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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 조국, 정여울 외 저 | 생각의길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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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사리사욕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가치를 수호하는 정의로움, 사람을 위해 불의를 참지 않겠다는 소신을 관철시키려 했던 사람-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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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132882 / 265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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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노무현 5주기 기념 출간 『그가 그립다』 1. 변호인 노무현, 그가 그립다 유시민, 조국, 정철, 신경림, 정여울, 류근, 한홍구, 노경실 등 『그가 그립다』에 담긴 스물두 명의 메시지는 한 젊은이의 영혼 앞에 민낯으로 부르는 소박한 합창 변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지난 시기 십여 년 정도 정치를 했다. 그 가운데 5년은 국회의원이었고 1년 5개월은 장관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권력과 영향력이 있었던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더 많은 사람...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노무현 5주기 기념 출간 『그가 그립다』 1. 변호인 노무현, 그가 그립다 유시민, 조국, 정철, 신경림, 정여울, 류근, 한홍구, 노경실 등 『그가 그립다』에 담긴 스물두 명의 메시지는 한 젊은이의 영혼 앞에 민낯으로 부르는 소박한 합창 변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지난 시기 십여 년 정도 정치를 했다. 그 가운데 5년은 국회의원이었고 1년 5개월은 장관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권력과 영향력이 있었던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더 많은 사람의 변호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때린다. 나는 변호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변호인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는 변호인이 되기 싫은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 나는 ‘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더 많은 억울한 사람들의 변호인이 되어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치에 뛰어들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것만은 크게 후회한다. _ 유시민의 《변호인이 된다는 것》 중 날씨를 피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가뭄을 피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저는 당신이 떠나신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숨어 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추위를 피해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게으른 아이처럼요. 저도 민주주의의 한파를, 민주주의의 가뭄을, 민주주의의 고사 상태를 피해 보려 했습니다. 소박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제 작은 보금자리 안에 꽁꽁 숨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겁 많고 소심하며 ‘정치’의 ‘정’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저 같은 사람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_ 정여울의 《오랜 자폐를 털고》 중 그는 ‘노무현’이라는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놀랐습니다. 크게 놀랐습니다. 그는 내세울 게 없어서 당당했고, 감출 게 없어서 명쾌한 젊은이였습니다. 또, 가슴이 뜨거워서 활짝 열어젖히고 나누어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를 앞장세웠습니다. 그리고 쉼 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진 것처럼 자신을 버린 채 땀 흘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덕이 심한 여름철 날씨였습니다. 우리는 참 많이도 그 사람을 우리의 용광로와 얼음 창고 속에 몰아넣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냉정한 등을 ‘눈부신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그의 심장 앞에 들이밀었습니다. _ 노경실의 《머리말》 중 하지만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를 잊어가고, 분노하고 울다가도 이내 웃으며 밥을 먹어 왔다. 변덕스러운 생활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렇게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딱 5년만큼만 괴로워하고 그리워했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무현은 우리의 벗이자, 이웃이며, 때로는 원수 같은 동지였다. 그래서 우리의 5년은 시간을 넘어서고, 그리움을 뛰어넘은 사랑의 고백이 되었다. 이 책 『그가 그립다』에 실린 스물두 명의 메시지는 그리운 그의 영혼 앞에서 민낯으로 부르는 소박한 합창이다. “그가 그리운 것은, 사실 그를 그리워함이 아니라 옳은 삶과 자기다운 죽음에 대한 소망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그가 그리운 것은, 어지러운 시대에는 벗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립다.” _유시민 “노무현 대통령을 사적으로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생애와 언동을 종합하면 그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는 항상 ‘호모 엠파티쿠스’와 ‘호모 심비우스’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_조국 “우리의 송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저들은 저렇게 활개를 치는데, 우리는 그저 영화 보며 박수나 치고 있어야 할까요. 노무현이 뛰어내린 그 자리, 바로 거기서 우리는 출발해야 합니다.” _한홍구 “미안해서 보고 싶다. 미안해서 만지고 싶다. 미안해서 울고 싶다. 세상 모든 ‘싶다’는 그를 위해 만들어 둔 말일 것이다. 그가 그립다.” _정철 “그리운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이다. 추억만이 유일한 은신처가 된 사람은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사람이다. 대상과 정면으로 부딪쳐 저항할 의지가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시인이 아니다.”_류근 안될 것을 알지만 그른 것에 대항하는 용기, 사리사욕이나 명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가치를 수호하는 정의로움, 그 무엇보다 사람을 위해 불의를 참지 않겠다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려 했던 사람, 노무현. 그의 삶과 정신 속에서 찾아낸 희망의 불씨가 『그가 그립다』 속에 스물두 가지의 빛깔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 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리라는 굳은 다짐 역시 활자 위에서 피어나고 있다. 그렇게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2. 노무현의 전속 이발사, 청와대 총주방장 등이 들려주는 ‘인간 노무현’ 제가 관저에 처음 들어간 날을 기억하시는지요? “정 선생, 어서 오세요.” 손을 번쩍 드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답니다. 어느덧 저에 대한 호칭이 사장님에서 선생으로 바뀌어 있었고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저한테는 선생이라는 호칭이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냥 편하게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했더니 “그게 잘 안됩니다. 그냥 갑시다.” 하셨어요. 동갑내기인 저에 대한 배려를 당신은 그렇게 하셨던 건데 지금 생각해도 당신의 따뜻한 성품과 성격이 이 호칭에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_ 정주영의 《당신의 전속 이발사》 중 청와대 관저의 식사 시간은 아침은 7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 반이다. 대통령은 이 시간만큼은 누구라도 철저히 지키게 했다.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힘들지 않게 하려고 아들 내외 가족이라도 밖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오게 했다 (…) “신 부장, 나라도 이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인터폰을 하게.” 대통령께서도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이 시간만큼은 솔선수범 지키려고 엄청 노력하셨다. _ 신충진의 《식사하세요》 중 노무현 대통령이 올백 스타일의 머리를 좋아했으며 이발을 하는 동안 도전 골든벨 같은 퀴즈를 즐겨 풀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전속 이발사. 모내기국수, 막창구이, 라면 등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음식을 나열하며 그를 추억하는 청와대 총주방장. 가장 가까이에서 그와 일상을 함께한 이들의 이야기에는, 대통령이라는 직책과 정치인이라는 신분을 내려놓은 ‘인간 노무현’이 담겨 있다. 3. 『그가 그립다』로 시작하는 희망 릴레이, 노무현장학금 『그가 그립다』에 참여한 스물두 명의 작가 모두는 인세를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어 했다. ‘어떻게 하면 그가 남긴 정신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가들은 본인들의 인세를 ‘노무현재단’과 ‘노무현장학금’에 기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노무현장학금’은 ‘꼴찌도 장학생이 될 수 있다’는 독특한 심사 기준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진취적인 자세로 이웃과 지역사회에 봉사해 온 학생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장학금의 설립 목적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던 노무현의 학창 시절과, 그 어려운 사법 고시를 통과했음에도 ‘고졸 대통령’이라는 꼬리표에 내내 시달려야 했던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친인척 중 머리가 좋음에도 상

저자 소개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영문과에서 수학했으며 1955년 '문학예술'에 시 「갈대」「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 이사장이며 시집으로는 <농무>, <새재>, <남한강> 등이 있다.


저서 


《농무》, 《길》, 《달넘세》, 《새재》, 《쓰러진자의 꿈》, 《가난한 사랑 노래》, 《뿔》,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갈대》,  《2013 내가 뽑은 나의 시》,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최후로 생각할 것을 생각하는 문학》,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못남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꼬부랑 할머니가》, 《목계장터》, 《시인을 찾아서 2》, 《시인을 찾아서 1》,《신경림 시 전집》, 《인터뷰》, 《우리들의 북》, 《한국전래동요집 1》, 《민요기행 1》, 《민요기행 2》, 《아기 다람쥐의 모험》, 《사진관집 이층》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으며 2013년 이후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학생 때부터 역사학, 철학,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글을 읽고 쓰면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었고 여러 권의 책을 내고 독자들을 만나며 그 꿈을 이뤘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시사예능 프로그램에 출현해 교양을 전하는 방송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국가란 무엇인가』, 『나의 한국현대사』, 『어떻게 살 것인가』,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청춘의 독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이 있다. 
이이화 선생님은 평생 동안 한국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입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면서 한국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뒤, 줄곧 한국사 연구와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의 지역 갈등과 전통적 신분 질서를 타파하는 글을 쓰면서 민족사․생활사․민중사를 복원하는 데 열정을 기울였으며,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 인물을 재평가하는 역사의 현재화, 재미있고 쉬운 문체로 일반에게 다가가는 역사의 대중화에 공헌하였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역사비평> 편집인으로서 근현대사 연구를 위한 사업에 동참했으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또한 과거사청산운동에 동참하면서 식민지시민역사관 건립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현재 집필에 전념하며 대중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인물로 읽는 한국사》, 《찬란했던 700년 역사 고구려》, 《해동성국 발해》, 《평등과 자주를 외친 동학농민운동》, 《전봉준, 혁명의 기록》, 《허균의 생각》 등이 있습니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누나의 까만 십자가〉,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오목렌즈〉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아이들의 마음을 재치 있지만 진지하게 잘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며, 좋은 어린이 책을 발굴 · 기획하고 있고, 《애니의 노래》,《아버지와 딸》,《애니의 노래》,《그림 자매 시리즈》등 외국 어린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쓴 책으로 《상계동 아이들》,《복실이네 가족사진》,《동화책을 먹은 바둑이》,《우리 아빠는 내 친구》,《도마뱀 꼬리가 잘렸어요》, 《현수야 넌 내 마음 아니》, 《어린이 인문학 여행 시리즈》등 많은 작품이 있고, 다수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82년 3월, 만 16세 11개월의 나이로 서울대 법대에 최연소 입학을 하였고, 1980년대 하반기 대학원을 다니며 이수성 서울대 총장(이후 국무총리)의 조교로 일하였다. 대학원 재학 기간 동안 이진경(현 서울산업대 교수), 진중권(현 중앙대 겸임교수) 등과 함께 주체사상 비판작업을 수행하고, 필명으로 <주체사상 비판>(벼리출판사)를 출간하였다. 1992년에는 만 26세 11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울산대 교수로 임용되어 화제거리가 되었다. 1993년 고향 및 대학 선배인 백태웅씨(현재 카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가 이끄는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도운 혐의로 반년간 옥고를 치렀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한 '양심수'로 지정되었다. 재판 당시 천정배 변호사(이후 법무부장관)가 그의 변호팀을 이끌었다. (--- 위키피디아) 2001년 12월 이후로 서울대학교에서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2000년 이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으로 시민운동에 참여하였고, 2007년 12월 대법원장 지명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으로 임명되어 인권침해와 차별에 대한 조사와 구제에 일조하고 있다. 전공인 법학연구를 삶의 중심에 놓으면서도, 여력이 되는 대로 전공 밖의 세상일에 관여하고 있다. 법의 제정.해석.집행의 문제, 그리고 인권의 보장과 신장의 문제가 애초부터 세상 일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으므로. 2003년 한국형사법학회 정암형사법학술상, 2007년 서울대 법과대학 우수연구교수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한겨레신문사>, “한국의 미래 열어갈 100인” 중 “학술(인문·사회) 8인”, 2005년 <경향신문사> “한국을 이끌 60인”, 2006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선정되었다. 학술서로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형사법의 성편향>,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로스쿨 형법총론> 등을, 에세이집으로는 <성찰하는 진보>를 발간했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사)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8가지 주요 쟁점과 그와 관련된 근현대사 맥락을 특유의 박식과 입담으로 풀어낸 『특강』, 한국 현대사의 여러 국면에 등장했던 사건과 사람들, 그것을 둘러싼 금기의 역사를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필치로 고발한 『대한민국史』 1~4권을 펴냈다. 그 외 『한홍구와 함께 걷다』, 『한홍구의 현대사 다시 읽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공저),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공저) 등을 출간했다. 현재는 <한겨레>에 법과 양심, 소신보다는 ‘그분들의 뜻’에 기대온 한국 사법부의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어둠의 역사를 밝히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연재하고 있다. 
KBS1라디오 〈백은하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을 진행하고 있으며, KBS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에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한 산문집 『마음의 서재』를 비롯해, 심리 치유 에세이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빈센트 나의 빈센트』 『마흔에 관하여』 『월간 정여울』 『공부할 권리』 『그림자 여행』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시네필 다이어리』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문학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고려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강의했고,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일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역서로는 《사고의 오류》《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생각의 역습》《슬로우》 최고들이 사는 법》《소설의 이론》《현대소설의 이론》《수레바퀴 아래서》《공정사회란 무엇인가》《유럽의 명문서점》《마야의 달력》《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 등이 있다.

‘한 기업을 위한 카피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카피를 쓰다.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라는 과분한 이름을 얻다. 촛불을 응원하고 물대포를 꾸짖는 카피를 쓰다. 촛불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얻다. ‘나는 개새끼입니다’ ‘5월은 노무현입니다’ 등 노무현과 노무현재단에 관한 카피를 도맡아 쓰다. 노무현 카피라이터라는 이름을 얻다.’


 


국민, 촛불, 노무현… 카피라이터 정철 앞에 붙는 이런 수식어들은 그가 이미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경계를 뛰쳐나와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 또는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그는 이 같은 시도 또는 외도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작가도 책도 시대와 나란히 걸어야 한다고. 카피라이터도 이 시대를 증언해야 하는 라이터라고.


 


29년차 카피라이터. MBC 애드컴 카피라이터, 단국대 언론영상홍보학부 겸임교수, 서울카피라이터즈클럽 부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정철카피 대표로 있다. 《내 머리 사용법》, 《불법사전》, 《학교 밖 선생님 365》, 《인생의 목적어》 등 머리를 때리는 발칙한 책을 차례로 내놓으며, 역발상이란 어떤 것인지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이후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2010년, 시단의 관행을 깨면서 전작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을 첫 시집으로 출간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가 홀연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강원도 횡성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 쓴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김광석에 의해 불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2013년 현재 소설가 정영문과 이 인 동인 ‘남서파’ 술꾼으로 활동 중이다.


 

1970년 경술국치 60년 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부산에서 자랐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1995년 이래 방송 제작 일을 해오고 있다. 인터넷에서 ‘산하’라는 필명으로 학창 시절 매진하지 못한 역사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왔다. 그 작업을 토대로 《한겨레신문》에 ‘응답하라 1990’을 연재했으며(2014), 현재는 《시사인》에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를 2년째 집필하고 있다.
《썸데이서울》(2003)을 필두로 《그들이 살았던 오늘》(2012), 《접속 1990》(2015), 《교과서가 들려주지 않는 양심을 지킨 사람들》(2016) 등의 역사서를 냈다. ‘산하의 오역’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역사’를 적어왔던바, 2015년 별안간 불거진 국정교과서 논쟁을 지켜보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최소한의 역사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산하의 오역’에 등장하는 사건과 사람과 이야기들을 고치고 덧붙여 이 책을 엮었다.


 

 (시인,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출발점은 시인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20여 년간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진행자와 패널로 주유하고 있다. 현재는 TBS(교통방송) 심야 팝 프로그램 「김갑수의 마이웨이」 DJ가 주업이고, 몇몇 종편TV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개인 음악감상실 ‘줄라이 홀’에 거주하며 일평생 전념해온 LP 음반과 진공관 오디오 수집, 커피 로스팅으로 일과를 보낸다. 시집 『세월의 거지』를 필두로 클래식 음악 칼럼집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작업실 생활기 『지구 위의 작업실』, 시사 칼럼집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서평집 『나의 레종 데트르』, 음악 에세이집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태생은 한량인데 어쩔 수 없이 진보 지식인인 척해야 하는 시대상이 갑갑해서 본령에 충실한 연애서 『작업 인문학』을 쓰게 됐다. 특히 실전 1할에 전전반측 마음속 생각이 9할인 이른바 ‘연애고자’들을 위한 충동질이 이 책의 핵심 집필 의도이다. 저자는 주장한다. 별로 가진 게 없는 이의 최종 병기는 ‘구라’라고. 상대의 지적 교양 욕망을 최대한 자극하라고. 그러니 이 책 읽고 닦고 조이고 기름 쳐보라고.

이명박 정부 때부터 『경향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2012년 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아내는 칼럼을 그만 쓰라고 했다. 글 쓰다가 잡혀가면 누가 가족을 부양하느냐는 것이다. 그의 전매특허가 된 반어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칭찬하는 듯 까대는 그의 글에 열광했고, 그는 “글로 뜨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달성할 수 있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못한 게 부끄럽다고 말하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반어법을 이해 못하고, 그냥 칭찬인 줄 안 모양”이라고 그 이유를 추측한다. 이 책은 그의 오늘을 있게 해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헌사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 때 선택의학 과목으로 기생충학을 선택했다가 어릴 적 못생긴 외모로 인해 고생했던 자신의 모습처럼 외모로 인해 탄압받고 있는 기생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못생긴 외모를 콘셉트로 삼아 방송계 진출을 끈질기게 시도한 끝에 MBC 〈컬투의 베란다쇼〉의 출연을 시작으로 tVN 〈어쩌다 어른〉, EBS 〈PARASITE 기생(寄生)〉,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 〈과학콘서트〉와 〈아침마당〉에 출연했다.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이며, 칼럼․블로그․단행본․논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2004년 알라딘 ‘서재’에서 자기 비하에 가까운 진솔함과 유머로 파워 블로거가 되었으며, 2009년 『경향신문』 칼럼들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2013년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칼럼의 백미로 꼽힌다. 2012년 영국고고학학회지에 논문이 게재되면서 대한기생충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그의 글은 가벼운 듯하면서 풍자와 반전,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묵직하게 담고 있어 열혈 충성 독자가 많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에게서 ‘파블로 선생의 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생물문학’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대통령과 기생충』 외에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서민의 기생충 열전』(책따세 청소년 추천도서, 올해의 과학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기생충의 변명』 등 기생충 관련 책을 펴내면서 ‘기생충학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자신의 혹독한 글쓰기 훈련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서민적 글쓰기』,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촌철살인 독서 서평집 『집 나간 책』,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인터뷰집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제 남은 생(生)을 기생충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으며,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최종 목표이자, 기생충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

51세, 협동조합 은빛기획 대표. 전기작가.
충남 서천 생. 수원 수성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수학. 
우리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다시보는 한국전쟁>, <우리나라 노동운동사> 등의 단행본과 <나 이제 주인되어>(고 이옥순 님 자서전, 녹두 간행) 등의 개인전기를 집필. 
30대에 <사람과 일터> 편집국장과 <말> 객원기자로 일했고, 40대에 열린우리당 정책실장, 국민참여당 정책위원장 등을 역임함. 
'개인사가 역사 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에,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협동조합 은빛기획>을 꾸려, 자서전 출판 사업을 펼치고 있음. 

국어 교사와 작가로 활동하다가 1985년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여러 민주화운동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소설집으로 <<안개 너머 청진항>> <<우산 셋이 나란히>> 등 여러 권이 있으며, 민주화운동사를 대표 집필한 <<우리 강물이 되어>> <<6월항쟁을 기록하다>> 등이 있다.


 

드라마 작가이다. 방영된 드라마로는 MBC에서 방송한 청소년 드라마 <나>, SBS의 <카이스트>와 저녁 일일 드라마인 <미우나 고우나>가 있다. 그리고 KBS의 <학교 2>와 아침 드라마 <두근두근달콤> 등이 있다.


 

여의도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대통령 노무현의 머리를 깎은 우연한 기회로 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청와대를 출입하고 해외 순방까지 함께하며 전속 헤어디자이너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에서 10년 남짓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 4월부터 임기 마지막까지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2011년부터는 노무현재단에서 노무현사료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서 노 대통령 생애, 정책, 철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정리·공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리사이다. 제주에 있는 신라호텔에서 총주방장으로 일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연이 닿아 청와대에서 요리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서양 요리 전문이지만 지금은 서울 어느 대학 앞에서 자그만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 구분 : 저서
    이름 : 김태수
    국적 : 대한민국
    직업 : 연출가, 극단대표
    분류 : 인문/철학자 , 예술/취미 저자
    인기지수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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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그립다
연출가이고 ‘극단 완자무늬’ 대표이자 서울연극협회 감사이기도 하다. 주요 연출작으로 <락 스트리트> <팽> <금관의 예수> <콘트라베이스> <늙은 창녀의 노래> <의자는 잘못 없다> 등이 있다. ‘극단 완자무늬’ 창단 30주년 기념 공연으로 <천안함 랩소디>를 무대에 올렸다.
  • 구분 : 저서
    이름 : 시윤희
    국적 : 대한민국
    직업 :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분류 : 인문/철학자
    인기지수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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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그립다

삼십 대 중반까지 간호사로 일했다. 복지와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사회제도와 사회문제 간의 상관관계를 다양한 범위에서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 여러 문화권을 찾아다니며 비교 관찰하는 중이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으로서 친일 재산 국가귀속 업무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 과거사 청산과 통일시대의 역사문화운동이 주요 관심 분야이다.

책 속에서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자폐증에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 웅크린 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또한 필요 이상의 관심을 받지 않기를 빌며 조용히 엎드려 살아야지 했습니다. 그 변명의 끝에는 항상 이런 문장이 있었죠. 나는 소심하니까, 나는 겁이 많으니까. 하지만 ‘겁 많고 소심하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자기변명 속에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남보다 더 잘 상처받고, 남보다 더 자주 겁에 질리는 저 같은 사람에게야말로 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무서울 때마다, 사람들이 무서울 때마다, 더 깊이 저만의 누에고치 속으로 숨었던 저는 잊고 있었지요. 겁 많고 소심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 지켜야 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저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아주 작은 용기부터 내 볼 작정입니다. 제게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마치 그 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든 잊으려고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지요. 이제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여전히 민주주의가 안타까운 숨소리로 연명하며 ‘희망’이라는 가녀린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지금, 저 또한 작은 힘을 보태어 그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닌, 민주주의의 변호인이 되고자 합니다. 영화 속의 당신처럼, 아니 수십 년 전 당신이 냈던 그 용기를 떠올리며 말이지요.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_ 정여울의 <오랜 자폐를 털고> 중


   상식과 용기.
   이 두 단어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까지 끌어올렸던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떠한 합의도 없이, 어떠한 논의도 없이’ 국민이 뽑아 준 야당이 넙죽 여당과 합당을 해 버리는 몰상식에 저항했던, 또 종로의 인경 들이받은 것처럼 머리 깨지고 말 것임을 삼척동자도 아는 판에 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 거리를 누볐던 무모한 용기의 소유자 노무현은 바로 그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 노란 옷 입고 춤추고 노래했던 사람들을 끌어낸 동력은 그에게서, 그것도 대통령 후보에게서 오랜 역사 내내 짓밟혀 왔던 상식과 차마 지닐 수 없었던 용기의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상식과 용기에 굶주려 왔던가를 반증한다. 즉 대한민국은 국가 보안법 등을 비롯한 떼귀신이 설치며 사람들을 가위 누르고 홀려 온 흉가였던 것이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며 내지른 다음의 연설은 떼귀신에 대한 부적이요 축귀령(逐鬼令)이었다. (…)
   그렇게 그는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가 이 땅에 켜켜이 쌓인 냉전의 쓰레기들과 곳곳에 쳐진 몰상식의 거미줄을 쓸어 내고자 했던 흔적은 적지 않다. 일례로 그는 수십 년 동안 가슴에 ‘4·3’이라는 피고름을 안고 살던 제주도민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사과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경산 코발트 광산의 백골들이 햇빛을 본 것도, 그 백골의 유족과 후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그맘때쯤의 일이었다.
_ 김형민의 <귀신은 살아있다> 중


   이제 내가 품고 있는 한 장면을 이야기해야겠다. 2011년 장마 초입에 부림사건 관계자 구술 인터뷰를 위해 부산에 내려갔다. 미리 모여 주신 몇몇 분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듣고 술자리가 이어졌다. 이십 대 피 끓는 나이에 서른다섯의 변호사 노무현을 처음 만났던 그들은 오십 대가 됐다. 이 얘기, 저 얘기, 그 얘기가 술과 함께 오가던 중 한 분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우리도 ‘노변’처럼 진짜가 되고 싶었잖아. 깜은 안 돼도 그래도 진짜가 되고 싶었잖아.”
   ‘노변’이라 불렀는지, ‘대장’이라 불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말은 확실했다. ‘진짜가 되고 싶었다.’
   그랬다. 노무현은 ‘진짜’였다. 그 전에 스스로 진짜가 되려고 노력했다. 가난에서 세속의 성공까지, 앞서 소개한 노무현 이야기는 충분히 통속적이다. 굳이 노무현만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런 노무현은 부림사건으로 처음 접한 국가의 폭력에, 3당 합당에서 겪은 불의와 반칙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지역 구조와 분열의 극복, 국민 통합의 길로 일관했다. 그리하여 가까이서 일한 사람들이 접한 노무현과 멀리서 지켜본 사람들이 아는 노무현이 다르지 않은, 진짜가 되었다.
 _ 김상철의 <진짜이고 싶은> 중


   영화 <변호인>이 감동을 준 이유는 돈만 밝히던 속물 변호사 송우석이 어떻게 인권변호사로 거듭났는가, 우리가 대통령 노무현에 가려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인간 노무현이 1980년대를 살아가던 초심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화에서 노무현이 가장 노무현다웠다고 느낀 대목은 송 변호사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때였습니다. 그런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요. 노무현이 가 버린 지금, 나는 대한민국에서 노무현과 같은 초심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종착역이 부엉이바위여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절정의 순간, 그렇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리 곁을 떠난 후에야 뒤늦게 다시 기억해 낸 것은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했던 연설이 아닐까 합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어요. 그저 밥이나 먹고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 줬던 저희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였습니다. 1980년대 시위하다 감옥에 간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였습니다.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뤄져야만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_ 한홍구의 <그리움의 방법> 중

 

목차

목차
머리말
정여울 - 뚫고 싶다 | 오랜 자폐를 털고
김윤영 - 깨고 싶다 | 어떤 개가 이길까
정철 - 꺾고 싶다 | 날개에 대한 지나친 고찰
조국 - 찾고 싶다 | 호모 엠파티쿠스
노경실 - 웃고 싶다 | 다시는 울지 말자
김형민 - 풀고 싶다 | 귀신은 살아 있다
유시민 - 닮고 싶다 | 변호인이 된다는 것
류근 - 날고 싶다 | 몽롱한 베스트셀러 잡문가의 나날
정주영 - 보고 싶다 | 당신의 전속 이발사
김상철 - 되고 싶다 | 진짜이고 싶은
신충진 - 잡고 싶다 | 식사하세요
김갑수 - 심고 싶다 | 나쁜 취향
신경림 - 살고 싶다 | 눈길
유시춘 - 닿고 싶다 | 가장 아름다운 문서
서민 - 갚고 싶다 | 베드로는 멀리 있지 않다
이이화 - 넘고 싶다 | 알다시피
한홍구 - 묻고 싶다 | 그리움의 방법
노항래 - 막고 싶다 | 사소하고도 기나긴
김태수 - 서고 싶다 | 다 마찬가지다
박병화 - 믿고 싶다 | 나도 좀 타고 가자
시윤희 - 알고 싶다 | 지금의 내가 아닌데
조세열 - 열고 싶다 | 다윗의 돌팔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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