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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주인공 ‘이윤’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왜 오역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번역을 시작했고, 왜 연재를 끝까지 이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등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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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192053 / 372쪽 129 x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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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번역과 카뮈를 소재로 한 독특한 메타소설, 번역계의 ‘이방인’ 이정서의 문제작 이 책은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번역 연재를 했던 6개월의 시?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실제 번역 과정이 이렇게 소설로 재탄생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선 흥미롭다. 소설가 김진명은 이 책 뒤에 실린 긴 작품평을 통해, “비교된 두 개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범죄자와 법의학자의 대결을 보는 이상의 스릴이 있고, 권위주의와 기득권을 쳐부수는 통쾌함이 있고, 프랑스어와 영어와 국어의 ... 번역과 카뮈를 소재로 한 독특한 메타소설, 번역계의 ‘이방인’ 이정서의 문제작 이 책은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번역 연재를 했던 6개월의 시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실제 번역 과정이 이렇게 소설로 재탄생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선 흥미롭다. 소설가 김진명은 이 책 뒤에 실린 긴 작품평을 통해, “비교된 두 개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범죄자와 법의학자의 대결을 보는 이상의 스릴이 있고, 권위주의와 기득권을 쳐부수는 통쾌함이 있고, 프랑스어와 영어와 국어의 같음과 다름을 경험하는 문화여행이 있다. 이런 소재와 주제의 소설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움을 넘어 내 상상력의 한계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언어적 재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작가 지망생들이나 글의 섬세함을 맛보려는 고급 독자들에게는 텍스트가 됨과 동시에 최고의 도락 또한 줄 것 같다.”고 평했다.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카뮈의 《이방인》은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설이 되어버렸을까? 그것은 정말 오역 때문이었을까? 2014년을 뜨겁게 달군 번역 논쟁의 중심에는 《이방인》의 역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정서가 있었다. . 저자는 2014년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한 ‘역자노트’를 실은 《이방인》을 출간함으로써 ‘번역도 문학’임을 알리는 의미 있는 번역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2015년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시공간적ㆍ존칭 개념을 바로잡아 차별화된 번역을 선보였다. 만약 그가 기존 번역문단의 틀에 갇혀 있었다면, 예민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면 절대 새로운 《이방인》과 《어린 왕자》 번역본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번역 연재를 했던 6개월의 시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실제 번역 과정이 이렇게 소설로 재탄생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선 흥미롭다. 이 소설은 주인공 이윤이 죽은 카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단지 이것이 번역비평서가 아니라 흥미로운 소설이라는 점을 도입부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은 중간 중간 등장하는 카뮈의 원 문장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터리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고 거침없이 읽히며, 어느 순간 올바른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주인공 ‘이윤’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왜 오역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떻게 번역을 시작했고, 왜 연재를 끝까지 이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등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카뮈의 원 문장과 번역 문장을 비교해 짚어감으로써 쉼표 하나도 무의미하게 사용하지 않았던 천재 작가 카뮈의 숨결을 고스란히 되살려놓기도 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바라본 소설가 김진명은 이 책 뒤에 실린 긴 작품평을 통해, “비교된 두 개의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범죄자와 법의학자의 대결을 보는 이상의 스릴이 있고, 권위주의와 기득권을 쳐부수는 통쾌함이 있고, 프랑스어와 영어와 국어의 같음과 다름을 경험하는 문화여행이 있다. 이런 소재와 주제의 소설이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건, 경이로움을 넘어 내 상상력의 한계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언어적 재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작가 지망생들이나 글의 섬세함을 맛보려는 고급 독자들에게는 텍스트가 됨과 동시에 최고의 도락 또한 줄 것 같다.”고 평했다. 그 밖에 《샐러드 기념일》 《악마의 연애술》 등 베스트셀러를 번역한 신현정 교수는, “걸작을 향한 불꽃같은 애정이 진실을 가린 오역을 벗겨내고, 마침내 문학번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오역이 문학작품의 죽음이라면 명역은 문학작품의 부활인 것이다. 그의 위험한 도전이 수많은 명작 부활의 신호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책속으로 추가 그는 화제를 바꾸려고, 왜 자기를 ‘몽 페르’라고 부르지 않고 ‘므시외’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나서,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한편이라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몽 피스!” 하고,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김수영 역 p.133) Il a e ssaye de changer de sujet en me demandant pourquoi je l’appelais 《monsieur》 et non pas 《mon pere》. Cela m’a enerve et je lui ai repondu qu’il n’etait pas mon pere : il etait avec les autres. 《Non, mon fils, a-t-il dit en mettant la main sur mon epaule. Je suis avec vous. Mais vous ne pouvez pas le savoir parce que vous avez un coeur aveugle. Je prierai pour vous.》 (원서 p.180) 과연 이게 번역일까? 그야말로 국적 불명의 언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역자는 이제 하나를 바로잡아서는 도저히 문맥이 이어지지 않으니, 아예 번역을 포기하고는 mon pere를 ‘몽 페르’로, monsieur를 ‘므시외’로 mon fils를 ‘몽 피스’로 옮기고 있다. 이러한 번역을 읽고 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그건, 《벌거숭이 임금님》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칭송하던 거짓말쟁이 어른들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왜 내가 자기를 “신부”가 아니라 “선생”이라 부르는지 내게 묻는 것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 그것이 나를 흥분시켰고, 나는 그에게 당신은 내 사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이들의 편이라고. “아닙니다, 형제님.”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겁니다.” (졸역) _(346-348쪽)
“레몽은 역시 김수영 교수가 번역한 것처럼 단순히 악한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는 오히려 그 문제에서만큼은 피해자였던 거지요. 뫼르소 역시 단지 태양 때문에 선량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을 사회를 대신해 응징한 셈이구요. 그 상황을 카뮈는 다른 구구한 설명이 아니라 저 두 인종의 구분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거예요. 그야말로 천재적인 소설적 개연성으로 말이지요……. 그래서 저 소설이 발표되고 카뮈의 인종차별 논란까지 불러왔던 거구요.”
“아직까지 저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저 둘은 남매가 아니었던 거예요.”
“예?”
“당시의 무어인과 아랍인이 어떻게 한 식구가 될 수 있었겠어요? 그건 부부 사이나 가능한 것이지요. 카뮈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던 거예요. 당시의 시대 배경이 무어와 아랍의 이주자들이 일상적으로 결혼을 하던 때였다는 점, 저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했던 그들 사이에서 난 아이들, 즉 새로운 세대부터 그 구분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과도기였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만큼 당시 알제에서는 아랍인과 무어인의 인종적 구분이 힘들 정도로 섞여버렸다는 사실도 읽을 수 있어요.
그래서 글도 모르는 레몽은 순진하게도 ‘아랍인 사내’를 ‘자신의 오빠’라고 소개한 그녀의 말만 듣고 둘 사이가 남매라고 믿어버렸지만, 지식인인 뫼르소는 레몽이 불러주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 그녀가 ‘무어 여자’라는 것을 알았고, 이후 레몽이 말한 그 오빠가 무어인이 아니라, ‘아랍인 사내’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서, 두 남녀가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던 거지요.”
“……!”
강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치밀함은 뫼르소가 그 사실을 레몽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뫼르소는 왜 레몽에게 끝까지 그것을 설명하지 않았을까요?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점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치밀하게 소설을 구성하고 있었던 거예요. 셀레스트가 법정 증언에서 하는 저 말, ‘불필요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캐릭터가 곧 뫼르소인데, 그런 점에서 이미 다 끝난 사이인데 그걸 굳이 알려줘서 괜히 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뫼르소라는 캐릭터에겐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한 거죠. 뫼르소의 경찰서 진술도 김수영 교수는 마치 뫼르소가 레몽의 부탁을 받고 경찰서까지 가서 허위 진술을 하는 것처럼 번역을 하고 있지만, 사실 뫼르소는 자신이 보기에도 여자가 레몽에게 ‘사기를 쳤’기에 솔직히 그렇게 증언을 해준 것이구요.”
“아……!”
“아무튼 그래서 저 둘은 남매가 아니라 오히려 기둥서방과 창녀의 관계였던 거예요. 그것도 아주 질 나쁜. 아랍인 사내는 자신의 여자를 레몽에게 접근시켜 사기를 치고, 돈을 빼돌렸던 것이고, 그게 들통 나서 여자가 매를 맞고 쫓겨나자 앙심을 품고 레몽을 해치우려 쫓아다녔던 것이고요.”
“…….”
강팀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만큼 내 설명은 기존 〈이방인〉의 시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아랍인과 무어인의 차이에 대해서는 책이 출간될 때까지 함구할 생각이었다.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테니까.
그 밖에도 이 장에서 지적할 사항은 적지 않았으므로 나는, A와 B의 역자 이름을 밝히고 A 번역이 카뮈의 의도와 문체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등을 ‘보론’으로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_(207-210쪽)
그는 화제를 바꾸려고, 왜 자기를 ‘몽 페르’라고 부르지 않고 ‘므시외’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화가 나서,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한편이라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몽 피스!” 하고, 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고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김수영 역 p.133)
Il a e ssayé de changer de sujet en me demandant pourquoi je l’appelais « monsieur » et non pas « mon père ». Cela m’a énervé et je lui ai répondu qu’il n’était pas mon père : il était avec les autres. « Non, mon fils, a-t-il dit en mettant la main sur mon épaule. Je suis avec vous. Mais vous ne pouvez pas le savoir parce que vous avez un coeur aveugle. Je prierai pour vous. » (원서 p.180)
과연 이게 번역일까? 그야말로 국적 불명의 언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역자는 이제 하나를 바로잡아서는 도저히 문맥이 이어지지 않으니, 아예 번역을 포기하고는 mon père를 ‘몽 페르’로, monsieur를 ‘므시외’로 mon fils를 ‘몽 피스’로 옮기고 있다.
이러한 번역을 읽고 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그건, <벌거숭이 임금님>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칭송하던 거짓말쟁이 어른들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왜 내가 자기를 “신부”가 아니라 “선생”이라 부르는지 내게 묻는 것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 그것이 나를 흥분시켰고, 나는 그에게 당신은 내 사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이들의 편이라고.
“아닙니다, 형제님.”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겁니다.” (졸역)
_(346-348쪽)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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