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972. 주요섭은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21년에 등단해 우리 문단의 주요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 문단에서는 아주 드물게,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작가다. 17세에 도일, 청산학원에 다니는 동안 일본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등단작 <깨어진 항아리>를 비롯해 1925년까지 발표한 <추운 밤>, <기적>, <인력거꾼>, <살인> 등이 신경향파적인 색채를 띨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경향파’의 대표적인 작가로 주요섭이 거론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의 학업은 중국 상해 호강대학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학 석사 과정 수료로 이어졌고 1934년부터 1943년까지 북경 보인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작품의 무대는 당연히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등이 망라되어 보통 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광복 이후의 활동은 범문단적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발행한 ≪코리아 타임스≫의 주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총장과 위원장, 한국문학번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는 동안 그는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에는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자기 작품의 심화와 확대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학 강단에 섬으로써 작품 쓰기를 소홀히 한 탓인지 일제 강점기 때 쓴 주옥편까지도 문학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주요섭은 1950∼1960년대에 아주 활발히 활동했다. 1935년 작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그에게 준 대중적인 인지도가 1950∼1960년대의 활동에 대한 탐색을 가로막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세 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중편소설은 평가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 주요섭론은 이제부터 새로이 쓰여야 하는데 이 책은 첫 단추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니혼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했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으며,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되어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1976~1977년 한국일보를 통해 장편소설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였으나,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후 아내와 함게 도쿄에서 거주해 오다가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1919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경성고등상업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흑산도>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62년 <꺼삐딴 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3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하고 1989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는 <흑산도>, <꺼삐딴 리>, <의고당실기>, <태백산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