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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전 5권 세트

이오덕 저 | 양철북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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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1962년 이오덕 선생의 시작으로부터 2003년 8월 인간 이오덕의 생이 마감되는 그때까지 - 에디터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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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개정판 정보

이오덕 일기 이오덕 저 | 양철북 | 202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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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720913 / 1500쪽 134 x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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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는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무능한 교육행정에 맞서던 때 쓴 일기다.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는 1978년부터 1986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 쓸 수 있도록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때 쓴 일기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다.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는 1992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말을 바로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과 교육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으며 삶과 사상을 정리하면서 쓴 일기다.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돌아가실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는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산골 학교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아이들의 삶을 가꾸고, 무능한 교육행정에 맞서던 때 쓴 일기다.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는 1978년부터 1986년 학교를 떠날 때까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풀어 쓸 수 있도록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때 쓴 일기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다.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는 1992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말을 바로 살리는 일이야말로 사람과 교육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으며 삶과 사상을 정리하면서 쓴 일기다.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는 1999년부터 2003년 8월 돌아가실 때까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쓴 일기다. 추천사 한평생을 하얀 칼날 위를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신 분. 돌아가시기 사흘 전 “꼬리뼈, 등뼈가 아프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는 밤에도 당신 삶의 기록을 놓지 않으신 분. 장엄하다. 그분의 꼼꼼하고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이 말이 맨 먼저 떠올랐다. _ 이상석(부산 신도고 교사)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그의 눈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바닥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 일기에는 나날의 생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둘레 사람과 그들의 말 따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론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_ 탁동철(청호초 교사)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이 나올 때마다 다 샀다. 《이오덕 교육일기》, 《우리 글 바로 쓰기》,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간에 오간 편지글 모음, 그리고 이오덕 선생이 엮은 아이들 글 모음과 산문집은 헌책방을 뒤져 샀다. 이제 또다시 선생의 글이 나온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오덕 선생의 골수 ‘팬’인 성싶다. _ 공선옥(소설가) 간교한 말, 앞뒤 안 맞는 말, 무지한 말, 감성에 깊이 닿지 않는 말이 판치면서 학교에서 청소년이, 농촌에서 농민이, 북한에서 동포가, 자연에서 새와 벌레가 시들어 가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바른 삶에서 나온 말과 진실이 담긴 글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이오덕 선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_ 홍순명(전 풀무학교 교장)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이오덕 일기》의 탄생 과정 크고 두꺼운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슬며시 넘겨 본 1960년대 노트 일기장에는 습기를 먹어 번진 채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빼곡히 차 있었고, 또 다른 1980년대 일기장에는 날짜에 맞춰 손수 다녀왔던 강연 팸플릿과 오린 신문을 붙인 흔적들이 보였다. 2000년대에 쓴 손바닥만 한 수첩 일기장을 들추니 단정하게 쓴 깨알 같은 글씨들과 함께 쓸 자리가 모자란 곳에 종이를 오려 붙여 더 쓴 흔적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낡은 책장 속에 이처럼 켜켜이 먼지 쌓인 채 보관된 일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2011년이다.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42년 동안 날마다 쓴 일기였다. 처음에는 ‘와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42년의 기록’이라는 일기의 힘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장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만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42년의 시간. 원고지로 37,986장, A4 용지로 4,500장.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의 편집자가 다른 일은 제쳐두고 고스란히 일기를 읽어 나가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전체를 세 번 정도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두 번 정도 더 꼼꼼히 읽고 가리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던 이오덕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이오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기를 가려 뽑는 기준으로 시대와 맞닿아 쓴 역사 기록 쪽에 자꾸 눈길이 갔다. 워낙 하루 동안 겪은 일, 보고들은 일, 생각한 일 따위를 빠짐없이 꼼꼼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던 터라 교육 운동, 아동문학사, 우리 말 운동 따위와 관련하여 남길 만한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일기 읽기에 흠뻑 빠져들 때쯤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려 뽑는다. 둘째,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 이야기에서 겪은 일을 더 또렷하게 붙잡아 쓴 글을 뽑는다. 셋째, 한 개인의 역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중요한 행적을 가능하면 빼지 않는다. 이런 기준으로 세 번에 걸쳐 날짜마다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를 했고, 세모와 가위표 된 날짜 일기도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 끝에 걸렀다. 그러고 나서도 모자라 살아 있을 때 이오덕과 함께했던 동무와 따르던 선생님 몇 분에게 《이오덕 일기》가 이오덕의 온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 《이오덕 일기》(모두 5권)가 세상에 나오게 되

저자 소개

1925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습니다. 1943년 영덕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초등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교장을 지냈습니다. 

1954년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처음 발표하였고, 이후 1966년 《별들의 합창》, 1969년 《탱자나무 울타리》 같은 동시집을 출간하였습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한국일보>에 수필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1983년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퇴임 후에는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습니다.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던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의 잔재를 지적하고, 이를 걸러내기 위해 1992년 《우리글 바로쓰기》와 1995년 《우리 문장 바로쓰기》를 집필하였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쓰는 ‘글짓기’라는 용어를 ‘글쓰기’로 고쳐 쓸 것을 주장하였고, 어린이들이 쓰는 말과 글 자체를 뛰어난 문학작품이라 여겨 1979년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1978년 《일하는 아이들》 같은 10여 권에 이르는 어린 제자들의 문집을 출판했습니다. 아동문학의 진로와 관련하여 1977년 출판한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기존 아동문학을 ‘겨레의 운명이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유아독존의 심리 세계만을 희롱하여 이국적인 것, 환상적인 것, 탐미적인 것, 혹은 감각적인 기교만을 존중하는 경향’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시 정신을 옹호했습니다.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 《삶을 가꾸는 어린이문학》,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글》, 《교사와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이오덕 유고시집》, 《삶과 믿음의 교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같은 5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한국아동문학상(1976), 단재상(198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상(1999), 은관문화훈장(2002)을 받았습니다.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무너미 마을 고든박골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책 속에서

지금은 4시 5분 전, 아무도 없는 교실에는 때 묻고 찌그러진 조그만 책상들이 60여 개 나란히, 꼭 아이들이 귀엽게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뒤편에는 오늘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다. 거기에는 운동장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온갖 모습들이 재미있는 선과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전시판 밑에는 조그만 손으로 주물러 짜서 걸어 놓은 걸레가 널려 있다.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온갖 희망과 걱정과 슬픔을 안고 67명의 어린 생명들은 이 교실을 찾아올 것이다. 교사라는 내 위치가 새삼 두려워진다. 이렇게 괴로운 시대에 내가 참 어처구니없는 기계가 되어 어린 생명들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된다.
두고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_《1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1962년 9월 21일 일기에서, 15쪽

42년의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_《2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1986년 2월 27일 일기에서, 368~369쪽

지금 저녁 10시 반, ‘밖에서 들어온 말의 문제’란 원고의 중요 부분을 거의 다 썼다. 모두 약 190장. 앞으로 10장 정도만 쓰면 한자 말과 일본 말 문제는 다 쓰게 된다. 이것을 발표할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아무 데도 싣겠다고 하는 데가 없다. 없어도 계속 써야 한다. 안 되면 조그만 책자로라도 만들고 싶다. 우리 말을 지키고 살려 나가는 문제가 얼마나 큰가를 나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내 남은 목숨을 여기다 걸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제저녁에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사람도 못 쓰는 시, 나만이 쓰는 시를 꼭 쓰고 싶다. 내 외로움, 아픔, 그리고 고난당하는 생명을 나는 노래하고 싶다. 내가 아니면 그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짓밟혀 죽어 가는 생명들을 나는 노래해야지. 아름다운 그 생명을 노래해야지.
_《3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1988년 2월 14일 일기에서, 143~144쪽

오늘 종일 집에서 작품을 읽으면서, 내년에 옮겨서 살게 될 곳과 집을 생각해 보았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좀 넓은 방 하나와 조그만 방 하나 그리고 부엌과 화장실, 이런 집을 다음 달에는 지어 놓고 싶다. 큰방에는 책을 모두 갖다 놓고, 작은방은 내가 자는 곳이다. 겨울이면 이 작은방에 장작으로 군불을 때 놓고, 온종일 이불 덮어쓰고 책 읽고 글 쓴다. 남쪽으로 난 영창은 나지막하게 해서 방바닥이 아침부터 환하게 볕이 들어오도록 하고 싶다. 여름이면 채소를 가꾸고, 가을이면 산에 올라가 밤을 줍고……. 내가 평생 그리워하던 그 삶을 70 고개를 넘어서야 실현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어린애처럼 가슴이 뛴다. 아, 어서 한 해가 갔으면 좋겠다.
_《4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1995년 1월 29일 일기에서, 209쪽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또 다른 한평생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또 한평생을 살았으니 그것을 대강이나마 적는다.
“의사 선생님, 더 얘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암이란 말 듣고 내 마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아주 평온했어요. 하루하루 쇠잔해져서 이제는 다시 일어날 수 없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죽을 준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살 만큼 살았고, 이 세상의 모든 인연과 헛된 욕망 다 버리고 또 다른 저세상으로 가는 것 참 즐거워요. 내가 죽을 때는 조금도 슬퍼 말고, 모두 웃으면서 흙에 묻어라, 그날은 기쁘게 잔치를 해라고 해요.”
아직도 오늘 하루 내 인생은 많이 남았다.
집에 와서 누워서 음악을 듣고, 하루 일을 대강 적고, 정우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이야기를 하고, 발 목욕을 하면서 앞으로 서둘러야 할 일을 의논했다. 내 삶의 한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_《5 나는 땅이 될 것이다》2003년 8월 19일 일기에서, 380~382쪽


목차

목차
1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1부 1962년 ~ 1970년
ㆍ 때 묻고 찌그러진 조그만 책상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1962년 9월 21일 15 ㆍ 저녁때가 되어도 아이들은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1964년 6월 6일 41 ㆍ 바쁜 농사일도 그만두고 10리, 20리의 산길을 투표하러 가는 농민들 1969년 10월 17일 74 ㆍ 눈이 와서 온 산천이 하얗다. 이런 날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1969년 12월 15일 76
2부 1971년 ~ 1973년
ㆍ 우리 아버지 연탄 가지러 가요 1971년 3월 18일 128 ㆍ 선생님, 몇 번 씁니까 1971년 4월 30일 158 ㆍ 이 벙어리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1971년 10월 23일 194 ㆍ 모두 모여서 같이 가야 돼요 1972년 6월 8일 209 ㆍ 슬픈 얘기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요 1973년 1월 18일 230 ㆍ 밥 많이 달라고 해서 많이 먹어라 1973년 3월 13일 236
3부 1974년 ~ 1977년
ㆍ 눈 쌓인 재를 넘고 산길을 걸어오면서 1974년 1월 29일 275 ㆍ 동화책 하나 변변히 읽지 못한 아이들 1974년 2월 11일 277 ㆍ 아이 엄마는 빨랫거리를 이고 나는 연우를 업고 1974년 5월 12일 284 ㆍ 서울에 가서 살고 싶어졌다 1975년 2월 17일 292 ㆍ 그래도요, 북괴보다 덜합니다 1977년 11월 2일 379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95
2권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1부 1978년 ~ 1979년
ㆍ 그저께도 험한 산길을 걸어오고, 오늘도 10리 넘는 길을 갔다 오고 1978년 6월 26일 27 ㆍ 아이들에게 평생 서울 같은 곳 안 가도 자랑 가지도록 1979년 2월 6일 34 ㆍ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다 1979년 7월 9일 49 ㆍ 자기의 삶은 모든 사람의 삶에 이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1979년 12월 29일 96
2부 1980년 ~ 1981년
ㆍ 검붉은 게 건강하고 좋잖아요 1980년 2월 13일 134 ㆍ 광주 사건이 해결이 안 난 것같이 말하는 듯했다. 오늘 저녁 소쩍새는 저렇게 피를 토하듯 울고 있구나! 1980년 5월 22일 174 ㆍ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것이 내 운명인지 모른다 1981년 5월 24일 255 ㆍ 달빛 속에서 운동장을 거닐면서 남은 내 생을 생각했다 1981년 8월 15일 275 ㆍ 아이들이 심사하면 더욱 재미있고 잘될 것 아닌가 1981년 9월 3일 284
3부 1982년 ~ 1986년
ㆍ 아이들 글을 보면서 살아온 것을 진정 다행으로 생각한다 1985년 4월 10일 312 ㆍ 퇴직 서류를 내고 나니 한층 더 외로워진 것 같다 1985년 12월 16일 345 ㆍ 가난하고 불행한 아이들을 나는 앞으로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1986년 1월 15일 351 ㆍ 부끄러운 교육자 생활을 장사 지내고 1986년 2월 26일 368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71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1부 1986년 ~ 1987년
ㆍ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여 정직하게 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1986년 10월 11일 58 ㆍ 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1987년 6월 26일 97 ㆍ 아, 이럴 때 힘차게 불러볼 애국가는 없는가 1987년 6월 26일 100 ㆍ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1987년11월6일 129
2부 1988년 ~ 1989년
ㆍ 종일 방 안에서 ‘우리 말을 우리 말이 되게 하자’ 원고를 썼다. 밤 11시 반까지 1988년 1월 17일 137 ㆍ 나는 모국어의 미아(迷兒)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1988년 8월 27일 179 ㆍ 종로에서 이발을 했다. 이발료는 아직도 천 원이었다 1988년 11월 25일 196 ㆍ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1989년 6월 8일 219
3부 1990년 ~ 1991년
ㆍ 권 선생이 저녁밥을 해 왔는데, 간고등어 구운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1990년 1월 5일 245 ㆍ 아이들이 쓰는 이야기글이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동화가 될 수밖에 없구나 1990년 3월 13일 259 ㆍ 무엇 하나 세상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말과 글조차 돌이킬 수 없도록 병들어 버렸으니! 1990년 8월 15일 277 ㆍ 올해도 여전히 일에 쫓기면서 살아갈 것 같다 1991년 1월 1일 283 ㆍ 종일 ‘동시란 무엇인가?’란 논문 문장을 다듬었다. 내가 이런 글을 썼던가 부끄러워졌다 1991년 8월 21일 325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43
4권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1부 1992년 ~ 1993년
ㆍ 5년쯤 썼던 안경을 잃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다. 이래서 옛사람들은 바늘을 제사 지내는 글도 썼겠다 1992년 9월 19일 40 ㆍ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말과 우리 삶의 정서를 이어 주어야 한다 1993년 1월 1일 69 ㆍ 삶이 무엇이냐구요? 밥 먹고 일하고 이야기하고 하는 것, 이것이지요 1993년 2월 18일 78 ㆍ 사무실 구해서 우리 말 바로잡는 운동을 할 생각을 이것저것 하면서 그대로 날을 새웠다. 어린애같이 가슴이 부풀었다 1993년 3월 27일 97
2부 1994년 ~ 1996년
ㆍ 42년 동안 몸부림치면서 살아온 것이 일본 말 귀신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을 1994년 3월 15일 163 ㆍ 작품을 빈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1994년 12월 22일 204 ㆍ 오늘이 동짓날이다. 참 오랜만에 외롭다는 느낌이 든다 1994년 12월 22일 240 ㆍ 선생님, 제가 골덴 바지를 떼운 것 입고 가니까 ‘너 궁둥이에 해바라기꽃 ?구나’ 하신 것 생각나셔요? 1996년 5월 9일 250 ㆍ 부끄러운 저의 이름을 빼어 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 6월 6일 257
3부 1997년 ~ 1998년
ㆍ 산벚꽃 쳐다보니 눈물이 난다. 새잎들 쳐다보니 눈물이 난다 1997년 4월 25일 305 ㆍ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글을 써야 하나’란 제목으로 1997년 5월 4일 307 ㆍ 올해는 신문 보는 데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1997년 12월 31일 333 ㆍ 오늘 하루를 살다가 죽자 1998년 2월 22일 338 ㆍ 내 젊은 날 가장 큰 감격으로 맞이한 날,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아난 날이다 1998년 8월 15일 357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75
5권 나는 땅이 될 것이다
1부 1999년
ㆍ 우리 말 바로 쓰자고 하는 사람은 마음도 참 고와요 1999년 1월 15일 14 ㆍ 아, 나는 아직도 살아서 이 봄에 살구꽃을 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1999년 4월 16일 25 ㆍ 어쩌면 분노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다 분노가 없으면 죽은 목숨 아닌가? 1999년 8월 8일 54 ㆍ 사람 한 사람이 옮기는 데 무슨 짐이 이렇게도 많은지 1999년 8월 23일 62 ㆍ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가! 외로운 것,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구나! 1999년 10월 7일 72
2부 2000년 ~ 2001년
ㆍ 긴 세월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 저 소쩍새 소리를 꼭 시로 쓰고 싶다 2000년 5월 12일 130 ㆍ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동화를 쓰고 싶어요 2000년 12월 13일 155 ㆍ 내 나이가 지금 일흔일곱이다. 아직도 살아 있는 이 몸이 너무나 고맙다 2001년 1월 5일 166 ㆍ 날마다 한 편씩 시를 쓰자. 그래야 내 정신을 긴장시켜서 기록을 남길 수 있지 않겠나 2001년 1월 27일 172 ㆍ 오늘도 곶감 내다 말리고, 낮에는 팥 삶아 냉장고에 둔 것 새로 끓이고 2001년 11월 7일 219
3부 2002년 ~ 2003년
ㆍ 아, 이제 몇 번 더 이날을 보낼 수 있을까 2002년 8월 15일 275 ㆍ ‘쉬운 말로 세상을 확 바꾸자’라는 제목으로 2002년 12월 22일 304 ㆍ 아버지 밥 못 잡수신다고 하면 좀 야단쳐, 나는 권 선생이 그토록 내 가까이 있었는 줄 몰랐다 2003년 6월 17일 347 ㆍ 내 삶의 한 평생, 오늘 하루를 끝낸 것이다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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