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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3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오덕 저 | 양철북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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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개정판 정보

이오덕 일기 이오덕 저 | 양철북 | 202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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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720883 / 356쪽 134 x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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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다. 추천사 한평생을 하얀 칼날 위를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신 분. 돌아가시기 사흘 전 “꼬리뼈, 등뼈가 아프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는 밤에도 당신 삶의 기록을 놓지 않으신 분. 장엄하다. 그분의 꼼꼼하고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이 말이 맨 먼저 떠올랐다. _ 이상석(부산 신도고 교사)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그의 눈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바닥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 일기에는 나날의 생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둘레 사람과 그들의 말 따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론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_ 탁동철(청호초 교사)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이 나올 때마다 다 샀다. 《이오덕 교육일기》, 《우리 글 바로 쓰기》,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간에 오간 편지글 모음, 그리고 이오덕 선생이 엮은 아이들 글 모음과 산문집은 헌책방을 뒤져 샀다. 이제 또다시 선생의 글이 나온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오덕 선생의 골수 ‘팬’인 성싶다. _ 공선옥(소설가) 간교한 말, 앞뒤 안 맞는 말, 무지한 말, 감성에 깊이 닿지 않는 말이 판치면서 학교에서 청소년이, 농촌에서 농민이, 북한에서 동포가, 자연에서 새와 벌레가 시들어 가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바른 삶에서 나온 말과 진실이 담긴 글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이오덕 선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_ 홍순명(전 풀무학교 교장)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이오덕 일기》의 탄생 과정 크고 두꺼운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슬며시 넘겨 본 1960년대 노트 일기장에는 습기를 먹어 번진 채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빼곡히 차 있었고, 또 다른 1980년대 일기장에는 날짜에 맞춰 손수 다녀왔던 강연 팸플릿과 오린 신문을 붙인 흔적들이 보였다. 2000년대에 쓴 손바닥만 한 수첩 일기장을 들추니 단정하게 쓴 깨알 같은 글씨들과 함께 쓸 자리가 모자란 곳에 종이를 오려 붙여 더 쓴 흔적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낡은 책장 속에 이처럼 켜켜이 먼지 쌓인 채 보관된 일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2011년이다.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42년 동안 날마다 쓴 일기였다. 처음에는 ‘와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42년의 기록’이라는 일기의 힘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장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만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42년의 시간. 원고지로 37,986장, A4 용지로 4,500장.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의 편집자가 다른 일은 제쳐두고 고스란히 일기를 읽어 나가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전체를 세 번 정도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두 번 정도 더 꼼꼼히 읽고 가리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던 이오덕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이오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기를 가려 뽑는 기준으로 시대와 맞닿아 쓴 역사 기록 쪽에 자꾸 눈길이 갔다. 워낙 하루 동안 겪은 일, 보고들은 일, 생각한 일 따위를 빠짐없이 꼼꼼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던 터라 교육 운동, 아동문학사, 우리 말 운동 따위와 관련하여 남길 만한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일기 읽기에 흠뻑 빠져들 때쯤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려 뽑는다. 둘째,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 이야기에서 겪은 일을 더 또렷하게 붙잡아 쓴 글을 뽑는다. 셋째, 한 개인의 역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중요한 행적을 가능하면 빼지 않는다. 이런 기준으로 세 번에 걸쳐 날짜마다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를 했고, 세모와 가위표 된 날짜 일기도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 끝에 걸렀다. 그러고 나서도 모자라 살아 있을 때 이오덕과 함께했던 동무와 따르던 선생님 몇 분에게 《이오덕 일기》가 이오덕의 온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 《이오덕 일기》(모두 5권)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가까운 일기를 6,200장 정도로 줄인 것이다. 2년 8개월이 걸렸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만큼 《이오덕 일기》를 통해 이오덕이 한 사람으로 우리 삶 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오덕 일기》, 어떻게 다섯 권으로 구성하게 되었을까? 《이오덕 일기》는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교사로 살았던 24년 동안의 기록(1, 2권)이고, 두 번째는 학교를 떠난 뒤 경기도 과천에서 살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13년 동안의 기록(3, 4권), 세 번째는 충주 무너미 마을로 내려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쓴 5년 동안의 기록(5권)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행적 혹은 장소에 따라 세 권으로 내는 걸 고민했다. 하지만 일기를 읽어 나갈수록 시기에 따라 선

저자 소개

1925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습니다. 1943년 영덕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초등교원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교장을 지냈습니다. 

1954년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처음 발표하였고, 이후 1966년 《별들의 합창》, 1969년 《탱자나무 울타리》 같은 동시집을 출간하였습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한국일보>에 수필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1983년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퇴임 후에는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습니다.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던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의 잔재를 지적하고, 이를 걸러내기 위해 1992년 《우리글 바로쓰기》와 1995년 《우리 문장 바로쓰기》를 집필하였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쓰는 ‘글짓기’라는 용어를 ‘글쓰기’로 고쳐 쓸 것을 주장하였고, 어린이들이 쓰는 말과 글 자체를 뛰어난 문학작품이라 여겨 1979년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1978년 《일하는 아이들》 같은 10여 권에 이르는 어린 제자들의 문집을 출판했습니다. 아동문학의 진로와 관련하여 1977년 출판한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기존 아동문학을 ‘겨레의 운명이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유아독존의 심리 세계만을 희롱하여 이국적인 것, 환상적인 것, 탐미적인 것, 혹은 감각적인 기교만을 존중하는 경향’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시 정신을 옹호했습니다.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 《삶을 가꾸는 어린이문학》,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글》, 《교사와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이오덕 유고시집》, 《삶과 믿음의 교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같은 5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한국아동문학상(1976), 단재상(198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상(1999), 은관문화훈장(2002)을 받았습니다.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무너미 마을 고든박골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책 속에서

오늘 저녁에 초교협 운영위원 모임이 있는 것이다. 차례차례 의견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는 다음 몇 가지를 말했다.
첫째, 가장 먼저 확실하게 밝혀 두어야 할 것은 이 회의 기본 목표와 교육 운동의 방향이다. 나는 이 회의 기본 목표가 아이들을 참된 민주 시민으로 기르기 위한 교육이 잘 되도록 즉, 민주교육을 실현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기본적 운동 방향으로서 민주교육의 실천을 도와주고, 민주교육을 방해하는 모든 문제를 협의해서 해결하고 장애를 제거해 주는 데 있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이러한 운동은 현장의 교육 실천 운동과 외부에 대한 행정 지원 운동의 두 측면이 있는데, 당분간 외부 운동에 치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외부의 운동은 어디까지나 현장의 민주교육 실천을 돕고, 그 실천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어느 것이 가장 급한가를 생각하고 협의해서 급한 것부터 해결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나는 이 초교협이 노동조합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교사들의 교육 운동이 교원들 자신의 이권 획득을 위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우리 교원들이 아이들 비인간적으로 교육하는 일에 협력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이 엄연한 사실을 덮어 두고서는 결코 민주교육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본다. 행정 권력 다음에 아이들 잡는 교육을 한 공범자가 교사요 교육자다. 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민주교육 하겠다고 나섰다면 마땅히 이 사실을 시인하고 참회하여야 학부모들도 교사들을 믿고 따를 것이다.
때가 좀 지나면 교육자들도 봉급을 올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 교육계에 유능한 인재가 모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나는 노동자,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노동자, 농민들보다 대우를 잘 받는 사람들이 그 노동자, 농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데 그들 위해 함께 싸워 주는 것은 몰라도 함께 나서서 자기들도 월급 올려 달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교원 입장도 그렇다.
아이들 위한 교육 운동이라야지 교사들 위한 교육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_ 1987년 8월 27일 일기에서, 117~119쪽

우리 말의 문제를 두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말이란 것이 우리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이다. 그 다음이 의식이고, 다음이 말이고 글이다. 즉, 삶→의식→말→글 이렇게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역행하는 수가 있다. 삶←의식←말←글 이렇게 말이다. 분명히 우리의 역사에서 이 역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역행은 잘못된 사회, 병든 역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문화의 역행 속에서 사회와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역시 이 역행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글과 말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는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역행 현상은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말글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삶이 단박에 바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말과 글을 바로잡는 것이 민주 사회 실현에 지극히 큰 노릇을 하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다. 이 문제를 계속 파고들어 가 생각해 봐야겠다. _ 1988년 2월 7일 일기에서, 142~143쪽

온종일 쉬어 가면서 교단 일기를 옮겨 썼더니, 밤 9시 반이 되어 드디어 한 권 분량(약 1,300장)을 마쳤다.
이 일기를 옮겨 쓰면서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몇십 년 옛날에 써 둔 것을 읽으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온갖 일들이 되살아난다. 참 이런 일도 그때 있었구나, 이건 이렇게 했던 게로구나, 하고 여러 가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사람의 머리로 기억해 둔 것은 너무나 빈약하고, 모호하고, 잘못되어 있기도 하다. 일기를 적어 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둘째, 그 옛날의 삶을 기억만으로 회상할 때는 즐겁게 달콤하기도 한데, 일기를 읽어 보니 참으로 괴롭게 살았구나 싶다. 나는, 지금 내가 다시 젊어진다고 해도 내 지난날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내 과거의 교직 생활은 고뇌에 가득 차 있다.
셋째, 그러나 그 옛날의 일기를 하루하루 읽으면서 옮겨 쓰면서, 지금의 삶과도 비교해 보고, 마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내가 살고 있는 듯한 심정도 들어, 그것이 그처럼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단지 마음으로 되씹는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나는 일기를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두 시간을 한꺼번에 체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도 일기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일기를 옮겨 쓰는 것을 귀찮은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지금의 일기를 쓰는 것도 즐거움으로 여겨야겠다. _ 1988년 5월 22일 일기에서, 165~166쪽

목차

목차
1부 1986년 ~ 1987년
ㆍ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여 정직하게 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1986년 10월 11일 58 ㆍ 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1987년? 6월 26일 97 ㆍ 아, 이럴 때 힘차게 불러볼 애국가는 없는가 1987년 6월 26일 100 ㆍ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1987년11월6일 129
2부 1988년 ~ 1989년
ㆍ 종일 방 안에서 ‘우리 말을 우리 말이 되게 하자’ 원고를 썼다. 밤 11시 반까지 1988년 1월 17일 137 ㆍ 나는 모국어의 미아(迷兒)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1988년 8월 27일 179 ㆍ 종로에서 이발을 했다. 이발료는 아직도 천 원이었다 1988년 11월 25일 196 ㆍ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1989년 6월 8일 219
3부 1990년 ~ 1991년
ㆍ 권 선생이 저녁밥을 해 왔는데, 간고등어 구운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1990년 1월 5일 245 ㆍ 아이들이 쓰는 이야기글이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동화가 될 수밖에 없구나 1990년 3월 13일 259 ㆍ 무엇 하나 세상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말과 글조차 돌이킬 수 없도록 병들어 버렸으니! 1990년 8월 15일 277 ㆍ 올해도 여전히 일에 쫓기면서 살아갈 것 같다 1991년 1월 1일 283 ㆍ 종일 ‘동시란 무엇인가?’란 논문 문장을 다듬었다. 내가 이런 글을 썼던가 부끄러워졌다 1991년 8월 21일 325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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