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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힘 월드 클래식 라이팅북 시리즈 전 10권세트

시리즈 : 월드 클래식 포엠 라이팅북 [11]

라이프 프랭크 바움, 레프 톨스토이, 주이스 캐럴 외 저 | 미르북컴퍼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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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032417 / 3476쪽 / 4,866g / 15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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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856년 미국 뉴욕의 치튼앵고에서 태어났다. 바움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었는데 배우, 신문기자, 점원, 외판원 등을 하다가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40살이 되어 바움은 시집과 동화책들을 쓰기 시작했다. 1898년 시카고에서 제 1권의 그림을 그린 W.W 덴슬로우를 만나 <캔들라브라의 시선으로>라는 시집을 만들고, <거위 아버지 : 그의 책> 이라는 동시집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성공에 용기를 얻어 두 사람은 1900년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출판했다. 바움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의 명콤비인 덴슬로우의 뛰어난 그림은 이 책을 그 해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이 훌륭한 동화책은 그 이후에 연극, 영화, TV 연속물, 온갖 선물용품으로 만들어져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를 남긴 소설가이며 사진가, 저명한 수학자이기도 했던 루이스 캐럴. 그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으로 1832년 영국 체셔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성직자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1850년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하고 훗날 평생을 수학부 논리학 교수로 일했다. 1856년에는 예술 장르 중 하나로 막 태동 중이던 사진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이후 2천 점이 넘는 당대의 문화계 인사들과 아이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앨리스’라는 이름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루이스 캐럴은 동시대의 여류 사진가였던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과 함께 초기 사진계의 양대 작가로 손꼽힌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학장으로 새로이 부임해 온 리델의 자식들에게 종종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탄생되었다. 이 작품은 1865년 출간되자마자 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받은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다. 1872년 그는 자신이 아끼던 리델의 막내딸 앨리스를 등장시켜 《거울 속으로》라는 소설을 집필하는데, 이 작품은 이후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마치 답이 없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있는 듯 보이는 이 ‘앨리스 시리즈’는 저명한 수학자였던 캐럴만의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유희와 함축적 논리가 녹아 있어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넓은 영역에 걸쳐 인용되는 작품이다. 따라서 문학이라는 장르 외에도 수학 논문, 프로이트 이론, 정치, 논리학 등으로 다양하게 재해석되며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19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상상력이라고 평가받는 루이스 캐럴은 그 외에도 《스타크 사냥》(1876)과 시집 《이요술 환등》(1869) 등을 남겼다. 
진정한 의미의 삶을 개개 인간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정신적 유대에서 찾으려 했던 프랑스 소설가. 1900년 6월 29일에 프랑스 리용의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임관되었으나 비행 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사업도 하였다. 1929년에 소설 '남방 우편기 Courrier Sud'로 데뷔하였다. 1931년 '야간비행'으로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했고, 1939년 '인간의 대지'를 발표하고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받았다. 1942년 '전투 조종사', 1943년 '어린왕자'를 발표했다.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를 지냈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유작 '성채 Citadelle'는 1948년 발표되었다.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 시에서 출생. 1917년 동생 프랑스와 사망. 이 죽음은 『어린 왕자』를 비극으로 장식하게 된 모티브가 됨. 빠리에 나와 보쉬에 고등학교, 생 루이 고등학교에서 해군 사관학교 입학 준비. 1922년 1월, 남불 이스트르에서 육군 비행 조종 학생이 되어 군용기 조종 면허장을 땀. 10월, 예비 소위에 임관. 『비행사(L'aviateur)』발표. 1924년 소레 자동차 회사에 입사. 지드, 쟝 프레보와 사귐. 이때 발레리, 지로두, 아인슈타인 등의 작품을 탐독. 1927년 봄, 툴루즈?카사블랑카?다카르간의 정기 우편 비행에 종사. 『남방 우편기(Courrier Sud)』집필. 1930년 『남방 우편기』를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 6월에는 『야간 비행기(Vol de Nuit)』집필. 1931년 1월, 고메즈 까리요라는 신문 기자의 미망인 꽁쉬엘로 슁생과 결혼. 12월에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음. 1333년 라테코에르 비행기 제조 회사에 입사하여 테스트 파일럿이 됨. 쌩 라파엘 만에서 수상기를 테스트하는 중에 사고를 일으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 1939년 2월, 『인간의 대지』출판. 1940년 8월 5일, 『성채(Citadelle)』집필 시작. 12월, 미국 망명위해 뉴욕으로 출발. 1941년 1월, 뉴욕에 도착. 『전시 조종사(Pilote de Guerre)』집필. 1943년 4월, 『어린 왕자』가 출간됨. 5월 4일, 북아프리카 우지다에 집결한 최초의 민간 프랑스인으로 알제리에 도착. 7월, 튀니스 부근의 라 마르사 기지에서 미 제7군에 소속됨. 1944년 5월 16일, 사르데뉴 섬의 알게로 기지에서 2-33 정찰 비행 대대로 복귀.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리트닝 기지를 출발, 프랑스 본토로 정찰을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음.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알제리 출신으로 1923년 프랑스의 중등학교인 리세에 들어갔고 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1930년 폐결핵으로 중퇴하였다. 그 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기상청 인턴과 같은 잡다한 일을 하였다. 1930년대에 인민전선 내각을 지지했고, 1935년 플로티누스(Plotinus)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냈다. 1936년 에세이 <표리>, 39년 서정적 에세이 <결혼>을 출간했으며, 1940년 반정부활동 혐의로 알제리에서 추방되었다. 2차 대전 때는 소설 <이방인>(1942)과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1942)를 집필, 인생은 그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나 의미가 없으므로 더욱더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부조리의 철학'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카뮈는 지하에서 같은 이름의 신문을 출판하던 레지스탕스 조직 Combat에 가담하였다. 이 그룹은 나치에 저항하여 활동하였고 여기서 카뮈는 '뷔에샤르(Beauchard)'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뮈는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한 1943년 신문의 편집장이 되어 전투 이후를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편집인으로서는 드믈게 1945년 8월 8일에 일어난 사건 직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논설을 실었다. 카뮈는 Combat가 상업적인 신문이 되자 1947년 사임했다. 이때부터 카뮈는 장폴 사르트르를 알게 되었다. 전쟁 이후에 카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생제르망 가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를 자주 찾기 시작했다. 카뮈는 프랑스적 사고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비록 그는 좌익의 정치학을 배웠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그의 강한 비난으로 인해 사르트르와 소원해지게 되었다. 1949년 카뮈의 폐결핵이 재발하여 2년간 은둔상태로 살았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명쾌하게 반대하는 반란과 반역에 관한 철학적 분석의 내용을 담은 <반역자>를 발표했다. 이 책은 프랑스에 있는 그의 많은 당시 동료들을 화나게 했고 결국 사르트르의 기분도 상하게 했다. 이러한 반응은 카뮈를 화나게 했고 그는 연극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철학에 대한 카뮈의 기여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설명하고 <이방인>과 <패스트>와 같은 많은 작품에서 설명한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 세계의 의미, 정순함에 대한 우리의 열망의 결과에 따른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사상이다. 그의 학문적 동반자 사르트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카뮈가 실존주의자들의 캠프로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에세이 에니그마와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에 대해 이념적 꼬리표를 붙여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 중 많은 중요 부분은 실존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 위키디피아) 그는 1957년 10월 '날카로운 진지성을 지니고 오늘날 인간의 의식에 던져지는 여러 문제에 빛을 비춘 공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단두대에 관한 성찰>) 1960년 1월 4일 파리 근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이방인>, <최초의 인간>, <페스트>, <시지프 신화>, <안과 겉>, <반항하는 인간>, <전락>, <태양의 후예>, <행복한 죽음>, <여행일기>, <휴일의 에세이>, <비둘기를 잡아먹던 시절> 등이 있다.
독일 질풍노도 문학과 고전주의 문학의 대표자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불후의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다. 1765년부터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베츨러의 제국 고등법원에서 법무 실습을 할 무렵 약혼남이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 비련(悲戀)의 사랑 체험을 문학화한 ≪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스물네 살의 젊은 괴테는 일약 유명 작가가 된다. 그리고 독일적 개성 해방의 문학 운동인 질풍노도 문학(Sturm und Drang)의 중심인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한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수업하는 화가로서의 생활을 보내면서 1000매에 이르는 스케치를 그리고, 희곡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를 운문으로 개작하고, ≪에그몬트≫(1787) 등을 집필한다. 2년에 걸친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괴테의 생애에 크나큰 전환점이 되며, 고전주의로의 지향(志向)을 결정한 시기가 된다. 1794년부터 프리드리히 실러와 교우를 시작하며, 그가 기획한 잡지 ≪호렌(Horen)≫에 협력해 공동 작업을 하며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이념의 사람 실러와 자연의 인간 괴테와의 우정이 10년 남짓 지속되는데, 이때 괴테는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한다. 오랫동안 중단했던 ≪파우스트(Faust)≫를 다시 집필하기 시작하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완성하며, 조화로운 사랑의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1796)를 발표한다. 동시에 실러와의 공동작 ≪크세니엔(손님에게 드리는 선물)≫ 414편을 발표해 문단을 풍자하기도 한다. 1805년 이후 실러가 죽고 헤르더와 빌란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괴테는 훔볼트와 친교를 맺고 피히테의 초월철학에 심취한다. 만년의 괴테는 “세계 문학(Weltliteratur)”을 제창하고 실천한다. 이 무렵 그는 이미 유럽 문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영국, 나아가서는 신대륙 미국의 문학까지를 조망한다. 각 국민문학의 교류를 꾀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세계 문학적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삶을 마감하기 전 10여 년 동안 괴테는 불후의 대작들을 집필한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걸작이다. 무엇보다도 1806년에 제1부를 발표하고 잠시 중단했던 필생의 비극 ≪파우스트≫의 제2부를 1831년에 완성한다. 괴테 문학의 최고봉을 이루는 이 드라마는 한 인간의 생애가 전 인류의 역사에 뒤지지 않는 깊이와 넓이를 지니는 장엄한 작품이다.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더 많은 빛을(Mehr Licht)!”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다. 그의 유해는 바이마르 후작 묘지에 아우구스트 대공(大公)과 실러와 함께 나란히 안치된다. 

1828~1910.


1828년 러시아 중부 지방에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카잔 대학에 입학해 동양어와 법을 공부하다가 중간에 자퇴했다. 1851년 카프카스에 주둔한 포병대에 들어갔고,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1862년에 평생의 후원자가 된 소피야 베르스와 결혼한 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고, 대표작 <전쟁과 평화>(1869)와 <안나 카레니나>(1877)를 집필하는 등 작품 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바보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마지막 소설인 <부활>(1899)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두호보르 종파를 위한 자금을 모으려고 쓴 것이었다. 1910년 장녀와 함께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올랐으나 아스타포보라는 작은 시골 기차역에서 사망했다. 2010년 사후 백 주년을 맞는 톨스토이는 팔십여 년이라는 생애 동안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선천적인 존재 조건의 비극과, 그 운명에 맞닥뜨린 개인의 승리와 패배 등이었으며, 본인의 삶 또한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드라마틱한 일생이었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 종군 경험에서 취재한 소설 <해는 또다시 뜬다>, <무기여 잘 있거라>로 문명을 획득한다. 1936년 스페인 내란에서 얻은 인상을 그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미국 사실주의의 대표적 걸작으로 냉철한 시각, 박력 있는 표현으로 헤밍웨이 문학의 절정을 이룬다. 그의 사상과 예술 추구의 작가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 <노인과 바다>는 1952년 출판되었는데, 이 작품은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으며 <킬리만자로의 눈>, <있는 이 없는 이>, <노인과 바다> 등 그의 여러 작품들이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이 외에 <여명의 진실>,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등의 작품이 있다.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62세의 나이로 의문의 엽총 자살로써 생을 마감했다.
1883년 레바논의 브샤레에서 태어났으며 철학자이자 소설가, 시인, 화가로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했다. 1895년 아버지만 레바논에 남고 온 가족이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 했다. 어린 시절, 사색과 명상 속에서 보낸 그는 영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에 매료되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15세에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친 그는 1902년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1904년 첫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때 지브란의 삶과 창작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연상의 여인 매리 해스켈을 만나게 된다. 해스켈은 지브란이 1908년 파리로 가서 미술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으며, 한동안 그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지브란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아랍어로 쓰였고, 특히 희곡 작품에 드러난 그의 사상은 아랍권에서는 지브라니즘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1918년 이후에는 대부분 영어로 작품을 썼으며, 1923년 20년간의 구상을 거쳐 그의 대표작인 산문시 『예언자』를 완성했다. 
지브란은 1931년 뉴욕에서 48세의 나이로 간경변과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람의 아들 예수』, 『이 땅의 신들』, 『반항하는 영혼』, 『부러진 날개』, 『눈물과 미소』, 『예언자의 정원』, 『방랑자』 등이 있다.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트 주의 소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목사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울브론 신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후 이어 김나지움에서 학업을 이어나갔으나 포기하고, 탑시계 공장 견습생, 서점 직원으로 일했다. 틈나는 대로 습작을 하다가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출간한 이후 1904년에 첫 번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한 후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11년에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한 후 스위스에 정착해 여러 작품을 썼으나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에 반전 활동을 했던 헤세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칼 구스타브 융의 제자 요제프 랑에게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이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무렵부터 그림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후 화가로서의 역량도 펼치는 등 예술적 감성을 다양하게 나타냈다. 이후 《싯다르타》,《황야의 늑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유리알 유희》등을 발표했으며 1962년에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1946년, 노벨 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동양학과 비교종교학, 비교언어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겨울 나그네》로 유명한 독일의 낭만파 서정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이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라틴 어와 그리스 어, 산스크리트 어를 익혔다. 1846년에 산스크리트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옥스퍼드로 거처를 옮겼다가 아예 영국으로 귀화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되어 평생을 성실한 학자로 살면서 비교언어학과 비교종교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하였다. 1866년에 발표한 《독일인의 사랑》은 그의 유일한 소설로, 몇 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랑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고전으로 남아 그의 이름을 우리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위대한 작품이 되었다.

목차

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1. 생텍쥐페리처럼 【어린 왕자】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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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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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2. 헤밍웨이처럼 【노인과 바다】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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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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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3. 헤르만 헤세처럼 【데미안】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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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 / 카인 /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 베아트리체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
표적 야곱의 싸움 / 에바 부인 / 종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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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4. 칼릴 지브란처럼 【예언자】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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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오다 / 사랑에 대하여 / 결혼에 대하여 / 아이들에 대하여 / 주는 것에 대하여 / 먹고 마심에 대하여 / 일에 대하여 /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 집에 대하여 / 옷에 대하여 / 사고파는 일에 대하여 / 죄와 벌에 대하여 / 법에 대하여 / 자유에 대하여 / 이성과 열정에 대하여 / 고통에 대하여 / 자아를 아는 것에 대하여 /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 우정에 대하여 / 말하는 것에 대하여 / 시간에 대하여 / 선과 악에 대하여 / 기도에 대하여 / 즐거움에 대하여 / 아름다움에 대하여 / 종교에 대하여 / 죽음에 대하여 /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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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5. 알베르 카뮈처럼 【이방인】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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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6. 톨스토이처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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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_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번째 이야기_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 번째 이야기_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계시다
네 번째 이야기_에밀리안과 빈 북
다섯 번째 이야기_아시리아 왕 아사르하돈
여섯 번째 이야기_달걀만 한 씨앗
일곱 번째 이야기_어른보다 슬기로운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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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7. 막스 뮐러처럼 【독일인의 시랑】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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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회상 / 두 번째 회상 / 세 번째 회상 / 네 번째 회상 / 다섯 번째 회상 / 여섯 번째 회상 / 일곱 번째 회상 / 마지막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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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8. 괴테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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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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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09. 루이스 캐럴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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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굴속으로 / 눈물 웅덩이 /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 토끼, 꼬마 도마뱀 빌을 들여보내다 / 애벌레의 충고 / 돼지와 후춧가루 / 이상한 다과회 /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 / 가짜 거북이의 사연 / 바닷가재의 카드리유 / 누가 타르트를 훔쳤지? / 앨리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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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식 라이팅북 10. 프랭크 바움처럼 【오즈의 마법사】 따라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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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바람 / 먼치킨 사람들 / 허수아비를 구한 도로시 / 숲 속으로 난 길 / 양철 나무꾼을 구하다 / 겁쟁이 사자 / 오즈의 마법사에게 가는 여행 / 죽음의 양귀비 꽃밭 / 들쥐 여왕 / 에메랄드 시티의 문지기 / 오즈의 환상적인 에메랄드 시티 / 사악한 마녀를 찾아서 / 친구들을 구하다 / 날개 달린 원숭이 / 무서운 오즈의 정체 / 위대한 사기꾼의 마법 / 열기구가 날아오르다 / 남쪽으로 / 움직이는 나무의 공격 / 앙증맞은 도자기 나라 / 동물들의 왕이 된 사자 / 콰들링 나라 / 도로시의 소원을 들어준 착한 마녀 글린다 / 다시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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