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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은 책보다 책으로 쓰고 싶다 이태준 산문집

이태준 저 | 예옥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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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241051 / 269쪽 140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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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근대문학의 거장 상허 이태준의 산문집. 이태준의 문학을 연구한 박진숙 교수가 새롭게 구성하여 기존의 산문집인 [무서록]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게끔 편집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우리가 가진 가장 우수한 스타일리스트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알려진 상허 이태준은 『문장강화』와 『무서록』을 통해 이미 당대에 명성을 쌓은 작가이다. 이 두 산문집은 1988년 해금(解禁)조치 이후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최재서) 또는 “우리가 가진 가장 우수한 스타일리스트”(김기림)라는 당대의 평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는 이태준 문학을 전공하고 그의 문장론 연구에 천착해온 박진숙 교수(성균관대학교 교양학부)가 새롭게 구성한 산문... 우리가 가진 가장 우수한 스타일리스트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알려진 상허 이태준은 『문장강화』와 『무서록』을 통해 이미 당대에 명성을 쌓은 작가이다. 이 두 산문집은 1988년 해금(解禁)조치 이후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최재서) 또는 “우리가 가진 가장 우수한 스타일리스트”(김기림)라는 당대의 평가를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는 이태준 문학을 전공하고 그의 문장론 연구에 천착해온 박진숙 교수(성균관대학교 교양학부)가 새롭게 구성한 산문집으로, 이태준에 대해 ‘스타일리스트’라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는 직접 말하기보다는 표상으로 소통하는 방법의 우위를 이미 아는 이였다. 언어 형용에 자신의 생각을 실어 표현할 수 있었던 그의 능력 덕분에 ‘책’보다 ‘冊’이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태준의 산문을 읽을 때 우리는 표면에 제시한 것 너머로 독자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고려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서문)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서록』의 저자이기보다는 ‘스타일리스트’인 이태준의 이미지에 초점을 둔 산문집이다. 근대 문인의 ‘텍스트성’보다는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 맞춘, 일반적인 ‘책’이기보다는 스타일을 더한 ‘冊’으로 새롭게 태어난 산문집이다. 새롭게 구성된 이태준의 문장 미학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는 『무서록』(1942, 박문서관) 『상허문학독본』(1946, 백양당)을 비롯한 신문․잡지 발표본 산문 71편을 모아 새롭게 구성한 산문집이다. 이태준의 산문이라 하면 『무서록』이겠지만, 당대에 구성했던 글과 구성을 달리하여 오늘날 전혀 새로운 느낌을 전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문학론이나 논설에 가까운 글보다는 삶과 예술에 가까운 글을 많이 선택하였는데, 글을 엮은 박진숙 교수는 “연구자의 시선에 포착될 만한 글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이태준의 내음이 다시 비평적인 것들, 이태준 문학의 정수에 가 닿는다”고 밝히고 있다. 구성은 글의 성격과 흐름을 고려하여 7개의 장으로 나눈 후, ‘사물과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거의 회고―일상의 관찰―고완(古翫)과 자연―예술과 예술인―이방인의 시선’의 주제로 엮었다. 이에 따라 이태준 작가의 세계를 ‘무서(無序)’가 아닌 ‘질서(秩序)’로써 관찰할 수 있게 하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백일몽」이라는 글이 이 책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1928년 7월 동아일보에 실린 글로, 문단활동을 활발히 시작하기 전의 열정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어서 새로운 이태준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원산을 다시 찾아 회상에 잠기는 내용의 「여정의 하루」는 『무서록』에 없었던 분량(신문연재 3회분)을 찾아 수록한 것이다. 원산 시내에서 우연히 한 동료를 만나고, 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되는 흥미로운 사건이 담겨 있다. “가난하나 높기는 한 내 자존심을 위해” 결혼을 작심할 무렵, 이태준은 주변의 기혼․미혼 친우들에게 충고를 듣는다. 그러나 “나는 역(逆)을 믿는 사람”으로서 “흘러온 것이 나의 과거가 아”닌, “나는 거슬러 올라온 것이며 거슬러 올라갈 것이 또한 나의 앞길인 것을 각오”하여 결혼을 시작하였다. 그는 아내와 “좀 더 감격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살자”고 약속하였으나 곧 “우리에겐 긴치 않은 반려”, 즉 가난이라는 악반려(惡伴侶)가 있어 “죽는 날까지 그의 간악한 시기(猜忌)를 경계”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어느 날에는, 추사의 글씨 한 점을 구입한 그에게 아내가 타박하자 “올겨울엔 양복을 짓지 않구 조선옷으로만 견디리라”고 대답하여 아내의 경제학을 면한다. 그런 그의 호고벽(好古癖) 때문에 생활이 고통 아니냐고 걱정하는 친우에게는 “고통이 아니라 불편이지. 불편과 고통은 다르이.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건 철학이 없는 사람일세”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저쪽의 계몽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하나 높기는 한 내 자존심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 철학을 설교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태준이었기에,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 소설학을 공부할까 고민하다가도 “예술의 신도(信徒)”가 되어 “소설의 우매한 신도로만 살고 또 쓰고 싶”다고 되뇐다. 그에게는 하늘, 산, 바다, 강, 돌, 꽃, 소나기, 매화, 파초, 눈 온 아침, 그 모든 것이 삶의 스승이었고, 책과 낚시와 고완(古翫)은 엄혹한 시대에 일상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옷깃을 단정히 여민 듯한 그의 아름다운 글이 ‘묘사’가 아닌 ‘철학’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이유 또한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저자 소개

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부친 이문교, 모친 안순흥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1970(?)년 사망 추측). 상허(尙虛) 또는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이태준(李泰俊)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1909년에 아버지를, 1912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1918년 고향으로 돌아와 친척집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어려운 가정 상황으로 인해 방황을 하다가, 1921년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장 선생님 등 주위 사람들의 배려로 수학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미 문학가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낙인찍혀 5년제 과정 중 4학년 1학기에 퇴학을 당했다. 퇴학의 아픔을 위무하면서 상허는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1927년 동경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 입학했다가 1928년 중퇴한다. 일본 유학 시절인 1925년에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하여 입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귀국할 때까지 작품활동이 거의 없었다. 귀국하여 1929년 '개벽'에 입사한 후 '학생', '신생' 등의 잡지 편집에 관여했고, '어린이'에 수필과 소년독본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다.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1931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입사하였고, '중외일보'가 폐간되면서 개제(改題)된 '조선중앙일보'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1933년에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서정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고, 이화여전 등에 작문교사로 출강하였다. 1939년에는 '문장'지를 창간하여 책임편집을 맡아 일제 말기 문학을 지탱해 나갔으며, 1941년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해방 후, 이태준은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가담하는데, 1945년에 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직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전후'로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1946년 7∼8월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북 직후인 1946년 10월경 조선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부터 사상검토를 당하다가 1956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까마귀'(1937), '이태준 단편선'(1939), '이태준 단편집'(1941)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1937), '화관'(1938), '청춘무성'(1940) 등 장편 13권을 발간하였고, 해방 후 '소련기행'(1947)이라는 기행문도 발간했다. 일제 강점기의 그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나타냈다.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묘사와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통해 단편소설의 서정성과 그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이후 그의 작품은 조선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생경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책 속에서

-청담
“소박하나 호화한 것으로 다시 호화하나 소박한 것으로 태극선은 고전이면서도 영원한 모던 미(味)를 가진 것이라 하겠다.”-「태극선」

“벽이 그립다. 멀찍하고 은은한 벽면에 장정 낡은 옛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그 아래 고요히 앉아보고 싶다. 배광(背光)이 없는 생활일수록 벽이 그리운가 보다.”-「벽」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것만 진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목숨은 벌써 소멸된 지 오래게……. 나는 역을 밟아왔고 역을 믿어왔다. 맞닥뜨리면 위기면 흘러내려오는 물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흘러내려온 것이 나의 과거가 아닌 것을 안다. 나는 거슬러 올라온 것이며 거슬러 올라갈 것이 또한 나의 앞길인 것을 각오한다.”-「악반려」

“‘고(古)’ 자는 추사 같은 이도 얼마나 즐기어 쓴 여운 그윽한 글자임에 반해, ‘골(骨)’ 자란 얼마나 화장장에서나 추릴 수 있을 것 같은, 앙상한 죽음의 글자인가! 고완품들이 ‘골동’, ‘골’ 자로 불리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감이 얼마나 삭탈을 당하는지 모를 것이다. 말이란 대중의 소유라 임의로 고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골동’ 대신 ‘고완품’이라 쓰고 싶다”-「고완품과 생활」

“가가와 도요히코는 자기는 신은 믿되 신학처럼 싫은 것은 없노라 했다 한다. 나는 그의 말이 여간 반갑지 않다. 나도 소설은 좋아하되 소설학, 예술학은 싫다. 소설학의 교사는 영원 싫다. 소설의 우매한 신도로만 살고 또 쓰고 싶은 것이다.”-「신도」

-청향
“나는 모기장 속을 좋아한다. 될 수만 있으면 사철 모기장을 치고 살고 싶어한다. 모기장 속은 파리 한 마리 간섭하지 않는 완전히 나의 독차지의 소세계(小世界)이기 때문이다. 죄고마한 모기장 속!”-「모기장 속」

“내 칫솔은 내 이를 닦다가 성돌 틈을 닦다가 하는 착각에 더러 놀란다. 그러다가 찬물에 씻은 눈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성벽은 역시 조광(朝光)보다는 석양의 배경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성」

“미닫이를 아이 때는 종이로만 바르지 않았다. 녹피(鹿皮)끈 손잡이 옆에 과꽃과 국화와 맨드라미 잎을 뜯어다 꽃모양으로 둘러놓고 될 수 있는 대로 투명한 백지로 바르던 생각이 난다. 달이나 썩 밝은 밤이면 밤에도 우련히 붉어지는 미닫이 꽃을 바라보면서 그것으로 긴 가을밤 꿈의 실마리를 삼는 수도 없지 않았다.”-「가을꽃」

“낙화는 꽃이 아니냐 하는 옛 말씀도 있거니와 낙화야말로 더욱 볼만한 꽃인가 싶다. 그는 의지할 데 없는 몸이라 가지에 달려서보다 더욱 박명은 하리라. 그러나 떨어진 꽃의 그 적막함, 우리 동양인의 심기로 그 적멸의 경지에서처럼 위대한 예술감이 어디서 일어날 것인가. ”-「낙화의 적막」

“벼르고 벼르던 추사(秋史)의 글씨 한 폭을 내 빈한한 서재에 걸어놓을 수가 있게 되었다. 아내는 ‘또 당신 예산에 없는 일을 하는구려’ 했었다. ‘아니지, 왜 예산이 없긴. 올겨울엔 양복을 짓지 않구 조선옷으로만 견디리다. 적어두 8, 90원이 절약이 될 텐데……’ 대답하였다. 이번만은 아내도 더 나에게 경제학을 말하지 않았다.”-「수상이제」

“지금은 아마 제일 높은 가지는 열두 자도 훨씬 더 넘을 만치 지붕과 함께 솟아서 퍼런 공중에 드리웠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큰 파초는 처음 봤군!’ 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다. 나는 그 밑에 의자를 놓고 가끔 남국의 정조를 명상한다.”-「파초」

-청소성
“우리에겐 긴치 않은 반려가 있다. 나에겐 아내만 못하지 않은, 아내에겐 나만 못하지 않은 흩어질 수 없는 반려가 있다. ‘가난’이다. 그는 우리의 반려다. 긴치 않은 반려다. 악반려(惡伴侶)다.”-「악반려」

“옛 이야기에 ‘구름 같은 머리를……’ 하였는데, 구름 없는 하늘은 볼만하나 머리 없는 여자는 정말 볼 맛이 없다. 송낙까지 벗은 여승을 본다면 다른 것이 여자가 아니라 ‘머리 있는 얼굴’이 여자라 해도 좋을 성싶게 그렇게 머리는 여자에게 위대하다.”-「머리」

“‘비둥’이란 대체 무엇이뇨? 하늘이 우릉거림을 천둥이라 땅이 우릉거림을 지둥이라 하나니 여기 코가 우릉거림을 비둥이라 한들.”-「비둥」
“남자에게 있어 여자처럼 최대, 그리고 최적의 상이물(相異物)은 없다. 같은 조선 복색이되 우리 남자에게 있어 여자 의복은 완전히 이국복(異國服)이다. 우리가 팔 하나 끼어볼 수 없도록 완전한 이국복이다.”-「이성간의 우정」

“문우들이 거개 선음(善飮)인데 특히 주소상종(晝宵相從)하는 춘산(春山), 우산(牛山), 월파(月坡), 지용(芝溶), 인택(人澤), 화암(華岩)이 일당강장(一黨强腸)이라 나의 고립잔영(孤立殘影)은 천외(天外)에 표표(飄飄)한 적이 일이석(一二夕)이 아니러라.”-「민주(憫酒)」

-본문 중에서

목차

목차
1부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
2부 배광背光이 없는 생활일수록 벽이 그리운가 보다
벽 | 바다| 비둥 | 모기장 속 | 노상 | 죽음 | 필묵筆墨 | 신발 | 고독
3부 희미한 기억의 거리를 혼자 톺아 걸었다
여정旅情의 하루 | 공상시대 | 그들의 얼굴 위에서 | 고아의 추억 | 내게는 왜 어머니가 없나? |
남행열차 | 용담龍潭 이야기 | 추억
4부 우리에겐 긴치 않은 반려가 있다
머리 | 발 | 인사 | 동정同情 | 이성간 우정 | 동경 있는 S누이에게 | 악반려惡伴侶 | 목수들 |
집 이야기 | 민주憫酒 | 사금砂金·광산 鑛山·곡선曲線 | 일분어一分語 | 우세牛歲 |
도보 삼천리 |백일몽
5부 내 칫솔은 내 이를 닦다가 성돌 틈을 닦다가
동방 정취 | 고완古翫 | 박물관 | 여명黎明 | 고완품과 생활 | 눈 온 아침 | 하늘 | 물 | 산 |
성城 | 수목 | 돌 | 강 | 소나기 | 매화 | 수선水仙 | 가을꽃 | 난蘭 | 무궁화 |
낙화의 적막 | 낚시질
6부 가난하나 높기는 한 내 자존심을 위해
수상이제隨想二題 | 모방 | 난초 | 파초 | 작품애 | 남의 글 | 감상鑑賞 | 자연과 문헌 |
고전古典 | 동양화 | 신도信徒 | 한일閑日

7부 고전이면서도 영원한 모던
음악과 가정 | 러스킨 문고 | 강아지 | 기종신서일지란幾種新書一枝蘭 | 태극선太極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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