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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조해진, 김현 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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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248029 / 232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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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구십구 방울의 슬픔이 아니라 한 방울의 기쁨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상영 시간표에 맞춰 표를 찾고 어두컴컴한 극장에 들어가 좌석을 찾아 앉는다. 포근한 좌석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영사기에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며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이 시작된다. 김현은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질풍노도의 먹고살기, 사무생활기, 인간관계기를 견뎌왔다. 조해진은 영화 자체를 떠나 스크린 바깥의 것들로 그 영화를 기억하기도 한다. 영화를 본 극장의 분위기, 영화를 볼 때의 마음, 엔딩 곡과 자막을 신호로 현실의 스위치가 켜질 때의 아연함……. 시인은 소설가를 “속마음에 걸려 바깥에서 넘어지는 사람”이라 칭하고, 소설가는 시인에게 “멀리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나를 걱정하는 시인님의 다정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편지는 말하기에는 쑥스러웠던 속 깊은 이야기와 서로를 향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글자로 된 우정의 숲”으로 탄생한다. 1부 「상영 시간표를 상영해주세요」에서는 각자 품고 있던 고민에서 시작해 ‘슬픔의 형태보다는 기쁨의 방식’을 찾는 방향으로 흐른다. ‘봄의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본 조해진의 편지에, 김현은 “바다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길을 어느 봄날엔가 누나와 함께 걸어도 좋을 것 같다”라고 답한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 앞에서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날들 가운데 “환대하고 환대받은 날을, 웃고 떠들며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 체온을 나누고 손끝으로 감정을 느끼던 순간들”은 영화 속 명장면처럼 뇌리에 깊게 박혀 삶의 슬픔을 중화시키는 ‘한 방울의 기쁨’이 된다. “사는 동안 더 많은 기쁨을 누리자”는 다짐은 소소한 사랑의 모습을 구체적인 형태로 그려보게 한다. 2부 「모모 님이라고 부를게요」는 두 사람이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모모 님’이라 직접 부르며 좀더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다. 시인은 친구의 죽음을 통과한 뒤 “먼저 떠난 이를 지나간 추억 속에 두지 않고 앞으로 쌓게 될 추억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산 사람의 몫을 살아가자고 말하고, 소설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추억 채집자’로 규정하며 “맛있는 것을 먹고 달콤한 것을 마시고 길고 긴 길을 산책하고, 그리고 영화와 책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곧 삶이라는 걸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책 마무리에는 시인과 소설가가 언급한 영화 목록도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절에 따라 떠오르는 자신만의 영화를 꼽아보고, 본 영화라도 두 사람의 감상을 더해 다시 보고, 아끼는 누군가와 영화를 함께 본 영화관을 추억해보고, 그날 같이 즐겁게 나눠 먹은 식사를 떠올리며 빙긋이 웃게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잃어버린 시절이 이토록이나 가까이 있음을 새삼 깨닫고 자주 들여다보면서 사랑으로 출렁이는 밤을 더 자주 갖게 될 때, 우리의 기쁨은 비로소 환한 빛으로 상영되지 않을까.

저자 소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신동엽문학상, 문학동네젊은작가상, 무영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등이 있다.
최근 <호시절>이라는 시를 썼다. 부모와 자식, 봄볕과 분재, 도다리쑥국이 이루는 세계. 그런 시절을 되돌아보거나 미리 내다보는 사람이 되고자 하던 때도 있었다. 어릴 때도 지금도 기쁨이 많은 사람이나 이제 곧 슬픔이 기쁨을 앞지르게 될 것임을 안다. 그게 호시절이다. 2009년 《작가세계》로 등단했고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산문집으로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가 있다. 쓰고 읽고 일한다.

책 속에서

현아,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도 될까?
어쩐지 편지 바깥에서 너는 이미 항복한 듯 난감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하긴, 인간이 아름다운지-혹은 인간을 아름답게 보는지-의 기준은 모호하고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은 가변적이지. 어제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침과 저녁 사이에도 우리는 유빙인 듯 먼지인 양 생각과 생각 사이를 표류하는 존재들이니까. 고민하고 방황하고 배회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인간일 테니까. (16~17면)

저는 요즘 안식에 대하여 자주 생각합니다. 안식일의 평화에 대해서요. 가까이 어울려 지냈던 친구의 죽음 때문입니다. 산다는 건 기쁨의 흔적들을 남기는 일이며 그런 것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중화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홀연히 떠나는 슬픔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경험하게 될까요?
지난밤 짝꿍은 잠에서 깨어 그 친구가 꿈에 나왔다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습니다. 짝꿍의 등을 어루만져주면서 감히 ‘우리의 삶’을 갸륵하게 여겼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유일한 청자”가 되어주는 일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20면)

어리석게도 그때 나는 말이야, 외로움은 느린 사람에게, 가만히 서 있는 사람에게,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에게, 발길을 잘 떼지 않고 한곳을 응시하는 사람에게, 멈춰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거라고 믿었어. 활력이 넘쳤지. 근데 외로움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결투도 다 힘이 남아돌아야 할 수 있는 거더라. 머리에 새치가 하나둘 생기고 보니 외로워서 뜨거웠던 시절은 지나갔구나, 하고 나를 홀로 세워두게 되더라. 비로소 고독해지더라. 내가 아니라 네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더라. 아, 저이는 지금 얼마나 외로울까, 하고.
누나, 이 겨울에 나는 타인의 외로움이나 우울을 번역하는 데에 마음 쓰고 있어. 다가가서 물어보곤 해.

너는 누구니?
어디서 왔니?

누나,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 것이 외로움과 잘 사귀어 지내는 방법이더라. (35~36면)

누구나 언젠가는 그런 장소에 도달하겠죠. 그때 나는 떠올리고 싶어요. 환대하고 환대받은 날을, 웃고 떠들며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체온을 나누고 손끝으로 감정을 느끼던 순간들을. 가령 산 정상에서 나눠 마신 아이스커피의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혀를 휘감던 순간과 기차와 기차 사이의 연결 통로에 나란히 앉아 노래를 불렀던 순간 같은. 그리고 출판사에서 첫 책을 받아온 날, 카페 창가에 앉아 마치 그 책이 연약한 새끼 새의 심장이라도 된다는 듯 표지에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올려놓았던 2008년의 늦가을을 말이에요. (57~58면)

마음은 동사라는 말뿐 아니라 시인이 ‘허무맹랑하게 다정하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시인님과 나는 사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고 따로 만나는 일도 드물며 함께 여행을 하거나 서로의 집을 방문한 적이 없죠. 그러나 멀리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나를 걱정하는 시인님의 다정이 전해지곤 합니다.
시인님, 나의 다정도 이 편지에 담아요. (86면)

누나.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각이 생겨나버리기도 하지요. 누나는 생각하기 위해 자주 걷나요, 생각하지 않기 위해 걷고자 하나요. 오늘 저는 걷다가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면 깨끗이 씻고, 잘 먹고, 푹 자자.
어느새 저는(우리는) 이런 것도 결심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92면)

그렇다면 동시 상영 극장에 드나들던 학창 시절 얘기도 해볼까요. 저는 그때…… 철 지난 개봉 영화들을 두 편씩 묶어 상영하는 소읍의 극장을 드나들며 활기찼습니다. (…) 한 번 끊은 표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는 게 가능해서 하루 대부분을 극장에서 보낸 날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자 있고 싶어서였죠. 어둠 속에서 홀로 인생을 돌아보았어요. (117면)

그러니 조금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철원 읍내의 극장들을 순례하며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기를 자청한 김현과 서울의 강서 지역에서 뜨거운 얼굴을 숨긴 채 어서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만 버티던 나, 우리는 생의 어떤 모서리에서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했으리란 것을요. (128면)

죽음이란 어쩌면 빛이 가득한 문 뒤에 있는 작디작은 알갱이에 불과하진 않을까요. 이런 비유는 지나친가요. 허무맹랑한가요. 그렇지만 그리 생각해야 우리는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이며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통과하며 저는 사는 동안 더 많은 기쁨을 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기쁨을 산 사람들과 나누자고요. (164-165면)

모모 님, 그 진심이 퇴색되고 거부되는 과정 역시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시간에 포함된다는 것이, 나아가 내 진심의 순도를 강조하고 피력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된다는 것이 저를 주저하게 합니다. ‘어떤 장면이나 기억 덕분에 단단하게 응고되었다가 이내 흩어져버리는 순간적인 상태’가 지나면 행복했던 나날도 믿어지지 않을만큼 강렬한 슬픔의 덩어리로 남는다는 게 저는 여전히 의아하기만 하니까요.
그리고 이 편지를 다 써가는 지금, 어쩌면 진심이란 그 후회마저 포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198면)

 

 

목차

프롤로그 영화는 편지처럼 편지는 영화처럼

1부 상영 시간표를 확인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가까스로 인간
겨울 예감
외로움도 번역이 되나요?
나의 얼굴과 너의 얼굴이 마주 보는 일
저토록 작고 연약한 생명 앞에서
바라보는 마음
환대하는 마음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Happy birthday dear our······
나는 살아 있습니다
마음이 동사와 일치하지 않을 때면
마음을 옮겨 나아갑니다
일하면 일할수록
능금 능금 능금 능금 능금 능금
이름이라는 첫인사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손가락을 움직여서, 씁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은 외계인
우리 삶이 영화가 된다면

2부 모모 님이라고 부를게요

우리 각자의 장국영
남겨진 것들을 위한 빛
여성이 여성을 구한다는 것
시라는 선생님
연애편지를 써본 적이 있나요?
사랑은 잠 못 이루는 밤
끝을 알고도 선택하는 마음이라면
답장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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