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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15760 / 4290쪽 225 x 152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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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안대회, 이종묵, 정민, 이현일, 이홍식, 장유승 등 한문학계 중진학자 6인이 8년에 걸쳐 이룬 역작 신라부터 조선 말기까지 망라한 최대 규모의 한국 명문 선집 처음으로 만나는 우리나라 문장의 통사 우리나라의 고전 명문을 총망라한 『한국 산문선』(전 9권)이 민음사에서 완간되었다. 우리 고전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안대회, 이종묵, 정민, 이현일, 이홍식, 장유승 등 6인의 한문학자가 삼국 시대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문 산문 중 사유의 깊이와 폭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별·번역한 역작이다. 1300년의 시간을 넘어 찬란히 빛나는 우리 옛글은 한 시대의 풍경과 사유를 그대로 펼쳐 보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귀중한 문화 자산이 되어 준다. 삼국 시대 원효에서 20세기 정인보까지 1300년간 각 시대 문장가들이 펼쳐 낸 찬란한 우리 옛글 600편 우리 시대의 한문학자 6인이 엄정한 선별, 유려한 번역으로 세운 한국 산문의 모범 글은 우리 삶 자체이자 우리가 속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문으로 쓰이던 글말이 한글로 모두 바뀌어 지금의 세대는 바로 이전 세대의 글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토록 언어의 변화가 극심했던 나라도 없을진대 이로써 현재는 과거와 단절되었고 선인들의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도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인들의 글 안에 담긴 인문 정신은 오늘날 어지러운 세태 속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여 우리 고전을 상아탑에서 과감하게 해방시켜 대중에게 선보인 대표적인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안대회, 이종묵, 정민 교수 등 중견 학자들을 비롯해 이현일, 이홍식, 장유승 등 신진 학자들이 참여하여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동문선’을 만들었다. 삼국 시대 원효부터 20세기 초반 정인보에 이르기까지 작가 229인의 산문 613편으로, 원고지 1만 8000매에 달하는 양이다. 여섯 명의 옮긴이가 세 팀으로 나뉘어 기획에서 출간까지 2010년부터 8년에 걸쳐 모두 아홉 권으로 묶어 냈다. 독자들과 보다 빠르게 만나기 위해 2013년부터 전자책 싱글 형태로 연재했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시리즈가 바탕이 되었다. 삼국 시대에서 20세기까지 전 시대를 망라하는 『한국 산문선』은 조선 초기 서거정의 『동문선』 이후로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산문 선집이다. 『동문선』이 조선의 성대한 문운(文運)을 보이기 위한 국가사업이었다면, 『한국 산문선』은 바로 지금 이곳의 독자를 위한 기획이다. 선집 편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선(選)이니, 옮긴이들은 방대한 우리 고전 중에서도 사유의 깊이와 너비가 드러나 지성사에서 논의되고 현대인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글을 선정했다. 각종 문체를 망라하되 형식성이 강하거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은 배제했으며 내용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하게 읽히도록 우리말로 옮기고, 작품의 이해를 돕는 간결한 해설을 붙였다. 본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석을 권말에 두었으며 교감한 원문을 함께 실었다. 그리고 권두의 해제로 각 시대 문장의 흐름을 조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기획에 참여한 한문학자들의 역량과 더불어 그동안 축적된 국문학·한문학계의 연구 성과에 힘입은 대작이다. 2000년대에 이르러 동양의 고전, 그중에서도 우리 고전에 눈을 돌려 잊혔던 작품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작업이 활발해졌다. 그간에는 대부분 유명한 저서나 작가 위주로 혹은 주제별·문체별로 소개되었다면, 『한국 산문선』은 시대순으로 엮은 최초의 통사적 선집이라는 데 주요한 의의가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한국 산문선』에 실린 600편의 명문을 손이 가는 대로 하루 한 편씩 향유할 수도 있고, 시간을 두고 차차 읽어 나가면서 1300년의 산문사를 조감할 수도 있다. 이는 문학 연구에서 역사적, 문학사적 가치를 전제하기보다 텍스트 자체를 보면서 당대 실상에 접근해 가는 역자진의 연구 방법론과 공명한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돌아보는 원자료가 되었던 고전을 보면 지난 역사가 생생하게 복원될 뿐 아니라, 뜻밖에 마음으로 와닿는 문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문으로 쓰인 문장은 오늘날 독자에게는 암호문처럼 어렵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인문 정신의 가치는 현대라도 보석처럼 빛난다. 그 같은 보석을 길 막힌 가시덤불 속에 그냥 묻어 둘 수만은 없다. 이에 막힌 길을 새로 내고 역할을 나눠, ‘글의 나라’ 인문 왕국이 성취해 낸 우리 옛글의 찬연한 무늬를 세상에 알리려 한다. 삼국 시대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을 씨줄로 걸고, 각 시대를 빛냈던 문장가의 아름다운 글을 날줄로 엮었다. 각 시대의 명문장을 선택하여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풀이 글을 덧붙였다. 이렇게 만나는 옛글은 더 이상 낡은 글이 아니다. 오히려 까맣게 잊고 있던 자신과 느닷없이 대면하는 느낌이 들 만큼 새롭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일기, 편지글, 기행문에서 전기, 묘지명, 논설, 상소문까지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넘나드는 문장의 모든 것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장구한 시간을 견뎌 낸 명문 한국어로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우리 문학 선집’ 우리나라의 최초의 문인으로 꼽히는 대작가가 바로 신라의 고운 최치원이다. 『한국 산문선』 1권의 첫머리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한문 문장을 남긴 원효, 설총, 녹진을 지나 최치원의 「황소를 토벌하는 격문(檄黃巢書)」이 실려 있다. 황소의 난을 토벌하러 나선 최치원의 이 글을 받고 황소가 놀라 말 위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이로써 최치원의 문명이 중국 전역에 떨쳤다고 전하는 글이다. 이러한 ‘글의 힘’은 『한국 산문선』의 면면에서 빛을 발한다. 오늘날까지 화두에 오르내리는 ‘인문’이라는 말의 유래는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문장은 도를 싣는 그릇(京山李子安陶隱文集序)」(2권 수록)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인문(人文)을 규정하는 예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해와 달과 별은 천문(天文)이요, 산천과 초목은 지문(地文)이요, 시(詩)와 서(書)와 예(禮)와 악(樂)은 인문(人文)이다.” 시서예악, 즉 인간이 이룩한 문화를 인문으로 규정하는 정도전의 글은 중국의 영향 아래에서 조선의 독자적인 문학을 자리매김하려는 시도 속에 있다. 글로 인재를 뽑고, 글하는 선비가 나라를 이끈 문화의 터전이었던 우리나라는 조선에 이르러 가장 많은 문장을 남겼다. 고려 대까지 이어져 온 불교의 영향이 점차 유교의 이념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문(文)과 도(道)의 관계를 논하는 한편, 중국의 고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의식이 이어졌다. 『한국 산문선』은 글을 선별하면서 널리 알려진 문장가만이 아니라 특유한 색채를 보이는 작가를 수록하여 논설, 상소문, 전기는 물론이고 일기, 편지글, 기행문, 기문, 묘지명까지 문장의 모든 갈래를 보여 준다.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오줌통’ 이야기까지 마다 않고 기록한 강희맹의 우화, 조선의 대학자 이황과 조식이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에 관해 넌지시 조언을 주고받은 편지, 이이가 선배 학자들의 학문을 거침없이 논평한 글에서부터 마음이 아름다운 노비, 문장에 정통했던 장모님, 개성 있고 자존심 높았던 화가 등 비주류 인물의 전기, 산수 좋은 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에 부친 기문, 담배·고구마·코끼리 같은 새로운 문물에 관한 보고서까지…… 수많은 글들은 서로 엮여 긴 편폭의 한국 문화사를 이룬다. 이처럼 고전은 한 시대의 표정을 담고 있는가 하면 놀랄 만큼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오래된 서가를 벗어나 아름다운 우리말로 되살아난 우리 고전은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안목, 문제를 해결하는 통찰력을 열어 준다. 『한국 산문선』은 한창 독서 경험을 쌓아 가는 학생에게는 최초의 길잡이가 되고, 문장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만대의 교본이 되며, 어지러운 소음 속에 지친 사람에게는 마음을 씻을 거리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직한 자산이 되어 줄 것이다. 근대 이후로 범람한 외국 문화와 신기술로 갈피를 잡기 어려운 오늘날 옛글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모국어의 깊이에 접속하고 폭넓은 문화를 밑바탕으로 삼아 든든히 살아갈 채비를 하는 일이다. 상우천고(尙友千古), 곧 천고를 벗으로 삼는다는 말처럼 글에서 멀어진 이에게도 상우천고의 위안과 통찰을 함께 누려 보기를 권한다.

저자 소개

본관은 달성(대구), 경기도 파주 장단이 고향이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서 규장각 제학, 전라 관찰사, 수원 유수, 이조 판서, 호조 판서 등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했음에도, 경학이나 경세학보다는 천문· 수학· 농학 등 실용학문에 심취했던 서명응(조부), 서호수(부), 서형수(숙부)의 가학家學에 깊은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 최고의 실용백과사전이자 전통문화 콘텐츠의 보고인 󰡔임원경제지󰡕 113권을 저술했다.

토갱지병土羹紙餠, 즉 ‘흙으로 끓인 국이나 종이로 만든 떡’처럼 입으로만 만리장성을 쌓는 관념적 학문에 염증을 느낀 풍석은, 사대부라면 누구나 즐겼던 시 짓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고향인 임진강변 장단에서 직접 농사짓고 물고기 잡으며, 술 빚고 음식 만드는 부엌을 드나들면서, 임원林園에 사는 선비로서 가족을 건사하고 덕을 함양하는 데 필요한 전반적인 실용지식을 집대성하는 데 전념했다. 이를 위해 조선과 중국, 일본의 온갖 서적을 섭렵하여 체계적으로 모은 실생활에 필요한 각종 지식과, 직접 경험해보고 듣고 관찰한 내용을 16분야로 분류, 엄밀하게 편찬 저술하기 시작했다. 

관직에 복귀한 뒤 호남 지방에 기근이 들자, 굶주린 백성을 위해 󰡔종저보󰡕를 지어 고구마 보급에 힘쓰기도 했던 풍석은, 재야나 한직에 머물렀던 당시의 여느 실학자와 달랐다. 실현 가능한 개혁을 추구하는 조정의 최고위 관료였고, 농부이자 어부, 집 짓는 목수이자 원예가, 술의 장인이자 요리사, 악보를 채록하고 거문고를 타는 풍류 선비이자 전적과 골동품의 대가, 전국 시장과 물목을 꿰고 있는 가문 경영자이자 한의학과 농학의 대가였다.

늙어 벼슬에서 물러나, 그동안 모으고 다듬고 덧붙인 엄청난 분량의 󰡔임원경제지󰡕를 완결한 그는 경기도 남양주 두릉에서 82세의 일기를 다했다. 시봉하던 시사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운명했다고 한다.

1168년 태어나서 1241년까지 일흔네 해를 살았다. 고려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다. 호탕하고 생기 있는 시 작품으로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명문장가며, 몽고가 침입했을 때 예순이 넘은 나이에 전쟁터로 나설 만큼 기개가 높았다. 

당나라와 송나라 고문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의 체험을 진솔하게 담는 시를 썼다. 8천여 수의 시를 썼는데, 그 가운데 2천여 수가 남아있다. 시 평론 <백운소설>, 가전체 작품 <국선생전>, 기행 산문 <남행월일기> 등도 남겼다. 작품은 '동국이상국집'에 잘 갈무리되어 있다.


 

(曹植, 192∼232)
조식(曹植, 192∼232)은 자가 자건(子建)이고,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동무양현(東武陽縣)에서 조조(曹操)와 무선황후(武宣皇后) 변씨(卞氏)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 겨우 열 살이 되었을 때 유가 서적과 제자백가를 섭렵하고, 시론(詩論)과 사부(辭賦) 수십만 언(言)까지 송독해 글을 잘 지었다. 
건안 11년(206) 8월에 열다섯 살이 된 조식은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원정을 시작했다. 건안 14년(209)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함께한 원정길을 끝내고 12월에 고향인 초현으로 돌아왔다. 건안 16년(211)에 조식은 평원후(平原侯)에 봉해졌고, 7월에는 업성에서의 유락 생활을 접고 종군을 자청해서 다시 아버지를 따라 서쪽 원정길에 올랐다. 2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혼란스런 국면을 수습하고 일단 평화와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건안 19년(214)에 조식이 임치후(臨淄侯)로 옮겨 봉해졌는데, 이해에 조조는 손권을 토벌하러 원정길에 나서면서 조식으로 하여금 업성에 남아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조식의 재능을 인정해 총애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식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 단속에도 소홀하며 술을 절제하지 못해 조조에게 여러 차례 실망을 안겨 주었다. 10월에는 마침내 그의 형인 조비(曹丕)가 태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세등등했던 조식의 삶은 이때부터 백팔십도로 달라져 고난과 비애의 시련을 겪게 된다. 
건안 25년(220) 정월에 조조가 낙양에서 병으로 죽자, 조비가 이어서 승상(丞相)에다 위왕(魏王)이 되었다. 즉위 후 조비는 조식의 절친한 친구인 정의(丁儀)와 정이(丁廙)를 죽여 세력을 약화시켰다. 10월에는 한나라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를 협박해서 양위하게 하고, 위(魏)나라를 세워 연호를 황초(黃初)라 했다. 제위에 오른 조비는 중앙 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제후들을 감시했고 정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조식은 귀족 왕자의 신분에서 견성후(鄄城侯)로 봉해져 감시와 핍박을 감내해야 하는 요주의 인물로 바뀌었다. 
황초 7년(226) 5월에 조비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인 조예(曹叡)가 제위를 계승해 명제(明帝)가 되었다. 이에 조식은 여러 차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등용의 기회를 달라고 조예에게 상서를 올려 구애했다. 조예는 겉으로는 들어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에 대한 경계와 핍박 수위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조비와 조예 부자의 2대에 걸친 압박 속에, 조식은 11년 동안 여섯 군데의 봉지를  옮겨 다녔는데 겉으로는 제후국 왕이었으나 실제로는 연금 상태의 죄수여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도 없었을 뿐 아니라, 친구나 형제와 마음대로 왕래할 자유도 없었다.
태화 6년(232) 진(陳) 땅의 겨우 네 개 현(縣)만을 다스리는 진왕(陳王)에 봉해진 후 11월에 조식은 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41세였다. 그의 시신은 동아의 어산(魚山)에 묻혔고, 시호로 ‘사(思)’를 하사받아 후대 사람들은 ‘진사왕(陳思王)’이라 불렀다.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로 초명은 진이고 자는 가원, 호는 양촌이다. 1368년 성균시에 합격, 1369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우왕 때 예문관응교, 좌사의대부, 성균대사성, 예의판서 등을 역임했다. 1375년에는 정도전.정몽주와 함께 친명정책을 주장했다. 1390년 '윤이.이초의 옥'에 연루되어 익주에 유배되었고, 이때 <입학도설>로 길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왕명으로 <동국사략>을 편찬했다. 성리학자이면서도 사장을 중시하여 경학과 문학을 아울러 연마했다. 경기체가인 <상대별곡>, <양촌집>, <오경천견록> 등을 지었다. 
조선조 중기의 문장가. 자는 응문應文이고 호는 어우於于, 간암艮庵, 묵호자默好子이다. 1589년(선조 22)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인조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아들 '약' 과 함께 처형당했다가 1794년(정조 18년) 신원되었다. 시호는 의정義貞. 그의 문장은 제재와 구상이 독창적이고, 의경이 참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집으로 <어우집>이 있으며, 야담집 <어우야담>은 수필문학의 백미로 손꼽힌다.

본관 연안(延安). 자 의숙(宜叔). 호 진암(晉菴). 시호 문간(文簡).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으며 1739년(영조 15)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1740년 정자(正字)가 되고 교리(校理) ·헌납(獻納) ·장령(掌令)을 거쳐 1749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후에 이조 ·병조 판서를 거쳐 1752년 우의정이 되고 같은 해 좌의정을 거쳐 1754년 영의정에 승진된 후 돈령부영사(敦寧府領事)로 전임했다. 1761년 재차 영의정이 되었으나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문집에 《진암집》이 있다. 

19세기 초에 활동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자는 헌중憲仲, 호는 항해沆瀣,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당대 저명한 학자요 문인이었던 연천 홍석주가 그의 형이고, 정조의 사위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던 영명위 홍현주가 그의 아우다. 그는 26세에 과거를 포기한 후 줄곧 문학에 침잠한다. 이로 인해 경세의 꿈은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지만, 선비로서의 삶은 여전히 문학의 유효한 좌표였다. 그의 문학은 유학의 문학적 재현을 지향하는 고문古文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장르 교섭과 여러 사우師友의 영향을 자양분 삼아 일변한다. 특히 세계를 기호로 치환하여 새로운 읽기를 시도함으로써 전대미답의 경지를 개척하는데,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숙수념孰遂念’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지어지지 않은 글, 즉 조물주의 문장을 찾아 떠나는 홍길주 긴 문학 여행은 ‘숙수념’을 넘어 문장중원에서 다시금 이정표를 세우는데, 꿈과 상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세계는 늘 미래를 향해 꿈틀된다. 그의 사유와 문학적 성취는 [현수갑고峴首甲藁], [표롱을첨 乙], [항해병함沆瀣丙函], [숙수념孰遂念] 등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역자 소개

한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결대학교 파이데이아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문인지식인들의 사유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특히 박제가, 이옥, 홍길주 등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 세계를 개척했던 인물들에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연행록과 통신사행록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구체적 실체와 양상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공저), 『홍길주의 꿈, 상상, 그리고 문학』, 『한시로 읽는 경기』(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상상의 정원』, 『정유각집』(공역), 『국역 관연록』(공역)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 후기 서북 지역 문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동아시아의 문헌 교류』(공저),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일일공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정조어찰첩』, 『영조 승정원일기』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젠가 ‘조선 후기 한시사(漢詩史)’를 써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꾸준히 18~19세기의 한시 작가들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명청 시대 중국 강남 지역의 문화와 학술에 대해 관심을 두고 조선에 끼친 그들의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조교수이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밀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옛글을 고증, 해석하고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선인들의 글과 삶을 풀어내왔다. 특히 개별적이고 작은 가치에 주목하는 소품문에 대한 관심과 선구자적인 연구로 문학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일상의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루면서도 문장의 멋을 잃지 않은 고전 산문의 정수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지은 책으로 《고전 산문 산책》, 《벽광나치오》, 《선비답게 산다는 것》, 《부족해도 넉넉하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천년 벗과의 대화》, 《정조의 비밀편지》, 《정조 치세어록》, 《궁극의 시학》, 《담바고 문화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산수간에 집을 짓고》, 《궁핍한 날의 벗》, 《추재기이》, 《북학의》 등이 있다. 지식인들의 삶과 지향이 녹아든 18세기 산문 문학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풀어낸 ‘18세기 지식 총서’의 총괄 기획을 맡았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업을 익혔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수를 지내다가 2003년 모교로 옮겼다. 우리 한시의 아름다움을 공부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아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한시 마중』을 내었다. 조선시대 문인의 삶과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부부󰡕를 저술하고 󰡔사의당지-우리 집을 말하다󰡕, 『양화소록-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를 역해하였다. 󰡔부휴자담론󰡕,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등도 낸 바 있다. 옛 글을 읽고 그 자취를 찾아다니는 것을 즐거움을 삼아 󰡔누워서 노니는 산수󰡕, 󰡔조선의 문화공간󰡕(전 4권),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공저)를 세상에 보였는데 이 책도 이러한 관심의 일환이다.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옛글에서 큰 울림이 담긴 장면을 길어올려 우리에게 깊은 통찰과 넓은 안목을 전하는 이 시대의 인문학자다. 끊임없는 연구와 저술 활동으로 한국 고전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연구자로,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글쓰기로 대중과 꾸준히 소통해오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낸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이 창출한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과 그 삶에 천착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을 펴냈다. 더불어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과 『미쳐야 미친다』 등이 있다. 또 청언소품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돌 위에 새긴 생각』 『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소리』 등을 펴냈다. 이 밖에 옛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 등의 수필집과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낸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를 썼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과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썼다. 

책 속에서



우레가 칠 때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뇌동(雷同)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우렛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잘못한 일을 거듭 반성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기에 그제야 몸을 펴게 되었다. …… 또 한 가지 인지상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비방하면 안색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레가 칠 때 두려워할 일은 아니지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에 어두운 방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 이규보 「우렛소리(雷說)」

“말은 입에서 나와 문장을 이룬다. 중국 사람의 학문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나아가므로 정신을 많이 허비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뛰어난 인재가 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으로 말하자면 언어에 이미 중국과 오랑캐의 차이가 있고, 타고난 자질도 영민하지 않으니 백배 천배 힘쓰지 않으면 어찌 학문을 이루겠는가? 그래도 오묘한 마음에 힘입어 천지 사방과 소통하는 데는 터럭만큼의 작은 차이도 없다. 득의한 작품으로 말하자면 어찌 자세를 낮추며 저들에게 많이 양보할 것이 있겠는가.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이와 같은 점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 최해 「우리 동방의 문학(東人文序)」, 1권 『우렛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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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방의 문장은 한과 당의 문장도 아니고 송과 원의 문장도 아니며 바로 우리나라의 문장이다. 당연히 역대의 문장과 더불어 천지 사이에 나란히 알려져야 할 것이니, 인멸되어 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 오늘날 배우는 사람들이 정말로 도에 마음을 두고 문장을 꾸미지 않으며, 경전을 근본으로 삼고 제자백가를 기웃거리지 않으며, 올바른 문장을 숭상하고 화려한 문장을 배척하여 고상하고 올바른 문장을 짓는다면 필시 성현의 경전을 보충하는 글이 될 방도가 있을 것이다.
─ 서거정 「우리 동방의 문장(東文選序)」

풀을 엮어 사람 모양으로 만든 것을 허수아비라고 한다. 나는 근래 귀가 먹어 남의 말을 듣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하여 사람 일을 알지 못한다. 그저 겉모습만 멀쩡하니 참으로 허수아비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허수아비라 부르기로 하고 찬(贊)을 짓는다.

짚으로 살갗 엮고 새끼로 힘줄 얽어
사람 같은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네
심장도 없고 배 속까지 비었구나
하늘과 땅 사이에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않으니
알아주는 사람 없다 한들 누구에게 화를 내랴
─ 성혼 「허수아비(虛父贊)」, 2권 『오래된 개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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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고질병으로 고생하느라 산에 살더라도 마음껏 책을 읽지 못한다. 남몰래 걱정하며 몸조리하다가 때때로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상쾌하여 세상을 둘러보면 감개가 뒤따른다. 그러면 책을 덮고 지팡이를 짚고 나가 관란헌에 가거나 정우당을 구경하고, 단에 올라 절우사를 찾으며, 밭을 돌며 약초를 심기도 하고, 숲을 헤치며 꽃을 따기도 한다. 바위에 앉아 샘에서 장난치거나 대에 올라 구름을 바라보거나 낚시터에서 고기를 구경하거나 배를 타고 갈매기와 놀기도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눈에 띄는 경치마다 흥취가 생긴다.
실컷 흥취를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고요한 방 안에 책이 가득 쌓여 있다. 책상을 마주하고 조용히 앉아 마음을 잡고 이치를 궁구한다. 간간이 깨닫는 것이 있으면 흐뭇하여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깨닫지 못하는 내용이 있으면 벗에게 도움을 받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혼자서 분발해 보지만 억지로 깨달으려 하지는 않는다. 우선 한쪽에 밀쳐 두었다가 가끔 다시 꺼내 마음을 비우고 곰곰 생각하여 저절로 이해하기를 기다린다.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한다.
─ 이황 「도산에 사는 이유(陶山雜詠幷記)」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글렀으며,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습니다.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났고 백성의 마음은 이미 흩어졌습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를 백 년 동안 벌레가 파먹어 진액이 다 말라 버렸는데 거센 비바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입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 중에 충성스럽고 뜻있는 신하와 밤낮으로 부지런한 선비가 없지 않으나, 이미 형세가 극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낮은 관원들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주색을 즐기고, 높은 관원들은 위에서 데면데면하게 재물만 늘리고 있습니다. 물고기의 배가 썩고 있는 지경인데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조정에 있는 신하는 용이 연못에 도사리듯 도와줄 당파를 끌어모으고, 지방에 있는 신하는 이리가 들판을 마음대로 누비듯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데, 가죽이 없어지면 털이 붙을 곳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은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길게 한숨 쉬며 낮이면 몇 번이나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울먹이며, 밤마다 오랫동안 지붕을 올려다보았습니다.
─ 조식 「자전은 과부이며 전하는 고아입니다(乙卯辭職疏)」

요즘 정암(整菴, 나흠순(羅欽順)), 퇴계, 화담(花潭, 서경덕) 세 선생의 말씀을 보니, 정암이 가장 높고 퇴계가 다음이며 화담은 그다음입니다. 그중에 정암과 화담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 많고, 퇴계는 본뜬 것이 많습니다. ……
지금의 학자들은 입만 열면 이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으며, 이와 기는 결코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는 자기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남의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찌 화담의 입을 대적하고 화담의 마음을 복종시키겠습니까. 퇴계가 논파한 말은 그 병통을 깊이 지적했으니, 후세 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퇴계는 본뜬 것이 많으므로 그의 말이 구애되고 신중하며, 화담은 스스로 터득한 것이 많으므로 그의 말은 즐겁고 호방합니다. 신중하므로 잘못이 적고, 호방하므로 잘못이 많습니다. 차라리 퇴계를 본뜰지언정 화담처럼 스스로 터득하기를 본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 이이 「학문의 수준(答成浩原)」, 3권 『위험한 백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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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이것을 복용해서 능히 담증과 곽란 증세 및 가슴 병과 뱃병을 치료했는데, 한두 번 만에 효과를 보았다. 또한 담파괴의 재는 옴과 종기도 낫게 할 수가 있다. 삼사 년 사이에 온 나라 사람이 파도가 몰아치듯 다투어 사들였다. 서울의 남녀는 어린이고 늙은이고 할 것 없이, 병이 있건 없건 즐겨 피워 대는 통에 코를 비트는 고약한 냄새가 거리에 가득했다. 간혹 못된 젊은이들은 이렇게도 노래한다. “예쁜 여자 맛난 술은 봐도 참을 수 있지만, 담파괴를 보게 되면 참을 수가 없다네.”
─ 유몽인 「담배 귀신 이야기(膽破鬼說)」

처마의 비는 쓸쓸하고 향로의 향 내음은 가녀린데, 이제 막 두세 사람과 함께 소매를 걷어붙이고 맨발로 보료에 기대 눈 같은 연꽃 보며 참외를 갈라 찌든 근심을 씻어 낼 참일세. 이러한 때에 우리 여인(汝仁)이 없을 수 없지. 자네 집의 늙은 사자가 틀림없이 으르렁거려 자네로 하여금 고양이 상판을 짓게 만들겠지만, 늙었다고 겁먹고 위축되지는 말게나. 하인이 우산을 지녔으니 가랑비쯤 피하기에는 넉넉할 것이야. 어서어서 빨리 오게나. 모이고 흩어짐은 일정치가 않으니, 이런 모임도 어찌 자주 가질 수 있겠는가. 헤어진 뒤에는 후회한들 이미 늦을걸세.
─ 허균 「겁먹지 말고 오게(與李汝仁)」, 4권 『맺은 자가 풀어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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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독서는 무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무젖으면 책과 내가 융화되어 하나가 되지만 무젖지 않으면 읽으면 읽는 대로 다 잊어버려 읽은 사람이나 읽지 않은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서에서 무젖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회오리바람이 불고 번개가 쳐서 그 형세를 돕는다. 빗줄기가 굵은 것은 기둥만 하고 작은 것도 대나무만 해서 다급하기는 동이를 뒤집을 듯하고 사납기는 동이의 물을 쏟아붓는 듯해서 잠깐 만에 봇도랑이 죄 넘쳐흘러 못이 되니 성대하다 할 만하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날이 개어 햇볕이 내리쬐면 지면은 씻은 듯이 깨끗해진다. 땅을 조금 파 보면 오히려 마른 흙이 보인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못을 이루었던 물이 무젖어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 책 읽는 것 또한 그러하다. 서로 맞춰 보고 꿰어 보아 따져 살피는 공부를 쌓고 그치지 않는 뜻을 지녀, 무젖어 스스로 얻음에 이르도록 힘써야 한다. 이와 반대로 오로지 빨리 많이 읽는 것만을 급선무로 한다면 비록 책 읽는 소리가 아침저녁 끊이지 않아 남보다 훨씬 많이 읽더라도 그 마음속에 얻은 바가 없게 된다. 이것은 조금만 땅을 파면 오히려 마른 땅인 것과 같으니 깊이 경계할 만하다. ─ 이덕수 「올바른 독서법(贈兪生拓基序)」

맹자는 “사람이 지닌 덕과 슬기, 꾀와 지혜는 늘 질병 안에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병을 자주 앓았기 때문에 너무 잘 안다. 바야흐로 내가 병들었을 때는 질병에 대한 근심을 꼼꼼하게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경계를 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목(耳目)과 정욕(情欲)에 감응하고, 기거와 음식을 절제함에 있어서도 오직 소홀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마치 맨발로 봄 얼음 위를 건너듯 조심조심하고, 약한 성채에서 사나운 적을 막는 것처럼 굳게 지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질병이 떠나가서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날마다 태연하고 기운이 매일 펴지면 앞서 조심조심 굳게 지키던 것이 나날이 해이해져서 점점 제멋대로 굴게 된다. 천천히 혼자 돌이켜 보면 대개 훌륭한 것은 늘 질병 속에 있었고, 좋지 않은 것은 언제나 아프지 않을 때 있었다.
─ 최창대 「병 속에 지혜가 있다(疢疾說 贈李尙輔)」, 5권 『보지 못한 폭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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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는 소리를 못 들었는가? 그 소리는 혼자서는 소리가 되질 않고 반드시 사물을 기다려야만 한다네. 그래서 소리가 골짜기에서 난다고 해도 틀리고 소리가 골짜기에서 나지 않는다고 해도 또한 틀린 것이지. 오직 소리를 의식하지 않았는데 소리가 절로 들린 것이라네. 옛날의 지인(至人)이 어찌 일찍이 말이 없었겠는가? 말은 했지만 말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일 뿐일세. 그래서 그 말은 하늘에 오르기라도 할 듯이 높아 사람이 감히 그 높이를 의심하지 못했고, 땅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깊어서 사람이 감히 그 깊이를 의심치 못했지. 이것이 모두 침묵의 도일세. 여정이 배우기를 원하는 것이라네. ─ 이천보 「말 없음에 대하여(題默窩詩卷後)」

술을 좋아하는 자가 있었다. 밖에 나가 무리를 따라 크게 취하여 저녁 때 돌아오다가 집을 못 찾고 길에 벌렁 눕더니, 제집으로 생각해서 미친 듯 소리치고 토하며 인사불성 제멋대로 굴었다. 바람과 이슬이 몸을 엄습하고 도둑이 틈을 노리며 수레나 말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밟힐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그를 비웃고 마치 기이한 꼴이라도 본 듯이 했다.
아! 어찌 이것만이 유독 이상하다 하겠는가? 오늘날 벼슬아치들은 급제해 벼슬에 오르거나 벼슬해서 현달하게 되면, 깊이 도모하고 곰곰이 따져 보아 시대를 구하고 나라를 이롭게 할 생각은 않고, 오로지 승진하기만을 끊임없이 바라며 욕심 사납게 얻는 데 싫증 내는 법이 없다. 그러다가 원망이 쌓여 화가 이르니 남들은 위태롭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는데도 정작 자신은 여전히 우쭐대며 오만하게 군다. 참으로 심하게 취했다 하겠다. 아! 술 마신 자는 취해도 때가 되면 깬다. 하지만 벼슬하는 사람이 취하면 재앙이 닥쳐와도 깨는 법이 없다. 슬프다.
─ 정내교 「관직에 취하면(雜說)」, 6권 『말 없음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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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을 모방하여 글을 지어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듯이 한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좌우가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떻게 비슷할 수 있겠는가?”
“그럼 수면이 물건을 비추듯이 하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뿌리랑 가지 끝이 뒤집혀 보이는데 어떻게 비슷할 수 있겠는가?” ……
“그럼 끝내 옛것과 비슷하게 지을 수 없단 말인가?”
“도대체 왜 비슷한 것을 찾는가?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은 참되지 않다는 말이지. 천하에서 서로 같은 것을 가리켜 반드시 꼭 닮았다고 말하고, 분간하기 어려운 것을 가리킬 때도 진짜에 매우 가깝다(逼眞)고 말하네. 그런데 진짜라느니 닮았다느니 말하는 것은 그 안에 가짜요, 다르다는 뜻이 실려 있네. 따라서 천하에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배울 수 있고, 전혀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것이 있네. 언어가 다른 수많은 사람과는 통역의 힘을 빌리면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전서(篆書) 예서(隷書) 해서(楷書)는 글자체가 다르나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네. 왜 그렇겠나? 외형은 달라도 마음은 같기 때문일세. 이것으로 볼 때, 마음이 비슷한 것(心似)은 작가의 의도요, 외형이 비슷한 것(形似)은 겉모습이네.”
─ 박지원 「『녹천관집』 서문(綠天館集序)」

집 안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겨우 『맹자』 일곱 권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이백 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그도 굶주린 지 벌써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즉각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했소. 이야말로 맹자 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 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찬송했다오. 그렇다오.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짓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음 아니겠소? 쯧쯧쯧!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 이덕무 「『맹자』를 팔아 밥을 해 먹고(與李洛瑞書九書 四)」, 7권 『코끼리 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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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를 그려 달라고 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칠칠은 산만을 그리고 물을 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이상히 여겨 따지자 칠칠은 붓을 던지고 일어나 “에이! 종이 밖은 다 물이 아니냐!”라고 했다. 그림이 마음에 들게 잘 그려졌는데 돈을 조금 내면 칠칠은 당장 성을 내고 욕을 하며 화폭을 찢어 버리고 남겨 두지 않았다. 간혹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게 그려졌는데 값을 많이 치르는 사람이 있으면 껄껄껄 웃고는 그 사람을 주먹으로 때리며 돈을 도로 주어 문밖으로 내쫓고는 다시 손가락질하고 비웃으며 “저 애송이는 그림 값도 몰라.”라고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호를 호생자(毫生子, 붓으로 먹고사는 사람)라고 하였다.
칠칠은 천성이 오만하여 남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 하루는 서평군(西平君)과 더불어 백 금을 걸고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칠칠이 승기를 잡는 순간 서평군이 한 수만 물리자고 청했다. 칠칠은 갑자기 바둑돌을 흩어 버리고는 팔짱을 끼고 앉아 “바둑이란 근본이 오락인데 무르기만 한다면 한 해 내내 두어도 한 판도 마칠 수 없소이다.”라고 했다. 그 뒤로 다시는 서평군과 바둑을 두지 않았다.
─ 남공철 「광기의 화가 최북(崔七七傳)」

북녘에 사는 어떤 사람이 닭은 늘 보아 왔으나 꿩은 본 적이 없었네. 하루는 남쪽 지방에 가서 꿩을 보고 때맞춰 울기를 기대했다네. 이것은 습관이 그의 눈을 가렸기 때문일세. 따라서 무늬목을 보고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고 한 것은 사람이 그린 그림이 눈을 가린 때문이고, 화병에 꽂힌 조화를 하늘이 만들었다고 한 것은 하늘이 만든 꽃이 눈을 가린 때문일세. 마찬가지로 자네가 자연의 경서를 허언이라 본 것은 성인이 짓고 현인이 이어받아 저술한 것만을 경서로 간주하는 고정 관념이 눈을 가렸기 때문일세. 자네는 어째서 눈에 낀 백태를 긁어내어 자네 눈을 가린 가림막을 제거하고, 자네의 몸을 내려놓고, 자네의 총명함을 뱉어 내어 소실산에 노닐며 그 책을 펼쳐 글을 읽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호탕하게 웃으며 정신이 자유롭지 않겠는가?
─ 서유구 「책과 자연(自然經室記)」, 8권 『책과 자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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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글을 잘 짓지 못한 이유가 더 배워야 할 옛것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이제는 글을 잘 짓지 못하는 이유가 배울 만한 옛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육경을 읽으면 육경을 배우고 싶었고, 『좌전』을 읽으면 『좌전』을 배우고 싶었다. 굴원의 「이소(離騷)」를 읽으면 「이소」를 배우고 싶었고, 『순자』와 『장자』를 읽으면 『순자』와 『장자』를 배우고 싶었으며, 『사기』를 읽으면 『사기』를 배우고 싶었다. 아래로 내려와 반고(班固)와 양웅(揚雄), 조식(曹植)과 육기(陸機), 유신(庾信)과 서릉(徐陵), 노조린(盧照隣)과 낙빈왕(駱賓王)으로부터 한유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글을 접하고서는 사모하는 마음이 그들에게로 옮겨 갔다. 끝내는 갈림길에서 방황하며 내가 머물 곳을 찾지 못하였다.
─ 홍길주 「꿈속에서 문장의 세계를 보다(釋夢)」

진실로 하루에 한 번 고쳐서 한 해에 약간 편을 얻되, 이 약간 편 가운데서 깎아 내어 약간 편만 남깁니다. 그렇게 십 년을 지낸다면 한 권쯤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고칠 것도 없고 더 이상 깎아 낼 것도 없는 글을 한 권 정도 쓴다면 내 마음에 꼭 맞을 것입니다. 한 권 분량의 글로 십 년을 바꾸는 것은 비록 고생스럽고 수확이 별로 없다 하겠지만, 십 년의 노력으로 천년만년을 기약한다면, 크게 수지맞는 장사요 그 또한 바랄 만한 일입니다.
─ 이건창 「글쓰기의 비법(答友人論作文書)」, 9권 『신선들의 도서관』 중에서

목차

한국 산문선 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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