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3일 오늘의 책
안바다 | 푸른숲 | 2020.09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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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협소하다고 우리의 상상력마저 협소해지는 건 아니다.” 이전에도 집으로 여행을 떠난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1763년에 태어난 그는 한 장교와 결투를 벌인 대가로 42일간의 가택연금형을 선고받는다. 원인은 전혀 다르지만 지금 우리와 같은 처지에 처한 그는 무료함을 달래고자 집으로 여행을 떠났고, 문학, 회화, 과학 등 지대한 관심사를 녹여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썼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역시 집 안...
회사원들의 1년을 버티게 해주었던 여름휴가, 깜짝 선물처럼 대체휴일에 떠났던 여행 등 고단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던 ‘여행’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삶에서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차례나 실어 나르던 비행기가 멈춘 것과 동시에 우리가 확신하던 그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고 또 모호해졌다. 단 하나 명확한 것은 우리가 여행을 되찾게 되더라도 언제 또다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은 이런 밀폐된 일상 속에서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아마도 나의 거실과 침실, 발코니와 주방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으로 나는 얼마나 제대로 떠나봤을까. (16쪽)
‘집으로 여행 떠나기’는 이미 많은 예술가에게 익숙한 행위였던 것 같다. 18세기 후반의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아 42일 동안 자신의 방을 여행하고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침대에 누워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글을 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다. 우리도 현관, 거실, 침실, 화장실, 주방 그리고 욕조, 침대, 의자까지 집안의 구석구석으로 매일 떠나고 매일 도착할 수 있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통해 우리의 거주지로 여행 떠나는 법을 알아보자!
■ 가로세로 1미터 남짓한 유예의 공간, 현관
현관은 공항을 닮았다. 현관과 공항의 물리적 크기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머뭇거릴 수 있는 곳, 한 번 더 숙고해볼 수 있는 곳, 엉거주춤 서 있을 수 있는 곳, 떠나는 누군가를 잡을 수 있는 곳,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잡힐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현관과 공항의 심리적 크기는 닮았다. 가장 짧게 머무는 곳이지만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현관은 우리의 작은 공항이다. (37쪽)
■ 충분히 무력할 수 있고 마음껏 항복할 수 있는 공간, 침실
침대에서는 충분히 무력할 수 있고 마음껏 항복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침대가 오로지 무력함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침대는 가장 많은 것을 상상하며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73쪽)
코로나19로 인해 두문불출하는 나와 아이들에게 집은 답답하고 재미없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신발을 들고 와서 밖으로 나가자며 비언어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떼를 쓰는 2살배기 막내와, 틈만 나면 놀이터에 놀러가자며 울부짖는 큰아이에겐 아마도 집이 감옥 같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읽고 나니 집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에게 훌륭한 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아이들에게 김밥 도시락을 싸주고 책상 의자를 나란히 놓아 만든 상상의 기차에 태워야겠다. 그리고 도착한 베란다에서 멋진 뷰를 감상하는 전망대에 왔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내일만은 침대에서 점프하는 것을 허락하고 키즈 카페에 왔다고 상상하게 할 것이다. 재미있는 그림책이 가득한 방에서는 도서관에 왔으니 좋아하는 책 2권만 빌리라고 이야기하고, 저녁엔 욕조에 뜨끈한 물을 가득 담아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 손목에 도장을 찍어주며 1시간 후에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아쿠아 월드에 온 걸 환영한다고 이야기해주어야겠다. 특별할 것 없는 집이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더없이 멋진 여행지가 될 것이다. 혹시 집 안이 답답하고 권태롭다고 느껴진다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을 꼭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새벽녘식탁'님은?
10월 3주 주간 베스트리뷰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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