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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유예지 2 교양 기예 백과사전

시리즈 : 임원경제지 유예지 [3]

서유구 저 | 임원경제연구소 역 | 풍석문화재단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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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6004637 / 580쪽 230 x 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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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일생을 바쳐 남긴 풍석 서유구의 저술, 《임원경제지》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 풍석 서유구 선생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생활지식을 16분야로 나누어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서유구는 관념에 치우친 유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서 벗어나 사람살이의 기본인 ‘건실하게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풀고자 민중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조선 · 중국 · 일본의 서적들을 풍부하게 참조하여 이 거작을 저술하였다. 《임원경제지》는 총 16개의 분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곡식 농사에 관한 기록인 《본리지(本利志)》, 식용 식물과 약용 식물에 관한 기록인 《관휴지(灌休志)》, 화훼농사에 관한 기록인 《예원지(藝苑志)》, 과실과 나무에 관련된 기록인 《만학지(晩學志)》, 옷감 재료의 생산과 그 만드는 법에 관한 기록인 《전공지(展功志)》,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보고 기상을 예측하는 방법을 기록한 《위선지(魏鮮志)》, 목축 · 사냥 · 어로에 관련된 기록인 《전어지(佃漁志)》, 솥과 도마로 대표되는 음식의 조리법과 재료의 효능에 관한 기록인 《정조지(鼎俎志)》, 쓰는 물건을 넉넉하게 한다는 뜻으로 건축과 일용품에 관한 기록인 《섬용지(贍用志)》, 몸을 양생하는 일과 관련된 기록인 《보양지(保養志)》,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의학에 관한 내용을 적은 《인제지(仁濟志)》, 향촌의 의례에 관한 기록인 《향례지(鄕禮志)》, 교양 지식에 관한 기록인 《유예지(遊藝志)》, 문화생활에 관한 기록인 《이운지(怡雲志)》, 좋은 집터를 살피는 일에 관한 기록인 《상택지(相宅志)》, 경제와 상업 활동에 관한 《예규지(倪圭志)》가 그것이다. 학자들 사이에서 ‘조선의 브리태니커’라 불릴 정도로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임원경제지》는 그 학술적 ·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왔으며 《섬용지》에 이어 《유예지》가 두 번째로 출판되었다. 《유예지(遊藝志)》, 조선 선비문화의 정수를 담다. 《유예지》는 옛날에 선비들이 꼭 익혀야 할 덕목으로 꼽은 육예(六藝),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가운데 향촌에 거주하는 선비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독서와 활쏘기, 수학 및 서화 그리고 방중악(房中樂)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고 이 모든 것을 익히기 위해 기본으로 익혀야 할 독서법이 담겨있다. 《유예지》 1권이 사(射)와 수(數)를 주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면 《유예지》 2권은 육예 중 서(書)에 해당하는 글씨와 그림로 이루어져 있다. 《유예지》 2권의 시작은 “글씨[書筏]”이다. 글씨로 번역한 글자 중에서 벌(筏)은 뗏목이라는 뜻으로, 서벌(書筏)은 독자를 글씨[書]의 세계로 인도해 줄 뗏목[筏]이라는 뜻이다. 유예지 “글씨”는 글씨라는 대제목 아래 총론을 함한 5개의 소제목을 두고 그 아래에 45개의 표제어를 뽑았으며, 15개의 소표제어를 두어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조선에서 나온 최대의 서예론서라고 할 만하다. <총론>에서는 여러 서체의 기원과 이를 기원으로 파생된 서체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글씨를 배우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조언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대전과 소전>에서는 대전과 소전의 특징을 언급하며 용필법(用筆法)에 대해 소개하였고 더불어 필묵이 마르지 않고 촉촉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해서와 초서>에서는 글씨를 구성하는 중요한 방법인 ‘영(永)자 팔법’으로 필세를 만드는 법에 대해 서술하며, 명필가의 서결(書訣), 붓 쥐는 법을 필두로 하여 글씨를 쓰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다. 또 글씨를 배우는 사람이 선배의 글씨를 본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글씨를 쓰는데 필요한 도구 사용법이나 글씨 쓰기에서 살려야 할 9가지 방법 그리고 잘못 쓴 글자를 지우는 방법 등에 대해 제시하였다. “글씨”와 함께 《유예지》 2권을 구성하고 있는 “그림[畵筌]”은 【상】과 【하】로 나누어 다양한 화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으로 번역한 글자 중에서 전(筌)은 통발이라는 뜻으로, 화전(畵筌)은 ‘독자를 그림[畵]의 세계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안내해 줄 통발[筌]’이라는 뜻이다. 그림[?筌]【상】의 <총론>에서는 남제(南齊) 사람 사혁(謝赫, 6세기 중엽)의 육법(六法)이론과 함께, 신품(神品)·묘품(妙品)·능품(能品)으로 표현되는 그림의 3품등, 천취(天趣, 정신)·인취(人趣, 생동)·물취(物趣), 형사(形似)라는 그림의 3요소를 비롯하여 병폐, 요점, 장점, 필수 요소, 품격, 기피 사항을 4~12가지로 설명하는 등 화론의 주요 요소를 일정 개수로 범주화했다. 또, “위치”·“제목달기”·“배우는 법”·“붓과 먹을 쓰는 법”·“채색하는 법”·“낙관”등의 항목을 나누어 자세하게 소개하였고, 실제로 그림의 소재가 되는 “인물”·“의관”·“산수, 숲과 나무”·“꽃과 열매, 새와 짐승”을 그리는 법을 심도있게 설명하였다. 또 “건축물을 자로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나 “특이한 화법으로 그린 그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그림【하】〉에서는 “매화”·“대나무”·“난”을 그리는 기법을 자세히 소개하며 실제 그림과 함께 보여 주어 이해를 더하고 있다. 유예지 〈그림[?筌]【상】〉을 15년 전부터 번역해 온 역자 조송식은 “그림에 대한 전면적인 내용을 다루는 체계적 이론”으로서 〈화전〉에 주목하면서 “《유예지》의 〈화전〉과 《이운지》의 〈골동품과 예술작품 감상(하)〉 “명화(名?)”는 각각 《유예지》와 《이운지》에 나뉘어 실려 있지만, 하나로 종합할 경우 우리나라에서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인 화론”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평가로 볼 때 《유예지》 권4·5 〈그림[?筌]〉은 중국과 조선에서 나온 이전의 화론서를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화론서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소개

본관은 달성(대구), 경기도 파주 장단이 고향이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서 규장각 제학, 전라 관찰사, 수원 유수, 이조 판서, 호조 판서 등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했음에도, 경학이나 경세학보다는 천문· 수학· 농학 등 실용학문에 심취했던 서명응(조부), 서호수(부), 서형수(숙부)의 가학家學에 깊은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 최고의 실용백과사전이자 전통문화 콘텐츠의 보고인 󰡔임원경제지󰡕 113권을 저술했다.

토갱지병土羹紙餠, 즉 ‘흙으로 끓인 국이나 종이로 만든 떡’처럼 입으로만 만리장성을 쌓는 관념적 학문에 염증을 느낀 풍석은, 사대부라면 누구나 즐겼던 시 짓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고향인 임진강변 장단에서 직접 농사짓고 물고기 잡으며, 술 빚고 음식 만드는 부엌을 드나들면서, 임원林園에 사는 선비로서 가족을 건사하고 덕을 함양하는 데 필요한 전반적인 실용지식을 집대성하는 데 전념했다. 이를 위해 조선과 중국, 일본의 온갖 서적을 섭렵하여 체계적으로 모은 실생활에 필요한 각종 지식과, 직접 경험해보고 듣고 관찰한 내용을 16분야로 분류, 엄밀하게 편찬 저술하기 시작했다. 

관직에 복귀한 뒤 호남 지방에 기근이 들자, 굶주린 백성을 위해 󰡔종저보󰡕를 지어 고구마 보급에 힘쓰기도 했던 풍석은, 재야나 한직에 머물렀던 당시의 여느 실학자와 달랐다. 실현 가능한 개혁을 추구하는 조정의 최고위 관료였고, 농부이자 어부, 집 짓는 목수이자 원예가, 술의 장인이자 요리사, 악보를 채록하고 거문고를 타는 풍류 선비이자 전적과 골동품의 대가, 전국 시장과 물목을 꿰고 있는 가문 경영자이자 한의학과 농학의 대가였다.

늙어 벼슬에서 물러나, 그동안 모으고 다듬고 덧붙인 엄청난 분량의 󰡔임원경제지󰡕를 완결한 그는 경기도 남양주 두릉에서 82세의 일기를 다했다. 시봉하던 시사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운명했다고 한다.

목차

권3 글씨
권4 그림
권5 그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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