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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

원제 : Nietzsche’s Zarathustra: Notes of the Seminar given in 1934-1939
시리즈 :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20]

칼 융 저 | 김세영, 정명진 역 | 부글북스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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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200526 / 450쪽 / 767g /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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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기존의 모든 가치를 뒤엎으려 했던 불운한 천재 철학자의 내면 풍경! 칼 융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이는 철학을 대하는 니체의 태도가 조금 특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을 보면 철학과 삶이 따로 논다. 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가 이 책 『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에 소개되고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 관한 이야기이다. 쇼펜하우어가 프랑크푸르트의 언... 기존의 모든 가치를 뒤엎으려 했던 불운한 천재 철학자의 내면 풍경! 칼 융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이는 철학을 대하는 니체의 태도가 조금 특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을 보면 철학과 삶이 따로 논다. 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가 이 책 『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에 소개되고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 관한 이야기이다. 쇼펜하우어가 프랑크푸르트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산책을 할 때면 주위 사람들은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염세적인 그가 과연 무슨 생각에 빠져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의 뒤를 밟아 보았다. 그런데 이 사람의 귀에 흐릿하게 들려온 쇼펜하우어의 중얼거림이 그를 놀라게 만들었다. “내가 50년 전에 앤과 결혼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니체는 이런 철학자들과 달랐다. 니체에겐 삶이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삶이었다. 니체라는 인간과 그의 삶, 그의 철학은 비극적으로 똑같았다. 철학이 마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그러기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정신분석 대상으로 아주 훌륭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프레드 아들러와 함께 20세기 전반기에 심리학을 주도했던 칼 융은 1913년에 프로이트와 결별한 뒤로 분석심리학을 창설하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강연 활동을 활발하게 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분석 치료를 하는 것 못지않게 일반인들에게 건전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국을 찾아 포드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했으며 영국도 여러 차례 찾았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칼 융이 스위스 취리히에서 몇 사람과 함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해석한 부분이다.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 분석 작업은 1939년에 유럽에 전운이 감돌면서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분석이 니체의 책 4부 중에서 3부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이라는 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영어책은 총 1,500여 쪽에 달하는데 이것을 줄여 번역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 뭔가 붕 뜬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데, 그것은 니체의 성격 유형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니체는 직관 유형이다. 직관이 지나칠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주제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방 다른 주제로 옮겨간다. 이런 식으로 온갖 주제를 건드리지만 한 가지 주제를 깊이 들어가는 예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무의식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더라면 니체의 정신건강이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는 것이 융의 의견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일종의 정신적 귀족주의를 제시했다. 귀족의 기준은 그 사람이 어디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향하는가이다. 사람이 언제나 보다 높은 곳을 추구하는 것을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이런 ‘초인’ 사상이 훗날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분석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줄기차게 높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니체의 의지 자체가 그가 정신적으로 겪은 불행의 원인일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행했던 니체의 독백이라고 칼 융은 말한다. 다소 표현이 거칠고 요란스러운 것은 니체의 열등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니체가 정신적으로 불행했던 이유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책을 발표하는데도 대중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거나 가십거리로 여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당시엔 니체의 정신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겨우 100부 정도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이 이 책을 이해하기까지 반세기의 세월이 필요했다. 니체가 탄생 100년이 되어서야 주요한 사상가이자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육체적으로도 일찍이 매독에 걸려 고생한데다가 소화 불량에 편두통, 불면증까지 괴롭히고 시력마저도 대학 교수직을 포기해야 할 만큼 형편없었으니, 그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칼 융, 차라투스트라를 분석하다』는 어디까지나 분석 심리학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에난티오드로미아와 자기, 그림자, 집단 무의식 등 칼 융의 핵심적 개념이 두루 설명되고 있다. 융은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4세에 처음 읽은 뒤에 40세에 다시 읽으면서 주석을 달고 깊이 연구했다고 한다. 철학도 기본적으로 심리학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심리학자가 일찍이 그 점을 간파했던 철학자의 글을 분석하는 내용이기에 철학과 심리학이 적절히 버무려지며 긴 여운을 남긴다.

저자 소개

(1875년-1961년)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며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연보>
* 1875년 7월 26일= 스위스 투르가우 주 케스빌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요한 폴 융은 스위스 개혁 교회의 목사였으며, 어머니 에밀리에 프라이스베르크는 돈 많은 명문가의 딸이었다. 칼 융은 이 부부의 넷째로 태어났으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녀였다. 
* 1876년= 융의 아버지, 라우펜으로 발령을 받다. 융의 어머니 에밀리에가 정신적 혼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에밀리에가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말을 곧잘 한 탓에 칼 융은 어릴 때부터 공포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병으로 자주 입원함에 따라 아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현실이 융의 여성관에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
* 1879년= 융의 아버지가 클라인위닝겐으로 발령을 받는다. 에밀리에가 친정과 가까운 이곳으로 옮기면서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다. 
* 1987년= 칼 융, 바젤 인문 김나지움에 입학하다. 
* 1895년= 과학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바젤 대학에 입학하다.
* 1900년= 바젤 대학을 졸업한 뒤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에서 오이겐 블뢸러 교수 밑에서 일하다. 여기서의 활동은 1909년까지 이어진다. 
* 1902년= 취리히 대학에서 ‘소위 신비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에 대해’(On the Psychology and Pathology of So-Called Occult Phenomena)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다. 
* 1903년= 스위스의 부자가문 출신인 엠마 로첸버그와 결혼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다섯 태어났다. 엠마가 19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둘의 결혼관계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융은 몇몇 여자와 염문을 뿌렸다. 러시아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학자였던 사비나 스피렐레인(Sabina Spirelrein)과 동료였던 토니 볼프(Toni Wolff)와 깊은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 1905년=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 강의를 맡다. 이 강의는 1913년까지 이어졌다. 
* 190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서신 교환을 시작하다. 이듬해 빈에 있던 프로이트를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꼬박 13시간 동안 프로이트와 대화를 나눴다. 
* 1907년= 『조발성 치매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Dementia Praecox)을 쓰다. 
* 1909년=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을 그만두고 프로이트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다. 그러나 융이 『무의식의 심리학』(Psychology of the Unconscious)을 집필하는 사이에 프로이트와의 관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둘은 리비도와 종교의 본질에 대해 의견대립을 보였다. 또한 융은 1909년에 스위스 퀴스나흐트에 정신분석 의료기관을 열고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운영했다. 
* 1910년= 세계정신분석협회(IPA) 회장에 선출되다. 『변용의 상징들』(Symbols of Transformation)을 쓰고 미국 뉴욕의 포드햄대학에서 강연을 하다. 
* 1912년= 칼 융이 자신은 프로이트와 학문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했다. 『무의식의 심리학』 발표하다. 
* 1913년= 세계정신분석협회 회장직을 내놓다. 이로써 프로이트와 최종적으로 결별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이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레드 북』의 집필을 시작하다. 융은 이 책을 16년 동안 쓰다가 옆으로 밀쳐놓은 뒤 틈틈이 손질을 했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된다. 
* 1919년= ‘원형’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다. 
* 1920년= 영국 콘월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다. 이후 두 번 더(1923년, 1925년) 영국에서 세미나를 연다. 
* 1921년= ‘심리유형’을 발표하다. 
* 1923년= 북미의 푸에블로 인디언 방문하다. 
* 1925년= 동아프리카로 심리학적 탐험을 떠난다. 케냐와 우간다 등을 돌면서 그곳 원주민들의 심리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 1929년= 중국 도교 서적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에 대해 언급하다. 
* 1932년= 취리히 국립폴리테크닉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취임하다. 이 학교에서 칼 융은 1940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친다. 
* 1937년= 인도를 여행하다. 힌두철학은 상징의 역할과 무의식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 1944-1945년= 바젤대학 의료심리학 교수가 되다. 『심리학과 연금술』(Psychology and Alchemy)출간하다. 
* 1948년= 취리히에서 칼 구스타프 융 연구소 설립하다. 
* 1950년= 『욥에 대한 회신』(Answer to Job)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 1957년= 자서전 『기억 꿈 회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출간. 
* 1958년= 『인간과 상징』(Man and his Symbols) 집필 시작. 이 책은 1961년 융의 사후에 출간됨. 
* 1961년= 취리히 근처의 퀴스나흐트에서 세상을 떠나다. 향년 85세. 

역자 소개

건국대학교 철학과 졸업
독일 트리어대학 경제사회학부 수료
교보문고, 해냄출판사, 생각의 나무를 거쳐 현재 출판사 
플래닛 미디어 대표.
옮긴 책으로는 <RED BOOK>(칼 구스타프 융)이 있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신은 죽었다고 하든 신은 살아 있다고 하든 신에겐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그 선언으로 인해 당신이 무의식을 건드리는 결과만을 낳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진리 같은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발달의 이 단계에서 진리인 것이 발달의 다른 단계에서는 진리와 꽤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러기에 진리는 언제나 발달의 문제이고 시간의 문제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자연 자체가 철저히 귀족적이고 대단히 난해하다.”

“삶은 어떤 결과에 닿기를 원한다. 만일 당신이 삶의 노력에 동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냥 내버려진다. 마치 당신이란 존재는 거기에 없다는 듯이. 그런 다음에 삶은 실험을 계속한다.”

“직관을 지나치게 많이 갖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직관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지 미래의 이상한 나라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어떤 운명 또는 저주를 만나든, 또 어떤 사람들을 접하든, 그 일 또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자신을 대표한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운명이고, 따라서 그것이 우리 자신이다. 만일 그 운명을 포기하고, 그래서 운명을 배신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을 배신하는 것이다.”

“삶은 파괴와 창조가 반드시 수반되는 에난티오드로미아의 법칙을 따른다. 완전히 정적인 사물은 어떠한 존재도 갖지 못한다. 사물은 반드시 어떤 과정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물은 절대로 지각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변화하는 한해서만 진리일 수 있다.”

“니체는 위대한 예술가이면서 철학자였다. 철학자라면 생각을 깊이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는 그만 자신의 작품에 압도당해 버렸다. 그것이 그의 약점이었다. 괴테나 실러, 셰익스피어에겐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니체는 내면에 커다란 허점을 하나 가진 천재였다.”

“니체는 프로이트와 아들러, 융을 예고하고 있다. 먼저 육욕, 즉 쾌락 원리는 프로이트를, 권력 욕구는 아들러를, 이기심은 융을 예고하고 있다. 이기심에 해당하는 나의 사상은 개성화이다. 프로이트는 섹스로 압축될 것이고, 아들러는 권력으로 압축될 것이다.”

“사람들은 숫자가 많아질수록 열등해진다. 군중의 도덕성은 군중 속의 개인들의 도덕성보다 낮다. 군중은 자연히 개인을 압도하게 되어 있다. 수천 명은 하나보다 월등히 더 많이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길 원하는 사람은 단지 권력의 상실을 통해 자신을 낮추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권력을 주면서 오히려 권력을 얻게 된다. 당신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똑같은 동전이다.”

“선한 것이나 높은 것, 미덕은 언제나 하나의 성취이고 언제나 정상(頂上)이다. 정상은 더 나아가지 못한다. 오직 아래에 있을 때에만 올라갈 수 있을 뿐이다. 정상에 오른 다음에는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목차

목차
1강 1934년
2강 1935년
3강 1936년
4강 1937년
5강 1938년
6강 1939년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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