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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이용악

시리즈 :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6]

김용택, 이용악 저 | 마음산책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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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906280 / 112쪽 134 x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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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가락과 율동과 리듬이 산과 산을 타고 넘어가는 눈보라 같다” 「오랑캐꽃」에서 「길」까지, 이용악의 시를 읽는 시간 함경도에서 태어나 만주 유이민들의 힘겨운 삶을 직시했던 이용악. 그의 시는 호방하면서도 삶의 어려움과 질곡을 깊이 있게 표현했다.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이용악』에서는 이용악의 시 39편과 두 번째 시집인 『낡은 집』의 꼬리말을 가려 뽑은 후 김용택 시인의 감상글을 더했다. 김용택 시인은 백석을 떠올리면 이용악이 따라오고, 이용악을 떠올리면 백석이 따라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백석과 이용악의 시 선집 맨 앞부분에는 둘을 나란히 두고 차이를 이야기하는 글을 같이 실었다. 백석이 “섬세한 미성”이라면, 이용악은 “육성”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용악의 시가 동편제면 백석의 시는 서편제다. 용악은 ‘바람 부는 산맥’을 넘어 덜커덩덜커덩 기차에 몸을 싣고 벌판을 간다면 백석은 강을 건너 바람 잔 들길을 걷다가 등잔불 깜박이는 큰 산 아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드는 사람이다. -20쪽 김용택 시인이 “육성”이라고 표현한, 이용악 시에 드러나는 호방한 기질은 독자를 단숨에 매료시킨다. 김용택 시인 역시 힘찬 기운과 리듬감이 돋보이는 「전라도 가시내」를 읽은 뒤엔 감탄사를 지르며 “‘남실남실’ ‘천 리 천 리 또 천 리’ ‘우줄우줄’은 함경도 사나이들의 더디고 느리고 큰 발걸음이다”라고 한다. 김용택 시인이 이용악의 시집 『낡은 집』의 ‘낡은’ 복사본을 읽고 또 읽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자못 흥미롭다. 읽고 또 읽다가 허리가 아프면 돌아누우며 계속 읽었다는 고백을 보고 있노라면, 옛 시인과 현재의 시인이 글을 통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이다. 낯선 시였다. 누워 읽다가 등이 아프면 엎디어 읽다가 허리가 아프면 모로 누워 읽고, 오른쪽 어깨가 괴이면 왼쪽으로 돌아누워 시를 읽었다. 나는 가난했지만 배부름과 등 따신 행복에 젖곤 했다. 창호지 문으로 새어든 달빛이 방 안 가득하였다. 나에게도 욕심 없는 시가 행복한 ‘낡은 집’이 있었다. -111쪽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드는, 시를 읽는 나날을 생각하다 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시인의 눈을 통해 시를 다시 읽는 경험은 특히 귀하다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으로 시를 읽어봄으로써, 언어로 쌓아올린 정교한 시의 세계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시 전문 해설서는 아니지만, 외로움과 번민이 깊어가는 밤에, 손이 닿는 머리맡에 두었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위로받을 수 있는 시집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선을 좇아가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 현대시사의 큰 시인인 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숨결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저자 소개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 농림고등학교를 나왔다. 졸업 그 이듬해에 우연히 친구들을 따라 초등학교 교사 시험을 보러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스물한 살에 선생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스물한 살 때 시작됐다고 늘 큰소리 친다. 산골에서 선생을 하면서 문학에 빠져들어 14년을 혼자 공부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외 8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 여자네 집》, 《나무》, 《연애시집》, 《그래서 당신》, 《수양버들》, 《강 같은 세월》 등을 냈고, 이 시편들로 그가 좋아하는 시인 이름이 붙은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 1·2·3》, 《인생》,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 《사람》, 《오래된 마을》,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등을 냈고, 영화를 좋아해서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라는 영화 에세이를 냈다. 


또한 평소 아껴온 시들을 모으고 그만의 감상평을 붙인 시선집 《시가 내게로 왔다 1·2·3·4》,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등을 냈다.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등을 냈으며, 그중 네 편이 2011 현재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몇 안 되는 산골 아이들 앞에 서 있는 것을 자기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로 여겨온 그는, 2008년 교단에서 내려온 뒤에도 늘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 곁에 남으려 한다. 그의 책상에는 로댕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인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살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는 자존심과 열정, 그리고 의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이용악은 아버지의 객사 후에는 어머니가 꾸린 궁핍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8년 함북 부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19세에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일본 히로시마의 고분(興文)중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1933년에 졸업했고 이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1학년을 수료했다. 그 후 약 2년 동안 생활고를 겪으며 막노동에 종사했다. 1936년 4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막노동을 병행해야 했으며, 방학이면 돌아와 고향의 문인들과 어울리곤 했다. 
문학에 꿈을 품은 그는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학지인 도쿄에서 동향(함북 명천)의 시인 김종한(金鍾漢, 1916∼1944)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을 5∼6회 발행했으며, 형 송산(松山)과 동생 용해(庸海)와 함께 삼형제가 시를 썼다. 도쿄의 산분샤(三文社)에서 두 권의 시집 ≪분수령≫(1937)과 ≪낡은 집≫(1938)을 잇따라 펴냄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40년대 초반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서정주·오장환과 더불어 “문단의 삼재(三才)”로 꼽힐 정도로 문단 중심에 진입했다. 1939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최재서(崔載瑞)가 주관한 당대의 문예지 ≪인문평론≫에 기자로 몸담았으나 생활은 여전히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1년 ≪인문평론≫이  폐간된 후 귀향해 한동안 함북 지역의 유일한 신문이자 일본어 신문인 ≪청진일보(淸津日報)≫의 기자 생활과 주을(朱乙) 면사무소 서기 생활을 했으며, 문필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급거 서울로 돌아와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는 한편 11월경부터 약 1년간 당시의 대표적 좌익지인 ≪중앙신문≫의 기자로 근무했다. 이듬해 2월 8일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서 활동했으며 이 단체가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에 참석하고 <전국문학자대회(全國文學者大會) 인상기(印象記)>를 썼다. 1947년에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을 아문각(雅文閣)에서, 1949년에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李庸岳集)≫을 동지사(同志社)에서 각각 상재했다. 1947년 남로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월북 시인인 배호(裵澔)와 함께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서울시지부 예술과의 핵심 요원으로 선전·선동 활동에 종사했다. 1949년 8월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검거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하다가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풀려 나와 고향인 북을 선택했다. 1953년 임화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숙청당할 때 “공산주의를 말로만 신봉하고 월북한 문화인”으로 지목되어 한동안 집필을 금지당했다. 이후 <평남관개시초(平南灌漑詩抄)> 제작(1956)과 ≪역대악부시가≫를 번역하고 발간하는 데 참여했고, 1971년 58세에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책 속에서

용악의 시가 동편제면 백석의 시는 서편제다. 용악은 ‘바람 부는 산맥’을 넘어 덜커덩덜커덩 기차에 몸을 싣고 벌판을 간다면 백석은 강을 건너 바람 잔 들길을 걷다가 등잔불 깜박이는 큰 산 아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드는 사람이다. -20쪽

‘배고프지’는 동물적인 굶주림이나 허기가 아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배고픔의 시, 어느 바다 끝에서 달려와 엎디어 우는 영혼의 시다. -21쪽

내 시같이 좋아서 내가 쓴 시같이 좋아서 내가 이렇게 시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다. -23쪽

순정은 때가 없다. 헛살도 오르지 않았다. 바람에 저항할 기운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하니, 바람에 찢기지도 않고 더운 바람에 상하지도 않는다. 순정을 다 바친, 사랑의 눈은 다치지 않는다. -27쪽

이 시인은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자기도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일을 가지고 이렇게나 사람을 길가에 쓰러뜨려버리는 것이다. -48쪽

놀랍다. 이렇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한 호흡으로 잔잔한 물결처럼 시를 이어가다니, 시의 놀라운 운용이다. -67쪽

이용악만큼 우리 고유의 속 깊은 정을 드러내준 시인도 드물다. 정은 진심이다. 마음이다. 인심이다. 믿음이다. -76쪽

이용악 하면 늘 끝에, 히히 몰래 혼자 웃는 그이가 생각나 어떤 구석진 곳이 아프다. -87쪽

순하고 착한 말을 찾고 선한 말로 조용조용 시의 나라를 세웠다. 그의 미움도, 싸움도 나라의 이름을 불러 물리쳤다. 그의 시에는 부끄러운 티 하나 없다. -100쪽

목차

서문│김소월, 백석, 윤동주, 이상, 이용악의 시선집을 엮다

꽃가루 속에
달 있는 제사
장마 개인 날
등잔 밑
북쪽
해당화
비늘 하나
다리 우에서
집
두메산골 1
오랑캐꽃
죽음
노래 끝나면
강가
두메산골 2
두메산골 4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
낡은 집
무자리와 꽃
벌판을 가는 것
짓밟히는 거리에서
전라도 가시내
소원
눈보라의 고향
유정에게
어둠에 젖어
흙
하늘만 곱구나
그리움
뒷길로 가자
버드나무
풀버렛 소리 가득 차 있었다
아이야 돌다리 위로 가자
령
불
새해에
구슬
길
슬픈 일 많으면
『낡은 집』 꼬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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