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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이상

시리즈 :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6]

김용택, 이상 저 | 마음산책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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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906273 / 140쪽 134 x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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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자신 있게 세상을 비웃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긍정한다” 「오감도」에서 「이상한가역반응」까지, 이상의 시를 읽는 시간 우리 현대시사의 문제적 시인이자, 1934년에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독자들의 항의로 중단해야 했던 시인이 이상이다.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이상』에서는 이상의 시 44편과 「오감도」의 작가의 말을 합한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덧붙였다. 이상은 지금도 미래다. 형식이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이상은 믿는다. 질서의 해체는 시와 시인의 생명이다. 어떤 질서도, 질서는 인간의 영혼을 좀먹으며 낡아간다. 그는 기존의 권위가 싫었다. 타파가 그의 일생이었다. 그는 타파 그 자체를 질서로 삼았다. -16쪽 김용택 시인은 이상의 시가 놀랍도록 현대적이고 뜨겁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전율한다. 또한 1910년, 한일병탄의 해에 태어나 1937년에 죽은 이상의 생애를 두고 아픈 시기에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간, 슬픈 사람이었다고 표현한다. 때론 이상의 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하고, “무수한 생각들이 일어나 달리고 뛰고 난다”며, 숨가쁘게 이상의 호흡을 따라가기도 한다. 읽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암호 같은 이상의 시들은, 김용택 시인의 시선을 거치면서 혼돈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젊은 영혼의 생생한 고백으로 읽힌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시를 읽는 나날을 생각하다 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시인의 눈을 통해 시를 다시 읽는 경험은 특히 귀하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어봄으로써, 언어로 쌓아올린 정교한 시의 세계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시 전문 해설서는 아니지만, 외로움과 번민이 깊어가는 밤에, 손이 닿는 머리맡에 두었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위로받을 수 있는 시집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선을 좇아가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 현대시사의 큰 시인인 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숨결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 농림고등학교를 나왔다. 졸업 그 이듬해에 우연히 친구들을 따라 초등학교 교사 시험을 보러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스물한 살에 선생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스물한 살 때 시작됐다고 늘 큰소리 친다. 산골에서 선생을 하면서 문학에 빠져들어 14년을 혼자 공부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외 8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 여자네 집》, 《나무》, 《연애시집》, 《그래서 당신》, 《수양버들》, 《강 같은 세월》 등을 냈고, 이 시편들로 그가 좋아하는 시인 이름이 붙은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1·2·3》, 《인생》,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 《사람》, 《오래된 마을》,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등을 냈고, 영화를 좋아해서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라는 영화 에세이를 냈다. 


또한 평소 아껴온 시들을 모으고 그만의 감상평을 붙인 시선집 《시가 내게로 왔다 1·2·3·4》,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등을 냈다.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등을 냈으며, 그중 네 편이 2011 현재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몇 안 되는 산골 아이들 앞에 서 있는 것을 자기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로 여겨온 그는, 2008년 교단에서 내려온 뒤에도 늘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 곁에 남으려 한다. 그의 책상에는 로댕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살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는 자존심과 열정, 그리고 의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책 속에서

이상은 지금도 미래다. 형식이 없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이상은 믿는다. 질서의 해체는 시와 시인의 생명이다. 어떤 질서도, 질서는 인간의 영혼을 좀먹으며 낡아간다. 그는 기존의 권위가 싫었다. 타파가 그의 일생이었다. 그는 타파 그 자체를 질서로 삼았다. -16쪽

생이 흉내인지 알면 생은 얼마나 슬픈가. -23쪽

이상은 재미있게 복잡한 시인이다. -44쪽

시인 이상이 죽은 해가 1937년이니, 정확하게 83년 전이다. 그때 쓴 시가 2020년 젊은 시인들의 시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62쪽

이상의 외로움이, 내 외로움과는 다르지만, 같은 길 끝에 그가 무거운 외로움을 질질 끌고 가고 있다. -75쪽

이상이 없었다면, 없었으면, 그랬다면, 우리 시가 얼마나 허전했을까. 그는 텅 빌 뻔한 우리의 시 역사를 꽉 채워주었다. 나는 이상의 시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가슴이 벅차올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곤 했다. -77쪽

좋은 시는 시대를 뛰어넘어 늘 현대다. 늘 현실이다. 지금이다. -80쪽

이상의 언어는 놀랍게도 세계에 가닿는 울림이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혼돈되어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상의 정신은 미세하게 세상의 곳곳에 가닿고, 또 반사된다. -95쪽

깨져 산산이 흩어질 것 같은 사기 컵을 쥐고 있는, 자기 자신을 쥐고 있는 젊은 시인의 절망을 생각한다. -128쪽

그의 응축된 짧은 생, 시와 연애와 폐병은 우리가 살아냈던, 그 시대의 ‘종합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모든 어둠이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134쪽

그는 그의 각혈만큼이나 붉고 뜨거운 자기를 다 쏟아내고 흰 백지로 간 사람이다. -140쪽

목차

서문│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시선집을 엮다

최후
거울
·소·영·위·제·
꽃나무
역단易斷 가정
이상한가역반응
파편의경치
▽의유희
이런시
수염
BOITEUX·BOITEUSE
공복―
1933, 6, 1
보통기념
정식
지비紙碑
지비紙碑―어디갔는지모르는안해―
가외가전街外街傳
명경
거리
역단易斷 아침
역단易斷 화로
위독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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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혈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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