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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08 (칼자국 외)

2008년 11월 6일 오늘의 책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08 (칼자국 외)

김애란, 박민규, 김도연, 김윤영, 백가흠, 손홍규, 정미경, 한창훈 | 해토 | 2008.08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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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올해로 9회째를 맞은 2008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상작 김애란의〈칼자국〉을 비롯해 자선작(〈큐티클〉)과 문학적 자전(〈여름의 풍경〉), 전년도 수상자인 박민규의〈낮잠〉, 소설가 김중혁과 쌍둥이 언니의〈내가 만난 김애란〉, 추천우수작으로는 김도연의〈북대〉, 김윤영의〈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 3〉, 백가흠의〈그런, 근원〉, 손홍규의〈푸른 괄호〉, 정미경의〈타인의 삶〉, 한창훈의〈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등이 수록돼 있다. ■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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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어머니, 그리고 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기억하시나요? 그 작품에는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장면이 나옵니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부드러운 빛을 흘리는, 짐승 같이 숨을 쉬는, 푸르게 젖은, 소금을 뿌린 듯한 달. 흐붓하고 흐뭇한 달. 비록 교과서라는 제한된 공간에 뜬 것이었지만, 달은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좀처럼 잊히질 않았습니다. 눈부시고 숨이 막혀 아름다운 게 아니었지요. 자기 아래 걸어가는 사람들의 상처는 덮어주고, 길은 밝혀주는 빛이어서 아름다웠던 겁니다. 언젠가 나도 그런 빛을 받으며 가리라는 소망에, 오래 전 그 달을 죽 가슴에 품고 있었지요.

꽤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 「메밀꽃 필 무렵」을 접했을 때로부터 십 년이 지난 오늘,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만났구요. 거기에서 달을 볼 수 있었지요.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달을.

책에는 제9회 수상작인 김애란의 「칼자국」 외에도 기수상작가 박민규, 후보에 오른 김도연, 김윤영, 백가흠, 손홍규, 정미경, 한창훈 등 8명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김애란의 「칼자국」, 백가흠의 「그런, 근원」, 손홍규의 「푸른 괄호」입니다. 세 작품 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지요.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 누구보다 사랑하게 되고, 한없이 큰 존재였다 또 볼품없이 작아졌다, 언젠가부터는 얼굴만 떠올려도 가슴이 시리지만 곧 보내야 하는 어머니 말이에요.

실은 어머니의 집을 나와 볼일을 보고, 회사 근처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어요. 무릎 위에 『2008 이효석문학상 수상집』을 올려놓은 채 생각했지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그런 뒤에 휴대폰을 찾아 손에 쥐었는데 진동음이 울리지 뭐예요. 어머니의 전화였어요. 일은 잘 봤는지, 버스는 잘 탔는지, 저녁은 어떻게 먹을 건지 묻는. 평소보다 더 소상히 일과를 알려드리고 책장을 열었답니다. 거기에서 또 어머니들을 만났지요.

「칼자국」의 어머니는 국수 가게를 합니다. 신혼 때 샀던 특수 스댕 칼로 국수를 썰고, 김치도 썰고, 어린 ‘나’를 물려고 하는 개도 쫓지요. 그에게 칼이란 밥벌이 도구 이상의 것입니다. 가족의 배와 당신 자신의 아름다움, 그리고 생의 존엄함을 지키는 무기랄까요. 그가 음식을 만들 때 남긴 칼자국들은 피가 되고 양분이 되어 ‘나’의 몸속을 돕니다.

「그런, 근원」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근원’을 찾습니다. 어려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친척에게 배신까지 당하며 살아온 그이지만, 죽어간다는 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해 길을 나서지요. 그러다 산속에서 길을 잃는데요. 어머니를 못 만나는 대신 외딴집에 버려진 낯선 할머니의 시신을 땅에 묻어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부재(不在)함으로써 생의 근원을 찾아주는 존재예요.

「푸른 괄호」의 어머니는 촌부(村婦)이지요. 농약에 중독된 그는 죽음을 앞둔 채, 살아오는 동안 열고 닫았던 무수한 생의 편린들을 꺼내 보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모든 과업이 언제 열었는지 모르나 어느 순간 닫게 된 괄호 같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지요.

세 작품의 공통점은 상처가 될 법한 일을 상처로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작품 속 주인공들은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맛본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주로 쓴맛을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울지도 주저앉지도 않을 듯 성숙한 사람들. 마음만은 소녀처럼 지난날을 재잘거리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등을 쓸어주는 딸, 마음으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아들. 그들 위에 달이 떠 있습니다. 강퍅한 삶도 훈훈하게 품어주는 달 말이에요.

달에서 흘러나온 빛이 죽은 어머니의 칼을 비추면, 딸은 그 우아한 칼로 사과의 우주를 맛봅니다. 어머니를 찾아 나선 아들을 생의 근원지로 인도한 건 달빛에 스친 벚꽃이지요. 죽어가는 어머니 앞엔 눈부신 해를 대신해 그 오그라든 몸을 감싸줄 포근한 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달은 내 기다림도, 그들의 기다림도 저버리지 않았던 거예요.

오늘 저녁에는 춥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달맞이를 할까 합니다. 어둠이 깔리고 달이 고개를 들 때, 어머니도 같이 떠오르겠지요. 반갑게 어머니의 흰머리를 목도하고, 손을 당겨 잡고, 그 손에 새겨진 인생을 더듬고 싶네요. 어머니의 이름도 불러드리고 싶구요. “우리 ○○○ 여사, 참 곱기도 하시지요.” 하면서. 기다려집니다. 우리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되어 나란히 둥실 떠오를 그때가.




 

-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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