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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의 사 춘원 이광수 전집 14

시리즈 : 춘원 이광수 전집 [3]

이광수 저 | 태학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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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727259 / 384쪽 148 x 210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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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차돈의 사󰡕, ‘옳음’과 ‘믿음’을 향한 한 인간의 자세

『이차돈의 사』는 『조선일보』에 1935년 9월 30일부터 1936년 4월 12일까지 137회 연재된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차돈이 대의를 위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이차돈에게 죽음은 육체의 마지막일 뿐이며 자신의 ‘옮음’과 ‘믿음’은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렇게 이차돈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궁극적 뜻을 이루는데, 이는 작품 말미에 그동안 방해자로 기능하던 사람들이 모두 자결함으로써 속죄와 반성의 길을 걷는 것에서 드러난다. ‘순교’와 ‘회개’라는 구성 요소는 종교적 담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이차돈의 죽음은 곧 종교적 생명력이 되는 재생의 순환적 양상을 보여준다. 불법의 포교뿐 아니라 국법을 바로 세우고 임금의 왕위를 보전하기 위한 이차돈의 선택에서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심정 토로이다. 이로 인해 ‘옮음’과 ‘믿음’의 구체적 내용, 즉 진리를 향한 인간의 자세나 태도가 부각된다.

출판사 리뷰

이광수는 『이차돈의 사』 신문 연재에 앞서 밝힌 ‘작자의 말’에서 이차돈에 대해 “전 조선의 반만년 역사를 통하여 가장 아름답게 살고 가장 아름답게 죽은 영웅”이라 평하면서, 그의 죽음을 “아름다운 순교자”의 반열에 놓았다. 또한 이후 출간된 『이차돈의 사』 단행본 ‘머리말’에서는 자신이 사모하고 숭배하는 것은 순교자이며, 순교자 정신이란 “옳음과 믿음을 위하여서는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진리를 찾고 지키는 생활을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이광수는 ‘그릇된 인류 생활’을 고치기 위해 ‘진리의 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순교자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과 중일전쟁 직전의 ‘혼란’과 ‘살육’의 시대에, 작가는 진리를 말하고 지키는 사람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이광수는 불교에 몰두해 있었으므로, ‘부처의 가르침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호법불석신명(護法不惜身命)’을 지켜낸 이차돈의 일생과 그 정신을 형상화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이 작품은 영웅의 일대기가 서사의 근간을 이룬다. 이차돈이라는 신라 최초의 불교 순교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고난과 순교라는 비극적 죽음을 형상화한 것인데,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였기에 사실(史實)보다는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소설 구성에 절대적인 작용을 했다. 이로 인하여 『이차돈의 사』는 신라에서의 불교의 공인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사사화(私史化)하고 개인의 애정 갈등을 동기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였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이광수의 다른 역사소설에 비해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차돈의 희생의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충정(忠情)의 문제다. 즉 자신이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그것이 나라 법과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는 1930년대 이광수가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작가 의식과도 연관된다. 이 시기 이광수의 작가적 태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옳음과 믿음을 변치 않았던 숭고한 인격에 대한 숭앙과 흠모’로 요약되는데, 순교자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타협’으로 인한 내적인 부끄러움을 상쇄하고 자존감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광수는 선택의 상황에서 이차돈으로 하여금 죽음과 희생의 길을 걷게 함으로써 상상으로나마 자신을 옹호하고 자존감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국가와 군주에 대한 절대 복종과 신의를 바탕으로 구사하는 충정은 이광수 역사소설의 주된 주제 중 하나다. 존엄하고 숭고한 그 어떤 것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에 대한 절대적이고 비타협적인 충정을 발휘하는 양상은 『단종애사』나 『이순신』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이광수는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노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묘사했다. 『이차돈의 사』의 경우에는, 특히 이차돈이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그 충정의 형상화를 개인의 내면 갈등과 희생, 신의라는 대의와 연관지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아가 죽음에 임박하여 왕에게 고하는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충정의 마음을 곡진히 드러내고 과장되게 그것을 서술하는 과정 자체를 소설의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죽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는 자의 심정 토로가 중요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옮음’과 ‘믿음’의 구체적 내용, 즉 불교 교리의 실제 내용이 전달되기보다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자세나 태도가 부각된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자 소개

  • 역자 :
감수자 소개
홍혜원: 이화여자대학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이광수 소설의 이야기와 담론』, 『경계에서 사유한 한국소설』, 공저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한국현대작가 연구』, 『한중일 근대문학사의 반성과 모색』, 『한국사회와 여성』, 『시대, 작가, 젠더』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절을 짓고 백성들에게 불법을 설한 죄는 국법에 비추이면 마땅히 죽일 죄요. 국법이 서지 아니하면 나라이 서지 못한다 하였사오니, 이 몸을 죽이시와 국법을 세우시오면 간악한 무리가 다시 국법을 어기지 못하게 될 것이옵고, 국법에 비추어 이 몸을 처단하시오면 국법을 범하는 다른 무리들이 저절로 국법의 처단을 받게 될 것이오. 그리하시와 모든 간악한 무리를 다 물리치신 뒤에 상감마마께오서 법을 고치시와 나라에 불법 행하기를 허하시오면, 그때야말로 나라도 잘되고 불법도 잘 행하게 될 것이 아니오니까. 이제 비록 공목, 알공의 무리가 사욕을 가지고 위로 신금(宸襟)을 괴롭게 하삽고 아래로 민심을 선동하옵거니와, 그들의 말이온즉 국법을 내세우오니 이때에 이 몸 하나를 죽이시와 국법의 위엄을 세우심이 옳을까 하오. 인자하오신 마음에 이 몸이 죽는 것을 애처롭게 여기심이오나 나라와 불법을 위하와 목숨을 바치옵기는 억천만 겁을 나고 죽고, 죽고 나고 하옵더라도 당하기 어려운 기쁜 일. 나라 법과 부처님 법을 위하시와 이 몸을 죽여주시는 것이 이 몸에게 베푸시는 자비시오. 또 이 몸의 어리석은 마음이 생각하옵건댄, 오늘 일은 핑계는 이 몸 하나를 위함이라 하오나 속으로는 불측한 마음을 품은가 싶사온즉, 만일 상감마마께옵서 이 몸을 두호하옵시면 국법을 깨뜨린 허물을, 황송하오나 상감마마께 씌우사와 무슨 일을 할지 모르오니, 만일에 그리되어 상감마마께오서 자리를 전하시오면, 그리하옵고 다른 이가 자리에 오르오면 이 나라에 불법이 어느 제 행하게 되올지 모를 것이온즉, 상감마마께오서 첫째로 나라를 생각하시옵고 더욱이 상감마마 몸을 생각하시옵고 무엇보다도 불법을 생각하시와서 이 몸을 국법을 범한 죄로 죽이라 하시옵소서.” (pp.343-344)

목차

발간사

이차돈의 사

작품 해설: 신의를 향한 이차돈의 삶과 숭고한 죽음_ 홍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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