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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

2018년 1월 1일 오늘의 책

당신의 신

김숨 | 문학동네 | 2017.10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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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이 보여주는 숨막히는 강박성은 우리를 압도한다. 건조한 문장 속에 감춰진 충동과 정념은 폭발하기 직전이다. 이 광물적 삶 속에서 나가기, 서로 다른 둘을 하나로 세지 않고 둘로 세기, 그것이 「이혼」으로 제시되었던 셈이다. _양윤의, 해설 「불완전한 사랑의 그림자—김숨, 『당신의 신』에 부치는 마흔아홉 개의 주석」에서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우리’라는 폭력적 명명이 아닌 ‘나’와 ‘너’로 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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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


현모양처(賢母良妻), 어진 어머니이자 착한 아내. 어진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고, 착한 아내는 어떤 아내일까. 분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머니나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아내는 아닐 것이다. 지극 정성으로 아이를 키우고 사랑으로 가정을 보듬으며, 항상 사려 깊은 미소를 짓는 어머니와 힘들게 일하는 가장인 남편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고된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는 마음씨 좋은 아내일 것이다. 흠잡을 데 없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현모양처(賢母良妻).

하지만 누구도 현모(賢母)로 태어나지 않는다. 신경숙 작가가 썼듯이,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다. 엄마도 분명 나처럼, 혹은 당신처럼 누군가의 뱃속에서 나와 아장아장 기어 다니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엄마가 되었을 뿐인데, 그렇게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생을 하며 육아를 견뎌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위대한 모성을 지닌 어머니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사람이 갑자기 아이를 낳았다고 ‘모성’이라는 게 저절로 샘솟을 리가 없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는데.

누구도 양처(良妻)가 되려고 결혼하는 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한다. 그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분명 남편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것이 주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혼일 것이다. 밖에서 가져온 피로와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남편에게 매일매일 웃고, 때론 아무런 감흥도 없는 의무적인 성관계를 맺기도 하고 남편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남편 대신 효도를 하거나, 아침밥을 차리지는 못해도 ‘여자’라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더 집안일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모(賢母)도 양처(良妻)도 인간의 영역도, 역할도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김숨의 신작 소설 『당신의 신』에서는 여성이 짊어진 허상과 끔찍한 굴레를 보여준다. 그녀가 풀어내는 장면 하나하나는 우리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그녀가 담백하게 묘사하는 폭력과 고통은 숨을 턱, 막히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그녀가 쓴 한 대사, 한 장면으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녀가 쓰지 않은 이야기들을 스스로 배경에 채워 넣으며 작품을 읽게 된다.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어쩌겠어요.」
「우리......요?」
그녀는 묻는 눈빛으로 최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내들 말이에요. 우리 둘 다 힘든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으니 어쩌겠어요.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팔자라고 생각해야 하나......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너그러워져요. 이해 못할 일도, 용서 못할 일도 없고요. 아들이 살인을 저질러도 끝까지 감싸고 도는 게 어머니잖아요.」
(19~20쪽) 「이혼」

농담처럼 ‘남자는 커도 애다’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겐 가벼운 농담이겠지만, 그녀의 한탄하는 듯, 그러면서도 이해한다는 말투에 숨이 막혔다.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무조건적 사랑만으로도 벅찬데, ‘남자는 커도 애’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는 것은 여자에게 또 하나의 굴레를 씌울 뿐이다.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둔 여자들은 “힘든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다는 선택을 한 것일까? 아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남편이 아들이 될 줄 몰랐으며(그랬다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을 것이다.), 남편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결혼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들처럼 구는 남편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는 커도 애’인 것이 용납되는 사회이고, 여자는 그런 ‘애’를 돌보는 게 당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김숨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김숨의 단편 속에는 잠시 멈춰서 그녀가 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게 만드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스물여섯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와 부부로 산 햇수는 고작 육 년이었지만,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햇수는 삼십구 년이었다.”
(61쪽) 「이혼」

자그마치 삼십구 년 동안,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제사음식을 만들겠다고 장을 한 아름 보고는 집에 와서 몇 시간 동안이나 전을 부치고 나물을 부치고 갈비를 재우고...... 그리고 그 일을 며느리나 딸에게 물려주면, 또다시 그녀는 수십 년 동안 그 일을 반복한다. 39년 전에, 혹은 그보다 더 먼 옛날에 죽은 어떤 한 남자를 위해 대를 이어 고된 집안일을 반복한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데, 막상 나도 우리도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두는 쪽이 더 힘들어서. 제사를 모시고 명절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당연한 듯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몰염치한 당당함에 지쳐서, 그리고 당연한 듯 닥쳐오는 그들의 무심한 폭력이 무서워서. 그것과 싸워나가느니 그저 하루나 이틀쯤 죽어라고 고생하는 게 더 편해서. 결코, 그게 옳거나 즐거워서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김숨이 쓰는 서늘한 문장 속에는 묵은 체념의 세월과 분노가 꾹꾹 눌러 담겨 있다.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새 격정적인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체념 어린 슬픔이 몰려오곤 한다. 눈이 멈춘 한 문장이 이야기를 낳고,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 전체만큼 커진다.

김숨이 그리는 여성의 모습을 한 조각 한 조각 모으면 깨닫게 된다. 여성 한 명 한 명이 누군가의 신이 되어버렸다고. 자신을 잊고 부모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신적인 사랑을 주며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우리는 그 속에 파묻힌 엄마도 아내도 딸도 며느리도 아닌 여성을 찾아야 한다. 어머니도 아내도 딸도 며느리도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하지만 허상을 하나하나 지우고 덧칠된 색을 벗겨내다 보면 원래 모습마저 다 뜯어져 나가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한 여성이 자신보다 더 크고 넓은 색으로 덧칠되어 그녀가 전부 가려진 건 아닐까, 무서워진다. 하지만 찢어버려야 한다. 살점이 조금 뜯기고 마음이 다칠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모든 신을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읽기를 간절히 바란다.


| 펜벗 인터뷰


1. 수많은 책이 쏟아져나오는 요즘입니다. 숱한 신간도서들 중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김숨 소설가의 『당신의 신』을 소개하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당신의 신』에 수록된 「이혼」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아내들의 학교』, 『딸에 대하여』, 『현남 오빠에게』 등의 작품을 읽어보았지만, 「이혼」이 가진 이야기와 작가의 문장력이 오랜 여운과 복잡한 고민을 남겼습니다. 김숨 작가는 결혼이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여 ‘이혼’이라는 결말을 맺는지를 보여주며 여성의 삶에 대한 다양한 논제를 던집니다. 주인공이 이혼을 결심하고, 어머니가 힘겨운 결혼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이혼한 여성이 마주한 현실과 고민 등을 부디 천천히 고민하며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두는 쪽이 더 힘들어서. 제사를 모시고 명절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당연한 듯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몰염치한 당당함에 지쳐서, 그리고 당연한 듯 닥쳐오는 그들의 무심한 폭력이 무서워서. 그것과 싸워나가느니 그저 하루나 이틀쯤 죽어라고 고생하는 게 더 편해서. 결코, 그게 옳거나 즐거워서 계속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서 올리는 제사에 대해 우리나라의 ‘전통’을 보존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Pianica01님은 제사가 사라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전통’을 어떻게 이어오고 있는지, 그 현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 ‘전통’이 지니는 가치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사라는 ‘전통’은 분명 성차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방식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제사에 필요한 온갖 노동을 여성이 담당하고, 남성이 제사를 주관합니다. 여성의 역할이 제한된 전형적인 유교적 전통이며, 여성은 노동을 제공하고 남성이 주체가 되는 구도입니다.

최소한 어떠한 ‘전통’이라도 이런 방식으로 이어져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전통’을 지키고 싶다면, 그 전통을 ‘자기 손’으로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함께 일하고 모두 함께 주체가 된다면, ‘전통의 보존’을 중시하시는 분이 제사를 지내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3. '누구도 양처(良妻)가 되려고 결혼하는 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한다.'
Pianica01 님이 꿈꾸시는 결혼생활의 풍경이 있나요?
꿈꾸는 결혼생활은 사실 없고, 꿈꾸는 동거생활은 있습니다. 감정적 유대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집안일을 좋아해서 제가 다소 많이 해도 상관은 없지만, 생활의 사소한 부분부터 각자의 인생의 방향에 대해 자주 의논할 수 있는 사이면 좋겠습니다. 서로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불안할 때,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상대가 결혼을 원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 생활을 꿈꾸진 않습니다.

그래서 양가 친척과 친구를 불러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 신고를 하고, 서로의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딱히 저의 가족을 챙겨주길 바라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현명한 어머니가 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서로가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것’ 이외의 고민을 최대한 배제하고 싶습니다. 현실이 그렇게 무르지 않지만요.

그래서 부디 ‘결혼은 그저 제도’라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함께 살아갈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고민할 수 있는데, 결혼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람이 서로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폭을 제약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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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일, 그리고 페미니즘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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