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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동쪽의 기담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124

시리즈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60]

나가이 가후 저 | 정병호 역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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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26286 / 216쪽 / 295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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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永井荷風 
1879년 12월 3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나가이 소키치. 어린 시절부터 라쿠고와 가부키를 접했으며 한시와 일본화, 퉁소를 배웠다. 1894년부터 병으로 일 년 가까이 요양하는 동안 전기소설(傳奇小說)과 에도 패사소설 등을 읽었는데, 이때 읽은 작품들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에 매료되어 『야심』 『지옥의 꽃』 등을 썼고, 에밀 졸라의 『인간 짐승』을 번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일하다가, 동경하던 파리로 가서 오페라와 연극을 관람하면서 서양 음악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1908년 일본에 돌아와 『아메리카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 『환락』 등 여러 작품을 출간했으나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연이어 발매금지를 당했다. <도쿄 아사히 신문>에 『냉소』를 연재하고 『후카가와의 노래』 「스미다 강」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1910년 대역 사건을 보며 문학가로서 무력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낀 후 에도의 풍속을 주로 다루는 소설과 수필 창작에 전념했고, 긴자의 카페에 출입하면서부터는 여급과 사창가를 다루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52년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54년에는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1959년 3월 병으로 쓰러진 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4월 30일에 사망했다. 

역자 소개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일본근현대문학 전공) 
최근에는 주로 ‘식민지 일본어 문학’과 ‘한일 재난문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재난문학 관련으로 논문 「메이지(明治)시대의 자연재해와 의연(義捐)행위로서의 재난문학」(『비교일본학』, 2018. 6), 공역서 『간토(關東)대지진과 작가들의 심상풍경』(역락, 2017. 8), 공저 『조선의 미를 찾다 ―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아연출판부, 2018)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이것도 인연인데 셈이나 해주세요.” 여자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개비를 내민다.
이 동네 놀이 방식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자에게 물었다.
“50전이지, 찻값은?”
“네, 그건 정해진 규칙대로지요.” 여자는 웃으면서 손바닥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쭉 내밀고 있다.
“그럼 한 시간으로 하지.”
“죄송해요, 정말로.”
“그 대신.” 나는 여자의 내민 손을 끌어당겨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몰라요.” 여자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흘겨보며 “바보”라고 하더니 내 어깨를 때렸다.
_ 31쪽 「강 동쪽의 기담」 중

창밖은 대중이다. 즉 세간世間이다. 집안은 한 개인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특별히 대립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무엇 때문일까? 오유키는 아직 젊다. 아직 세상의 일반적인 감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유키는 창가에 앉아 있을 때는 자신의 몸을 천한 것으로 여기고 마음속에 따로 인격을 감춰둔다. 창밖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 걸음을 이 골목에 들여놓으면서부터 가면을 벗고 긍지를 버리기 때문이다.
_ 77쪽 「강 동쪽의 기담」 중

조키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과 비애를 느꼈다. 달콤하고 부드럽다가도 순식간에 냉담하고 대범해지는 저 운명의 손에 농락당하고 싶은, 누를 길 없는 공상에 사로잡혔다. 공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만큼, 봄의 푸른 하늘이 이전보다 더 푸르고 넓게 보였다.
_ 171~172쪽 「스미다 강」 중

1911년 게이오기주쿠 대학에 통근할 무렵, 나는 학교에 가는 길에 때마침 죄수들을 실은 마차가 대여섯 대나 연달아 요쓰야 거리에서 히비야 재판소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여러 세상 사건을 보고 들었지만, 이때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문학가인 이상 이런 사상 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되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정의를 외치고 국외로 망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세상의 다른 문학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문학가라는 사실에 스스로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_ 185쪽 「불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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