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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개정판 정보
이오덕 일기 이오덕 저 | 양철북 | 2026년 04월
평점 - · 리뷰 0
ISBN : 9788963720883 / 356쪽 134 x 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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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치열한 삶의 기록에서 인간 이오덕을 새롭게 만난다. 손바닥으로 만든 망원경, 그 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이오덕,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이오덕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이제 그가 남긴 일기에서 ‘교육자, 아동문학가, 우리 말 운동가’ 저마다 알던 만큼의 이오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인간 이오덕을 오롯이 마주한다. 《이오덕 일기》는 산골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1962년부터 2003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오덕이 시대와 맞닿아 쓴 42년의 기록이다. 그 속에는 평생 자신의 삶과 언행을 일치시키려 갈고 닦았던 한 인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이념으로부터 삶을 찾아가는 게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의 삶에서 자신의 사상을 찾아가는 이오덕 사상의 뿌리를, 어린이 노동자 농민과 같이 우리 사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제 목소리에 살아가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교실에 집중한 참교육자, 교육의 본질이 단순히 가르치는 기술에 있지 않고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달은 교육 사상가, 변방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며 늘 주류 사회의 통념과 싸웠던 실천가로 이오덕이 재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온 삶이 된 이오덕의 모습은 비바람을 견디며 땅에 뿌리박고 사는 거대한 나무를 닮았다. 끊임없이 갈등하면서도 내면의 생각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영감과 답을 줄 것이다. 크고 두툼한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그 안에 담긴 42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원고지 3만, 7,986장, A4 4,500장으로 바뀌는데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그리고 2년 넘는 시간 동안 가려내고 또 가려내어 다섯 권의 《이오덕 일기》를 만들었다. 그만큼 천천히, 오래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 사람, 이오덕을 온전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3권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아동문학과 교육, 우리 말을 살리는 데 힘을 쏟으면서, 세상 속에서 길을 찾던 때 쓴 일기다. 추천사 한평생을 하얀 칼날 위를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신 분. 돌아가시기 사흘 전 “꼬리뼈, 등뼈가 아프고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는 밤에도 당신 삶의 기록을 놓지 않으신 분. 장엄하다. 그분의 꼼꼼하고 구체적인 삶의 기록을 읽으면서 이 말이 맨 먼저 떠올랐다. _ 이상석(부산 신도고 교사) 모든 순간, 모든 상황에서 그의 눈은 밑으로 밑으로 향하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아이들의 편에 서서 바닥의 눈으로, 백성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 선생님 일기에는 나날의 생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 둘레 사람과 그들의 말 따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론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되어 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_ 탁동철(청호초 교사) 나는 이오덕 선생의 책이 나올 때마다 다 샀다. 《이오덕 교육일기》, 《우리 글 바로 쓰기》,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 간에 오간 편지글 모음, 그리고 이오덕 선생이 엮은 아이들 글 모음과 산문집은 헌책방을 뒤져 샀다. 이제 또다시 선생의 글이 나온다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오덕 선생의 골수 ‘팬’인 성싶다. _ 공선옥(소설가) 간교한 말, 앞뒤 안 맞는 말, 무지한 말, 감성에 깊이 닿지 않는 말이 판치면서 학교에서 청소년이, 농촌에서 농민이, 북한에서 동포가, 자연에서 새와 벌레가 시들어 가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바른 삶에서 나온 말과 진실이 담긴 글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이오덕 선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_ 홍순명(전 풀무학교 교장) 이오덕이 남긴 42년의 기록, 《이오덕 일기》의 탄생 과정 크고 두꺼운 일기장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 일기장까지 모두 아흔여덟 권. 슬며시 넘겨 본 1960년대 노트 일기장에는 습기를 먹어 번진 채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빼곡히 차 있었고, 또 다른 1980년대 일기장에는 날짜에 맞춰 손수 다녀왔던 강연 팸플릿과 오린 신문을 붙인 흔적들이 보였다. 2000년대에 쓴 손바닥만 한 수첩 일기장을 들추니 단정하게 쓴 깨알 같은 글씨들과 함께 쓸 자리가 모자란 곳에 종이를 오려 붙여 더 쓴 흔적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낡은 책장 속에 이처럼 켜켜이 먼지 쌓인 채 보관된 일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가 2011년이다. 교육자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오덕 선생님이 1962년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42년 동안 날마다 쓴 일기였다. 처음에는 ‘와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42년의 기록’이라는 일기의 힘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장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데만 꼬박 여덟 달이 걸렸다. 42년의 시간. 원고지로 37,986장, A4 용지로 4,500장.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세 사람의 편집자가 다른 일은 제쳐두고 고스란히 일기를 읽어 나가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전체를 세 번 정도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두 번 정도 더 꼼꼼히 읽고 가리게 된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면서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던 이오덕보다 훨씬 넓고 깊은 이오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기를 가려 뽑는 기준으로 시대와 맞닿아 쓴 역사 기록 쪽에 자꾸 눈길이 갔다. 워낙 하루 동안 겪은 일, 보고들은 일, 생각한 일 따위를 빠짐없이 꼼꼼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던 터라 교육 운동, 아동문학사, 우리 말 운동 따위와 관련하여 남길 만한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일기 읽기에 흠뻑 빠져들 때쯤 몇 가지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학교나 세상에서 겪은 일 가운데서 그 시대의 기록이 될 만한 글을 중심으로 가려 뽑는다. 둘째,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 이야기에서 겪은 일을 더 또렷하게 붙잡아 쓴 글을 뽑는다. 셋째, 한 개인의 역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중요한 행적을 가능하면 빼지 않는다. 이런 기준으로 세 번에 걸쳐 날짜마다 동그라미, 세모, 가위표를 했고, 세모와 가위표 된 날짜 일기도 두 번 세 번 거듭 확인한 끝에 걸렀다. 그러고 나서도 모자라 살아 있을 때 이오덕과 함께했던 동무와 따르던 선생님 몇 분에게 《이오덕 일기》가 이오덕의 온 삶을 온전히 담고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번에 《이오덕 일기》(모두 5권)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가까운 일기를 6,200장 정도로 줄인 것이다. 2년 8개월이 걸렸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만큼 《이오덕 일기》를 통해 이오덕이 한 사람으로 우리 삶 속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오덕 일기》, 어떻게 다섯 권으로 구성하게 되었을까? 《이오덕 일기》는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교사로 살았던 24년 동안의 기록(1, 2권)이고, 두 번째는 학교를 떠난 뒤 경기도 과천에서 살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13년 동안의 기록(3, 4권), 세 번째는 충주 무너미 마을로 내려와 돌아가시기 전까지 쓴 5년 동안의 기록(5권)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행적 혹은 장소에 따라 세 권으로 내는 걸 고민했다. 하지만 일기를 읽어 나갈수록 시기에 따라 선
오늘 저녁에 초교협 운영위원 모임이 있는 것이다. 차례차례 의견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는 다음 몇 가지를 말했다.
첫째, 가장 먼저 확실하게 밝혀 두어야 할 것은 이 회의 기본 목표와 교육 운동의 방향이다. 나는 이 회의 기본 목표가 아이들을 참된 민주 시민으로 기르기 위한 교육이 잘 되도록 즉, 민주교육을 실현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기본적 운동 방향으로서 민주교육의 실천을 도와주고, 민주교육을 방해하는 모든 문제를 협의해서 해결하고 장애를 제거해 주는 데 있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이러한 운동은 현장의 교육 실천 운동과 외부에 대한 행정 지원 운동의 두 측면이 있는데, 당분간 외부 운동에 치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외부의 운동은 어디까지나 현장의 민주교육 실천을 돕고, 그 실천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어느 것이 가장 급한가를 생각하고 협의해서 급한 것부터 해결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나는 이 초교협이 노동조합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교사들의 교육 운동이 교원들 자신의 이권 획득을 위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 이유는 우리 교원들이 아이들 비인간적으로 교육하는 일에 협력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이 엄연한 사실을 덮어 두고서는 결코 민주교육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본다. 행정 권력 다음에 아이들 잡는 교육을 한 공범자가 교사요 교육자다. 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민주교육 하겠다고 나섰다면 마땅히 이 사실을 시인하고 참회하여야 학부모들도 교사들을 믿고 따를 것이다.
때가 좀 지나면 교육자들도 봉급을 올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 교육계에 유능한 인재가 모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나는 노동자, 농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노동자, 농민들보다 대우를 잘 받는 사람들이 그 노동자, 농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데 그들 위해 함께 싸워 주는 것은 몰라도 함께 나서서 자기들도 월급 올려 달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교원 입장도 그렇다.
아이들 위한 교육 운동이라야지 교사들 위한 교육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_ 1987년 8월 27일 일기에서, 117~119쪽
우리 말의 문제를 두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말이란 것이 우리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이다. 그 다음이 의식이고, 다음이 말이고 글이다. 즉, 삶→의식→말→글 이렇게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역행하는 수가 있다. 삶←의식←말←글 이렇게 말이다. 분명히 우리의 역사에서 이 역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역행은 잘못된 사회, 병든 역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문화의 역행 속에서 사회와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역시 이 역행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글과 말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는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역행 현상은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말글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삶이 단박에 바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말과 글을 바로잡는 것이 민주 사회 실현에 지극히 큰 노릇을 하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다. 이 문제를 계속 파고들어 가 생각해 봐야겠다. _ 1988년 2월 7일 일기에서, 142~143쪽
온종일 쉬어 가면서 교단 일기를 옮겨 썼더니, 밤 9시 반이 되어 드디어 한 권 분량(약 1,300장)을 마쳤다.
이 일기를 옮겨 쓰면서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몇십 년 옛날에 써 둔 것을 읽으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온갖 일들이 되살아난다. 참 이런 일도 그때 있었구나, 이건 이렇게 했던 게로구나, 하고 여러 가지를 깨닫고 알게 된다. 사람의 머리로 기억해 둔 것은 너무나 빈약하고, 모호하고, 잘못되어 있기도 하다. 일기를 적어 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둘째, 그 옛날의 삶을 기억만으로 회상할 때는 즐겁게 달콤하기도 한데, 일기를 읽어 보니 참으로 괴롭게 살았구나 싶다. 나는, 지금 내가 다시 젊어진다고 해도 내 지난날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 내 과거의 교직 생활은 고뇌에 가득 차 있다.
셋째, 그러나 그 옛날의 일기를 하루하루 읽으면서 옮겨 쓰면서, 지금의 삶과도 비교해 보고, 마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내가 살고 있는 듯한 심정도 들어, 그것이 그처럼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단지 마음으로 되씹는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나는 일기를 읽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두 시간을 한꺼번에 체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도 일기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일기를 옮겨 쓰는 것을 귀찮은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지금의 일기를 쓰는 것도 즐거움으로 여겨야겠다. _ 1988년 5월 22일 일기에서, 165~166쪽
목차
1부 1986년 ~ 1987년
ㆍ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여 정직하게 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1986년 10월 11일 58 ㆍ 나는 최루탄 가스의 눈물이 아니고 진짜 눈물이 났다 1987년? 6월 26일 97 ㆍ 아, 이럴 때 힘차게 불러볼 애국가는 없는가 1987년 6월 26일 100 ㆍ 노동자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가 1987년11월6일 129
2부 1988년 ~ 1989년
ㆍ 종일 방 안에서 ‘우리 말을 우리 말이 되게 하자’ 원고를 썼다. 밤 11시 반까지 1988년 1월 17일 137 ㆍ 나는 모국어의 미아(迷兒)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1988년 8월 27일 179 ㆍ 종로에서 이발을 했다. 이발료는 아직도 천 원이었다 1988년 11월 25일 196 ㆍ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시를 한 편 써 보고 싶었다 1989년 6월 8일 219
3부 1990년 ~ 1991년
ㆍ 권 선생이 저녁밥을 해 왔는데, 간고등어 구운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1990년 1월 5일 245 ㆍ 아이들이 쓰는 이야기글이야말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동화가 될 수밖에 없구나 1990년 3월 13일 259 ㆍ 무엇 하나 세상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말과 글조차 돌이킬 수 없도록 병들어 버렸으니! 1990년 8월 15일 277 ㆍ 올해도 여전히 일에 쫓기면서 살아갈 것 같다 1991년 1월 1일 283 ㆍ 종일 ‘동시란 무엇인가?’란 논문 문장을 다듬었다. 내가 이런 글을 썼던가 부끄러워졌다 1991년 8월 21일 325
ㆍ 이오덕이 걸어온 길 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