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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과 의열단 [개정판]

박태원 저 | 깊은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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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4162429 / 285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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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영화 속 작전을 실제 지휘한 인물 약산 김원봉” 영화 속 작전을 실제 지휘한 인물 약산 김원봉의 증언이 담긴 귀중한 책이 나왔다.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당대 최고의 작가?이던 박태원은 의열단 단원 유자명의 ‘의열단간사(義烈團簡史)’와 근근이 보존되어있던 의열단 단원들의 편지 및 당시의 신문기사를 참조하였고 약산 김원봉의 생생한 구술을 받아 완성한 책이다. 풍찬노숙을 하며 오로지 독립의 염원으로 수많은 의거를 일으켰던 독립 운동가들의 눈물겨운 기록이며 우리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자산인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의 ... “영화 속 작전을 실제 지휘한 인물 약산 김원봉” 영화 속 작전을 실제 지휘한 인물 약산 김원봉의 증언이 담긴 귀중한 책이 나왔다.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당대 최고의 작가이던 박태원은 의열단 단원 유자명의 ‘의열단간사(義烈團簡史)’와 근근이 보존되어있던 의열단 단원들의 편지 및 당시의 신문기사를 참조하였고 약산 김원봉의 생생한 구술을 받아 완성한 책이다. 풍찬노숙을 하며 오로지 독립의 염원으로 수많은 의거를 일으켰던 독립 운동가들의 눈물겨운 기록이며 우리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자산인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의 기록은 그동안 남이나 북에서 잊혀져왔다. 영화 을 통해서 재조명되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제는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을 크게 두려워해 현상금을 백범 김구 선생 보다도 더 많은 100만원(현재 300억)을 걸었다. 약산 김원봉선생 약산 김원봉은 1919년으로부터 1925년에 이르는 7년간 의열단을 통해 수탈기관 파괴와 요인암살을 계획하고 조직하고 지휘하였다. 1925년 황포군관학교에서 정치와 군사공부를 마치고 중국국민혁명군의 북벌에 참가하였다. 북벌을 끝내고 동지로 더불어 북경에서 비밀정치학교를 설립하여 군사와 정치 두 방면의 인재를 육성하였다. 1932년에는 다시 남경에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창설하여 3년간에 수백 인의 독립열사를 양성하였다. 1935년 여름 분산되어 있던 여러 독립단체들인 ‘신한독립당’, ‘대한독립당’, ‘조선혁명당’, ‘조선의열단’을병합 통합해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하여 중국내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하였다. 1937년 중국이 대일 항전을 치르자 1938년 10월 10일 한구(漢口)에서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적극 참여하였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였으며,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내다가 8·15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그 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그 후 1952년 5월 노동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11월 연안파 제거작업 때 숙청되었다. 의열단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10일 만주 지린(吉林)성 파문호 밖에서 약산 김원봉과 윤세위·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락·권준 등 신흥무관학교 출신 13명에 의해 일제가 이름만 들어도 공포를 떨었던 의열단이 탄생했다. 김원봉을 단장으로 추대했는데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의열단은 7가살(可殺), 5파괴(破壞)를 지침으로 활동했다. 조선총독 이하 고관·군부 수뇌·대만총독·매국적·친일파 거두·적탐·반민족적 토호열신(지방유지) 등을 암살 대상으로,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각 경찰서·기타 왜적의 주요기관을 파괴 대상으로 삼았다.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의열단의 주요 행적들 부산경찰서 폭탄사건 밀양경찰서 폭탄사건 조선총독부 폭탄사건 상해 황포탄사건 동경 2중교 폭탄사건 북경 밀정 암살사건1 북경 밀정 암살사건2 경북 의열단 사건 식산은행 습격사건 동양척식주식회사 습격사건

저자 소개

190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에 [동명]의 '소년칼럼'에 [달맞이]가 뽑혔으며, 춘원 이광수에게 개인적으로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일본 동경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33년에는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에 반기를 든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5년 첫 장편소설 [청춘송]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1936년에는 [조광]에 [천변풍경]을 연재했다. 1946년에 남로당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했으나, 1948년에는 좌익 인사를 감시, 관리하던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중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53년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취임했으나,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면서 창작 금지 조처를 받았다. 1960년에 창작 금지 조처가 풀려 작가로 복귀하면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였지만 당뇨병으로 인한 안질환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는 등 시련을 겪는 가운데 1977년과 1980년에 [갑오농민전쟁] 1,2부를 출간한 후,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3부가 출간되었다.

목차

목차
제1 어린 시절 9
제2 해외로 나가서 21
제3 의열단 탄생 36
제4 제1차 암살파괴계획 43
제5 부산경찰서 폭탄사건 57
제6 밀양경찰서 폭탄사건 67
제7 조선총독부 폭탄사건 73
제8 상해황포탄사건 99
제?9 제2차 대암살 파괴계획 123
제10 동경 2중교 폭탄사건 185
제11 제3차 폭동계획 221
제12 북경 밀정 암살사건(1) 226
제13 북경 밀정 암살사건(2) 241
제14 경북 의열단 사건 245
제15 식은·동척 습격사건 252
제16 잊히지 않는 동지들 270
후기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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