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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길 없는 대지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고미숙, 길진숙, 문성환 외 저 | 북드라망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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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851548 / 360쪽 150 x 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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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저자 6인 인터뷰 1. 루쉰이 생애를 보낸 장소에 직접 찾아가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루쉰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고미숙) 2015년 가을쯤인가, 『홍루몽』 로드세미나가 있어서 세미나 멤버들과 『홍루몽』과 관련된 코스를 여행하다가 상하이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루쉰 무덤에 가게 됐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무덤 앞에 서는 순간, 느낌이 아주 이상했어요. 아, 루쉰의 몸이 여기 누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크게 감응을 했던 거... 『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저자 6인 인터뷰 1. 루쉰이 생애를 보낸 장소에 직접 찾아가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루쉰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고미숙) 2015년 가을쯤인가, 『홍루몽』 로드세미나가 있어서 세미나 멤버들과 『홍루몽』과 관련된 코스를 여행하다가 상하이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루쉰 무덤에 가게 됐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무덤 앞에 서는 순간, 느낌이 아주 이상했어요. 아, 루쉰의 몸이 여기 누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크게 감응을 했던 거 같아요. 이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루쉰 평전’을 그가 간 자취를 따라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섬광… 정도는 아니고, ‘쓰윽’ 하고 떠올랐는데,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예요. 루쉰이 평생 이동했던 장소들(사오싱에서 난징, 도쿄와 센다이, 항저우, 베이징, 샤먼과 광저우, 그리고 상하이)이 머리에 주욱 그려지면서 그와 동시에 이 여행을 공동체 멤버들과 같이 하면 진짜 재밌겠다는 구체적인 컨셉까지 다 떠올랐죠.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서 북드라망 대표한테 먼저 알렸더니, 와우, 반응이 어찌나 뜨겁던지! 그때 확신을 했죠. “이건 꼭 해야 해”라고. 그 다음에 남산강학원, 문탁네트워크, 규문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속한 공동체에 다 알렸는데 역시나 모두가 꼭 참여하고 싶다는 반응이었죠(평전 자체보다는 여행에 더 끌린 것 같긴 하지만^^). 지금까지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왔는데, 이런 호응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다른 제안들에는 “그게 ?미? 그걸 꼭 해야 돼?”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흑! 근데 약간의 삑사리가 있긴 했어요. 문탁네트워크의 문탁(이희경)의 경우, 열렬히 맞장구를 쳐놓고는 얼마 있다가 다른 일정과 겹쳐서 도저히 참여할 수 없다며 주저리주저리 긴 문자를 보내서 저를 열받게(?) 하더니, 중간에 은근슬쩍 여행에 합류하면서 결국 이 책의 가장 ‘빛나는’ 필자가 되었답니다. 다 마치고 나서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고 참회성 고백을 했죠. 흥! 2. 글로 루쉰을 만났을 때와 루쉰이 살았고 공부했고 글을 썼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만났을 때 차이가 있으셨나요?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고미숙) 당연히 차이가 많죠. 글로 읽으면 개념과 의미에 집착하게 되지만, 일단 그 장소에 가서 그의 자취를 되짚어 보면 그의 인생이건 그가 남긴 텍스트건 아주 생동감 있게 다가와요. 예를 들면 루쉰을 책으로 읽을 땐 온통 암흑과 적막, 항일과 혁명, 이런 단어들로 가득 차 보이지만, 막상 살았던 집에 가보면 응접실도 있고, 침실도 아늑하게 꾸며져 있고, 또 바로 옆집에 친구들도 살고 있었고… 이런 장면을 보면, 아,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았구나! 늘 전투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죠. 텍스트를 아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이죠. 거꾸로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런 ‘강도 높은’ 텍스트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루쉰과 우리 사이에 강렬한 공감의 영역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일 좋은 건 공항에서, 기차 안에서, 또 산과 바다를 보면서, 계속 루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에요. 말하자면, 우리의 몸이 움직이니까 루쉰도 그의 텍스트도 같이 움직이는 거죠. 그런 식의 마주침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또 사오싱이건 상하이건 일단 그 장소에 가보면 루쉰이 살았던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 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역사가 이토록 무상하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죠. 그러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엄습합니다. 혁명과 구도에 대하여.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이희경) 저 같은 경우는 무상함 혹은 어긋남을 느꼈습니다. 루쉰이 살던 곳과 머물렀던 곳 대부분이 거대한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곳에서 루쉰을 실감하는 것이 저에게는 쉽지 않았어요. 이런 느낌은 지금은 베이징 루쉰중학교로 바뀐 베이징여자사범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18 기념탑은 의연하고, 루쉰기념관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안내하러 일부러 출근하신 선생님의 수고가 감사했지만, 선생님이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루쉰이 제가 사랑하는 루쉰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한편 루쉰이 사오싱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와 몇 년간 머물렀던 숙소, 너무나 적막하여 고서를 모으거나 불경을 읽거나 옛 비문을 베끼던 ‘S회관(’사오싱회관)은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아니라 지금도 베이징 시민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요. 근데 그곳은 전통적인 주거구조인 사합원(四合院)이 아니라 빈 마당에 쪽방들을 억지로 증축하여(이렇게 변형된 사합원을 중국에서는 잡원雜院이라고 한다네요) 사람들을 빼곡하게 수납하고 있는 일종의 쪽방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루쉰은 어디에 있을까요? 박물관에? 기념관에? 아니면 쪽방촌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글로 만난 루쉰을 발로 만나러 가는 길은 어쩌면 도처에 있으나 실은 부재하는 루쉰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환한 대낮에 등불을 들고 돌아다녔던 디오게네스 같았달까요?!^^ (길진숙) 루쉰의 소설과 잡문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루쉰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은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게 상하이의 루쉰 공원에 가게 된 겁니다. 저는 그곳에 루쉰의 무덤이 있는 줄 몰랐는데 어쩌다 루쉰의 무덤과 그의 동상 앞에 발길이 닿았던 거예요, 아주 우연히. 그의 무덤에 묵념하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루쉰의 소설집 『외침』이 너무 강렬했던 터라, 역사 저 너머로 사라져 ‘침묵하는’ 루쉰이 실감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상하이에서 동상으로 마주한 루쉰은 너무나 차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인간 루쉰이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루쉰의 글에서는 늘상 빈틈없고 완벽한 혁명 작가의 모습만 봤던 것 같습니다. 사실 루쉰의 필치는 강인하고 예리해서 허투루 생각할 틈새를 주지 않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면서, 자기를 해부하고 중국을 해부하며, 조금의 비겁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루쉰의 글은 읽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게 되고, 어떨 때는 버겁기도 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루쉰의 책은 읽기 전, 심호흡을 하고 펼치게 돼요. 독사처럼 칭칭 감고서 자신의 비겁도 물어뜯고 중국 사회의 비겁도 물어뜯는 루쉰의 모습은… 무한 신뢰를 보내면서도 왠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스승님, 선지자 같다고 할까요? 루쉰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길 위에서 문득 루쉰을 위대한 전승자 보듯 너무 기념비적으로만 바라보는 저를 보았습니다. 살아 있는 루쉰이라면, 스승님 혹은 혁명가로 우러르는 저를 무척 싫어했을 겁니다. 기차를 타고 사오싱과 항저우와 난징과 베이징 등 루쉰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면서, 루쉰의 집과 일하던 곳을 걸으면서, 꼼꼼하고 치열하게 교정한 원고나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한 글씨를 보며 비로소 루쉰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절차탁마했던 긴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루쉰이 이동했던 그 여러 도주로를 땀 흘리며 좇다 보니, 글로 읽을 때는 소각된 그 긴 시간과 그 먼 공간들을 발끝으로 실감했던 것이지요. 예교와 식인의 굴레로부터의 탈주와 인간해방을 향한 싸움은 상상 이상으로 길고 지루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음을, 그 멀고 먼

저자 소개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에 속한 작은 광산촌에서 자랐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가난했지만 ‘공부복’은 많았던 셈이다. 다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이다. 지난 십여 년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고, 2011년 이후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http://gamidang.com)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감이당>의 모토는 몸·삶·글의 일치다. ‘아는 만큼 쓰고, 쓰는 만큼 사는’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삼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과 달인 삼종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동의보감 삼종세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그리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윤선도평전』 등이 있다.



열하일기 삼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전2권)


동의보감 삼종세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달인 삼종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그리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윤선도 평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1970년생. 글쓰고 강의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공부를 해서 뭘 할 수 있냐, 공부를 하면 뭐가 좋으냐고. 이제 알 것 같다. 공부는 뭘 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모든 것임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고 기쁨이다.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근대가 화두였다. 근대를 좀더 멀리서 조망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동서양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신천지를 만난 듯했다. 이 공부를 언제 다 하나 싶은 막막함과, 평생을 공부해도 지루하지 않겠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때부터가 내 공부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겠다. 천지가 공부할 것들로 가득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부할 게 없어서 지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앞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동서양 담론들을 횡단하면서 텍스트를 재독해하고, 개념과 사유를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래도 함께 공부하는 스승과 벗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저작으로는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재현이란 무엇인가』, 『느낀다는 것』이 있으며, 남산강학원 친구들과 함께 『고전 톡톡』과 『인물 톡톡』을 기획하고 썼다. 옮긴 책으로 『에드바르 뭉크』가 있다.

<남산강학원> 연구원. 연구실 이름은 문리스. <수유+너머>에서부터 선후배 동료들과 즐거운 공부를 해왔고, 앞으로도 질릴 때까진 계속할 예정. 문학 및 인문학 고전을 좋아함. 대학 및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문학 전공. 제도권 문학박사. ‘삶이 곧 앎’이었던 스승들을 존경하고, 투박하지만 당당하고 떳떳한 삶의 표정들에 금세 매혹됨. 학교에선 한국문학 시간강사로 연구실 및 바깥에선 인문학·고전연구자로 활동 중. 강학원 친구들과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등을 함께 지었다.

<남산강학원> 연구원. 한 번은 수학, 한 번은 윤리학을 전공했다. 2007년 <수유+너머>의 ‘대중지성’ 1기를 계기로 공부가 삶을 툭툭 건드리는 재미에 빠져서, 아예 공부에 눌러앉았다. 주로 보는 책은 과학과 윤리학에 관련된 것들이다.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삐끼 기질이 농후한 편이고, 세상과 공명하는 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상상력과 구체적인 실험들을 배우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이 있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남산강학원’에서 밥과 책과 글을 나누며,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연암, 붓다, 공자, 장자, 맹자, 사마천, 김부식, 일연, 푸코, 들뢰즈, 푸시킨, 고골, 도스토옙스키 등 멋진 스승들을 만나 이 고단하고 번뇌 가득한 사바세계를 즐겁게 헤쳐 나가고 있다.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를 썼고,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고전 톡톡』·『인물 톡톡』을 냈다. 함께 번역하고 엮은 책으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가 있으며, 『낭송 춘향전』, 『낭송 열하일기』, 『낭송 18세기 소품문』을 함께 풀어 읽었다.  
일명 문탁.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거쳐 지금 <문탁네트워크>까지 20년 넘게 인문학공동체에서 공부하고 있다. <수유+너머> 시절엔 한국근대젠더 연구를, <문탁네트워크>에 와서는 인류학과 선물의 공동체, 또 동양고전과 윤리적 주체 문제 등을 탐구했다. 최근에는 공동체와 영성, 공동체와 양생, 늙음과 죽음 등에 관심이 많다. 한마디로 잡식성 공부. 이를 통해 공부와 현장이 결합되길 꿈꾼다. 지금 구성하고 있는 현장은 <길드다>라는 청년인문학스타트업과 <인문약방>이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양생공동체이다. 풀어 엮은 책으로 『낭송 장자』, 함께 쓴 책으로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 『루쉰, 길 없는 대지』, 『신여성 ?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인물 톡톡』 등이 있다. 

머리말

▶지은이의 말
“이 책은 루쉰에 관한 평전이다. 근데, 좀 ‘색다른’ 평전이다. (…) 루쉰의 일생을 추적하되 좀 ‘찐’하게, 다이내믹하게 접근하는 길은 없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런 고민의 지점에서 출발했다.
산다는 건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을 점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시공의 점들을 선분으로 이으면 그 사람이 밟아 간 인생의 지도가 그려진다.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 본다는 것, 그가 거쳐간 장소에 잠시 머물러 본다는 것, 거기에서 그 시절 그가 창조한 작품과 사상, 그리고 그의 생활을 반추해 본다는 것, 나아가 그 지도 위에 오늘, 우리의 삶과 질문을 오버랩시킨다는 것. 이런 작업은… 글쎄다! 처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문 일인 건 틀림없다. 더구나, 그런 작업을 공동체의 오랜 ‘벗’들과 함께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상 최초라 말해도 좋다.” (고미숙)

“루쉰을 읽으며 나는 재차 확인했다. 내 절망은 세계와 타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내 기대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가 구축한 환상에 내가 깔린 셈이다. 루쉰의 텍스트는 내 우울함을 삼켰고, 내 헛된 기대마저 날려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가르친다. 인간은 인간에게 절망하지만, 그 인간이 바로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내게 루쉰은 그 자체로 영원한 ‘질문’이다. 미워하든 사랑하든,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가? 절망도 희망도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는가? 그런 것으로서의 혁명을, 너는 진심으로 원하는가? 내게 루쉰을 읽는다는 것은 이 질문을 쥐고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에 서는 것이다.” (채운)

“어쩌면 이 이름[루쉰魯迅]은 모든 모순형용을 현재화하는 하나의 상징기호일지도 모른다. 계몽자이자 피계몽자이고, 선각자이면서 함께 몰락해야 하는 대상인. 나이면서 너이고 네가 곧 나인. 성 안에서의 글쓰기=루쉰과 성 밖에서 들락거리던 관료=저우수런(周樹人)의 동선을 짚어보다가, 묘하게도 혼종+이질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던 루쉰을 알 것도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한여름 땡볕을 무릅쓰고 며칠간을 걷고 또 걸으면서 루쉰의 뒷자락을 쫓아다닌 결론치고는 좀 허무하지만, 최소한 글쓰기=루쉰은 그가 걸어다닌 길(道)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의 재확인.” (문성환)

“이 시절 루쉰은 혁명을 새롭게 사유했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제도나 체제의 혁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들이 이념에 대해서는 턱없이 거대하고 무모한 반면, 생활에 대해서는 턱없이 치졸하고 무력했다. 그래서 혁명가들이 놓칠 수 있는 ‘생활’과 ‘습속’의 힘을 강조했다. 매일 먹고 입고 살아야 하는 ‘생활’, 내 몸을 길들이고 있는 ‘습속’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루쉰은 자칫 혁명이라는 관념에 매달려 쉽게 기대하고 쉽게 좌절하는 이들에게 혁명은 현실 위에서 일어나는 끈질기고도 외로운 싸움임을 보여 주었다.” (길진숙)

“루쉰은 샤먼에서의 구차한 삶에 몸서리쳤다. 아무도 없는 휑한 학교 건물에 혼자 남아 강의안을 작성하며 자신을 소모해 가는 하루하루였다. (……) 편히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거의 없는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감이 그를 엄습했다. 루쉰은 이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는 지나온 자신의 삶들을 되짚어 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갔다. 이 글들이 실린 책의 제목대로, 그것은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일이었다. 그는 떨어져 시들어 가는 꽃들을 주우며, 자신이 흠모했던 니체의 말을 곱씹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살았다, 여기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앞으로도 살 것이다. 우리는 끈질기고 하룻밤 사이에 꺾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라고.” (신근영)

“아, 이 좁은 골목에서 루쉰과 그의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구나. 뭔가 벅찬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마침 그 골목에 나와 앉아 우리의 소란을 보고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자기 집을 보여 주겠다고 나서신다. 마치 한국말을 알아들으신 것처럼. 할머니를 따라, 수십 년 동안 살고 계신다는 그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난 여행 중 처음으로 약간 울컥했다. 그곳이 너무 좁아서, 루쉰이 이런 곳에서 살았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여전히 이런 곳에서 누군가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을 이어 가는구나 싶어서. 비로소 루쉰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희경)

책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문예비평가 리장즈는 루쉰의 사상을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한 바 있다. (……) 루쉰의 작품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루쉰이 주목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었다. 산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좌절하고 실패하고 절망하면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길이 없는 곳에서도 길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루쉰은 혁명에 좌절한 청년들에게 말한다. 너무 무거워지지 말라고,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선 자신의 몸을 돌보라고, 애인을 굶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루쉰을 만나러 가는 길, 후쿠시마, 그 길 위에서 메아리치던 구절. “인간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채운, 「3장_도쿄~센다이 시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중에서)

나는 전혀 복고주의자가 아니지만 루쉰을 읽을 때 종종 과거로 돌아간다. 아니 느닷없이 과거가 현재로 소환된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혁명문학논쟁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1980년대 20대의 내가, 1928년 마흔여덟의 루쉰에게 대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선배들에게 그랬다. 시국이 엄중한데 당신들은 뭘 하고 있느냐고 공격했고, 싸잡아 기회주의자라고 매도했고, 기어코 동아리에서 퇴출시켰다. 그때는 삶이 절대로 이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도 정치보다 무서운 것이 밥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었다. 그러니 루쉰에게 그만 좀 하라고, 젊은이들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한편 2016년 50대인 내가, 1928년 날 선 이론투쟁을 벌이고 있는 2,30대의 중국 젊은이들과 직접 맞서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피 역시 돈과 같아서 인색해서도 안 되지만 낭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혁명은 한 번에 ‘헤까닥’ 뒤엎는 게 아니라 어둡고 비좁고 답답한 참호 속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과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진다. 루쉰의 글자들 사이에서 싸우는 것은 루쉰과 청팡우 등만이 아니다. 나도 그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루쉰 읽기는 늘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공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경험. 1920년대, 30년대의 루쉰과 함께 여기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 (이희경, 「7장_광저우~상하이 시절 : 혁명은 어디에 있을까」 중에서)

1936년 10월 8일 오후. 루쉰은 상하이 청년회관에서 열린 ‘제2회 중화전국 목판화 이동전시회’를 참관했다. (……) 전시회장에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루쉰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그를 둘러쌌다. 전시장 한 귀퉁이에서 몇 명의 청년들과 차담이 시작되었다. 이 장면 역시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가 생전에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피골이 상접한 루쉰의 얼굴이 아니라 옆에 있는 청년의 미소다. 티없이 맑고 환하다. 루쉰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루쉰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 환한 생명의 미소. 생애 마지막 순간에 청년들에게 이런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고미숙, 「에필로그_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자의 죽음」 중에서)


목차

목차
머리말
지도와 함께 보는 루쉰 연대기
1부. 루쉰 온 더 로드
프롤로그. 도주의 달인 루쉰 (고미숙)
‘희망’은 창녀다! ┃역사는 ‘식인’, 민중은 ‘또라이’ ┃혁명, 지옥의 판타지 ┃먼지처럼 흩어지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 온 더 로드 ┃영원한 도망자, 루쉰
1장. 샤오싱~난징 시절 : 몰락과 도주 (고미숙)
고전과 첨단의 공존, 항저우 ┃루쉰과 기차 ┃루쉰과 마오쩌둥 ┃『아침 꽃 저녁에 줍다』와 『루쉰과 저우쭤런』 ┃몰락의 연대기 ┃『산해경』과 한의학 ┃『천연론』과 신세계 ┃에필로그 ― 뒷담화 하나
2장. 도쿄 시절 : 구경꾼으로 머물 것인가, 혁명적으로 살 것인가 (채운)
몰락하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습속의 저주 ― 변발이야기 ┃‘센다이’라는 입구 혹은 출구 ┃내 기꺼이 악마가 되겠노라 ┃그리고, 루쉰과 니체
3장. 도쿄~센다이 시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채운)
루쉰, 도쿄에서 보낸 한 철 ┃스승을 만난다는 것 : 센다이, 루쉰, 그리고 후지노 선생 ┃소세키의 ‘자기본위’ vs 루쉰의 ‘자기해부’ ┃다중(多重)의 근대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루쉰을 읽는다는 것
4장. 베이징 시절·1 : ‘루쉰’(魯迅)의 탄생 ― 위대한 몰락 혹은 계몽의 혁명 (문성환)
intro_북경, 연경, 베이징 ┃문학이란 ‘무엇’인가 ┃루쉰의 적막 ┃ 철방으로부터의 외침 ― 루쉰의 탄생 ┃위대한 몰락, 계몽의 혁명 ┃outro_길 위에서
5장. 베이징 시절·2 : ‘고독한 전사’의 끈질긴 싸움 (길진숙)
두 차례의 베이징 여행 ┃루쉰과 항저우의 뇌봉탑 ┃베이징, 적막한 전장┃동생과의 결별, 루쉰의 방황 ┃방황하는 지식인들 ┃무엇을 할 것인가? : 생존하라, 생계를 해결하라, 전진하라! ┃2016년 8월의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또는 루쉰중학교
6장. 베이징~샤먼 시절 : 아름답지 않은 삶을 쓰다 (신근영)
민국 이래 가장 어두운 날, 쓰다 ┃부드러운 칼을 든 요괴들 ┃잡문, 그리고 길 위의 전사 ┃‘호랑이꼬리’를 떠나다 ┃죽은 불이 깨어나다 ┃천당에서 삶으로
7장. 광저우~상하이 시절 : 혁명은 어디에 있을까 (이희경)
1926년, 지나가고 있는 중 ┃혁명이란 무엇인가?┃붉은 도시 광저우는 붉지 않다 ┃문화위초(文化圍剿) ― 혁명문학논쟁 ┃‘루쉰’이라는 어떤 삶 ┃나는 루쉰을 만났을까?
에필로그.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자의 죽음 (고미숙)
상하이, 루쉰 로드의 종점 ┃죽기 일 년 전(1935년) ― Back to the future! ┃ 에로스 ― 창조의 유희 ┃복수는 운명이다! ┃혁명 ―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겠다!” ┃죽기 열흘 전 ┃“나는 죽음을 열망한다!”
2부. 라이팅 온 더 로드
루쉰 저작 연대기
1. 계몽에 반反하는 계몽 : 루쉰의 『무덤』 (채운)
“앞? 앞쪽은, 무덤이오” ┃문예, 저항의 소리 ┃계몽에 반하는 계몽
2.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뜨거운 외침 : 루쉰의 『열풍』 (채운)
『열풍』과 『외침』, 잡문과 소설 사이 ┃아들과 아버지 : 중간물로서의 존재 ┃ ‘국수’(國粹)라는 사상적 질병과 ‘예외적 개인’의 도래
3. 적막 한가운데서 소설을 외치다 : 루쉰의 『외침』 (문성환)
외침은 읽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한다 ┃광인과 철방 : 내 안에 너 있다 ┃‘아Q와 혁명’에서 ‘아Q의 혁명’으로 ┃작은 사건 : 희망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지만
4. 생활의 반란, 습속의 배반 : 루쉰의 『방황』 (길진숙)
이념화된 루쉰을 넘어! ┃문제는 생활과 습속이다!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해부의 달인, 루쉰
5. 무(無)를 통해 생(生)에 이르다 : 루쉰의 『들풀』 (채운)
먼지바람 속에서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쓴다 ┃무지(無地), 생(生)의 긍정을 위한 대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6. 눈앞을 가리는 허위를 벗겨내다 : 루쉰의 『화개집』, 『화개집속편』 (신근영)
화개운을 만나다 ┃화개의 속임수 ┃적의 화살로 적을 쏘다 ┃대의명분 뒤에 숨긴 마음 ┃꽃이 없는 장미
7. 도망자\u003d루쉰이 ‘옛일’을 대하는 특별한 품격 : 루쉰의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문성환)
1926년, 베이징, 샤먼 ┃24효도 그림 : 내가 이랬다구? ┃아버지의 병환 :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이유는
8. 그러할 뿐이다 : 루쉰의 『이이집』 (이희경)
1927년, 변곡점 ┃대의(大義)는 딱 질색이다 ┃문학은 무력하다 ┃적, 깃발 그리고 에워싸는 자
9. 혁명문학논쟁을 중계한다 : 루쉰의 『삼한집』 (이희경)
상하이 ― 심란한 출발 ┃혁명문학 ― 애매하고 모호하다 ┃논쟁 ― 단칼에 피를 보다 ┃잡문 ― 하찮은 것의 정치학
10. 옛 이야기의 복원과 생성 : 루쉰의 『중국소설사략』 (길진숙)
흥미진진한 『중국소설사략』 ┃루쉰은 왜 소설을 정리했을까? ┃루쉰이 공감한 소설 ┃중국인이 중국 작품을 말하라
11. 루쉰의 ‘고전사용설명서’―‘거룩한’ 신화가 ‘비루한’ 일상을 만나면? :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 (고미숙)
고전이라는 ‘참호’ ― 도피가 아닌 도주! ┃‘시간여행’의 미학 ― 반전과 해체 ┃ 생명과 일상 ― 급진적인, 너무나 급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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