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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의 상상력

진형준 저 | 살림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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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19879 / 368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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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상상력 혁명』『싫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 등의 저서와 문학, 미술, 경영 등을 가로지르는 강의를 통해 21세기 변화의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의 근본원리를 제시했던 대한민국 상상력 연구의 1인자? 진형준 교수가 이번에는 동양의 대표 고전인 『논어』를 읽으며 ‘알록달록한’ 상상력으로 공자님을 2012년 현재의 대한민국에 불러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미술대학과 경영대학원, 그리고 여러 기업체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강의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장을 맡으며 그간 공부해온 상상력의 이론과 방법을 조직의 운영에... 『상상력 혁명』『싫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 등의 저서와 문학, 미술, 경영 등을 가로지르는 강의를 통해 21세기 변화의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의 근본원리를 제시했던 대한민국 상상력 연구의 1인자 진형준 교수가 이번에는 동양의 대표 고전인 『논어』를 읽으며 ‘알록달록한’ 상상력으로 공자님을 2012년 현재의 대한민국에 불러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미술대학과 경영대학원, 그리고 여러 기업체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강의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장을 맡으며 그간 공부해온 상상력의 이론과 방법을 조직의 운영에 접목해보기도 했던 저자는, 그 자유로운 넘나듦의 상상력으로 『논어』에 담긴 공자님의 말씀을 읽으면 2,500여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일이관지의 유효한 지혜를 길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필자는 1부 ‘배움편’에서 공자님의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이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라는 말씀에서 데카르트적 이성에 충실한 나머지 배태된 ‘의식 없는 과학’의 문제와, 파스칼적인 사색의 공허함을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현재는 데카르트적 이성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한 생각과 배움의 결합, 즉 ‘학이사’!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또한 2부 ‘인생관편’에서는 저 유명한 공자님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 즉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섰으며 사십에 혹하지 아니했고 오십에 하늘의 명을 알았으며 육십에 귀가 순해졌고 칠십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르더라도 법도를 넘어섬이 없었다’라는 말씀에 나오는 ‘지우학’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소욕불유거’ 등을 통해 인생의 지표를 끄집어낸다. 잣구대로 읽으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확고한 인생관을 세우고 마흔 살에 불혹의 경지에 이를 사람은 없다. 성인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는 이를 공자님이 우리에게 제시한 삶의 지향점이라고 읽어낸다. 꿈을 잃고, 목표도 없이, 이런저런 남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는 우리 삶에서 ‘열다섯 살로부터 시작해 일흔으로 끝나는 공자님의 일생은 공자님 개인의 물리적 나이’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도달하고자 꿈꾸는 삶의 지향점으로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오랜 상상력 공부를 통해 깨닫게 된 다원주의 정신과 유기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국지식인 사회의 서구 편향, 더 자세히는 이미 시효 만료된 지식과 사상을 오퍼상처럼 들여와 오랜 기간 동안 보검인양 휘두르는 이 땅의 지식인들을 제4부 정치 편에서 비판한다. 그가 정조준한 타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지식인으로 대접받는 백낙청 교수다. 『2013년 체제 만들기(백낙청 저, 창작과 비평)』에서 백낙청 교수가 “87년 체제와 더불어 그 본질적 제약으로 작용한 53년(분단) 체제를 타파하는 일”이 2013년 체제의 과제라고 밝히면서 “87년 변화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변혁은 아니었고……. 97년 신자유시대로 들어섰기 때문에 87년 민주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논자도 있다”고 밝힌 논지에 대해 저자는 그러한 논리가 지극히 단순하고 단차원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백낙청 교수에게는 자본주의 체제와 분단체제의 청산만이 진정한 변혁이고, 그에게는 통일만이 지상과제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이다. 그는 그처럼 단순한 논리로 여전히 ‘남북연합’으로 분단현실을 공동관리하는 1단계 통일을 내세우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심지어 사회주의도 원칙상 용인되는 국가”라는 근사한 말로 북한 체제를 수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자는 ‘북한은 그중 어디에 속하는가?’ 되묻는다. 북한은 3대째 수령독재가 이어지는 비정상 국가라는 사실을 단순한 이론과 논리의 세계 속에서 짐짓,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남북의 통일논의는 53년 이후 숱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지금 현재의 모습에서 그 단초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백낙청 교수는 53년 이후의 모든 변화를 무화시키고 오로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변혁과 분단체제의 타파만을 외치고 있는데, 이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도 없는 사이비 지식이자 진보로 포장한 ‘정신적 꼴통 보수’의 모습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진보’라는 낡고 좁은 이데올로기에 붙들린 맹목적 지식인의 모습을 유연함과 균형감각의 세계관을 가진 공자님이 보시면 웃으실 거라는 것이다. 공자님의 배움에 관한 생각, 인생관, 세계관, 정치관을 차례로 읽어낸 저자는, 마지막으로 공자님의 “오직 상지와 하우만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배움의 길로 들어서서 지혜로워지고 깨달음을 얻은 자는 결국 더없이 순수한 자와 만난다는 것. ‘무지할 때는 산은 그냥 산이고 물은 그냥 물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산은 그냥 산이 아니고 물은 그냥 물이 아니더라. 그런데 세상사 더 알게 되니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는 말이다. 그는 공자를 통해 이 같은 깨달음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희망을 찾는다.

저자 소개

지은이 진형준은 30년이 넘게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불문학자다. 그러나 그는 불문 학 내의 특정한 장르나 문학사조를 전공한 것이 아니다. 대신 ‘상상력’을 전공했다. 아니,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인간학’을 전공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자신이 선택한 상상력을 공부하면서 그는 인간의 영혼이 알록달록하다는 것, 인간의 삶과 사회는 결코 일정한 결정론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이질적인 것들 간에도 맥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고, 더 나아가 보이는 현상 너머를 파악하는 법을 배웠다. 달리 말하면 다원주의 정신과 유기적 사유를 배웠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상력 공부를 해나가다보니 그는 좁은 안목에서 벗어나 툭 터진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결과 전공과는 꽤 멀리 떨어져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미술대학과 경영대학원에서, 또 여러 기업체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강의하기도 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원장을 맡으며 그간 공부해온 상상력의 이론과 방법을 조직의 운영에 접목시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얻었다. 상상력의 가장 큰 특징이 넘나드는데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문학을 전공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뼈저린 자기성찰과 반성을 피할 수 없었다. 상상력을 공부하면 할수록 서구 문화는 지구상의 여러 알록달록한 문화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하게 이해됐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동양의 고전들을 더 의도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틈틈이 동양의 고전신화인 산해경을 읽고 한문을 배우고 한시를 공부했다. 
그렇게 만난 동양의 고전들을 접하면서 그는 다시금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됐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하고 융이 심층 심리학을 심화시켜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동양의 음양론에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는 것, 또 보들레르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 상징주의가 동양의 선(禪)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 서구에서 가장 낯설고 가장 첨단에 속하는 ‘상상력의 인간학’이 동양의 주역 정신과 무척 가깝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구에서 가장 새로운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친숙한 것이자 가장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공부를 통해 얻은 통찰로 이 책에서 우리의 지식사회를 정조준하여 비판한다. 우리 지식사회의 주류는 여전히 서구적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조차도 서구에서는 낡은 것으로 간주되는 지식과 사상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효 만료된 지식과 사상을 오퍼상처럼 들여와 오랜 기간 동안 마치 보검인 양 휘두르는 관행이 여전히 만연한 가운데, 그는 서구의 인식론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논어를 읽었고,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행복한 결합이 되도록 꿈꾸기 위해 공자님을 만났다. 이 책은 그 행복한 만남의 결과이자 우리 지식사회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다. 
공자님과의 행복한 만남을 통해 그가 얻은 통찰을 이 책에 쏟아낸 저자는 앞으로 우리 조선의 유학자들을 만날 기대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다. 

책 속에서

배움을 강조하신 공자님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이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爲政 15’라는 말씀을 하셨다. 배움을 평생의 반려로 삼으신 분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맹목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헷갈 릴만하다. 어찌 보면 배운다는 것을 조금 친절하게 세분해주신 셈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배운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배움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우리가 무언가를 배운다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선 학교이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열심히 배운다. 윤리 같은 과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보다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배운다. 그 배움을 통해 우리의 눈이 뜨인다. 그 배움에 충실하려면 두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분별력이 생긴다. 공자님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에서 말씀하신 배움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공자님은 거기에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생각이 없으면 맹목적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23p, <제1장 배움 편> 중에서


공자님이 겨우 30에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니 요즘 식으로 보면 늦둥이도 한참 늦둥이다. 나이 30에 겨우 자아가 확립되었다니 고등학교 때부터 ‘자아에 눈을 뜨라.’는 이야기를 무수히 듣고 배운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면 철이 아주 늦게 든 셈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나 이 30에 배움의 과정을 마치고 겨우 성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공자님의 그 말씀은 사실은 너무나 정확한 말씀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를 연구한 첨단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의 뇌가 성숙하는 데 2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몇 십 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왔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간주하고 대접해온 일은 거의 없다. 학생들은 언제나 내게 미성숙한 존재들이고 열린 가능성이었을 뿐이다. 그 미성숙한 존재들이 지닌 가능성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선생이 할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나 스스로가 그 가능성을 둘러싸고 있는 좋은 환경의 하나가 되려고 애를 써 왔을 뿐이다. 선생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종의 환경이고 인도자일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어쨌든 공자님이 ‘30에 립(立)!’이라고 선언하신 것이 첨단의 자연과학자들의 발견과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30에 홀로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늦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나는 길에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 인간의 뇌가 성숙하는 데 25년이 걸린다고 해서 25세가 되면 인간의 뇌가 컴퓨터 처럼 안정된 완제품이 된다는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성장은 멈출지 몰라도 그 이후에도 변화는 계속된다. 인간의 뇌는 평생 동안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열린 생명체이다.
공자님이 30에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은 자신이 하나의 인격을 갖추었다는 선언이다.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자아가 확립되었다는 선언이다. 우리가 늦둥이도 한참 늦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만만치 않은 선언이다. 우리들 중 그 누군들 자신만의 힘으로 서고, 자신만의 판단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가져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자아를 확립한 경험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어쩌면 아무도 진정으로 도달해 보지 못한 이상적 목표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우선은 그 정도로 접어두자.
-23p, <제2장 인생관 편>

목차

목차
프롤로그
제1장 배움편
제2장 인생관 편
제3장 세계관 편
제4장 정치 편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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