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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 1-20권 A세트

시리즈 :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문학 읽기 [49]

김동인, 김유정, 현진건 외 저 | 북앤북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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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994800 / 3708쪽 / 3,708g / 126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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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김동인 단편선 감자 & 배따라기 & 광염 소나타 외 2.김유정 단편선 봄봄 & 동백? & 금따는 콩밭 외 3.현진건 단편선 운수 좋은날 & 빈처 & B사감과 러브레터 외 4.이효석 단편선 메밀꽃 필 무렵 & 산 & 돼지 외 5.채만식 단편선 레디메이드 인생 & 논 이야기 & 치숙 외 6.이상 단편선 날개 & 권태 & 지도의 암실 외 7.최서해 단편선 탈출기 & 홍염& 전아사 외 8.안국선 단편선 금수회의록 & 공진회 외 9.나도향 단편선 물레방아 & 벙어리 삼룡이 & 행랑 자식 외 10.이태준 단편선 복덕방 & 해방 전후 & 돌... 1.김동인 단편선 감자 & 배따라기 & 광염 소나타 외 2.김유정 단편선 봄봄 & 동백? & 금따는 콩밭 외 3.현진건 단편선 운수 좋은날 & 빈처 & B사감과 러브레터 외 4.이효석 단편선 메밀꽃 필 무렵 & 산 & 돼지 외 5.채만식 단편선 레디메이드 인생 & 논 이야기 & 치숙 외 6.이상 단편선 날개 & 권태 & 지도의 암실 외 7.최서해 단편선 탈출기 & 홍염& 전아사 외 8.안국선 단편선 금수회의록 & 공진회 외 9.나도향 단편선 물레방아 & 벙어리 삼룡이 & 행랑 자식 외 10.이태준 단편선 복덕방 & 해방 전후 & 돌다리 외 11.구운몽 12.운영전 13.춘향전 14.홍길동전 15.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 이생규장전 & 취유부벽정기 외 16.호질 & 양반전 & 허생전 외 17.박씨전 & 임경업전 18.심청전 & 토끼전 19.흥부전 & 옹고집전 20.사씨남정기 등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 전집 세트는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을 초·중·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전20권〕으로 구성하였으며, 한자나 어려운 단어는 괄호 안에 주석을 달아 원작의 표현과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여러 판본을 참조하여 최대한 정확성을 기하였다. 대입수학능력시험과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초·중·고등학교 청소년에게 꼭 읽어야 할 작품들을 예쁜 삽화와 함께 전문을 올 컬러로 편집하였다. 책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넓고 새롭게 보는 통찰력과 수많은 스승들을 만나게 해주는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만큼 근본적인 인성 교육은 없다. 우리가 문명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옛 선인들의 문화유산인 훌륭한 작품들을 읽고 배워 지켜왔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대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그것을 내 것으로 키워내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현행 교육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문학을 배우게 하는 까닭이다. 모든 배움의 시작은 책 읽기로부터 시작되고 고전은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읽고 배운다.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읽고 이해함으로 앞선 조상들의 지혜와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표현과 어휘를 배우며 논리력과 상상력을 키우게 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나고 각 시대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표현과 어휘를 배워 과거와 미래의 삶을 통찰하고 시대를 이끌어 가는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 전집 세트는 한자나 어려운 단어는 괄호 안에 주석을 달아 원작의 표현과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여러 판본을 참조하여 최대한 정확성을 기하였다.

저자 소개

1922년 중앙고보를 거쳐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관동 대진재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하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했다. 1925년 단편 '세 길로'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발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희곡 '사라지는 그림자', 단편 '화물자동차', '부촌' 등 동반작가적인 경향의 작품을 발표하다가 자전적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인텔리와 빈대떡' 등을 발표하면서 풍자성이 강한 사회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이어서 '치숙', 《탁류》 《태평천하》 등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특유의 풍자와 비판을 형상화시킴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120여 편의 소설 및 희곡과 50여 편의 평론 및 수필을 남겼다. 희곡 26편을 남길 정도로 다작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이 중에는 촌극이나 스케치 같은 짧은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여건으로는 공연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아 그중 <예수나 안 믿었드면> 한 편만 1937년 7월 중앙무대에서 공연되었다. 주목할 만한 희곡으로는 <제향날>, <심 봉사>, <당랑의 전설> 등이 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내려가 힘겹게 생활하다가 지병인 폐결핵으로 인해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가산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28년 '조선지광'지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효석의 문학은 시적 서정을 소설의 세계로 승화함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하는 그의 문체는 우리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돈''메밀꽃 필 무렵'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性)의 탐색을 통해 그는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순결한 세계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性)과 결합시킨 시적 서정소설로 새로이 개척해냈다. 이로써,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당시 이태준, 박태원 등과 함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던 이효석은 그러나 그의 황금 같은 문학적 결실을 다 누려보지도 못한 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열두 살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를 짝사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고향인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1935년 이무영, 이상, 정지용 등이 속한 순수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고, 같은 해 , <조선일보>에 , <소낙비>, , <중외일보>에 , <노다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짧은 문단 생활 중에도 김유정은 병과 가난과 싸우면서 30여 편의 단편을 남기고, 1937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금따는 콩밭>, <봄봄><따라지>, <두꺼비>, <동백꽃>, <땡볕> 등이 있다. 


 

본관은 전주이며, 호는 금동, 금동인, 춘사 등을 사용했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하고,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귀국 후 출판법 위반 혐의로 일제에 체포되었고 사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해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춘원 이광수의 계몽적인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했으며, 1925년 무렵부터 유행한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고 순수문학운동을 벌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으로 입사했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우익적 성향의 문인단체 결성을 주도하고, 제헌국회의 부의장을 지내는 등 해방 이후에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으나 중풍으로 쓰러져 1951년 초 하왕십리의 자택에서 병사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이 1955년 제정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1900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를 마치고 중국 상해 호강江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다 3·1 운동을 맞아 귀국하였다. 《개벽》 《동명》 《시대일보》 등을 거치며 세계 문학 사조와 문화론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단편 소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을 통해 현실 문제를 세련된 형식과 언어 감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하며 당대 최고의 기교주의 작가로 꼽혔다. 단편 소설로는 일제하 민족 문제를 포괄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고민에서 점차 장편 소설로 창작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 결과 작가 활동 후반에 이르러 단편 소설의 담박한 문장 구성과 장편 소설의 역사적 시간관이 결합된 장편 소설 『무영탑』을 썼다. 단편 소설의 구성과 언어에 있어 뛰어난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장편 소설의 현실 지향성을 작품 세계 속에 포괄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다. 1930년을 전후하여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바 있으며, 이 시기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1943년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호는 도향·소정지옹(笑亭之翁)·은하(隱荷), 필명은 빈(彬). 처음에는 감상과 낭만을 주조로 했으나, 차츰 당대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썼다. 본명은 경손(慶孫). 아버지 성연(聖淵)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손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병규(炳奎)가 41세에 얻은 아들에게서 회갑에 손자를 얻자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기독교청년회관 안에 있던 공옥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계명〉 편집일을 했고, 1922년 홍사용·현진건·이상화·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로 일했다. 
본명은 학송이고 서해는 호이다.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으며 1911년 성진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가난으로 5학년 때 중퇴하고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였다. 1917년 간도(間島)로 이주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랑하다가 1923년 귀국하였다. 1918년 3월 《학지광》에 시 [우후정원의 월광], [추교의 모색], [반도청년에게]를 발표하여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24년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동아일보에 [토혈]을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며, 1925년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를 발표해 당시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특히 [탈출기]는 살길을 찾아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부부와 노모, 이 세 식구의 눈물겨운 참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묘사한 것이어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했던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1932년 7월 지병인 위문협착증으로 사망한다.
호는 천강이며, 1878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기주쿠 대학을 거쳐 도쿄 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에 귀국했다. 귀국 후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1907년 3월 유배에서 풀려난 뒤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대한협회 등 사회단체의 일원으로서 애국 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의 문필 활동은 주로 1907년에서 1908년 사이에 이루어진다. 그는 교단에서 정치·경제를 가르치면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외교통의], [정치원론], [연설법방]을 썼다. 또 [야뢰], [대한협회보], [기호흥학회원보] 등에 시사적인 논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한 신소설이 바로 《금수회의록》이다. 《금수회의록》은 동물을 내세워 당시 현실을 비판하고 국권 수호와 자주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치안이 방해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의 판매 금지 소설이 되었다. 안국선은 1911년 경상북도 청도 군수로 임명되어 1913년까지 재직하고, 서울로 올라와 대동전문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15년 단편 소설집 《공진회》를 펴낸다. 이 소설집에는 [기생], [인력거꾼], [시골 노인 이야기]와 같은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안국선은 낙향 후에 금광과 미두 사업에 실패하고 1926년 지병으로 죽는다.

책 속에서

 

목차

1. 김동인 단편선 감자 & 배따라기 & 광염 소나타 외
2. 김유정 단편선 봄봄 & 동백곷 & 금따는 콩밭 외
3. 현진건 단편선 운수 좋은날 & 빈처 & B사감과 러브레터 외
4. 이효석 단편선 메밀꽃 필 무렵 & 산 & 돼지 외
5. 채만식 단편선 레디메이드 인생 & 논 이야기 & 치숙 외
6. 이상 단편선 날개 & 권태 & 지도의 암실 외
7. 최서해 단편선 탈출기 & 홍염 & 전아사 외
8. 안국선 단편선 금수 회의록 & 공진회 외
9. 나도향 단편선 물레방아 & 벙어리 삼룡이 & 행랑 자식 외
10. 이태준 단편선 복덕방 & 해방 전후 & 돌다리 외
11. 구운몽
12. 운영전
13. 춘향전
14. 홍길동전
15.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 이생규장전 & 취유부벽정기 외
16. 호질 & 양반전 & 허생전 외
17. 박씨전 & 임경업전
18. 심청전 & 토끼전
19. 흥부전 & 옹고집전
20. 사씨남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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