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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가후의 도쿄산책기

나가이 가후 저 | 정수윤 역 | 정은문고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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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153049 / 21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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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나가이 가후가 걸었던 백년 전 도쿄에서 오늘날 서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수많은 일본작가가 사랑한 작가, 당대 최고의 문학가 나가이 가후의 도쿄산책기다. 탐미주의 작가로 알려진 나가이 가후를 단지 화류계의 여인을 사랑한 작가에서만 그 호기심이 멈춘다면 당신은 불행하달 수밖에 없다. 산책이란 자신이 살아온 생을 추억하는 것이라던 그의 ‘산책론’은 지금 이 시대에 더 빛나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 메이지시대에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리는 가운데 차라리 군국주의를 등지고 터덜터덜 ... 나가이 가후가 걸었던 백년 전 도쿄에서 오늘날 서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수많은 일본작가가 사랑한 작가, 당대 최고의 문학가 나가이 가후의 도쿄산책기다. 탐미주의 작가로 알려진 나가이 가후를 단지 화류계의 여인을 사랑한 작가에서만 그 호기심이 멈춘다면 당신은 불행하달 수밖에 없다. 산책이란 자신이 살아온 생을 추억하는 것이라던 그의 ‘산책론’은 지금 이 시대에 더 빛나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 메이지시대에 태어난 나가이 가후는, 일본이 제국주의로 치달리는 가운데 차라리 군국주의를 등지고 터덜터덜 산책이나 하련다고 결심한다. 게다를 신고 도쿄 구석구석을 어슬렁어슬렁 둘러보며 가후가 즐긴 산책 코스는 결코 명소가 아니다. 근대화라는 기치아래 에도의 흔적을 무참히 지우는 작업이 한창이던 도쿄에 남은 나무와 잡초와 물과 석양과 산 그리고 가난한 서민의 삶이 펼쳐지는 골목이다. 그러면서 산책자 가후는 조국, 일본을 염려한다. 애국은 고향의 미를 영원히 보호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조용히 건넨다. “어제의 꽃도 오늘은 꿈이 되는 덧없는 세상의 유물을 비록 서투른 글월로나마 남기고자 하니, 부디 훗날 두런두런 나눌 이야깃거리라도 될 수 있기를.” 이 책은 1부에 1914년부터 이듬해 6월까지 문예잡지 『미타분가쿠』에 연재한 『히요리게다』를, 2부에 1920~1930대 발표한 대표 산책 수필 3편을, 3부에 가후가 즐긴 산책로 지도와 일본 작가의 해설을 실었다. 도쿄여행 가이드북은 많으나 작가 나가이 가후만의 독특한 철학이 담긴 도쿄 산책 지도는 이제껏 없었다. 가후를 따라 걸어보자. 고즈넉한 골목길, 빨간 턱받침을 한 돌부처가 건네는 이야기, 졸졸졸 흐르는 도랑에서 도쿄가 품어온 삶을 만끽해보자. ▶ 산책 문학의 거장, 가후 가후는 도쿄의 마을을 즐겨 걸었다. 태어난 고이시카와를 비롯한 야마노테(고지대 마을) 지역뿐만 아니라 스미다 강가 시타마치(저지대 서민마을), 강 동쪽인 무코지마, 혼조나 후카가와까지 발길이 닿았다. 도쿄의 끝자락 아라카와 방수로도 찾아 둘러봤다. 그의 산책 범위는 도쿄 마을 걷기가 유행인 오늘날 못지않게 넓다. 도쿄 마을을 그만큼 산책한 문학자는 이제껏 없다. 가후가 존경한 모리 오가이도 산책을 즐겼지만 집 주변 마을들에 그쳤다. 그에 비해 가후는 박쥐우산을 지팡이 삼아 걷거나 때론 전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쿄 전 지역을 누비며 손수 지도를 그리고 글을 남겼다. 산책이라기 보단 마을 관찰 여행에 가까웠다. 그를 두고 ‘산책 문학의 거장’이라 칭하고, 도쿄인들이 여전히 ‘가후산책’을 즐기는 이유다. ▶ 근대 도시 도쿄를 향한 외침 “오늘날에 이르러 침묵은 죽음을 맞이했다.” 옆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질린 나머지 집을 뛰쳐나가며 가후가 던진 말이다. 가후가 『히요리게다』를 쓰기 시작한 것은, 미국과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다이쇼(1910년대) 초였다. 그즈음 도쿄는 메이지유신 이후 급격한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어 차례차례 옛것, 헌것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것을 들여놓고 있었다. 어제 본 작은 골목은 신작로로, 전통 건물은 현대 건물로 바뀌기 일쑤였다. 그 모습에 가후는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과연 도시 도쿄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걷고 또 걸으며 문장을 완성했다. 적어도 문학자 가운데 한 명은 ‘있어야 할 도쿄 모습’, ‘지금 좋은 도쿄 모습’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날카로운 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회화적 표현이 돋보이는 그의 수필이 그저 산책 수필이나 도쿄 안내서에서 끝나지 않는 것은, 그 바탕에 근대화 물결에 휘둘리는 서민의 우수에 찬 삶이 밀레의 그림을 보듯 묘사되어 있어서다. ‘현대 일본의 개화’라는 강연에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일본의 자세에 있어 외발(外發)적 개화에 따르지 않는 내발(內發)적 개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표면적인 개화일 뿐, 알맹이는 안중에 없다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산책이나 하자고? 그래, 나는 자유인이니까. ▶ 가후는 단순한 에도학자도, 서양학자도 아니다. 자유인이다. “나는 그저 목적 없이 느릿느릿 걸으며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겠다. 집에 앉아 집사람 히스테리 부리는 얼굴을 보며 세상만사 덧없음을 느끼고, 신문사 잡지사 기자들 습격을 받아 모처럼 청소해둔 화로를 꽁초의 섬으로 만드느니, 차라리 여유 있을 때 집을 나서 산책이나 하는 것이 낫다. 걷자, 걸어보자.” 가후는 1905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일하고 공부할 기회를 갖는다. 귀국 후 모리 오가이의 추천으로 게이오 대학 문학부에서 프랑스문학을 가르치며 보들레르 등 프랑스 근대 시인의 시집을 번역했다. 그렇다고 가후를 서양학자라고 말할 순 없다. 또 에도를 그리워하며 에도 정서를 담은 작품을 많이 썼다고 해서 에도학자라고도 말할 순 없다. 가후가 진정 원한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삶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어슬렁어슬렁 걷기에 나선다. 그리고 쓸모없는 것을 찾아 쓴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만의 방식대로 호소한다. 산책은 단독 행위이지 않은가. 혼자서, 오롯이 나홀로 시간을 보내며 고독을 즐길 수 있다. 가후에게 있어 산책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누리는 고독한 문학적 행위나 다름없었다. ▶ 가후의 산책 길동무, 박쥐우산과 에도지도 “남달리 키가 큰데도 나는 항상 히요리게다를 신고 박쥐우산을 들고 걷는다.” 미국과 프랑스 유학생활의 영향이었을까? 가후의 평소 옷차림은 박쥐우산을 든 양복 차림이다. 그러나 산책을 나설 때면 일본 땅에 맞는 ‘히요리게다’를 신고 당시 도쿄지도가 아닌 옛 에도지도를 품에 넣었다. 히요리게다는 맑은 날 신는 게다인데 갈아 끼우는 굽이 다소 낮은 것이 특징이다. 우에노와 같이 벚꽃이 피는 곳에는 벚꽃을, 야나기하라처럼 버드나무가 있는 곳에는 버드나무 실가지를 그려 넣은 에도지도는 다소 부정확하지만 신식 도쿄지도보다 훨씬 직감적이다. 가후는 별난 모양새답게 당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도쿄의 틈새와 수수한 생명을 기록한 최초의 작가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도쿄가 도쿄로 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필요했으리라. ▶ 군국주의 조국을 비판하는 작가, 가후 가후를 '에도 문화에 탐닉한 반시대적 문명비평가‘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가후가 누구보다도 시대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음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게이오 대학 통근 길에 천황을 암살하려던 대역 사건의 죄인 호송차를 보면서 작가로서의 무능함에 괴로워한다. 드레퓌스 사건 때의 에밀 졸라가 떠올라서다. 가후에게는 『단장정일승?腸亭日?』이라는 일기가 있다. 쇼와 11년(1936) 4월 13일자에 “오사카 어느 부두의 아동보관소에서 일본인 아이가 물건을 훔쳤다고 조선인 아이를 묶어 거꾸로 달고 때린 후 이불에 싸서, 그 위에서 모두 밟아 죽인 기사가 있다. 아이는 열 살도 되지 않았다. 무섭다, 무섭다, 아아 무서울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가후는 아이들의 의식 속에 조선인이라면 죽여도 좋다는 조선인 멸시관이 깊이 뿌리박힌 현실이 무섭다고 느낀 것이다. “일본군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인의와 자애의 마음을 저버린 행동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행동은 머지않아 일본 국내 각 개인의 성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터다. 암묵적으로 강도를 좋은 것이라 가르치는 것과 같다.”라는 기록도 있다. 또 가후는 말년에 문화훈장을 받고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는데,

저자 소개

 永井荷風 
1879년 12월 3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나가이 소키치. 어린 시절부터 라쿠고와 가부키를 접했으며 한시와 일본화, 퉁소를 배웠다. 1894년부터 병으로 일 년 가까이 요양하는 동안 전기소설(傳奇小說)과 에도 패사소설 등을 읽었는데, 이때 읽은 작품들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에 매료되어 『야심』 『지옥의 꽃』 등을 썼고,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을 번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일하다가, 동경하던 파리로 가서 오페라와 연극을 관람하면서 서양 음악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1908년 일본에 돌아와 『아메리카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 『환락』 등 여러 작품을 출간했으나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연이어 발매금지를 당했다. <도쿄 아사히 신문>에 『냉소』를 연재하고 『후카가와의 노래』 「스미다 강」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1910년 대역 사건을 보며 문학가로서 무력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낀 후 에도의 풍속을 주로 다루는 소설과 수필 창작에 전념했고, 긴자의 카페에 출입하면서부터는 여급과 사창가를 다루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2년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54년에는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1959년 3월 병으로 쓰러진 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4월 30일에 사망했다. 

역자 소개

경희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 문학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 전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실격』,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 다케히사 유메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뒷골목으로 가자, 사잇길을 걷자. 히요리게다를 딸각이며 내키는 대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으레 사당이 나온다. 사당은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정부의 비호를 받은 적이 없다.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두면 자칫 사라지기 십상인데도 사당은 오늘날 도쿄 시내에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사당을 좋아한다. 뒷골목 풍경에 멋을 더해주는 사당은 다소 거창하게 말해 단순한 동상銅像보다 심미적 가치가 훨씬 뛰어나다. 현대 교육이 아무리 일본인을 새롭고 교활하게 만들려 노력해도 일부 우매한 백성의 마음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길가 사당에 모셔진 지장보살에게 애타는 마음으로 소원을 빌며 목에 턱받이를 걸어드리는 사람 중에는 딸을 게이샤로 파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의적이 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계나 복권으로 요행만 바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신문에 투고해 앙갚음을 꾀하거나 정의니 도리니 하는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고 남을 못살게 구는 문명의 무기는 사용할 줄 모른다.
- 사당 p. 25 


요즘 일부 정치가나 신문기자는 각자 몸담은 당파 세력을 넓히고자 뒷골목에까지 인권문제나 복음을 서둘러 강요하는 모습이다. 이런 판국이니 몇 년 뒤에는 골목길 뒤 공용 수도꼭지 근처에서 법경 욀 때 들려오는 북소리나 백만 번 염불 외는 소리가 깡그리 사라지고, 인권문제와 노동문제를 외치는 떠들썩한 연설만 들려오리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완전히 문명화되지 않은 뒷골목 공터에는 가끔씩 굿을 하는 무녀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기요모토도 들린다. 백중날 등롱이나 조상의 혼백을 영접하려 피운 불에서 나는 연기도 보인다. 에도의 전제정치시대에서 물려받은 덧없고 쓸쓸한 체념의 정신수양은 차차 신시대 교육으로 인해 소멸되었다. 공연히 각성과 반항의 새 공기에 도취되다가 결국은 진짜 비참한 하층사회 생활로 접어드는 게 아닐까. 정치가와 신문기자는 자기 욕심을 충분히 채우게 되겠지. 약자에게 이익이 되는 시대가 언제 있기는 했는가. 약자가 스스로의 약함을 잊고 가볍고 경솔한 시대의 외침에 현혹되는 것이야말로 옆에서 보기에 애처로운 일이다.
- 절 p.45

 


개나 고양이가 무너진 담장이나 벽 사이를 찾아내 자연스레 종족끼리 통로를 만드는 것처럼 큰길가에 집을 세우지 못한 서민은 큰길과 큰길 사이에 그들이 살기 적당한 골목을 직접 만들었다. 행정기관에 의해 공공연하게 다루어지지도 않고, 도시 체면이며 외관, 품격과도 상관없는 별천지다. 귀인의 마차나 부호의 자동차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 낮잠의 단꿈에서 깰 염려는 없되, 여름날 저녁에 격자문 밖에서 옷을 벗은 채 시원한 바람을 맞을 자유는 있다. 겨울밤에는 고타쓰에 들어가 옆집 샤미센 음악을 듣는 재미도 있다. 신문을 사지 않아도 세간 소문은 수다쟁이 아낙을 통해 자세히 전해 들으며, 천식 앓는 노인의 기침은 크게 의지 되지는 않더라도 밤새 도둑을 쫓는 역할을 한다.
- 골목 p. 73 

 


당대의 현학 모리 오가이 선생의 거처는 이 길 끝, 단고자카 꼭대기 즈음에 있다. 이층 난간에서 바라보면 거리의 지붕 너머로 바다가 보이기도 하는 까닭에 선생은 이 누각을 ‘간초로観潮楼’라 이름 지었다 들었다. 단고자카의 옛 이름은 시오미자카(바다가 보이는 언덕)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 가끔씩 나는 간초로에 들러 가까이서 선생을 뵐 영예를 얻곤 했다. 아쉽게도 주로 밤이었던 터라 이제껏 바다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잊히지 않을 만큼 음색이 깊은 우에노 종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한낮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초가을 저녁 무렵이었다. 선생은 아마 식사중인 모양이라, 안으로 안내 받은 나는 한동안 혼자 간초로 위에 있었다. 그때였다. 한결 강렬하게 풍기는 박달목서 향기와 더불어 우에노 종소리가 늦더위를 떨쳐내는 시원한 저녁 바람과 함께 흘러들어, 활짝 열린 간초로 위에서 홀로 주인을 기다리는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센다기 벼랑 위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시내는,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에 휩싸여 안개 가득한 바닥에 셀 수 없는 등불이 반짝였고, 우에노 야나카 숲 위로 희미한 황혼 불빛이 구름인 듯 꿈처럼 남아 있었다.
- 벼랑 p. 97 

 


요즘 사람들의 취미는 대체로 히비야 공원에 전기등 비춘 고목을 보며 “예쁘다, 예뻐!” 하고 소리치는 것이지 싶다. 맑고 시원한 밤에 뜬 달빛을 칭찬하고,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매화꽃을 사랑하는, 고유한 풍토의 자연미를 경애하는 풍아風雅한 습관은 완전히 사라졌다. 도쿄에 석양이 비치는지 안 비치는지, 후지 산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에 집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만약 내가 문학자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면, 틀림없이 문단 전체가 날 아니꼬운 선생 대하듯 엄격하게 배척하리라.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밀라노는 알프스 산맥이 있기에 한층 더 아름답고, 나폴리는 베수비오 화산 연기로 인해 여행자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지 않는가. 도쿄의 도쿄다움은 후지 산을 조망하는 데 있다. 쓸데없이 의원 선거로 분주하다 해서 그걸 국민의 의무라 할 순 없다. 우리가 의미하는 애국은 고향의 미를 영원히 보호하고, 국어를 순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큰 의무라 하겠다.
- 석양 그리고 후지 산 풍경 p. 117 

 

 

목차

목차
히요리게다
서문 9
히요리게다 11
사당 24
나무 27
지도 36
절 42
물 그리고 나룻배 53
골목 69
공터 75
벼랑 93
언덕 106
석양 그리고 후지 산 풍경 113
그 밖의 산책 수필
우에노 122
백화원 139
후카가와 산보 146
부록
『히요리게다』 해설 162
도쿄의 변천 : 에도부터 헤이세이까지 170
주요 산책 지도 178
연보 : 나가이 가후 생애 및 산책로 192
역자 후기 : 도시 서울 애상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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