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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번역은 원래의 작가 문장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감동을 줍니다.”
독자에게 직접 원문과 번역문 한 문장 한 글자씩을 짚어 주는
<어린 왕자>
불·영·한 비교.
‘살아 있는’ 어린 왕자의 언어와 목소리를 전한다.
어린>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번역계의 논쟁이 있다. 바로 역자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직역과 의역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번역인가? 하는 것이다.
2014년 ‘
<이방인>
논쟁’을 시작으로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정서 역자는 그때 이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단순히 말로만 논쟁을 한 게 아니라 직접 번역한 결과물을 두고 비교 분석해 보이는 방식을 택해 왔다.
이 책은 그러한 논쟁의 총합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번엔 ‘직역’에 대한 내 생각을 ‘설명’할 것이 아니라, 직접 원문과 번역문을 1 : 1 대응시켜 보여 줌으로써 그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어린 왕자>
.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 이 조그만 이야기는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몇 번을 읽는다 해도 번역된 텍스트 너머를 볼 수 없는 독자에게는 역자의 눈으로 제한된 세계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역자로 인해 작품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어린 왕자>
를 얼마나 사랑했든지 간에 국내에서 번역된 기존의
<어린 왕자>
를 읽고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면 어찌 되는 걸까?
저자는 원문과 그에 따른 정확한 직역을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 준다.
“이제 이 책 어느 장을 펼쳐 봐도, 작가가 원래 쓴 주어, 서술어, 대명사, 쉼표, 마침표, 접속사 등등 작가의 서술 구조와 다르게 역자 임의로 더하거나 뺀다거나, 의역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직역된 문장들이 얼마나 감동적인가도…….”
“안녕하세요” vs “좋은 아침”
어느 것이 어린 왕자의 목소리였을까?
번역에도 정답이 있다고 하면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생텍쥐페리가 18장에서 쓴 ‘Bonjour’는 사전에 있는 것처럼 ‘Hello’와 ‘Good morning’ 둘 다로 옮길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안녕하세요’로 일관되게 번역한 국내 서적들은 맞는 번역일까? 영역자가 다른 장에서 모두 ‘Good morining’으로 옮겼던 인사를 18장에서만 굳이 ‘Hello’라고 한 이유는 뭘까? 나아가 원저자의 문체를 정확히 살리면서 정말 ‘아름다운’ 번역은 가능할까? 등등.
저자는 불ㆍ영ㆍ한 언어 비교를 통해 그 수많은 의문들에 집요하고 꼼꼼하게 답하고 있다.
<어린 왕자>
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존중하는 시각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쓰여진 ‘tu’와 ‘vous’의 차이는 간단한 존칭의 차이가 아니라, 이 책이 담고 있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
<어린 왕자>
는 전적으로 아이의 시각을 존중해 쓰인 작품입니다.
우리의 번역은 그 기본부터 망쳐 놓고 반백년을 읽어 왔던 셈입니다. (…)
모쪼록 우리의 번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가,
작가의 원뜻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가장 나은 수준에 이르게 되길 앙망합니다.
이 책이 그 길에 다다르는 작은 씨앗이 되길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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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이번 장은 왜 이 작품 번역에서 ‘Bonjour’를 단지 우리말 ‘안녕’이라고 번역해서는 안 되는지가 극명히 드러나는 장입니다.
우선 우리의 번역서를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전철수(轉轍手)가 말했다.
「아저씬 여기서 무얼 하세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나는 여행자들을 가르고 있지, 천 명씩 묶어서.」 전철수가 말했다. 「그들을 싣고 가는 기차를 어느 때는 오른쪽으로, 어느 때는 왼쪽으로 보내고 있지.」
그때 불을 환하게 켠 급행열차가 천둥 치듯 우르릉거리면 전철수의 경비실을 흔들었다.
(황★★ 역)
이것을 읽으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요?
열이면 열, 전조등을 밝히고 달리는 ‘야간열차’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런데 프랑스 독자들은 어떨까요?
아마 우리와는 정반대로 동트는 새벽, 혹은 아주 이른 아침쯤을 떠올릴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어서 그럴까요?
원문을 보면 이해가 되지요.
– Bonjour, dit le petit prince.
– Bonjour, dit l’aiguilleur.
– Que fais-tu ici? dit le petit prince.
– Je trie les voyageurs, par paquets de mille, dit l’aiguilleur. J’expédie les trains qui les emportent, tantôt vers la droite, tantôt vers la gauche.
Et un rapide illuminé, grondant comme le tonnerre, fit trembler la cabine d’aiguillage.
바로, Bonjour를 보는 순간 원어민들은 자연스레 낮을 떠올리며, 다음 줄의 illuminé를 보면서 이른 아침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Bonjour라는 인사 속에 그와 같은 시간적 배경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따로 낮 인사라는 것이 없으니 ‘안녕’이라고 한 것이고, 그러고 나자 시간적 배경이 사라졌고, 오히려 뒤에 나오는 illuminé로 인해, 불을 켜고 달리는 야간열차를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번역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선 인사말이라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만, 번역가는 이 차이를 어찌 되었건 알려 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작품 전체를 두고 보았을 때, 생텍쥐페리는 이러한 인사말을 단순히 ‘안녕’이라는 인사말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각 장마다의 시간적 배경을 단지 이 하나로 설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시적인 문장으로 최대한 간략히 쓰인 이 작품 속에 저 인사말 말고는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 설명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 번역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어투도 원래 문장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예컨대
– Que fais-tu ici? dit le petit prince.
를 위의 역자는
「아저씬 여기서 무얼 하세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이 작품 속에서 상대에 따라 tu와 vous를 분명히 구분해 쓰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말을 낮추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바른 번역은
“여기서 뭐 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최종 본문에서 “당신 여기서 뭐 해?”로 갔었음.. 지금여기 보도자료의 본문 인용이 최종인 거죠?)
인 것입니다. 물론 ‘아저씨’라는 말은 이 작품 어디에서도 쓰이지 않습니다.
(pp.320-323, ‘22장 역자노트’에서)
책을 펴내며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