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킨스는 1812년 영국 남단의 군항인 포츠머스에서 해군 경리국의 하급 관리인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의 팔 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존 디킨스로 인해 가세가 점점 기울어 디킨스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약 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여 형편없는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자서전적인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1849∼1850)에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찰스가 노동 계층으로 전락하여 느끼는 고통스러운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이후 그는 여러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게 되는데, 1834년 [아침 신문]의 의회 담당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필명으로 런던의 삶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고, 1835년 조지 호가스가 편집인인 [저녁 신문]에 [런던의 풍경] 등 여러 글을 기고했다. 디킨스는 조지 호가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딸인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고, 처제인 메리를 데리고 첼시에 정착하는데, 메리가 1837년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순수했던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1840∼1841)에서 어린 넬로 재현된다. 디킨스는 스물한 살 때부터 몇몇 잡지에 기고했던 단편 및 소품을 모아 [보즈의 스케치](1836)를 출판하지만 그의 명성을 확보해 준 것은 [픽윅 보고서](1836)였다. 이후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1837∼1839), [크리스마스 캐럴](1843), [돔비와 아들](1846∼1848), [황폐한 집](1852∼1853), [어려운 시절](1854), [작은 도릿](1855∼1857), [위대한 유산](1860∼1861), [우리 서로의 친구](1864∼1865) 등 많은 작품을 쓰며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디킨스는 가정적으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거듭된 과로로 인해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완성하지 못하고, 1870년 6월 9일 58세의 나이로 개즈 힐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1856년 미국 뉴욕의 치튼앵고에서 태어났다. 바움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었는데 배우, 신문기자, 점원, 외판원 등을 하다가 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40살이 되어 바움은 시집과 동화책들을 쓰기 시작했다. 1898년 시카고에서 제 1권의 그림을 그린 W.W 덴슬로우를 만나 <캔들라브라의 시선으로>라는 시집을 만들고, <거위 아버지 : 그의 책> 이라는 동시집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성공에 용기를 얻어 두 사람은 1900년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출판했다. 바움의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의 명콤비인 덴슬로우의 뛰어난 그림은 이 책을 그 해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이 훌륭한 동화책은 그 이후에 연극, 영화, TV 연속물, 온갖 선물용품으로 만들어져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를 남긴 소설가이며 사진가, 저명한 수학자이기도 했던 루이스 캐럴. 그의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으로 1832년 영국 체셔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성직자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1850년 옥스퍼드 대학교 크라이스트처치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하고 훗날 평생을 수학부 논리학 교수로 일했다. 1856년에는 예술 장르 중 하나로 막 태동 중이던 사진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이후 2천 점이 넘는 당대의 문화계 인사들과 아이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앨리스’라는 이름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루이스 캐럴은 동시대의 여류 사진가였던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과 함께 초기 사진계의 양대 작가로 손꼽힌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학장으로 새로이 부임해 온 리델의 자식들에게 종종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탄생되었다. 이 작품은 1865년 출간되자마자 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받은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다. 1872년 그는 자신이 아끼던 리델의 막내딸 앨리스를 등장시켜 《거울 속으로》라는 소설을 집필하는데, 이 작품은 이후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마치 답이 없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버무려져 있는 듯 보이는 이 ‘앨리스 시리즈’는 저명한 수학자였던 캐럴만의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유희와 함축적 논리가 녹아 있어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넓은 영역에 걸쳐 인용되는 작품이다. 따라서 문학이라는 장르 외에도 수학 논문, 프로이트 이론, 정치, 논리학 등으로 다양하게 재해석되며 여러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19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상상력이라고 평가받는 루이스 캐럴은 그 외에도 《스타크 사냥》(1876)과 시집 《이요술 환등》(1869) 등을 남겼다.
1929년 6월 12일 독일 프랑크 푸르트에서 태어났다. 4살 되던 해 독일에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얼마후 유태인 탄압이 시작되는데 이때 가족을 따라 탄압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1941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게 되자 1942년 7월에 '은신처'로 숨어들어 가게 되고 이 무렵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1944년 8월 게쉬타포에 의해 은신처가 발각되기 사흘 전까지 일기를 쓰게 된다. 발각 후 베스테르부르크 수용소를 거쳐 베르겐베르젠 수용소로 옮겨졌고 이 수용소에서 1945년 3월 초 16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소설가이며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다. 오 헨리의 직업 경력 및 인생 경력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20대 중반까지 약제사, 목장 일꾼, 점원, 직공, 제도사, 은행원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1898년에는 은행에서 출납 결손 문제로 인해 사직한 것은 물론 교도소 신세까지 3년간 지게 된다. 17살 때 첫 결혼을 했고, 40대 중반이었던 1907년에는 어릴 적 친구였던 샐리 린제이 콜먼과 재혼했으나 건강과 금전 문제,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로 그의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오 헨리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교도소에 복역하던 시절이었다. 1898년에 <맥 클뤼어> 지를 통해 마침내 자신의 첫 단편소설 「레이버 캐년의 기적」을 발표했다. 이후 여러 필명으로 단편소설을 출간하던 그는 <맥 클뤼어> 지에 「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을 발표한 후로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01년 출감한 그는「하그레이브즈의 1인 2역」을 발표하고 뉴욕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02년부터 <뉴욕월드 선데이 매거진>에 단편을 연재하기 시작하여 총 381편의 단편을 선보였다. 큰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1908년에는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 글쓰기를 중단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에 당뇨병 합병증이 겹쳐 사망했으며 그후 유고집 「회전목마」가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