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0-20 한국의 잃어버린 얼굴

시리즈 :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0 세트 [23]

김유정, 나도향, 이태준 외 저 | 전승희 외 역 | 아시아 | 2015년 04월

북트리

정가
$75.00
판매가
$41.25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83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7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91156621089 / 500쪽 115 x 188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의 잃어버린 얼굴 Traditional Korea’s Lost Faces 20세기는 식민지, 분단, 전쟁, 산업화 등을 거치며 한국이 본격적인 근대로 접어든 시기이다. 다른 국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경험할 일들을 압축적으로 겪다보니,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나 모습도 매우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한국의 여러 작가들은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모습을 때로는 연민 어린 시선으로, 때로는 극복해야 할 과거의 인습으로서, 때로는 오래된 삶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았으며, 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문양으로 소설 속에 새겨넣었다. 이 세트에... 한국의 잃어버린 얼굴 Traditional Korea’s Lost Faces 20세기는 식민지, 분단, 전쟁, 산업화 등을 거치며 한국이 본격적인 근대로 접어든 시기이다. 다른 국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경험할 일들을 압축적으로 겪다보니,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나 모습도 매우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한국의 여러 작가들은 전통적인 한국인들의 모습을 때로는 연민 어린 시선으로, 때로는 극복해야 할 과거의 인습으로서, 때로는 오래된 삶의 가능성으로 바라보았으며, 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문양으로 소설 속에 새겨넣었다. 이 세트에 수록된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1925), 이태준의 《달밤》(1933), 김유정의 《봄봄》(1935), 주요한의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 오영수의 《갯마을》(1953)은 잃어버린 한국인의 전통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가장 수준 높은 한국근대단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전근대적 인간관계가 만들어낸 상흔으로서의 얼굴, 이익에 영악을 떨지 못하던 순박한 인간미의 얼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여인의 얼굴, 자연과 동화된 삶을 사는 생명력 넘치는 얼굴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 작품은 한국 근대소설사의 주류적 감수성을 대표하는 작품들로서, 시대의식이나 이념보다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순수소설’의 대표작이라는 측면에서 감상해보아도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층 농민의 유머와 해학『봄·봄』(Spring, Spring) 서발턴의 욕망『벙어리 삼룡이』(Samnyong the Mute) 동정과 연민의 시선 『달밤』(An Idiot’s Delight) 여섯 살 옥희가 바라본 어머니의 사랑『사랑손님과 어머니』(Mama and the Boarder) 푸른 해원을 향한 영원한 노스텔지어『갯마을』(Seaside Village) 출판사 서평 하층 농민의 유머와 해학『봄·봄』 이 소설에서는 양반/상놈이라는 구체제적 질서가 무너지고 그것이 식민지 체제하에서 재편된 지주/마름/소작인이라는, 농촌의 새로운 계층적 질서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동백꽃」에서도 묘사된 이러한 계급 문제는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해학과 유머이다. 서발턴의 욕망『벙어리 삼룡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벙어리’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삼룡이는 식민지 시기 조선의 전형적인 서발턴(subaltern), 즉 하위주체라고 할 수 있다. 줄곧 억압되어 왔던 서발턴의 성적 욕망이 개화하는 과정이, 지금껏 한 번도 표출되지 못했던 그의 계급적 분노가 폭발하는 과정과 나란히 그려졌다는 점이야말로 「벙어리 삼룡이」 고유의 문학적 성취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동정과 연민의 시선 『달밤』 희미하게 달이 비추는 밤,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라는 유행가를 부르면서 담배를 ‘퍽퍽’ 빨고 비틀거리는 황수건의 모습, 이태준 소설이 갖는 중요한 매력의 하나는 이렇듯 정교한 묘사를 통해서 독특한 분위기와 풍경을 창출한 데 있다. 여섯 살 옥희가 바라본 어머니의 사랑『사랑손님과 어머니』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단편소설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작품이 지닌 고유한 예술적 흡입력에 더불어 여러 번에 걸쳐 영상화되면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 통속적인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서사가 이 작품의 독특한 서술시점에 의하여 어떠한 사랑이야기보다도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게 된다. 푸른 해원을 향한 영원한 노스텔지어『갯마을』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은 바닷가 마을에서 멸치를 잡는 현재의 시간에서 시작하여 주인공 해순이 과거에 겪었던 여러 사건들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끝에 해당하는 멸치떼를 좇는 장면은 첫 방면과 잇닿아 있어서 순환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형식적인 완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 소개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1908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독과 빈곤 속에서 우울하게 자랐다. 고향을 떠나 열두 살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그만두었다. 1930년 늑막염을 앓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다. 유명한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를 짝사랑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의에 빠진 김유정은 고향인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불우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1935년 이무영, 이상, 정지용 등이 속한 순수문예 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고, 같은 해 , <조선일보>에 , <소낙비>, , <중외일보>에 , <노다지>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짧은 문단 생활 중에도 김유정은 병과 가난과 싸우면서 30여 편의 단편을 남기고, 1937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누나 집에서 결핵과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금따는 콩밭>, <봄봄><따라지>, <두꺼비>, <동백꽃>, <땡볕> 등이 있다. 


 

호는 도향·소정지옹(笑亭之翁)·은하(隱荷), 필명은 빈(彬). 처음에는 감상과 낭만을 주조로 했으나, 차츰 당대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썼다. 본명은 경손(慶孫). 아버지 성연(聖淵)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손이라는 이름은 할아버지 병규(炳奎)가 41세에 얻은 아들에게서 회갑에 손자를 얻자 '경사스런 손자'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914년 기독교청년회관 안에 있던 공옥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1년 〈계명〉 편집일을 했고, 1922년 홍사용·현진건·이상화·박영희 등과 함께 〈백조〉 동인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교사로 일했다. 
오영수(1911∼1979)
오영수는 1911년 2월 11일 경남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313번지에서 아버지 오시영 씨와 어머니 손필옥 씨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월주(月洲) 또는 난계(蘭溪)이며 9세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나니와중학 속성과를 수료하고 1935년 일본대학 전문부에 적을 두었으나 각기병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여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동시를 발표한다. 193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국민예술원에 입학한 뒤 도중에 학도병에 징집당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닌다. 1938년 국민예술원을 졸업한 뒤에 귀국하여 동래 일신여고 출신의 김정선과 결혼한다. 1939년 만주 신경으로 가서 방랑생활을 하다가 1943년 처가가 있는 경남 양산군 일광면 산전리로 이사하여 김동리와 교우를 갖는다. 1945년 부산 경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국어를 가르친다. 
1948년 시 <산골 아가>(<백민>)를 발표하고, 1949년 단편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개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1950년 단편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진행한다. 6·25를 맞아 청마 유치환과 함께 동부전선에 종군하고, 1954년 첫 창작집 ≪머루≫를 문화당에서 간행한다. 1955년 조연현을 주간으로 ≪현대문학≫ 창간호를 편집, 발행하고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한다. 1956년 제2창작집 ≪갯마을≫을 간행하고 1957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하는데, 이 무렵부터 신경성 위궤양을 앓는다. 1958년 제3창작집 ≪명암≫을 간행하고 1959년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한다. 1960년 제4창작집 ≪메아리≫를 간행한다. 1963년 서울 도봉구 우이동으로 이사하고, 1965년 제5창작집 ≪수련≫을 간행한 뒤 1966년 위궤양으로 ≪현대문학≫사의 실무를 떠난다. 1968년 ≪오영수 전집≫ 전 5권을 현대서적에서 간행하고 1970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에 피선된다. 1974년 ≪오영수 대표작 선집≫ 전 7권이 동림출판사에서 간행되고, 1977년 제22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한다. 1978년 창작집 ≪읽어버린 도원≫을 간행하고 1979년 5월 15일 경남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자택에서 간염으로 타계한 뒤 언양면 송태리 선영에 안장된다. 
그는 토착적인 한국인의 정서와 풍경을 간결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작가다. 향토성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대립을 통해 선량한 인간성을 탐구하고 묘사해 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서민층 생활의 애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작품세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각박한 현실의 폐해를 비판함으로써 따사로운 인정의 미학을 선보인다. 
평소 성품이 소박하고 낚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만년에는 고향 근처로 낙향하여 요양과 창작에 정진했으나 1979년 발표한 단편 <특질고(特質考)>로 인해 뜻하지 않은 파문을 일으켜 정신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 작품은 사투리와 지역민의 특성을 담은 작품으로 작가의 의도는 향토성의 고찰 속에 방언의 고수를 피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지만, 소설의 내용이 사실적 기록으로 받아들여져 특정 지역을 비하했다는 시비에 휘말리면서 결국 문협에서 오영수가 제명되고, 그의 사과문이 공개됨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된다. 

1902∼1972. 주요섭은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21년에 등단해 우리 문단의 주요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는 아주 드물게,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작가다. 17세에 도일, 청산학원에 다니는 동안 일본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등단작 <깨어진 항아리>를 비롯해 1925년까지 발표한 <추운 밤>, <기적>, <인력거꾼>, <살인> 등이 신경향파적인 색채를 띨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경향파’의 대표적인 작가로 주요섭이 거론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의 학업은 중국 상해 호강대학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학 석사 과정 수료로 이어졌고 1934년부터 1943년까지 북경 보인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작품의 무대는 당연히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등이 망라되어 보통 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의 활동은 범문단적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발행한 ≪코리아 타임스≫의 주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총장과 위원장, 한국문학번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동안 그는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에는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자기 작품의 심화와 확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학 강단에 섬으로써 작품 쓰기를 소홀히 한 탓인지 일제 강점기 때 쓴 주옥편까지도 문학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주요섭은 1950∼1960년대에 아주 활발히 활동했다. 1935년 작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그에게 준 대중적인 인지도가 1950∼1960년대의 활동에 대한 탐색을 가로막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세 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중편소설은 평가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 주요섭론은 이제부터 새로이 쓰여야 하는데 이 책은 첫 단추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목차

목차
봄·봄 - 김유정 Spring, Spring - Kim Yu-jeong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Samnyong the Mute - Na Tohyang
달밤 - 이태준 An Idiot’s Delight-Yi T'ae-jun
사랑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Mama and the Boarder-Chu Yo-sup
갯마을 - 오영수 Seaside Village - Oh Yeongsu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