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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저 | 새움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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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작가가 쓴 쉼표 하나도 허투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번역론을 실제 번역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마땅히 귀 기울여봐야 한다. - MD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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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271152 / 352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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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번역에도 정답이 있다!\" “분명하게 쓰는 사람들에게는 독자가 따른다. 난해하게 쓰는 사람들에게는 주석자가 따르고.” -알베르 카뮈 번역계의 오랜 숙제, ‘의역’과 ‘직역’의 문제는 풀릴 것인가? 번역에 정말 답이 있으며, 번역의 ‘정석’이 과연 가능한가? 2014년 기존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는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으며 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이정서 씨가 번역 에세이를 냈다. 제목은 『번역의 정석』. 이정서 씨는 2014년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 발표하면서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이유가 단지 햇볕 때문이었다는 기존의 이해는 오역 때문에 빚어진 오독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뫼르소의 살해 행위는 앞서 ‘친구’를 가해했던 상대의 칼날이 햇볕에 비추어 눈을 찌르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행위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었다. 그로 인해 국내 불문학도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고, 노이즈마케팅의 너울을 썼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들은 감추고 있지만, 이정서 씨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명백히 드러난 마당이다(구글에서 ‘Meursault, self-defense’라고만 쳐봐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뫼르소의 살인이 정당방위로 이해되고 폭넓게 논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그는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를 차례로 번역 발표했는데, 네 작품 모두 평소 그가 주장하는 ‘직역’의 원칙, 즉 ‘원래 작가가 쓴 서술구조를 반드시 지켜줘야 오역이 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번역서를 낼 때마다 번역계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 “실제 번역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이론”이라는 비난을 쏟아냈지만, 실상 번역된 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실제로 저자가 쓴 쉼표 하나까지 살려내는 직역으로 작가의 ‘숨소리’마저 복원해 냈다”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번역서는 다른 어떤 번역서보다 유장하게 ‘잘’ 읽힌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할까?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할 목적으로, 수많은 시간을 고뇌하며 ‘잘 읽힐’, ‘좋은 문장’을 써낸 것인데, 그것을 오히려 번역자가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해체시킨다면, 그게 과연 원래보다 잘 읽히는 좋은 문장일 근거가 어디에 있단 말일까요. 어떤 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을 원작보다 ‘훌륭하다’라고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원래보다 좋은 문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다면 그건 다른 창작물이지 번역이 아닌 것입니다.” (이정서) 우리나라 고전 번역의 민낯, “이것이 현실이다!” 표절에 가까운 ‘번안’, 각색에 가까운 ‘재해석’, 의역이니 이해해야 한다고? 그동안 우리가 읽은 고전 소설은 어떠했을까? 일반적으로 의역이 너무 심해서 작품 고유의 재미와 감동, 교훈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저자는 실제 이 책을 통해 여러 번역서들을 놓고 비교ㆍ분석하면서 한때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한 베스트셀러 번역서가 다른 번역서의 ‘번안’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내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에 대해서도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의역’에 너무 관대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처음 공들여 옮긴 번역이 긴 시간 대접받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번역이라기보다는 그 번역을 참조한 ‘번안’ 혹은 ‘표절’된 번역서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는 경향조차 있습니다. 모두 의역으로 인해 빚어질 수밖에 없는 현상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 밖에도 저자는 ‘어린 왕자’를 지구적 시간개념의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을 역설적이라고 이해하게 만들고, 『노인과 바다』의 소년을 원래 나이보다 훨씬 어린 아이로 인식하게 만든 것 등을 번역가들이 『이방인』처럼 작품 전체를 왜곡하게 만든 사례로 꼽고 있다. 그렇게 ‘의역’, ‘오역’된 번역서의 피해는 고스란히 독자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오역의 가장 큰 문제는 독자들이 틀린 내용을 읽고 책을 잘못 이해한다는 것일 터이다. 단순히 재미를 느끼고 못 느끼고의 문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 그런데 원래는 그러한 재미와 감동이 수십 배 더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하나? 잘못된 번역서를 읽은 독자들이 너무 억울한 거 아닐까? (본문에서) 역자의 권위로 독자를 호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분명하게 쓰는 작가에겐 독자가 따르고 난해하게 쓰는 이에겐 주석자가 따른다. 이 책 앞표지에는 “분명하게 쓰는 사람들에게는 독자가 따르고, 난해하게 쓰는 사람들에게는 주석자가 따른다”는 카뮈의 말이 실려 있다. 이 말은 곧 역자와 평론가의 개입이 작품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작가 스스로 나서 경고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이 카피처럼, 저자 이정서는 이 책을 통해 번역에 있어서 작가가 쓴 서술구조를 지켜주는 ‘직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직역을 하면 잘 읽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직역이 오히려 쉬운 번역일 거라고 오해한다. 그건 번역을 실제 해보지 않아서 갖게 되는 편견이다. 오히려 의역은 직역이 안 될 때 역자들이 쓰는 손쉬운 수단이다. 올바른 직역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적당히 타협하는 것, 그것이 의역이다. (본문에서) 원래 작가가 쓴 문장은 하나이다. 번역은 그 하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다양한 해석이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듯해도, 그런 점에서 대단히 잘못된 말이다. 누가 어떻게 하든 번역서는 그래도 된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우리 번역과 출판을 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그의 고전 번역은 이제 ‘또 하나의 번역’이 아닌 ‘전혀 새로운 번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작가가 쓴 쉼표 하나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된다는 그의 ‘직역’론은 실제 번역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마땅히 귀 기울여보아야 할 터이다.

저자 소개

소설가, 번역가, 출판인 혹은 편집자. 그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가명(이환)으로 소설을 쓰다가, 그 가명과는 또 다른 ‘이정서’라는 이름으로 번역을 시작했고, 뒤늦게 그것이 출판사 대표가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인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아예  그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설과 번역, 그리고 편저, 세 분야에서 휘두르는 그의 펜은 거침없다. 2014년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기존 번역의 오역을 지적하는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으며 출판계와 학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오더니, 그 반발에 자기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연이어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를 번역 출판했다. 
번역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일관되다. 작가가 쓴 그대로의 서술 구조를 지켜주어야만 한다는 것. 역자 임의로 작가의 문장을 해체시키는 번역은, ‘의역’이 아니라, ‘오역’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 의역에 익숙해 있던 기존의 역자나 독자들에게는 아주 낯선 주장인 셈이다. 
따라서 그런 그를 두고 기존 번역계는 이정서의 주장은 ‘실제 번역 현장에서는 불가능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라고 몰아세웠다. 그로 인해 그의 번역에 찬사를 보내는 독자들도 있었지만 일부 독자들 역시 그를 경원시하기도 했다.
이번 책은 그런 점에서 그가 주장하는 ‘직역’이 무엇이며, 작가의 서술 구조를 지키는 번역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실제로 작가가 쓴 문장에서, 쉼표며, 접속사 하나 빼지 않았고, 어떤 수식어도 임의로 빼거나 더하지 않았다. 
그간 그가 쓴 책은 장편소설 <카뮈로부터 온 편지>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소설 출판 24시(공저)>와 번역서 <이방인>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그리고 편저 <단종애사> < 마인>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잘 쓴 소설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따로 노는 것이 없는 것이다. 첫 줄, 첫 단어부터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수백 수천 개의 낱말들이 씨줄과 날줄을 이루어 촘촘히 엮어 가는 것이 소설이다. 원문이 그럴진대 번역이라고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원문은 따로 노는 단어와 문장이 없는데 번역이니까 달라진다면 그것은 어폐가 있는 것이다. (본문 91쪽)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띠지를 두르고 이 책을 처음 세상에 내보내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 한 신문사는 이 사안에 대해 10일 중 6번을 기사화했을 정도였다. 물론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 내용으로. (…) 아무튼 당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는 한 달 가까이 책 검색어 순위 1위가 『이방인』으로 붙박여 있었을 정도였다. (본문 201쪽)

제가 지닌 번역 원칙은 하나입니다.
아무리 긴 문장이라 해도 작가의 문체를 임의로 해체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원문의 쉼표 하나까지 살려야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어쩌면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본문 176쪽)

번역은 오묘한 세계다. 한 문장, 한 단어의 의미를 어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의 창작이니, 원래의 의미를 100%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느니 하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앞서 누가 그런 말을 했건,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번역에 답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떠한 문장이고 작가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썼고, 번역은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 내는 지난한 과정이다. (본문 222-223쪽)


긴 복문을 대하는 우리 역자들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한 문맥을 예로 들어 보자.

There was a faint, barely perceptible movement of the water as the fresh flow from one end urged its way toward the drain at the other with little ripples that were hardly the shadows of waves, the laden mattress moved irregularly down the pool.

위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피츠제럴드가 쓴 문장으로 하나의 쉼표로 이어진 There is~ 문장이다.
이것을 우리 역자들은 이렇게 번역했다.

풀장 한쪽 끝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와 다른 쪽 배수구로 밀려가기 때문에 물이 보일 듯 말 듯 움직이고 있었다. 물결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잔잔한 물살 때문에 개츠비를 태운 매트리스가 불규칙하게 풀장 아래로 움직였다. (김욱동 역, 민음사)

한쪽 끝에서 흘러나오는 신선한 물이 다른 쪽 끝에 있는 배수구를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에 물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거의 물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잔물결들로 인해, 개츠비를 실은 매트리스가 불규칙적으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김영하 역, 문학동네)

두 역자 모두 원래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만들어 의역하고 있다. 또한 두 역자는 the fresh flow를 각각 ‘맑은 물의 흐름’과 ‘신선한 물의 흐름’이라고 했다. 과연 저것이 저런 뜻일까? fresh 때문에 생긴 오해인데 저것이 단순히 저런 뜻이 아니라는 것은 뒤를 보면 알 수 있다. (두 역자는 사실 다른 듯해도 같은 번역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번역을 차용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렇게 틀린 것까지 같을 수는 없다.)
또한 마지막 줄의 the laden mattress를 두 역자는 각각 ‘개츠비를 태운 매트리스’ ‘개츠비를 실은 매트리스’라고 옮겼다. 이런 문장을 만났을 때, 작가가 왜 저기서 굳이 ‘laden(짐을 실은, 적재한)’이라는 수식어를 썼을까, 역자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당연한 역자의 자세일 터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모두 직접적으로 ‘개츠비’를 싣고 있다고 임의로 의역해 버린 것이다.
laden은 개츠비가 이미 죽어서 짐짝 같은 것이 되었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작가는 그것을 앞서 쓴 the fresh flow(선명한 피의 흐름)과 연결시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역자는 이런 중요한 문학적 표현(은유적 표현)을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린 것이다.

직역하면 이렇다.

거기에서는 한쪽 끝으로부터 선명한 핏물이 흐르는 동안 거의 인지하지 못할 만큼 미미한 물의 움직임이 물결 그림자조차 없는 잔물결과 함께 반대쪽 배수구를 향해 그것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고, 짐을 실은 매트리스는 수영장 아래로 불규칙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정서 역)
(본문 ‘문학적 은유를 죽여 버리는 번역’에서)

목차

저자의 말

1부 번역의 정서
1. 세계 최초
2. 성모송에 대하여
3. 표절일까, 우연한 실수일까?
4. 꿈보다 해몽
5. 표절과 번안
6. 의역의 유혹
7. “Christ”에 대해
8. 『노인과 바다』에서 but의 쓰임
9.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빌 게이츠와 무라카미 하루키
10. 피해자들
11. 소설의 맛이 죽는 것은 오히려 윤문된 문장 때문이다
12. 오래된, 고마운 댓글
13. 이정서는 영웅이다?
14. 『노인과 바다』 전체 번역을 하게 된 계기
15. 모래알처럼 많은 『어린 왕자』 번역서에 또 한 권을 더하며
16.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17. 번역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
18. 헤밍웨이 문체에 대해
19. 오역의 문제가 무엇일까?
20. 선입관
21. 역자 모집 이벤트―번역 원고를 보내주세요
22. ‘이건 번역이 아니다’
23. The Remains of the Day
24. 살라마노 영감의 개
25. 불행한 일
26. 우리 번역의 민낯
27. 영어에서의 분수
28. 의역은 얼마나 위험한가?
29. “Now!”에 대하여
30. 번역 비판
31. 직역과 의역의 차이
32. 인간의 ‘죄악(sin)’
33. 편집자의 역할
34. 네티즌의 수준
35. 『어린 왕자』와 『이방인』 영어 번역의 한계
36. 카뮈 『이방인』을 영어로는 절대로 바르게 번역할 수 없는 이유
37. 어느 학보사와의 인터뷰
38. 『위대한 개츠비』 속 데이지를 위한 변명
39. ‘madman’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40. 『위대한 개츠비』 속 울프심을 위한 변명
41. 소설은 우선 소설로 보아야 한다
42. 영어의 존대어

2부 번역의 정석
1. 『노인과 바다』에 대한 깊은 오해
2. 우리가 읽은 『이방인』이 카뮈의 『이방인』이었을까?
3. 『이방인』 미국판 서문에 대해
4. 왜 위대한 개츠비일까?
5. 『어린 왕자』 헌사의 어투
6. 『이방인』 개정판을 내며
7. 『노인과 바다』 번역서를 내면서
8. 높임말과 낮춤말
9. 이것은 의역일까, 오역일까?
10. 문학적 은유를 죽여 버리는 번역
11.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

3부 이방인의 『이방인』 번역
1.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엉터리가 아니었다.”에 대한 반론
2. 카뮈 『이방인』 이정서의 사과?한겨레신문 고 기자님께
3. 뫼르소의 살해 행위는 정말 태양 때문이었나?
4. 김화영 교수님, 이정서를 고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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