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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

시리즈 :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90]

이용악 저 | 시인생각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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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047573 / 96쪽 13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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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눈이 날리는 추위와 아픔이 통절하게 녹아있는 북방의 시정신 6.25동란 중 월북하여 74년 북에서 사망하고 88년에야 해금된 이용악 시인의 대표시 50편이 한국대표명시선100의 하나로 선집되어? 나왔다. 함경북도 출신답게 우리 민족의 강한 북방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의 시들에는 식민지의 슬픔 속에서 눈이 날리는 추위와 아픔이 녹아 있다. ‘오랑캐꽃’ ‘북쪽’ 같은 시편에는 우리의 현실과 상실감, 조국애를 묶어 통절하게 녹여낸 시인의 가슴이 뜨겁다 . 시인의 말 1942년이라면 붓을 꺾고 서울로 내려가... 눈이 날리는 추위와 아픔이 통절하게 녹아있는 북방의 시정신 6.25동란 중 월북하여 74년 북에서 사망하고 88년에야 해금된 이용악 시인의 대표시 50편이 한국대표명시선100의 하나로 선집되어 나왔다. 함경북도 출신답게 우리 민족의 강한 북방 정신이 깃들어 있는 그의 시들에는 식민지의 슬픔 속에서 눈이 날리는 추위와 아픔이 녹아 있다. ‘오랑캐꽃’ ‘북쪽’ 같은 시편에는 우리의 현실과 상실감, 조국애를 묶어 통절하게 녹여낸 시인의 가슴이 뜨겁다 . 시인의 말 1942년이라면 붓을 꺾고 서울로 내려가든 해인데 서울을 떠나기 전에 시집 ‘오랑캐꽃’을 내놓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이듬해 봄엔 모 사건에 얽혀 원고를 모조리 함경북도 경찰부에 빼앗기고 말았다. -시집 ‘오랑캐꽃’(1947.3.20)에서 그리움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북쪽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저자 소개

이용악은 아버지의 객사 후에는 어머니가 꾸린 궁핍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8년 함북 부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19세에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일본 히로시마의 고분(興文)중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1933년에 졸업했고 이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1학년을 수료했다. 그 후 약 2년 동안 생활고를 겪으며 막노동에 종사했다. 1936년 4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막노동을 병행해야 했으며, 방학이면 돌아와 고향의 문인들과 어울리곤 했다. 
문학에 꿈을 품은 그는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학지인 도쿄에서 동향(함북 명천)의 시인 김종한(金鍾漢, 1916∼1944)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을 5∼6회 발행했으며, 형 송산(松山)과 동생 용해(庸海)와 함께 삼형제가 시를 썼다. 도쿄의 산분샤(三文社)에서 두 권의 시집 ≪분수령≫(1937)과 ≪낡은 집≫(1938)을 잇따라 펴냄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40년대 초반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서정주·오장환과 더불어 “문단의 삼재(三才)”로 꼽힐 정도로 문단 중심에 진입했다. 1939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최재서(崔載瑞)가 주관한 당대의 문예지 ≪인문평론≫에 기자로 몸담았으나 생활은 여전히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1년 ≪인문평론≫이  폐간된 후 귀향해 한동안 함북 지역의 유일한 신문이자 일본어 신문인 ≪청진일보(淸津日報)≫의 기자 생활과 주을(朱乙) 면사무소 서기 생활을 했으며, 문필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급거 서울로 돌아와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는 한편 11월경부터 약 1년간 당시의 대표적 좌익지인 ≪중앙신문≫의 기자로 근무했다. 이듬해 2월 8일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서 활동했으며 이 단체가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에 참석하고 <전국문학자대회(全國文學者大會) 인상기(印象記)>를 썼다. 1947년에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을 아문각(雅文閣)에서, 1949년에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李庸岳集)≫을 동지사(同志社)에서 각각 상재했다. 1947년 남로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월북 시인인 배호(裵澔)와 함께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서울시지부 예술과의 핵심 요원으로 선전·선동 활동에 종사했다. 1949년 8월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검거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하다가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풀려 나와 고향인 북을 선택했다. 1953년 임화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숙청당할 때 “공산주의를 말로만 신봉하고 월북한 문화인”으로 지목되어 한동안 집필을 금지당했다. 이후 <평남관개시초(平南灌漑詩抄)> 제작(1956)과 ≪역대악부시가≫를 번역하고 발간하는 데 참여했고, 1971년 58세에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목차

목차
1
오랑캐꽃
낡은 집
북쪽
.
.
.
2
북국의 가을
나를 만나거든
항구
.
.
.
3
달 있는 제사
밤이면 밤마다
만추
.
.
.
4
거리에서
당신의 소년은
별 아래
.
.
.
5
죽음
38도에서
오월에의 노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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