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태어났다. 문학적 소양이 풍부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였으며 21세 때부터 문학수업을 받으며 창작에 전념했다. 1880년 발표한 「비곗덩어리」는 플로베르의 공식적인 찬사를 비롯하여 문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1883년 발표한 『여자의 일생』 역시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신경질환은 모파상을 평생 염세주의자로 남게 했으며, 「오를라」, 「자살」 등의 작품에는 인간성 깊은 곳에 도사린 어두운 공포의 그림자가 반영돼 있다. 1892년 니스에서 자살을 기도한 모파상은 1년 뒤 파리의 한 정신병원에 감금돼 1893년, 마흔셋의 나이로 요절한다. 불과 10년 간의 길지 않은 문단 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몇 편 외에 『벨 아미』, 『피에르와 장』, 『죽음처럼 강하다』 등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1821∼1881.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을 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부재하거나, 무능하거나, 잔학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몸을 팔게 하거나, 자식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인 폭군으로 등장하거나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가난의 심리학의 대가가 될 씨앗이 여기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였다. 그는 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던 사람이고,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떠넘겨지는 짐을 사양할 줄 몰랐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년)에는 작가의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가난이 인간 심리와 삶에 끼치는 영향들, 그리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형제애 속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은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반동 정치하에서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 금지 서적을 읽는 것들만으로도 총살감이었다.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4년간의 감옥 생활과 또 4년간의 유형이 끝난 후,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유형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1861년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그의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Время)≫를 창간했고, 1863년 ≪시대≫지가 정치적 이유로 발행정지 조치를 받게 되어 폐간된다. 이듬해 형 미하일과 함께 두 번째 잡지, 더욱더 극우적이고 슬라브주의적인 잡지 ≪세기(Эпоха)≫를 발간하여, 그 첫 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발표한다.
1866년,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여 ≪노름꾼≫과 ≪죄와 벌≫을 속기하게 하여 발표하고, 1868년 그리스도를 닮은 “긍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고자 한 ≪백치≫를, 1872년 ≪악령≫을, 죽기 한 해 전인 1880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모두 ≪러시아 통보≫에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역자는 이렇게 말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1881년 1월 28일,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사건들이 넘쳐 나는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말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독자라면 베르댜예프의 이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할 것이다.
1896년 미국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1913년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여, 에드먼드 윌슨, 존 필 비숍 등과 교우하며 습작 시기를 거쳤다. 1917년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후(戰後) 1920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감수성을 그려낸 처녀작 『낙원의 이편』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에 단편집 『아가씨와 철학자』가, 1922년 두 번째 장편소설 『아름다운, 그리고 저주받은 사람들』과 단편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이 출간됨으로써, ‘재즈 시대’를 전형화한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발돋움했다. 대표작은 역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위대한 개츠비』(1925)로, 무너져 가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주제를 완벽한 기법과 서정적 문체로 다루어, 발표 당시 T. S. 엘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등 당대 최고의 작가와 평론가로부터 ‘문학적 천재’, ‘눈부신 예술적 성공’, ‘완벽한 장편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위대한 개츠비』는 《타임》 선정 100대 영문소설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 이후 10여 년간 피츠제럴드는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무질서하고 불행한 생활에 빠졌다. 그리하여, 피츠제럴드는 세 번째 장편소설 『밤은 부드러워』를 1934년에야 비로소 출간했고, 다음 해에 단편집 『기상나팔』도 발표했으나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36년 피츠제럴드는 《에스콰이어》에 심리적 균열과 문학적 견해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들을 실었는데 ‘무너져 내리다’라는 제목으로 사후 출간되었다. 알코올중독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재기를 위하여 마지막 장편 『마지막 거물』을 집필하던 중에 1940년 44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 1835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나 미시시피 강가의 작은 마을 해니벌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열두 살에 인쇄소 견습공 생활을 시작했고, 1857년에는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이 되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터지자 남군에 들어갔으나 2주 만에 빠져나와, 네바다 주 공무원으로 부임하는 형을 따라 서부로 가는 역마차 여행에 동행했다. 금광을 찾겠다는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실패하고, 언론계로 관심을 돌려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의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면서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뱃사람 용어로 강의 안전수역을 나타내는 ‘두 길 깊이’를 뜻한다. 1865년 유머 단편 「캘리베러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를 발표해 일약 범국민적 명사가 되었으며, 1869년에는 유럽과 팔레스타인 성지 여행기 <철부지의 해외여행기>를 출간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1885년 걸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발표, 작가로서의 최절정기를 맞이했다. 1894년에는 투자 실패와 경영하던 출판사의 도산으로 파산하고 말았지만, 1년간 세계 순회강연을 해서 빚을 청산했다. 1910년 뉴욕에서 일흔다섯의 나이로 타계했다.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문학적 업적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물질문명과 종교와 전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불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미시시피 3부작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 강의 추억>과 딸들을 위해 쓴 <왕자와 거지>를 비롯해, 익살 넘치는 여행기 <철부지의 해외여행기> <고난을 넘어> <도보 여행기> <적도를 따라서>,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하게 풍자한 <도금시대> <바보 윌슨의 비극> <아더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 <전쟁을 위한 기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태인 의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친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1886년부터 병원에서 일했고 1893년에는 자신의 병원을 개업했으나, 생의 대부분을 작가로 활동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주로 희곡을 집필했으며, 후고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과 친구였고, 스스로 자신의 ‘정신적 도플갱어’라고 칭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대표적인 희곡으로는 <아나톨(Anatol)>, <사랑의 유희(Liebelei)>, <윤무(Reigen)>, <광활한 땅(Das weite Land)>, <베른하르디 교수(Professor Bernhardi)>를 들 수 있다. 만년에는 희곡보다 소설을 썼으며 대표적인 단편소설로는 <구스틀 소위(Leutnant Gustl)>, <엘제 양(Fräulein Else)>, <야외로 가는 길(Der Weg ins Freie)> 등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도나우 왕정의 퇴폐를 묘사하는 작가로 낙인 찍혔으며 모든 작품에서 당시 빈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어서 풍속 묘사가로, 그의 문학은 오락 문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슈니츨러의 문학에 대한 이러한 평가절하는 무대를 사회비판의 장으로 바꾸어놓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사회변혁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1960년이 지나서야 슈니츨러는 사회전통의 압박, 소외, 고독, 자유와 헌신, 거짓과 실제에 대한 갈등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작가로 평가되었으며 체호프처럼 위대한 인간묘사가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1914년까지 슈니츨러의 희곡은 오토 브람(Otto Brahm)의 연출로 빈 부르크테아터뿐만 아니라 베를린극장에서도 가장 많이 상연된 작품에 속한다. 슈니츨러는 1931년 사망할 때까지 멸망한 사회의 연대기 작가로 평가받았는데 이는 그가 뒤늦게 단편소설 쪽으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1960년경에야 비로소 연극 감독인 아들 하인리히 슈니츨러의 활약으로 슈니츨러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1313~1375.
1313년, 이탈리아 상인이던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보카치오는 피렌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349년, 부친이 사망한 후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펼쳤으며, 유명한 시인이자 윤리가인 페트라르카와 만나면서 이제까지의 방탕한 삶을 반성하고 신을 의식했다. 이때 피렌체에 머물면서 ≪데카메론≫ 집필을 시작했다.
피렌체 영주의 초청으로 1373년 10월 성 스테파노 교회에서 단테의 ≪신곡≫을 대중에게 강의했다. 이 강의에 추가된 주해서의 개정판이 현재 전해지고 있으나 지옥편의 17장에서 중단되었는데, 1374년 초 건강이 악화되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의가 비난을 받고 있어 낙심하던 무렵이다. 1374년 7월 페트라르카의 죽음은 보카치오에게 또 하나의 비탄을 안겨 주어 체르탈도에서 은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12월 21일 생애를 마감했다.
이탈리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로만가톨릭 필그림센터(ASPEC) 소장을 역임하고, 가톨릭 청소년문화원에서 청소년 국제 교류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 하자꾸나》, 《엄마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방법》, 《어머니 왜 나를 버렸나요》와 여러 권의 종교 관련 서적이 있다.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소비자아동학과, 노어노문학과 및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한국어-노어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 국제본부 직원, 한국외대 BK21 사업단 상임연구원을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강의교수로 일하며 ‘인문학 글쓰기’와 ‘말하기’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999년부터 출판번역을 해왔고,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영업의 고수는 어떻게 탄생되는가》, 《집중력, 마법을 부리다》, 《뇌는 어떻게 당신을 속이는가》, 《감정의 롤러코스터》, 《살아갈 날을 위한 공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성서 그리고 역사》, 《프리메이슨》, 《숲 사람들》 등 70여 권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연구교수,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단국대학교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설의 정치학》, 《사냥꾼의 눈, 시인의 마음》, 《러시아문학의 이해》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러시아 문학사》, 《첫사랑》, 《루진》, 《아버지와 아들》, 《내가 처음 만난 톨스토이》(1, 2), 《추콥스키 동화집》(1, 2), 《학교에 간 필리포크》 등이 있고, 러시아 문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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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장혜경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번역가
- 분류 :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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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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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종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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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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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자기계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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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취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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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공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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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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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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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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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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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된다는 것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나는 왜 너를 선택했는가》, 《바보들의 심리학》, 《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사랑의 코드》, 《오디세이 3000》, 《피의 문화사》, 《오노 요코》, 《누구나 혼자입니다》,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돼지개 죽이기》, 《느림의 발견》, 《마지막 사진 한 장》, 《세상의 모든 질문》, 《검은 여름》, 《파편》, 《우리는 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방황의 기술》,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나는 정신병원으로 출근한다》, 《세계사 로드무비》,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예술가의 여행》, 《기억력 공부의 기술을 완성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움직이는 법》,《주도권을 결정하는 한마디 말》 등 다수의 문학과 인문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에서 번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출판기획 네트워크 ‘사이에’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단추전쟁》, 《집착》, 《산 자와 죽은 자》, 《에콜로지카》(공역), 《지하철 소녀 쟈지》,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파란색은 따뜻하다》, 《실험 소년 클라랑스》, 《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 줘》, 《삐에르와 장》, 《돈》, 《한 여자》, 《페르미나 마르케스》, 《틴틴의 모험 시리즈》, 《짝 이룬 남녀는 서로 사랑한다》,《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등이 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가 영국 런던의 LCC(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아동문학 및 영미문학과 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며, 대표적인 책으로는 『디자인의 역사』, 『청년 위기』, 『우리가 바로 지구입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