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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2020년 6월 11일 오늘의 책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김지현, 최연호 | 비채 | 2020.03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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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 했던 소설 속 음식들,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의 맛’에 대하여 소공녀 세라, 하이디, 작은 아씨들, 주디 애벗…….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그들의 친구가 되어 고민을 털어놓고 웃음과 눈물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건포도빵과 나무딸기 주스, 그레이비 같은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음식의 맛을 황홀하게 음미했을 것이다. 이 모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번역의 힘 아닐까. 작가이자 번역가인 김지현의 첫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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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떠나는 나만의 시간 여행

 

“얘들아, 정어리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돼지고기 파이를 한 입 먹은 다음, 코코아 우유를 한 모금 마셔봐.”

에니드 블라이튼, 《세인트클레어의 말괄량이 쌍둥이》 中

 

어릴 적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마주치면 눈이 휘둥그레 돌아갔다. 정어리 샌드위치는 무엇이고, 돼지고기 파이는 또 뭔데. 거기에 코코아를 같이 마신다고? 어떤 조합인지 감도 안 오지만 이미 책 속 시공간으로 이동해, 어느새 주인공과 함께 맛의 향연을 즐기는 기분이다. 낯선 문화권의 소설은 바로 이런 묘미가 있다. 나와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먼 나라 인물에 폭 이입해 느껴본 적 없던 감정들이 내게 다가온다. 누구나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활자를 읽는 순간 바다를 가로질러 새로운 세계와 삶을 만나고,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음식의 맛까지 생생하게 맛보는 그런 순간 말이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우리가 책을 읽으며 상상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던 문학과의 첫 조우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가이자 영미문학 번역가인 저자 김지현은 그녀가 어릴 적 좋아했던 명작선이나 소녀 소설에 나오는 온갖 종류의 음식들을 꺼내 보며 세계문학 ‘먹방’을 떠난다. 하이디가 알프스 산에서 먹던 검은 빵, 셜록 홈즈가 손님을 맞이하며 준비해둔 멧도요 요리, 빨간 머리 앤과 그녀의 친구 다이애나가 나무딸기 주스인 줄 알고 함께 퍼마신 커런트 와인 등등… 유년 시절 추억과 향수가 가득한 작품 속으로 다시금 퐁당 빠져든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처음 문학을 만났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책이 불러일으킨 상상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누구든 만날 수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 그건 내게 어마어마한 자유의 경험이었다. (…)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른들이 내 주위에 그어 놓은 한계를 넘어 종횡무진 활약했다.

 

하지만 저자가 떠나는 기행은 단순한 ‘추억 팔이’ 여행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그 시기 우리가 읽었던 소녀 소설이 현재 어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궤도를 세심하게 추적해 나간다. 마치 고고학자가 땅속 유물을 하나하나 파며 이 요물이 어느 시대에서 온 물건이고, 이 발견이 현재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의미를 캐내는 여정과도 닮았다.

 

하이디, 앤, (소공녀) 세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 이 주인공들은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사는 시대와 국가도 다르지만 그들 사이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어른들이 정했던 울타리를 자유롭게 부수고 상상력으로 자신의 삶을 확장해나간 주체적인 아이들이다. 하이디는 자연 속에서 할아버지와 살고 싶다는 염원을 미뤄둔 채 도시에서 불행하게 지냈으며, 앤은 고아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세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하녀로 전락했고, 제제는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매일 꾸중과 협박을 들으며 자란다. 아이로서 충분히 뛰어놀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무시당하고 정신적인 학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한계를 뚫고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했기에 매우 주체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기밖에 모른다며 혼을 내곤 하지만, 사실 어른들이야말로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아이에게 강요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독자인 우린 모두 ‘아이’라는 왜소한 존재로 살아갔던 경험이 있다. 그 시절에 우린 책을 읽으며 또래 주인공이 발휘했던 상상력 때문에 크나큰 자유를 함께 경험했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순간을 캐내며, 아동청소년 문학이 우리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줬을지 되짚어 본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으면 내가 처음 문학을 접하며 느꼈던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다시 내게 진하게 전해진다. 진정으로 문학을 즐기고 애정을 품었던 유년기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이 책을 안내서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책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음식 못지않게 강렬하고 알싸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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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편집자를 꿈꾸는 지망생입니다.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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