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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 - 한국문학을 권하다 18

시리즈 : 한국문학을 권하다 [43]

이태준 저 | 애플북스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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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353623 / 600쪽 / 780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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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람과의 관계에 피로감을 느낄 때 이태준의 소설은 삶의 청량제이다.” _ 평론가 고명철 해방 전후, 치열했던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시대정신과 연민의 정서 고명철? 평론가의 편지글 형식으로 쓴 쉽고 재미있는 작품 해설 수록 책 소개 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사람과의 관계에 피로감을 느낄 때 이태준의 소설은 삶의 청량제이다.” _ 평론가 고명철 해방 전후, 치열했던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시대정신과 연민의 정서 고명철 평론가의 편지글 형식으로 쓴 쉽고 재미있는 작품 해설 수록 책 소개 는 누구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즐겁게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즐겁고 친절한 전집’을 위해 총서 각 권에는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0명의 작가들이 “내 생애 첫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로 쓴 각 작품에 대한 인상기, 혹은 기성작가를 추억하며 쓴 오마주 작품을 어려운 해설 대신 수록하였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현재 단행본으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까지도 발굴해 묶어 국내 한국문학 총서 중 최다 작품을 수록하였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해방 전후》에는 쉽고 재미있는 평론 쓰기로 유명한 고명철 교수의 편지글 형식으로 쓰인 이태준 작품 해설이 담겨 있다. 더불어 이태준 작품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감동을 한껏 드러내며 즐거운 문학 읽기를 권하고 있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월북 작가라는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그래서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낯선 작가로 남아 있는 상허 이태준은 오늘날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완성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태준 중단편전집 2 《해방 전후》는 이태준이 1936년에 발표한 단편 을 시작으로 1948년에 출간된 에 이르는 작품들을 시간순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 중 소년소설들을 뒤쪽에 따로 묶었다. 구인회 시절의 모더니즘 문학부터 일제 말기의 문학적 갈등을 표출한 작품들과 해방 이후 참여문학에 이르기까지 시대 변화에 따른 한 작가의 문학적 성찰을 생생하게 담았다. 출간 의의 및 특징 모더니즘 계열의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43년 붓을 꺾고 시골에 칩거한 이태준은 해방이 되자 사회 활동에 열성을 보이며 자기반성의 작품을 쓴다. 그러나 절필하기 전에 비하면 해방 후, 또는 월북 이후의 작품은 분량이 매우 적은 데다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1980년대 말 냉전 종식과 함께 뒤늦게 빛을 보기 전까지 그의 작품들은 ‘금서’로 묶여 있었다. 작가 이태준의 문학세계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그가 쓴 작품들을 모두 읽었을 때라야 가능하다. 한국문학을 권하다 《해방 전후》는 이태준의 주요 작품으로 꼽히는 , , , 등 1936년부터 1948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최대한 발굴하여 모아서 수록했다. 애플북스의 는 그동안 전체 원고가 아닌 편집본으로 출간되었거나 잡지에만 소개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 없는 작품들까지 최대한 모아서 총서로 묶었다. 현재 발간된 한국문학 전집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한 전집이라 하겠다.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으로도 함께 제작되어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기업 자료실에도 꼭 필요한 책이다. 내용 소개 이태준은 을 통해 서 참의·안 초시·박희완 영감의 꿈과 좌절을 담담하게 그림으로써 부동산 투기 문제와 무너져 가는 가족 관계를 폭로한다. 은 소설가인 ‘현’이 평양에서 친구 박과 김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내용이다. 친일적으로 변한 부회의원 김과 현의 대화를 통해 작가의 강한 민족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실재했던 ‘만보산 사건’을 다룬 은 고향을 등지고 만주 장춘으로 떠난 유창권 일가의 이야기인 동시에 만주 땅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 ‘한 작가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은 에서 일본 식민지 말기에 일제의 회유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작가 ‘현’은 조국이 해방되자 지난 잘못을 반성하듯 열정적으로 사회 활동에 헌신한다. 이는 이태준의 자기 고백적인 소설 작품으로, 해방 직후에 문인들이 일제 말기 자신의 친일 행위를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던 몇 안 되는 작품들 중의 하나다. 개성의 농촌 마을 가재울이 배경인 는 주인공 억쇠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가난한 농민들이 어떠한 핍박을 받았는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이루어진 토지개혁을 통해 그 같은 모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이태준의 후기 중단편 작품들은 ‘조선적 애수’에서 벗어나 ‘역사적 소명’에 자신을 던져버린 그의 문학적 기록인 것이다.

저자 소개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책 속에서

코스모스 피는 정원 p. 177
옥담은 거의 날아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울컥 목에 막히는 것이 있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벙어리가 되어 키 큰 박사에게 가 뛰어올라 매달리기만 하였다. 팔로가 아니라 영혼으로 매달림인 듯 옥담은 눈물 솟는 눈을 한참이나 꼭 감고 뜨지 못하였다.
장 박사의 집에서는 전과 같이 ‘하날 가는 밝은 길이’ 노래가 무시로 흘러나왔다. 동네에서들도 여전히 피아노 치는 집, 노래 잘하는 집, 코스모스 많이 피는 집, 그리고 ‘왜 그 딸하구 아버지하구 동무처럼 밤낮 손목 잡고 산보 나오는 집 말야’ 하는 것이었다.

뒷방마님 p. 348
윤의 집 식구들은 뒷방마님을 잊은 적이 있어도 뒷방마님만은 윤의 집을 잊은 적이 없는 듯, 매달은 아니라도 매 철은 따라서 꼭꼭 와주었다. 손목에 벌써 길든 지 오랜 염주를 걸고 그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몰라 잠시를 나와도 놓는 법이 없다는 《밀다심경》 책보를 들고, 자기 양산은 겨울이나 여름이나 구별이 없으면서도 윤의 옷을 보고는 으레 봄이면 ‘여태 솜것을 못 벗었구나!’ 가을이면 ‘여태 솜것을 못 입었구나!’ 하고 혀를 쯧쯧 차곤 했다. 한번은 ‘돈이 다 어딜 가 썩누?’ 하였다. 윤이 ‘돈은 있으면 멀 하실려우?’ 물었더니 ‘너이 아버진 물 쓰듯 하던 걸 넌 지금이 한참인데 얼마나 답답허겠니!’ 하였고, 윤이 ‘이담 내 돈 잘 벌어 잘 쓰는 걸 보구 돌아가슈’ 하였더니 ‘그래라, 그땐 날 더두 말구 삼 원만 다구’ 하였다.

해방 전후 p. 391
“그런데 어쩌자구 우리 현 공은 공산당으로 가셨소?”
“제가 공산당으로 갔다고들 그럽니까?”
“자자합디다. 현 공이 아모래도 이용당허는 거라구.”
“직원님께서도 절 그렇게 생각허십니까?”
“현 공이 자진해 변했을는진 몰라, 그래두 남헌테 넘어갈 양반 아닌 건 난 알지요.”
“감사헙니다. 또 변했단 것도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변했느니, 안 변했느니 하리만치 해방 전에 내가 제법 무슨 뚜렷한 태도를 가졌던 것도 아니구요. 원인은 해방 전엔 내 친구가 대부분이 소극적인 처세가들인 때문입니다. 나는 해방 후에도 의연히 처세만 하고 일하지 않는 덴 반댑니다.”

농토 p. 424
진날 마른날 농사 뒤치개를 했고 조석으로 양식 됫박을 드는 아낙네들은 저희 마당 가운데 살진 도야지처럼 나둥그러지는 곡식 섬들을 볼 때 이날처럼 흐뭇하고 즐거운 날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천륜 정해지듯 한 지주에게 반을 주는 것도 대범한 사내들 속과는 달라 품속엣 것을 헤집어 꺼내는 것처럼 아프거늘 반 남는 아홉 가마니에서 벌써 여섯 가마니가 날아가게 되니 탕개가 풀리고 나중엔 악이 받칠밖에 없다. 억쇠는 살인이라도 낼 것 같은 점둥이 어머니나 점둥이 아버지에게 말을 붙여볼 기운이 나지 않는다. 점둥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 것은, 보나 안 보나 홧김에 이 억울한 타작마당에서 피해버린 것이었다.

목차

목차
오늘, 나는 이태준의 소설에 매혹되다_ 고명철
삼월
까마귀
바다
장마
철로
복덕방
코스모스 피는 정원
사막의 화원
패강랭
영월 영감
아련
농군
밤길
토끼 이야기
사냥
석양
무연
돌다리
뒷방마님
해방 전후
농토
어린 수문장
불쌍한 소년 미술가
슬픈 명일 추석
쓸쓸한 밤길
불쌍한 삼형제
외로운 아이
몰라쟁이 엄마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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