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권경수. 1937년 일제 강점기 일본 도쿄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재봉기 상회 점원, 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던 그는 5년 뒤인 1957년 경상북도 안동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왔다. 그때 나이가 18세였다. 이후 22세 때에 지병인 결핵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1966년에 다시 정착하여 1982년까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동화 작가로서 많은 인세를 받아 왔지만, 1983년 이후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강아지와 둘이서 사는 검소한 삶을 실천하며 살다가 2007년 5월 17일 지병이 악화되어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거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2009년 3월 그의 유산과 인세를 기금으로 하여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 등을 돕기 위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기독교 신자인 권정생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그리고 무고하게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뤄왔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동화집 《강아지똥》,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등과 소년 소설 《몽실언니》, 《점득이네》, 《한티재 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등이 있다. 그리고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산문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등이 있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제5회 ‘홍익대학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KBS 무대부 그래픽 담당, 동양방송 애니메이션부 팀장, 경향신문 주간부 화보 담당기자를 거쳐 제일기획 제작국장 시절 <오란‧씨>, <맥스웰 커피>, <고래밥> 등 300여 편의 CF를 연출했으며, 독립영화 <산이 높아 못 떠나요>로 제1회 ‘MBC 영상문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 <세계일보> 연재소설의 삽화와 <시와 시학>, <님>, <삶과 꿈>, <시조시학>, <SEE> 등의 여러 잡지의 표지 그림, 시화집 《선물》,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시리즈, 등 우리나라 근현대 시인 100명의 모습을 두 차례나 그렸습니다. 《우리 독도에서 온 편지》, 《평화의 소녀상》, 《풀꽃》, 《할아버지 방패》 등의 책을 직접 쓰고 그렸고, 《아큐정전》, 《압록강은 흐른다》, 《슬퍼하는 나무》, 《그해 여름의 복수》 등 100여 편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은 <월간 일러스트>에 ‘Y문영의 그림 속 책 읽기’와 ‘똥Q정전’을 병행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