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0일 오늘의 책
김훈 | 학고재 | 2017.07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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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병자년 겨울. 청나라 10여만 대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조선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다.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럽혀질 것인가.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는 척화파와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그들은 47일 동안 칼날보다 서슬 푸르게 맞선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연휴에 동생과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상영관에는 긴 침묵이 돌았다.
“영화는 좋은데, 보고 나니까 너무 화가 나”
긴 침묵 끝에 조용히 일어나면서 동생이 말했다. 눈에는 분기가 서렸고, 눈물이 조금 맺혔다.
우리 역사에서 치욕스러운 장면과 대면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상영관의 관객 모두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침묵 속에서 느릿느릿 사람들이 상영관을 빠져나갔다.
최근 영화 〈남한산성〉이 흥행하면서 소설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고조되고 있다. 『남한산성』의 출간 10주년인 올해 개정 신판이 출간됐고, 영화 개봉 즈음하여 판매 부수도 오르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지난해 우리가 겪었던 나라 안의 상황이 겹쳐 보였고, 소설 『남한산성』을 읽을 때는 슬펐다. 슬픔이라는 짐승이 있어, 날카로운 이빨로 가슴을 뜯긴 것 같았다.
1636년 병자년 겨울 청나라 10만 대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그해 겨울 묘당은 남한산성에서 고립된 채 47일을 보낸다. 김상헌으로 표상되는 척화파는 맞서 싸울 것을, 최명길로 표상되는 주화파는 화친을 주장하며 성안에서 팽팽하게 맞선다.
임금의 교지를 들으면서 최명길은 울음같은 말들을 참아 내고 있었다. 담장 너머로 삼전도 쪽 들길이 점점 흐려졌다.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 책 속에서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 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릴 것이므로, 군사를 앞세워 치고 나가는 출성과 마음을 앞세워 나가는 출성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먼 산줄기를 바라보며 김상헌은 생각했다.
- 책 속에서
두 사람이 제시하는 ‘길’은 정반대다. 작가는 무게 중심을 어느 하나에 두지 않고, 팽팽한 두 세계관의 대립을 그린다.
다만 말(言)이 창궐한 성 안에서 정작 싸움을 치러야 할 말(馬)이 굶어 죽는 장면의 대비가 공허하고 슬펐다.
저 먹을 식량 하나 짊어지고 오는 자 없는 입성이나, 엎드려 죽음을 주장하고서 청군의 공격이 가까워지자 성을 빠져나가는 당하…. 길이 아니고 삶이 아닌, 헛헛한 말과 풍경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김상헌의 자결을 그렸으나,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김상헌은 자결을 시도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목숨을 건지고, 3년 후 심양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다룬 작품이 나오고 그것이 대중에 어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되새기는 것은 결코 치욕이 아니다. 역사의 치욕을 감추고 왜곡하고, 그로써 잊는 것이 치욕이다.
성찰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기 어려운 까닭이라 한다. 어두운 역사, 치욕스러운 역사를 마주보고, 대면하고, 밝혀 보아야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또 영화는 그런 면에서 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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