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70637051 / 332쪽 152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헤르만 헤세
-
김수진
-
유시민
-
호메로스
- 20,700
- 25,200
- 17,010
- 24,300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건축하는 시인, 시 쓰는 건축가 함성호 옛집의 바깥에서 옛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세상에 ‘시인’이면서 ‘건축가’이고, ‘건축가’이며 ‘시인’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이질적인 두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진 흔치 않은 작가 함성호가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이 지은 옛집을 답사했다. 함성호는 무엇보다 옛집과 옛집을 둘러싼 ‘이야기’에 마음을 두었다.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무엇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집이 가진 본연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언적, 윤선도, 이황, 김장생 등... 건축하는 시인, 시 쓰는 건축가 함성호 옛집의 바깥에서 옛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세상에 ‘시인’이면서 ‘건축가’이고, ‘건축가’이며 ‘시인’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이질적인 두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진 흔치 않은 작가 함성호가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이 지은 옛집을 답사했다. 함성호는 무엇보다 옛집과 옛집을 둘러싼 ‘이야기’에 마음을 두었다. “그 집과 그 집을 지었던 사람의 생각과, 무엇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집이 가진 본연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언적, 윤선도, 이황, 김장생 등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이 직접 지은 집들만을 골라서 답사했다. 성리학자들이 직접 집을 지었다는 사실도 생경한 일이지만, ‘시인’의 찬찬한 눈으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왜 거기에 집을 지어야만 했는지 낮은 탄식으로 깨닫게 된다.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송시열은 죽은 왕의 집터를 잘못 잡는 바람에 정계에서 쫓겨나 금사담의 바위 위에 ‘암서재(岩棲齋)’를 짓고 홀로 은거한다. 함성호는 암서재의 건너편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점에서 암서재를 바라보다가 이내 암서재를 눈앞에서 지워본다. 그리고 암서재가 지어지기 전의 화양동 계곡으로 돌아가 집을 지을 장소를 둘러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집을 지을 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데, 송시열은 어떻게 바위 위에 집을 지었던 것일까? 거듭 생각하는 순간 비로소 암서재의 빗장이 풀리고, 닫혀 있던 옛집의 문이 스르르 열린다. 이 책은 이야기로 옛집의 문을 열고, 기어이 수백 년 묵은 마음의 빗장까지 풀고 마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의 역사서이자 건축 기행서이다. 함성호는 “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줄곧 강조한다. 특히 집 자체로는 소박하다 할 수 있는 우리의 건축은 지형과 지세를 포함한 지리적 차원에서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야기되어야만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들 자신부터 우리 옛집의 참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이 책이 안내하는 대로 옛집의 문밖으로 나가 옛집이 오래 간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라. 옛집이 털어놓는 오래된 비밀, 시(詩)로 지은 집 함성호는 조선 철학을 리(理) 중심으로 파악한 선구적 성리학자 중에 한 사람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가로 꼽는다. 이언적의 독락당(獨樂堂)에 다녀와서 진실로 설계도가 ‘시(詩)’인 집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또한 독락당의 정자인 계정(溪亭) 역시 자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정자라고 말한다. 이언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양동의 서백당에서 태어나 외삼촌인 우재 손중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란다. 그러나 막강한 정치적 후원자인 외삼촌이 뒤를 봐주며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언적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마흔의 나이에 일순 정계에서 밀려나고 만다. 패배감과 세상에 대한 울분을 안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이 바로 독락당이다. 그런데 이언적은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4백 년 앞서 살다 간 사마광의 생애와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선비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노래한 사마광의 「독락원기(獨樂園記)」에 나오는 한 구절에 몰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적 정취가 물씬한 구절을 있는 그대로 현실화한 것이 바로 ‘홀로 즐긴다’는 의미의 독락당인 것이다. 낚시 드리워 고기 잡고, 소매 걷어 약초 뜯노라. 도랑 치고 꽃에 물 주며, 도끼 들고 대 자른다. 세수하여 땀 식히고, 산에 올라 주위를 바라본다. 이리저리 바람 쐬며 거니니 내 마음이 흡족하다. -사마광의 「독락원기」에서 그러나 이 ‘독락(獨樂)’이라는 말에는 또 묘한 역설이 존재한다. ‘세상이 나를 버렸으므로’ 홀로 즐길 뿐이라고. 그래서인지 독락당의 대문은 아주 폐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솟을삼문이 없고 중문이 두 개인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언적 건축의 특성은 이언적에 대한 정치적·사상적 이해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의 범주는 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집을 지은 사람과 그의 삶, 또 때로는 그가 좋아하던 시 한 편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듣지 않고서는 집에 대해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함성호는 다년간의 걸친 현장 답사, 그리고 옛집의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묵혀 있던 옛 서적들을 탐독해가며 옛집의 뼈대와 처마와 지붕을 이루는 이야기들을 성실하게 밝혀냈다. 여기에 시인의 명민한 눈으로 옛집이 털어놓는 오래된 비밀들을 특유의 논리적이고 단단한 언어로 풀어냈다. 사상과 철학의 완성, 우리 시대의 옛집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긴 철학자는 누구일까? 제일 먼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손꼽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만 다섯 채가 넘는 집을 지었는데, 단순히 집을 소유한 건축주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건축 조영에 적용시켰다. 게다가 직접 설계도를 그릴 정도로 탁월한 안목을 지녔었다고 한다. 그런데 퇴계는 왜 평생 한 번 지을까 말까 한 고만고만한 규모의 집들을 수시로 지으며 옮겨 다녔을까? 함성호는 퇴계의 학문과 퇴계의 건축이 궤를 함께한다고 말한다. 퇴계의 생애를 크게 3기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퇴계의 건축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퇴계의 학문적 완성이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건축으로 표현 내지 구현되었다는 뜻이다. 또 퇴계가 여러 차례 집을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학문적 추이가 복잡했다는 것이고, 그때마다 일정한 깨달음을 가지고 건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의 인생 3기 중 마지막인 제자들을 가르쳤던 ‘강학기’에 지어진 ‘도산서당’이야말로 퇴계의 가장 완숙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현실적 장소라는 것이다. 특히 도산서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을 보면 퇴계의 리(理) 철학이 그대로 구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산서당의 담은 쌓은 것이 아니라 정원에 심어진 나무들과 똑같이 심어져 있다. 담이 가지는 경계의 기능이 없이 단지 공간을 구획하면서 여기저기가 비워져 풍경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흙담과 문과 계곡과 산까지 연상케 한다. 이것은 곧 보이지 않지만 모든 만물에 작용하는 원리인 리(理)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건축’만큼 다양한 철학과 사상이 담긴 분야도 없을 것이다. 인문학적인 성찰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현대에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신(新)공법에 따라 기이한 모양의 건축물까지 실현되고 있다. 즉 건축은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일종의 종합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머지않은 근래에서야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만,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은 진즉 건축의 위대함을 발견한 것이다. 평생을 바쳐 천착해온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건축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옛집을 통해 단순히 집이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만을 볼 것이 아니라 집이 자리한 위치와 집에 얽힌 이야기와 집이 말하고자 하는 생각과 철학까지 아울러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숨겨진 우리 시대 옛집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 옛집의 본모습은 정면이 아닌 그 너머에 있다. 그 보이지 않는 형태를 살펴보는 일이 곧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우리 시대의 옛집에 대한 예의이다.
“팔괘정은 여러모로 사계 김장생의 임이정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 서향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삼간지제를 정확히 따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세 칸 중에 두 칸을 널찍하게 마루로 삼고 한 칸을 벽으로 막아 온돌을 들인 것도 똑같다. 그러나 이 ‘똑같다’라는 말은 조선 건축에 있어서 그리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 건축은 똑같다. 조선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함은 누누이 설명해온 바다. 조선 건축은 지형과 지세를 포함한 지리적 차원에서 얘기되어야 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김장생의 임이정과 송시열의 팔괘정은 어떻게 다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자리가 다르다. 이 당연함이 조선 건축의 차이를 만든다. 임이정이, 삼면이(한 면은 당연히 집이 기대고 앉은 배경이다) 탁 트인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면, 팔괘정은 교묘하게 숨어 있다. 팔괘정의 마당에서는 금강도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숲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쪽은 커다란 바위로 가려져 있다. 동쪽은 집의 배경이다. 송시열은 스승인 김장생이 임이정을 짓고 강학을 하는 곳 옆에, 스승에 대한 사모의 정으로 임이정이 지척으로 바라보이는, 장대한 바위 옆에 팔괘정을 지었다. 사실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에게서 수학한 실질적인 기간은 고작 1년 남짓이다. 그 기간으로 보면 아무리 스승에 대한 존숭의 마음이 깊다 하여도 스승의 집 옆에 자신의 집을 짓고 가르침을 받고자 한 것은 아무리 품 넓게 생각해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더군다나 스승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송시열은 왜 한사코 임이정 옆에 자신의 거처를 정한 것일까?”
“니산(尼山), 공자의 자가 중니(仲尼)고 이름이 구(丘)이니 니산의 본래 이름은 공자의 자와 이름을 합친 니구산(尼丘山)이다. 니산은 주변에 별다른 높이의 산이 없어, 쉽게 눈에 뜨인다. 윤증고택이 자리 잡은 혈 이름은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현무봉(玄武峰)에서 나온 옥녀가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안산을 거문고 삼아 연주하는 형국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 혈 이름에 어울리게 집은 밝고 깨끗하고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형국론으로 보면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들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계룡산 줄기에서 발원한 산과 넓은 평야 지대, 그리고 금강으로 흘러드는 노성천의 줄기가 이 집의 터를 먼 데서부터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터에서 보면 그런 풍수는 보이지 않는다. 노성천의 줄기도 보이지 않고 너른 들도 보이지 않는다. 트여 있으나 편안하게 주변의 것들로 감싸여 있다. 주자 근본주의의 시대에 탈주자학의 길을 걸었던 다각적 추론의 집. 이 집의 정신과 멀리하면서 조선은 서서히 패망의 길로 들어선다. 시절이 어수선하고 수상할수록 일 없이 와보고 싶어지는 집이다.
이 집의 큰종부는 집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몸이 아파 입원해 있으면서도 혼자 있을 집 생각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윤증 고택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저절로 느껴진다. 그렇게 집은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다. 건축을 완성하는 마지막 손길,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집이다.”
목차
서문 처마 밑에서
시로 지어진 건축 독락당(獨樂堂)
은유와 상징의 집 양동(良洞)마을과 향단(香壇)
빛, 방울 소리 산천재(山天齋)
철학의 정원 도산서당(陶山書堂)
해상의 도학자 고산(孤山) 윤선도
이곳에서 노래 부르고, 이곳에서 곡하리라 다산초당(茶山草堂)
한 현실주의자의 포석 김장생의 임이정(臨履亭)
암중모색(巖中摸索)의 집 팔괘정, 우암고택, 암서재, 남간정사
다각적 추론의 집 윤증고택
주석
참고 문헌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