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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0-19 백치가 된 식민지 지식인

시리즈 :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110 세트 [23]

이상, 유진오, 박태원 외 저 | 케빈 오록 외 역 | 아시아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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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621072 / 500쪽 115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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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백치가 된 식민지 지식인 Colonial Intellectuals Turned “Idiots” 식민지 시기 지식인들은 믿고 의지할 만한 빛줄기 하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은 남보다 많은 지식과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인해 누구보다 시대를 깊이 앓아야만 했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의 출구를 열어나가고자 몸부림쳤다. 그 몸부림의 다양한 흔적들은 식민지 시기 한국 문학의 순금과도 같은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의 《날개》, 유진오의 《김 강사와 T 교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최명익의 《비 오는 길》, 김사량의 ... 백치가 된 식민지 지식인 Colonial Intellectuals Turned “Idiots” 식민지 시기 지식인들은 믿고 의지할 만한 빛줄기 하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은 남보다 많은 지식과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인해 누구보다 시대를 깊이 앓아야만 했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의 출구를 열어나가고자 몸부림쳤다. 그 몸부림의 다양한 흔적들은 식민지 시기 한국 문학의 순금과도 같은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의 《날개》, 유진오의 《김 강사와 T 교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최명익의 《비 오는 길》, 김사량의 《빛 속에》는 식민지 시기 지식인이 경험한 실존과 내면에 대한 치밀한 임상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이 경험한 모던에 대한 매혹과 절망, 이념과 일상 사이에서의 위험한 줄타기, 일본과 조선 사이에 놓인 양가적 존재의 가능성 등을 한국 문학사가 경험해본 바 없는 치밀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담아내었다. 이들 작품은 모두 참신한 실험기법과 현대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들로서, 한국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내세울만한 명작들이다. 강요된 선택과 현대인의 비극『날개』(Wings)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패배『김 강사와 T 교수』(Lecturer Kim and Professor T) 진지한‘모던뽀이’의 하루와 경성 모더니즘『소설가 구보씨의 일일』(A Day in the Life of Kubo the Novelist) 서정에 담긴 현대적인 이야기『비 오는 길』(Walking in the Rain) 빛과 어둠, 두 개의 목소리『빛 속에』(Into the Light) 출판사 서평 강요된 선택과 현대인의 비극『날개』 흔히 작가 이상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날개]는 현대인의 비극적 실존에 대한 치밀한 임상보고서이다. [날개]는 비유하자면 소설로 쓴 [오감도]이다. [오감도]의 경우처럼 [날개]도 현존재들의 실존 형식을 결정짓는 현대성의 구조를 투시하고 현존재 모두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 현대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제시한다.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패배『김 강사와 T 교수』 「김 강사와 T 교수」는 일제의 군국주의가 더욱 강력해져 양심적 지식인의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던 시기 시대적 추이에 대한 면밀한 보고서로서, 당대 지식인의 현실 적응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만필은 과거 사회주의 운동을 청산하고 식민지 시기 현실에 적응하려고 하는 당대 지식인의 한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진지한‘모던뽀이’의 하루와 경성 모더니즘『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은 한글로 쓰인 소설 작품 가운데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남겼다. 박태원의 소설 기법 실험은 표현 매재인 언어에 대한 독특하고 깊은 자의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산문정신의 합리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도에서 수행되었다.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한국어 소설로 써진 모더니즘의 가능치를 최대한까지 보여준다. 『비 오는 길』 최명익의 작품 「비 오는 길」의 배경은 작가의 고향인 평양이다. 1936년 발표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전시 하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산업화가 도시에 가져온 변화를 볼 수 있다. 최명익은 이 무척이나 현대적인 이야기들을 섬세하고 거의 서정적이라 할 문체 속에 담고 있다. 『빛 속에』 김사량이 현재는 ‘반일본’ 작가로 사후에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그의 소설은 민족적 양가성과 언어적 잡종성을 복잡하면서도 자주 곤혹스럽게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작품이다. 「빛 속에」에서는 조선과 일본, 명료성과 모호성, 그리고 어둠과 빛이 두 개의 목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현민(玄民) 유진오는 1906년 5월 제1회 관비 일본 유학생 출신인 아버지 유치형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4년 재동공립보통학교와 1919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한다. 1924년 경성제대 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1926년 법문학부 법학과로 진학하지만, '경제연구회'에서 사회사상과 경제의 제 문제를 공부한다. 1927년 [조선지광]에 [복수], [스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한다. 1929년 경성제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형법연구실 조수로 일한다. 이때를 전후해 이효석과 함께 '카프'로부터 가입 권고를 받고 거절했으나 작품 경향이 사회문제와 계급문제를 다루고 있어 '동반자 작가'라는 칭호를 듣는다. 1931년 유진오가 중심이 되어 '조선사회사정연구소'를 설립하여 조선 사회사를 연구했으나 1932년 경찰 당국에 의해 위험 단체로 지목되어 연구소는 강제 폐쇄된다. 1933년 보성전문 교수(전임강사)가 되었다. 1935년 [김 강사와 T교수], 1938년 장편 [화상보]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창랑정기], [어떤 부처],[수난의 기록]을 발표한다. 1939년에는 [가을], [나비], [이혼] 등을, 1940년에는 [봄], [여름](일문) 등을, 1941년에 [마차], [산울림], [젊은 아내], [기차 안에서](일문) 등을 발표한다. 1942년 [신경], [정 선달], [남곡 선생](일문)을 발표하고, 1943년 [가마], [식모난],[입학 전후], 1944년 [김포 아주머니]를 발표한다. 
해방 후에는 문학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1948년 대한민국 헌법기초위원과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고 법조계와 교육계에서 일한다. 1966년 민중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으며, 1967년 신민당의 대표위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1968년 신민당 총재로 취임하여 1970년까지 활동한다. 1987년 향년 81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다. 

1909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에 [동명]의 '소년칼럼'에 [달맞이]가 뽑혔으며, 춘원 이광수에게 개인적으로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일본 동경법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1930년 [신생]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에 나왔다. 1933년에는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에 반기를 든 '구인회'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5년 첫 장편소설 [청춘송]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였고, 1936년에는 [조광]에 [천변풍경]을 연재했다. 1946년에 남로당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했으나, 1948년에는 좌익 인사를 감시, 관리하던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성명서에 서명을 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을 따라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하였고, 북한 쪽 중군기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1953년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취임했으나, 1956년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면서 창작 금지 조처를 받았다. 1960년에 창작 금지 조처가 풀려 작가로 복귀하면서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착수하였지만 당뇨병으로 인한 안질환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는 등 시련을 겪는 가운데 1977년과 1980년에 [갑오농민전쟁] 1,2부를 출간한 후, 1986년 7월 10일에 사망했다. 사망 후에 박태원의 구술을 정리하여 [갑오농민전쟁]3부가 출간되었다.

김사량(1914∼1950, 본명 시창)은 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9년 <빛 속에>가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수상식에 참석한 김사량은 조선의 작가로서 민족에 관한 글을 쓰는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민족의 현실을 진솔하게 써 나가겠다고 다짐한다.
김사량은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빛 속에>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민족의 정체성을 고심하며 민족 해방에 대한 관심과 어두운 식민지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답답한 것이었고 마침내 중국 연안으로 망명한다. ≪노마만리≫를 보면 망명 당시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에게 ‘노마만리’는 시시각각으로 조여드는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여 창작의 자율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항일 투쟁에 동참하는 길이었다.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 본부 선발대로 귀국한 그는 북한에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펼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전선에 나섰다. 1950년 10월 원주 부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사량은 남북한의 문학사에서 그리고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 대단히 문제적인 작가다. 재일 조선인 문학에서는 그가 아쿠타가와상 후보 작가에 오르면서 재일 조선인 작가로서 명망을 얻은 만큼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맥락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남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식민지 말기 이중언어의 글쓰기, 또는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 논의되었다. 북한에서 김사량의 문학은 1950년대 초반 연안파의 숙청과 함께 그 이름이 사라졌다가 1987년 복권된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그는 사회주의 건설기에 활약한 양심적 민족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다.

최명익(崔明翊, 1903∼?)은 평남 강서군 증산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산삼 교역상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최명익이 평양고보에 입학한 이듬해에 사망한다. 1921년 일본 유학을 통해 도스토옙스키 문학에 심취한다. 1928년 최명익은 홍종인, 김재광, 한수철 등과 함께 동인지 ≪백치≫를 만들고 여기에 <희련시대>, <처의 화장>을 발표한다. 이때 유방(柳妨)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콩트 <붉은 코>, <목사>, 평론 <이광수 씨의 작가적 태도를 논함> 등을 집필한다.  
1936년 최명익은 <비 오는 길>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고 “도스토옙스키의 수법”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작가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무성격자>, <역설>, <봄과 신작로>, <폐어인>, <심문>, <장삼이사> 등 일제강점기 동안 총 일곱 편의 소설을 창작한다. 그의 작품은 “비록 자조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자조는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백철)을 찾으려는 것이며 “결말을 맺는 기술이 매우 수준이 높고, 아울러 인생의 순수성과 청신성을 빚어내는 데 성공”(김동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 말을 경과하면서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심리적 고뇌로서는 “이러한 세계에서는 더 배겨낼 수가 없고 따라서 자기를 그런 투로 학대할 필요나 이유가 없다”(<레프 톨스토이에 대한 단상>)라고 진단한다. 지식인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그는 <장삼이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민중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해방 후 ‘평양예술문화협회’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이 단체에서 간행된 ≪관서 시인집≫이 쉬르레알리슴의 시라는 점이 문제가 되어 공산주의 계열의 비평가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때 최명익은 김조규, 양명문 등과 함께 자기비판의 과정을 거쳐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47년 최명익은 단편집 ≪맥령≫을 문화전선사에서 출간하며, 남한의 을유문화사에서 일제하의 작품을 모은 ≪장삼이사≫를 출간한다. 1956년 발표한 역사소설 ≪서산대사≫는 북한 문예의 모범작으로 평가받았다.

목차

목차
날개 - 이상 Wings - Yi Sang
김 강사와 T 교수 - 유진오 Lecturer Kim and Professor T - Chin-O Yu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A Day in the Life of Kubo the Novelist - Pak Taewon
비 오는 길 - 최명익 Walking in the Rain - Ch’oe Myongik
빛 속에 - 김사량 Into the Light - Kim Sa-r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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