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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관객모독'의 작가 페터 한트케가 2004년에 발표한 소설로, 상상 속의 인물인 '돈 후안'을 다룬다.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가 자신의 희곡에 처음으로 '돈 후안'을 등장시킨 이래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돈 후안'을 그렸으며 버나드 쇼, 키에르케고르 등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기 위해 그들의 저서에 '돈 후안'을 등장시켰다. 페터 한트케의 <돈 후안>은 이들이 그린 '난봉꾼', '위선자', '성격 파탄자'인 돈 후안과는 명백히 다른 모습이다.
17세기에 사라진 돈 후안이 어느 날 '나'의 정원에 나타난다. 그는 '나'의 독서를 대체하며, 매일매일 일주일 전의 '오늘'로 돌아가 자신의 하루하루를 증언한다. 그는 항상 삼인칭을 사용해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까지 7일간에 일어난 여행에 관해 들려준다. 하지만 그의 여행 얘기는 날마다 조금씩 줄어가고, 등장인물과 장소, 행동묘사는 처음에서 마지막으로 가면서 점점 모호해진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또 다시 독일어권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다면 그때는 페터 한트케임이 분명하다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가장 놀랐던 사람은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여류 소설가 엘프리데 엘리네크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수상 직후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 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여자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평론가들도 이런 놀라움에 동참했다. 현대 독일어권 작가 중 가장 많은 연구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한 페터 한트케(... 또 다시 독일어권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다면 그때는 페터 한트케임이 분명하다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가장 놀랐던 사람은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여류 소설가 엘프리데 엘리네크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수상 직후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 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여자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평론가들도 이런 놀라움에 동참했다. 현대 독일어권 작가 중 가장 많은 연구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한 페터 한트케(국내에는 고려대학교 윤영호 교수와 충남대학교 박광자 교수, 성신여대 은정윤 교수 등이 페터 한트케 연구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였기에 평단에서 나온 놀라움도 그만큼 컸다. 충남대 박광자 교수는 엘프리데 엘리네크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접한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 작가라면 당연히 페터 한트케가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페터 한트케가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건 우리가 흔히 노벨 문학상에 기대하듯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껏 발표됐던 그의 소설과 희곡들은 철저한 언어파괴와 형식파괴를 동반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런 그의 실험정신이 그를 세계 문학계의 ‘거장’이 되게 한 비결이라고 말한다. ‘친절한 페터 한트케씨’ / 그의 언어파괴와 형식파괴 『관객모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 태생 페터 한트케는 독일문단에서는 이단아와 같은 존재다. 언어는 단순한 의미 전달 도구 이상이라는 것이 그의 작품 속 주장이다. 초기작 『관객모독』(1966)은 비트 음악을 언어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구사하는 『관객모독』속의 언어를 좇다보면 ‘줄거리’를 찾을 수 없다. 온갖 욕설로 구성된 『관객모독』에서 페터 한트케는 의미 전달도구로서의 언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1969)에서는 일정한 문법적 규범 속에서의 언어 변화와 의식 변화의 상관관계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1977)에서는 이런 외부적 상황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에서 페터 한트케는 실어증에 걸린 약사가 환상적인 여행을 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단숨에 거부해 버린다. 페터 한트케의 최신작인 『돈 후안』에서는 ‘줄거리’는 살아 있지만 도입부에서부터 청자가 자신의 ‘독서’를 대체하는 형식으로 어느날 갑자기 ‘돈 후안’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17세기에 사라졌던 돈 후안이. 이후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돈 후안’은 청자의 이의 제기를 거부하는 형식으로 의사소통으로서의 ‘언어’를 거부한다. 더욱이 페터 한트케는 이런 언어 파괴와 더불어 작품 속에서 온갖 형식의 파괴를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우울』에서는 해고된 노동자가 그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상황이 계속되며(이렇게 영화를 보는 장면은 『돈 후안』에서도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각 장마다 또 다시 등장한다.)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는 도대체 짐작할 수 없는 줄거리를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두 번 세 번 걸러낸다. 페터 한트케의 소설은 난해하다. 이렇게 언어 파괴와 함께 형식 파괴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관객모독』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불친절함이 ”독자“까지 늘리지는 못했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이단아’라는 존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최근 이런 모습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혹자는 1972년 작인 『긴 작별에 대한 짧은 편지』에서부터 ‘줄거리’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돈 후안은 그런 연장선 속에서 나온 소설이다. 매일매일 일주일 전의 오늘로 돌아가 자신의 하루하루를 증언하는 ‘돈 후안’은 그 형식이 독특하긴 해도 적어도 ‘줄거리’만은 살아 있다. ‘친절한 페터 한트케씨’. 『돈 후안』의 줄거리 페트 한트케의 ‘돈 후안’은 2004년 발표된 작품이다. ‘돈 후안’은 ‘카사노바’와는 달리 상상 속의 인물이다. 17세기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가 그의 희곡에 처음으로 ‘돈 후안’을 등장시킨 이래 모차르트는 그의 오페라 에서 ‘돈 후안’을 그리고 있으며 버나드 쇼, 키에르케고르 등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기 위해 자신의 저서에 ‘돈 후안’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페터 한트케의 ‘돈 후안’은 이들이 그린 ‘난봉꾼’, ‘위선자’, ‘성격 파탄자’의 돈 후안과는 명백히 다른 모습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나’의 정원에 돈 후안이 쫓겨온다. 17세기에 사라졌던 ‘돈 후안’이‘ 그는 ‘나’의 독서를 대체하게 된다. 그는 모두 7일간 일주일 전의 오늘에 대해 말한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던 돈 후안은 코카서스를 지나 그루지아로 그리고 다시 다마스커스로 다시 세우타로 다시 노르웨이로 다시 네덜란드로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곳으로 그리고 다시 일 드 프랑스로 온다. 명시한 장소에서 모두 7일간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는 항상 삼인칭을 사용해 나에게 말한다. 자신의 말에 보편타당성을 추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의 여행 얘기는 날마다 조금씩 줄어간다. 등장인물과 장소는 처음에서 마지막으로 가면 점점 희미해진다. 행동묘사조차 모호해진다. 마지막에 가면 체류지가 어디였는지 기억하지 조차 못한다. 돈 후안은 계속 반복되는 ‘오늘’이 결국은 어제의 또 다른 날들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돈 후안은 각각의 체류지에서 각각 한명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하루는 식장에 들어선 신부(新婦)와 어떤 날은 임신한 여인과…… 하지만 돈 후안은 한 번도 그녀들에게 접근한 적이 없다. ‘그녀’들은 언제나 자연스레 그에게 ‘시선’을 던져주었던 것이다. 7일간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돈 후안은 ‘나’의 공간에서 떠나려 한다. 밖에는 수 없이 많은 여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돈 후안은 “이제 때가 왔다.”고 외친다.
목차
돈 후안, 나의 독서를 대체하다
마지막 날, 일 드 프랑스
일주일 전의 오늘로 돌아가다
첫 번째날, 그루지아
두 번째 날, 다마스커스
세 번째 날, 세우타
네 번째 날, 노르웨이
다섯 번째 날, 네덜란드
여섯 번째 날, 이름 없는 어느 곳
이제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