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오늘의 책
권산 | 반비 | 2012.11
분류 : 예술/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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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오래된 집과 노인의 삶이 가르쳐주는 것 하루 두 번 뒷산의 산소를 오르는 일 이외에 권 옹이 빠뜨리지 않는 일과가 있다. 하루 한 번은 꼭 집안을 둘러본다. 권 옹이 사용하는 공간은 사랑채 한 칸과? 부엌이다. 살림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 안 곳곳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 먼지 사이로 먼저 간 아내의 희미한 웃음이 남아 있고 그 먼지 사이로 아버지의 표정이 남아 있다. 쌓여 있는 먼지는 권 옹에게는 기억의 퇴적층이다. 허물...
“송석헌의 아침. 나는 살림의 흔적은 보았지만 진행형의 살림집이란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살림집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 아이들이 있다. 송석헌엔 노인 한 분만이 존재한다. 집도 사람도 서로를 그리워한다. 집도 사람도 추억으로 현재를 연명하고 있다.” (85쪽)
“살림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 안 곳곳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 먼지 사이로 먼저 간 아내의 희미한 웃음이 남아 있고 그 먼지 사이로 아버지의 표정이 남아 있다. 쌓여 있는 먼지는 권 옹에게는 기억의 퇴적층이다. 허물어진 곳이 보이면 당연히 사람을 부른다.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서 집이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 집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집을 보살핀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그리해온 일이다. 권 옹에게 집 건사는 곧 삶이다.” (121쪽)

“모든 것은 변한다.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그렇다. 변화는 필연이고 필연 앞에 때로 사람은 무기력하다.” (320쪽)
모든, 시간 안에 놓인 것들이 그러하듯, 무연히 사라져간 한 순간이 여기 있다. 《아버지의 집》, 이 안에 경북 봉화에 자리 잡은 고택 송석헌과 집주인 권헌조 그리고 저자 권산의 시간이 겹쳐 있다. 사진은, 그 시간을 기억한다. 글은 그 기억을 기록한다. 카메라를 손에 든 이의 긴장, 찰나를 붙잡으려는 안간힘, 그러나 그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세계, 그저 원래의 방식대로 흘러가고야 마는 세계의 엄중함까지. 그것은 차라리, 변화라는 필연 앞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려던 이의 애처로운 흔적이다.
그 흔적이, 사진 앞으로 독자를 불러들여, 한동안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여기에 있는 이 사람을, “무겁지도, 심각하지도 않은 유학자. 포장이나 가식 없는 노인. 자신의 삶이 스스로 당연한 자연인.” (192쪽) “주장하지 않는 노인. 좌중을 말의 ‘양’이 아닌 ‘질’로 집중시킬 수 있는.” (195쪽) 그와 하나인 이 집을, 오래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도록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침묵의 언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집》이 담고자 했던 모든 것은 사실상 이 찰나와의 서글픈 신경전, 그 흔적으로부터 가치에 가치를 더해나간다. 그것이 ‘세상에서 유일했던 절대 소수 가치의 마지막 모습’에 마땅해질 때까지.
“‘권헌조’의 생각’은 곧 소수자의 삶이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주장하지 않았고 단지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았을 뿐이다. 그 외의 방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낡음’은 세상의 어떤 ‘새로움’보다 명징했다. (…) 그는 강단 유학자도 아니었고 ‘옛 생각’을 지켜야 한다고 설파하고 돌아다닌 전도사도 아니었다. 권헌조는 단지 ‘그런 삶’을 살았을 뿐이다. 이것은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하나의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말씀이 아닌 행동이다. 이제 권헌조와 같은 행동으로 일상을 빼곡하게 매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사라짐은 세상에서 유일했던 절대 소수 가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317-318쪽)
무거운 책이다. 일단은 책을 집어든 손이 느끼는 무게가 그렇고, 책을 보고 읽는 정신이 받아든 가치가 그렇다. 오래 두고 오래 봐야 할, 흔적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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