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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2021년 2월 15일 오늘의 책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김초엽, 듀나, 배명훈 외 | 문학과지성사 | 2020.09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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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calypse: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꿈꾸는 자의 아름다움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계를, 그러나 여전히 나를 기억하는 기계를 마주 본다. 김초엽 「최후의 라이오니」 “고래는 우리가 필요 없었어요. 그냥 견딜 만한 작은 기생충에 불과했지요.” 듀나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이 책의 맨 앞자리는 멸망Apocalypse의 순간에도 끝내 사랑하고 꿈꾸는 자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김초엽과 듀나는 지구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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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앤솔러지 《팬데믹》, 우리의 미래는…

 

저번 주, 시간을 때우러 간 서점에서 눈에 띄어 구입하게 된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 처음엔 독특하게 생긴 표지가 먼저 내 눈을 사로잡았고(사이즈도 다른 책에 비해 작아 눈에 띄었다) 그다음은 작가들의 이름, 그리고 출판사였다. 나의 머릿속에선 이미 시인선 시리즈와 한국문학전집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문학과지성사에서 이런 책도 내는구나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건 미쳤다. 마치 독립출판물인 척하는 베스트셀러의 느낌이랄까.

 

사실 표지 디자인은 매우 단순한 편인데 적은 수의 요소를 센스 있게 잘 배치한 것 같았다. 특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책등. 책 제목이 잘리는 리스크를 감수하며 중간에 작가들의 이름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

 

그렇게 책을 열면 작가들의 필모그래피가 적힌 책날개와 형광주황색의 면지가 맞이하는데, 평소 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비비드한 색감이라 사실 좀 놀랐다. 별거 아닐 수 있겠지만 나는 책을 열었을 때 속으로 ‘헉’ 소리를 냈으니까. 주르륵 책을 넘겨 내지 디자인을 훑어보면 표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이버펑크스러운 감성을 의도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를 필두로 듀나, 정소연, 김이환, 배명훈, 이종산 작가의 Pandemic(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을 주제로 쓴 개성 넘치는 단편들을 담고 있다. SF소설이지만 현재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시점, 읽을수록 책 속의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고 그만큼 더 이상 예전에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하루하루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소설은 각 챕터에 두 편씩 묶였다.

 

Apocalypse(멸망): 끝과 시작
_「최후의 라이오니」 김초엽
_「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듀나

 

Contagion(전염): 전염의 충격
_「미정의 상자」 정소연
_「그 상자」 김이환

 

New Normal(뉴 노멀): 다시 만난 세계
_「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배명훈
_「벌레 폭풍」 이종산

 

순으로 Apocalypse는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꿈꾸는 자의 아름다움’, Contagion은 ‘상자를 열고 나아간 사람들’, 마지막으로 New Normal은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는 신인류의 희망’을 나타낸다고 한다.

 

「최후의 라이오니」
책의 첫 단편이기도 하고 김초엽 작가라서 제일 기대하며 펼쳤던 「최후의 라이오니」. 확실히 SF소설의 초신성 같은 작가라는 타이틀에는 이유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자신이 머릿속에 그려놓은 또렷하고 자신감 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적어내는 느낌. 개인적으로는 스타워즈 같은 우주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후의 라이오니」는 읽을수록 애틋한 감정을 느껴서 결말 즈음에는 글씨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며 읽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을 라이오니만 기다리던 셀과 라이오니가 아님에도 셀과 기계들을 구하려 하는 ‘나’.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에서 살아남은 기계들의 최후는 인간과 다름없이 슬프고 가여웠다.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처음엔 제목만 보고 고래의 입에서 걸어 나오는 피노키오 같은 사람들의 이미지를 상상했었는데 아니었다. 고래는 지구였다. 책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고래는 우리가 필요 없었어요. 그냥 견딜만한 작은 기생충에 불과했지요.” 생각해보면 인간은 지구의 주인도 뭣도 아닌데 바이러스처럼 지구를 빠르게 파괴하고 병들게 만들었다. 단지 몇 세기 만에 편리 하고자 하는 욕심과 앞뒤 가리지 않는 생각들이 뭉쳐서 말이다. 소설에서 사람들은 고래가 병들면 다른 고래를 찾아 떠났지만 현실의 우리에겐 제2의 고래가 없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보다 깊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미정의 상자」
개인적으로는 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길에서 상자를 줍고 과거로 타임리프를 하는 스토리가 그냥 그랬다. SF적 요소를 억지로 욱여넣은 듯한 느낌을 받아서였을지도. 재택근무나 코스크 등의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 역순으로 나오며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었다.

 

「그 상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코로나, 혹은 그 외의 바이러스가 생겨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가장 현실성 있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로 사람과 소통 가능한 보급형 인공지능과 드론으로 받는 택배, 바이러스 항체 보균자 등의 요소가 멀게 느껴지지 않아 더 그랬던 것 같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못지않게 궁금증 유발하는 제목이다. 이 작품도 「최후의 라이오니」처럼 작가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뚜렷한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어려울 수 있는 스토리인데 실제로 보고 겪은 듯한 자세한 설명과 묘사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 같은 2113년의 역사학과 격리 실습실을 상상하며 썼다는 게 놀라웠다. 소설을 읽으면서 실제로 저런 곳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잠시 스칠 정도로 몰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이나 미래나 연예인을 보는 일반인의 심정은 다 똑같구나 싶기도 했다.) 제일 놀라웠던 건 미래의 언어가 지금과 똑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조선시대와 지금의 말소리가 다르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 같은데, 그 때문인지 정말 재밌게 읽었다. 직접 소리 내어 읽으면 느낌이 색다르다.

 

「벌레 폭풍」
완벽한 언택트 시대를 보여주는 미래, 모든 세상을 스크린 윈도우로 보는 삶은 어떨까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답답했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인해 단체모임이나 음식점을 못 가는 수준이지만 나중에 3단계가 계속되거나 집 밖을 아예 못 나가게 된다면 정말 고문이 아닐까. 소설은 인간이 주의해야 할 것이 비단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라는 듯, 지구온난화로 인해 녹게 된 빙하에서 생기는 새로운 박테리아와 병, 그리고 생태계의 파괴로 생긴 폭발적인 벌레 떼의 출몰을 다룬다. 예전부터 오존층이나 지구온난화, 환경에 대한 문제는 계속된 인간의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제는 정말 때가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에게 미래는 없다.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는 읽으면서 뭔가 넷플릭스의 「로봇 데스+로봇」과 「블랙미러」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공통적인 주제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전염병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책들보다도 더 직접적인 공감과 감정이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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