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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민족 시인 5인 시집

김소월, 윤동주, 이육사 외 저 | 시요일 역 | 창비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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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280239 / 368쪽 / 530g /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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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3.1운동 100주년, 오늘 우리의 얼굴을 되비추는 이 한 권의 거울

1919년은 우리 역사에 기록된 가장 뜻깊고 역동적인 순간 중 하나다.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4월 11일) 민족과 국가의 근본을 다진 특별한 해인 까닭이다. 그로부터 백년이 흐른 오늘,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자 ‘시요일’에서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민족 시인 5인 시집>(미디어창비)을 펴냈다. 부제에서 밝히듯 우리 민족과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5인의 첫 시집을 한데 엮은 시선집이다. 우리 민족이 지닌 한의 정서를 가장 빼어나게 노래한 김소월과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자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의 민족혼이 담긴 시를 한자리에 모았다.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
한 권으로 읽는 민족 시인 5인의 첫 시집


시집을 펴내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은 대상 시인과 시집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시요일 기획위원의 논의를 거치고 문단의 자문을 얻은 끝에 위 다섯 시인의 첫 시집 초판본인 김소월 <진달래꽃>(매문사 1925), 한용운 <님의 침묵>(회동서관 1926), 이육사 <육사 시집>(서울출판사 1946),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이상화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 청구출판사 1951)을 저본으로 삼아 총 282편(김소월 127편, 한용운 88편, 이육사 20편, 윤동주 31편, 이상화 16편)의 작품을 실었다.
이로써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혼」 「개여울」 「왕십리」 「산유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복종」, 이육사의 「청포도」 「절정」 「광야」, 윤동주의 「서시」 「자화상」 「길」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등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시이자 독자들이 꾸준히 사랑해온 시인들의 대표작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원문에 충실한 해석, 믿을 수 있는 편집

시집을 엮으면서 무엇보다 우선시한 것은 첫 시집 초판본과의 면밀한 대조와 해석이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해석본 시집들의 오류를 바로잡고, 행갈이나 단어, 구두점 등에서도 원문에 충실함으로써, 출간 당시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대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하고자 했다. 근래 잇따라 출간된 복각본 외에 일반 독자로서는 원본을 접할 기회가 흔치 않은 형편을 감안하여 최대한 초판본 형태를 살리는 쪽으로 엄정한 편집 방침을 세웠다. 시인의 고유한 어휘나 방언 등을 살리기 위해 원문에 충실하되, 띄어쓰기와 단순히 표기법만 달라진 일부 단어는 현행 맞춤법에 따랐다. 이를테면 ‘차즈시면→찾으시면’ ‘니젓노라→잊었노라’ ‘안이닛고→아니 잊고’ ‘속으로나무리면→속으로 나무라면’ 등이(이상 김소월 「먼 후일」) 그 예다. 이 과정에서도 되도록 시인만의 운율이 이 훼손되지 않도록 고려했으며,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단어와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이 가능한 단어는 각주로 풀이를 달았다.

다음 세대 독자를 위해 새로 펴낸 한국 시 문학의 정수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는 저본으로 삼은 각 시인의 첫 시집에 한해서만큼은 기존의 여러 판본을 뛰어넘는, 정본에 가장 가깝고 원문을 충실하게 해석한 시집이라고 자부한다.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서 젊은 독자들도 우리 시 문학의 정수를 쉽고도 깊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 암흑의 시대에 시와 실천으로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시인들의 고귀한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귀중한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저자 소개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했으며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 영문과 학생으로 입학했다.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짧은 생을 마친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옥중에서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은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는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시인이었다. 자신의 작품들을 모아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숙 친구였던 정병욱이 자필로 쓴 시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그의 사후에 묶어 출간하였다. 이때 그의 유작인 <쉽게 쓰여진 시>가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인간됨과 사상을 반영하는 아름다운 시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그의 유해는 용정에 묻혀 있으며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 

(1901∼1943)
이상화는 1901년 대구에서 부친 이시우와 모친 김신자의 2남으로 출생했는데, 가정은 부유했으나 7세 때 부친이 별세해, 어머니의 인자하고 후덕한 성정과 백부 이일우의 엄격한 훈도 밑에서 성장했다. 백부 이일우는 인품과 재력을 갖추었으며, 민족정신을 선도하고 국민 계도에 앞장선 지사로서, 이상화로 하여금 가내에 설치한 사숙에서 한문 수업을 받게 했다. 백부를 통해 이상화는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많은 감화와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상화의 형인 이상정이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것 또한 이러한 가계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상화는 17세에 현진건,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대구에서 ≪거화(炬火)≫라는 습작집을 프린트판으로 발간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대구에서 백기만과 더불어 독립운동 거사 모의에 참여하나 사전에 누설되어 서울로 피신, 박태원의 하숙에 기거하게 된다. 이해 10월 서한보의 장녀 서온순과 결혼했다.
1922년, 빙허 현진건의 소개로 ≪백조(白潮)≫ 동인이 된 이상화는, 시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To___> <나의 침실로> <이중의 사망> <마음의 >을 게재하게 된다. 이들 시에는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 현실에서 오는 좌절, 권태, 우울, 애수 등이 불덩이 같은 정열로 분출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상화는 열린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프랑스 유학의 기회를 얻기 위해 도일했는데 도쿄 체류 기간인 1923년, ≪백조≫ 3호에 발표한 <나의 침실로>는 문단에 대단한 주목을 불러일으킨다. 상화의 <나의 침실로>는 “낭만적 상상력과 유미주의의 극한” 또는 “낭만적 에로티시즘의 정화” 또는 한국 데카당스 문학의 전형으로 미학적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에는 당시 이상화가 대구에 본처를 둔 상태로 유보화와 사랑에 빠진 일 등 20세 초 청년기에 체험한 사랑과 열정, 일제의 질곡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강박 관념, 불안 심리, 성애의 원죄 의식이 상징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백조기에는 ‘데카당이즘’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 절망을 다룬 시편들을 주로 창작한다.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진재로 1924년 봄,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한 이상화는 1925년 2월, 무산 계급 문예 운동 단체인 ‘파스큘라’에 참석하고, 1925년 8월 결성된 카프에 가담하면서 창작기의 절정기를 이룬다. 이상화는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 시 34편, 평론 7편, 단편 2편, 감상문 4편 등 50여 편의 각종 시문을 남겼다. <가장 비통한 기욕> <이해를 보내는 노래> <빈촌의 밤> <조소> <가상> 등에는 일제의 압제와 착취 아래서 신음하는 조선인들의 빈궁상을 보여 주면서 당대 현실의 모순과 저항의식을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화는 <무산 작가(無産作家)와 무산 작품(無産作品)>과 같은 급진적인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카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렇게 이상화의 한계 지워진 계급투쟁 의식은 <가상> <조소>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비를 다고!> <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1926년 가을, 연인이었던 유보화가 폐병으로 사망하자 1927년, 이상화는 향리인 대구로 낙향해 카프나 중앙 문단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서울 생활을 청산한 이상화는 대구에서 실의와 절망의 나날을 보내며 애정 행각을 벌이고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해 작고하기까지 14년간 침묵기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1928년 6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간회에서 출판 간사직에 있던 이상화는 여러 차례 가택 수색을 당하고 구금되기도 했다. 낙향기에서 보여 주는 이러한 침체는 그가 처한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상화가 1934년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경영했으나, 1년 만에 문을 닫은 것도 실의와 좌절의 한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37년 3월부터 약 3개월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형 이상정 장군을 만난 후, 이상화는 새로운 의식으로 전환해,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을 가르치면서 사회에 봉사하게 된다. 이에 대륜중학의 건립에 이상화의 숨은 공로가 지대했다고 전한다. 이상화의 이러한 사회적 헌신은 미래의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어버린 민족의 광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충정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그의 아호 ‘백아(白啞)’는 어둡고 불구적인 식민 치하의 고통을 실의와 자조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40년, 이상화는 사회적 활동을 그만두고 칩거하며 춘향전 영역, 국문학사, 프랑스 시 평역 등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1943년 4월 25일, 불치의 병 위암으로 투병하다가 타계한다.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자는 정옥, 속명은 유천이며, 득도 때의 계명은 봉완,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다. 19세에 출가하여 강원도 인제 백담사에서 김연곡사에게서 득도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을 주도했으며,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를 수정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표했고, 그 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불교」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작품활동과 불교 혁신운동을 계속했다. 민족의 해방을 한 해 남긴 1944년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지은 책으로 <정선강의채근담>,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불교대전>, <흑풍>, <박명> 등이 있다.

본명 정식(廷湜). 평북 구성(龜城) 출생.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하였으나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당시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그리워] 등을 [창조(創造)]지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먼 후일(後日)], 등을 [학생계(學生界)] 제1호(1920.7)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배재고보에 편입한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바람의 봄] 등을 [개벽(開闢)]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1922년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그 후에도 계속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에는 [영대(靈臺)]지 3호에 인간과 자연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동양적인 사상이 깃들인 영원한 명시 [산유화(山有花)]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다.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불과 5, 6년 남짓한 짧은 문단생활 동안 그는 154 편의 시와 시론(詩論) [시혼(詩魂)]을 남겼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다른 이름으로는 이활李活, 이원삼李源三, 육사肉瀉, 이육사李戮史, 이육사二六四. 경북 안동에서 출생. 부친은 퇴계 이황의 13대손(이가호)이며 모친은 의병장 허형의 딸(허길). 유년기에 조부祖父에게서 소학을 배우고 도산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16세 무렵 대구로 이사. 1921년 결혼 후 백학학원에서 수학.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고등예비학교에서 1년간 재학. 1925년 귀국, 대구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항일단체에 입단. 1926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국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중퇴하고 귀국. 그해 장진홍 의거(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3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 1930년 중외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입사, 기자활동을 하면서 은밀히 항일활동을 펼치다가 1932년 다시 중국행. 항일활동 인사들과 접촉 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 귀국 후 다시 구속되었다가 석방, 문필활동을 펼치던 중 1943년 피검, 북경으로 압송되어 1944년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 「절정」 「광야」 「청포도」 「꽃」 「황혼」 등의 대표시를 남겼으며, 1946년 비평가인 아우 이원조의 편집으로 유고 시집 『육사시집』이 출간되었다.


 

목차

김소월 『진달래꽃』(매문사 1925)

먼 후일
풀따기
바다
산 위에
옛이야기
님의 노래
실제(失題)
님의 말씀
님에게
마른 강 두덕에서
봄밤
밤
꿈꾼 그 옛날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눈 오는 저녁
자주 구름
두 사람
닭 소리
못 잊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꿈
맘 켱기는 날
하늘 끝
개아미
제비
부엉새
만리성
수아(樹芽)
담배
실제(失題)
어버이
부모
후살이
잊었던 맘
봄비
비단 안개
기억
애모
몹쓸 꿈
그를 꿈꾼 밤
여자의 냄새
분(粉) 얼굴
아내 몸
서울 밤
가을 아침에
가을 저녁에
반달
만나려는 심사
옛낯
깊이 믿던 심성(心誠)
꿈
님과 벗
지연(紙鳶)
오시는 눈
설움의 덩이
낙천(樂天)
바람과 봄
눈
깊고 깊은 언약
붉은 조수(潮水)
남의 나라 땅
천리만리
생(生)과 사(死)
어인(漁人)
귀뚜라미
월색
불운에 우는 그대여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황촉불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훗길
부부
나의 집
새벽
구름
여름의 달밤
오는 봄
물마름
우리 집
들도리
바리운 몸
엄숙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밭고랑 위에서
저녁때
합장(合掌)
묵념
열락(悅樂)
무덤
비난수하는 맘
찬 저녁
초혼(招魂)
여수(旅愁)
개여울의 노래
길
개여울
가는 길
왕십리
원앙침
무심(無心)
산
진달래꽃
삭주구성(朔州龜城)
널
춘향과 이도령
접동새
집 생각
산유화
꽃 촉불 켜는 밤
부귀공명
추회(追悔)
무신(無信)
꿈길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하다못해 죽어 달래가 옳나
희망
전망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금잔디
강촌
첫 치마
달맞이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한용운 『님의 침묵』(회동서관 1926)

군말
님의 침묵
이별은 미(美)의 창조
알 수 없어요
나는 잊고저
가지 마셔요
고적한 밤
나의 길
꿈 깨고서
예술가
이별
길이 막혀
자유 정조(貞操)
하나가 되어 주셔요
나룻배와 행인
차라리
나의 노래
당신이 아니더면
잠 없는 꿈
생명
사랑의 측량
진주
슬픔의 삼매(三昧)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은
행복
착인(錯認)
밤은 고요하고
비밀
사랑의 존재
꿈과 근심
포도주
비방
?
님의 손길
해당화
당신을 보았습니다
비
복종
참아 주셔요
어느 것이 참이냐
정천한해(情天恨海)
첫 키스
선사(禪師)의 설법
그를 보내며
금강산
님의 얼굴
심은 버들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참말인가요
꽃이 먼저 알아
찬송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廟)에
후회
사랑하는 까닭
당신의 편지
거짓 이별
꿈이라면
달을 보며
인과율
잠꼬대
계월향(桂月香)에게
만족
반비례
눈물
어데라도
떠날 때의 님의 얼굴
최초의 님
두견새
나의 꿈
우는 때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수(繡)의 비밀
사랑의 불
‘사랑’을 사랑하여요
버리지 아니하면
당신 가신 때
요술
당신의 마음
여름밤이 길어요
명상
칠석(七夕)
생의 예술
꽃싸움
거문고 탈 때
오셔요
쾌락
고대(苦待)
사랑의 끝판
독자에게

이육사 『육사 시집』(서울출판사 1946)

황혼
청포도
노정기(路程記)
연보(年譜)
절정
아편
나의 뮤즈
교목(喬木)
아미(蛾眉)
자야곡(子夜曲)
호수
소년에게
강 건너간 노래
파초
반묘(斑猫)
독백
일식(日蝕)
해후
광야
꽃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서시(序詩)
자화상
소년
눈 오는 지도
돌아와 보는 밤
병원
새로운 길
간판 없는 거리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
바람이 불어
슬픈 족속
눈 감고 간다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씌어진 시
봄
밤
유언
아우의 인상화
위로
간(肝)
산골 물
참회록

이상화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 청구출판사 195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단조(單調)
반딧불
이중의 사망
가을의 풍경
이별을 하느니
쓰러져 가는 미술관(美術館)
서러운 해조(諧調)
역천(逆天)
가장 비통한 기원
말세의 희탄(希歎)
청년
무제
그날이 그립다
금강 송가(金剛頌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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