼음이 얼어붙은 그뿐이다. 요만한 변동이나마 자연에서 찾아보려는 가냘픈 욕망임이 틀림없으리라.
- 김유정, <병상영춘기> 중에서

몸이 아프면 아플수록 어머니 생각이 난다. 허나 없기를 다행이다. 그는 당신이 낳은 자식이 이토록 못 생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편히 잠드셨나. 만일 나의 이 꼴을 보신다면 응당 그는 슬프려니, 하면 없기를 불행 중 다행이다.
- 김유정, <병상영춘기> 중에서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해다오. 요즘 나는 가끔 울면서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일뿐이다.
- 김유정, <필승前> 중에서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 (중략) … 상의 죽음은 한 개인의 생리의 비극이 아니다. 축쇄된 한 시대의 비극이다.
-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 중에서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유정임을 절절히 느꼈다. 공손하되 허식이 아니요, 다정하되 그냥 정이요, 유정에게 어디 교만이 있으리오. 그는 진실로 톨스토이(유정의 마지막 일작 <따라지>의 등장인물로 누이에게 얹혀살며 글을 쓰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
- 채만식, <유정과 나> 중에서

눈에 띄게 삐쩍 마른 김유정을 바라보며 이상이 물었다.
“김 형(김유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 형! 김 형(이상.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유정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기는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비쩍 마른 김유정의 가슴이 부풀었다 구겨졌다하는 것을 본 이상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못내 슬픈 얼굴로 뒤돌아서야 했다.
“김 형! 저는 내일 아침 차로 동경으로 떠납니다.”
“그래요? 또 뵙기 어려울 걸요.”
이 말을 끝으로 김유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살아생전 마지막 만남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목차

프롤로그 ─ 이상, 김유정, 두 문학 천재가 빚어낸 삶의 희로애락

이상 다시 읽기
김유정 다시 읽기
이상, 김유정을 추억하다

에필로그 ─ 희유의 투사,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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