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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이 나눈 세기의 대화

달라이 라마, 스테판 에셀 저 | 임희근 역 | 돌베개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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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5037 / 112쪽 130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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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지금 왜 ‘정신’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오늘날, 30여 년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는 세계 경제위기 앞에 서서히 잦아들고 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슬람-아랍권 지역에서는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의 물결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상당수의 나라에서 최고지도자를 새로 선출하는 중대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와 경제 부문의 민주화를 동시에 부르짖는 이런 현실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에 빨간불이 들어와 새로운 신호등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질과 정신 양축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이 그동안 지나치게 물질적 토대 쪽으로만 기울어지다 보니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 것이다.
이에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물질의 진보를 추구해온 서양과 정신의 보고(寶庫)인 동양을 대표하는 두 인물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가 서로 만나 21세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는 ‘정신의 진보’라는 점에 완벽히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

▶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 그 극적인 세기의 만남

2010년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래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3,500만 부 이상 팔리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분노하라』(한국어판 2011, 돌베개)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올해 96세(1917년생)로 지팡이도 없이 다니는 정정한 노인이다. 스테판 에셀 앞에서는 자신이 새파란 젊은이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텐진 가쵸)는 에셀보다 열여덟 살 연하인 1935년생으로, 이 두 인물은 큰 나이차 외에도 서양인과 동양인, 세속인과 종교인, 기혼자와 독신자 등등의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과 인품에 매료되어 이 대담을 계기로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함께 만나기 쉽지 않은 이들이 노구를 이끌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인권 수호에 헌신해온 스테판 에셀의 비폭력적 저항정신이 중국의 모진 핍박과 탄압에 비폭력적 투쟁방법을 고수해온 달라이 라마의 정신과 상통하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인 인권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전 세계가 진정한 평화의 시대, 상호의존과 연민을 바탕으로 한 ‘큰 우리’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의 진보’를 추구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에 뜨겁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대담은 2011년 8월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행복의 기술’을 주제로 열린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스테판 에셀이 참석함으로써 첫 윤곽이 그려졌고, 4개월 후인 2011년 12월 프라하에서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주도로 열린 동남아시아 인권에 관한 토론회 ‘포럼 2000’을 통해 본격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1박 2일에 걸친 이 대담은 1948년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날부터 지금까지 과연 새로운 보편적 가치들이 도출되었는가, ‘정신의 진보’가 세계인권선언 제27조에 명시된 ‘과학의 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비롯해 마음의 과학, 티베트의 분신 사태, 현대 교육의 문제, 비폭력의 가치, 좀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유엔의 개혁문제 등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 두 거목이 말하는 ‘정신의 진보’란?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가 힘주어 강조하는 ‘정신의 진보’란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고 종교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몸과 정신이라고 말할 때의 그 ‘정신’을 이제는 과학/물질의 진보 못지않게 현대 교육체계 속에서 적극 계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보다 차원 높은 민주주의(‘정신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뿐 아니라 자연 전체에 대해서도 사랑, 공감, 연민, 비폭력, 관용 같은 인간적 감수성을 키우고 발휘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국 정부 수반이 아니라 오직 인류의 안녕에만 관심을 두는 신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현자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대담에서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정신’은 그동안 서양을 굳게 떠받쳐온 ‘이성’의 맥락이 아니라 고대 인도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동양 특유의 ‘마음’을 가리킨다. 동양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인 ‘정신수행’, ‘마음공부’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스테판 에셀 또한 이 부분에 적극 공감하며 지대한 관심을 표한다. 이제 ‘정신’이란 말은 동서양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말로 그 외연이 확대된 것이다.
‘진보’라는 단어 또한 단순히 물질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한 몸, 내 가족, 내 나라만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모두가 지구에 사는 ‘한 형제’라는 큰 틀에서 더 바람직하고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유독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좌·우파라는 단어를 ‘진보·보수’라는 말이 대체해온 지 오래된 데다 근래 통합진보당 사태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보’라는 단어가 갖는 진정한 함의가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다시금 ‘진보’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고 그 참뜻을 살려나가야 할 때다.

▶ 지상에 굳건히 뿌리박은 두 현자의 이야기

이 대담의 의의는 동서양 두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처음으로 ‘정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한 내용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달라이 라마가 보여준 ‘세속 윤리’의 정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이 대담이 세계 시민들에게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임을 입증한다. 달라이 라마는 세속 윤리만이 보편적일 수 있으며, 동서양 두 세계의 많은 대표자들이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으려면 이러한 세속 윤리가 먼저 정립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이에 화답하듯 스테판 에셀은 ‘정신적 민주주의’에 대해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는 가까운 정신과학자들과 함께 이루어낸 ‘정신의 지도’를 사용하자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이 대담의 가장 큰 매력은 이 시대의 진정한 두 어른이 그들의 깊은 성찰을 더없이 두터운 체험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점령 이후 살해당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감금되어 죽거나 굶어 죽은 티베트인들이 100만 명 이상이고 1959년 3월부터 1960년까지 라싸 지역에서만 8만 7,000명이 사망한 끔찍한 일을 겪는 상황에서도 항상 비폭력의 길을 택해왔고 차츰 그 열매를 맺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티베트인들이 중국 정부 지도자들보다 훨씬 강한 정신을 지닌 결과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런 강한 정신은 티베트의 문화를 말살되지 않게 지키려는 노력으로 나타나 전 세계의 의식 있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테판 에셀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붙잡혀 죽음의 문턱 바로 직전까지 갔던 극한 상황에서도 적에 대해 전혀 증오심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평소 그가 강한 정신과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지상에 굳건히 뿌리박은 두 현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과연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가 자명해진다. 시대를 바라보는 두 인물의 깊은 통찰과 고뇌, 사상은 정치적 격변기에 놓인 한국 사회에도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더불어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거목을 차례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번역자의 상세한 후기를 통해 대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두 인물과의 만남에 관한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저자 소개

티베트 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그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2년 후인 1935년 7월 6일, 티베트 동북부 암도 탁체르의 한 가난한 농가 외양간 짚더미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의 이름을 라모 된둡으로 지었는데, 이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2세 때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인정받아, 4세 때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포탈라 궁에 들어갔다. 라모 된둡은 ‘성스러운 분, 영광의 수호자, 진리를 설하는 분, 자비의 화신, 믿음을 지켜 주는 분,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제춘 잠펠 나왕 롭상 예셰 텐진 갸초’라는 새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나중에 그는 ‘지혜의 바다’라는 뜻의 ‘텐진 갸초’란 이름을 즐겨 사용하게 된다.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당시 너무 어렸던 그는 실제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15세가 되어 실질적으로 티베트를 통치하게 될 때까지 고승들에 의해 섭정이 이루어졌다. 장난기 많고 낙천적 소년이었던 그는 티베트 지도자로서 철저히 교육받았다. 또한 티베트를 방문한 몇몇의 서양인을 만나 풍부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티베트 밖의 세상에 대한 식견을 넓혔고 영어, 수학, 세계지리 등에 관심을 가지고 홀로 공부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나는 가장 불행한 달라이 라마였다.”는 그의 말처럼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부터 지방에서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민중 봉기가 계속되었고 1959년 3월 10일 중국군이 달라이 라마를 납치해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민중 집회는 중국이 티베트를 단념하고 완전한 독립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대중 집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1959년 3월 10일 하루 동안 시위에 참석한 1만 5천 명의 티베트인들이 사살되었다. 당시 티베트 인들의 민중 봉기를 진압한 과정에서 중국은 6천여 개의 불교 사원을 파괴했고 12만 명의 티베트 인을 학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인의 생명을 지키고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속하며 국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도로 망명할 결심을 하게 된다.
인도로 망명한 후 네루 수상의 지원을 받아 인도 동북부 지역인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 정부를 수립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문제에 대해 국제연합에 도움을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큰 효과는 없었지만 국제연합 총회는 1959년, 1961년, 1965년에 걸쳐 중국 정부로 하여금 티베트의 인권과 자치권을 존중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했다. 달라이 라마는 어떤 상황에서든 철저히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며 인류애에 호소해 왔다. 많은 티베트 인들이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고 투쟁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중국 정부에 완전한 독립이 아닌 자치권을 넘겨 달라는 보다 온건한 요구를 한다.
평생을 고난 속에서 보냈지만 늘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달라이 라마의 삶은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수많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마침내 1989년 10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실질적으로 세계인의 정신적 스승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같은 달라이 라마의 정신세계에 깊은 감명을 받은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열렬한 팬임을 공언하며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쫓아다닌다. 리처드 기어를 비롯해 스티븐 시걸, 줄리아 로버츠, 해리슨 포드, 샤론 스톤, 우마 서먼 등의 영화배우와 마틴 스콜세지, 올리버 스톤, 조지 루카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의 영화감독이 그들이다. 달라이 라마의 인기는 1998년 6월 중국을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에게 “달라이 라마는 솔직한 사람이던데 한번 만나 보라.”고 조언했다는 소식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2011년 3월 10일, 티베트 봉기(1959년) 기념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 지도자로서 티베트를 위한 활동은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달라이 라마가 사퇴 의사를 밝히며 후계자 선출을 선언한 것은, 중국이 후계 구도를 이용해 티베트를 흔들려는 계책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달라이 라마의 책은 대담집, 강연록, 잠언집 등의 형태로 세계 각국에 출간되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불교계를 중심으로 그의 방문을 추진해 왔으나 중국과의 외교 문제를 이유로 정부에서 불허하고 있다.

 

스테판 에셀은 94세의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사회운동가. 출간 7개월 만에 2백만 부를 돌파한 《분노하라》는 전 유럽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7세에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다. 193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선배 사르트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입대한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1944년 파리에 밀입국해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돕던 중 체포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으나 극적으로 탈출한다. 전쟁이 끝난 후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한다.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 문제 등에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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