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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二月

윤동주 외 저 | 저녁달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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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겨울 끝자락의 감성이 묻어나는 에곤 실레의 그림 44점과 윤동주, 백석, 노천명 등의 시 29편이 실렸다. -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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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6324315 / 112쪽 110 x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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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28세에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로 만나는 내면의 세밀한 감성!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 툴른이라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파격적으로 섹슈얼한 그림으로 당대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그는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화가다.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마른, 그림 속 자화상은, 세상을 향한 반항인 듯 고통스럽게 뒤틀려 있고 표정은 일그러진 채 관객을 노려본다. 열두 개의 시화집 시리즈 2월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는, 에곤 실레의 고독과 외로움이 담긴, 44개의 그림 도판과 2월의 감성이 담긴 시 29편이 실려 있다.

출판사 리뷰

\"혜안을 가진 열 명을 포함한 천 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명의 천재, 한 명의 발명가, 한 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 천 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 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에곤 실레 <페슈카에게 보낸 편지,1910>


독자들로부터 은근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이, 에곤 실레의 그림이 실린 에곤 실레 편을 끝으로 완간되었다. 2월편이자 시리즈의 완성본인 2월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에는 겨울 끝자락의 감성이 묻어나는 에곤 실레의 그림 44점과 윤동주, 백석, 노천명 등의 시 29편이 실렸다.

28세에 요절한 오스트리아의 천재 화가, 에곤 실레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로 만나는 내면의 세밀한 감성!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생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심층으로 가라앉기를 원한다.\" -에곤 실레


에곤 실레는 1890년에 태어나 1918년에,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이다. 도나우 강이 흐르는 작은 시골마을 툴른에서 태어났으며, 철도역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유복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실레가 1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병과 죽음으로 집안은 일순간에 무너져내렸고, 매독에 걸린 아버지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며 죽어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인지 ‘성(性)’은 그의 인생에 각인되었고, 실레의 그림에는 자신의 뜨거운 성적 욕망, 삶과 죽음에 대한 열망과 공포가 드러나 있다.
실레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술학교를 다니다 고리타분하다는 이유로 자퇴했다. 열여섯 살, 역대 최연소 학생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영예롭게 입학했는데 말이다. 그 학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다녔던 학교이기도 했는데, 이후 실레는 클림트를 직접 차이후 실레는 로운 입학이었으며,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다. 학교를 그만둔 실레는 1907년 클림트를 만나게 되었고, 클림트는 젊은 화가에게 친절한 멘토가 되어 주었다.
. 오스트리아 최고의 미술학교였고 역대 최연소라는 영예로운 입학이었으며, 겨우 열여섯 살이었는데 말이다. 학교를 그만둔 실레가 당대 예술가 중 유일하게 존경한 인물은 클림트(Gustav?Klimt, 1862~1918년)였다. 그는 전통미술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며 ‘빈 분리파’를 창립한 수장으로 당시 빈 미술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반골 성향으로 똘똘 뭉친 둘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으리라. 클림트는 선뜻 실레의 스승을 자처한다.
실레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서, 그림을 사주고, 자신의 그림과 교환하기도 하고, 모델을 주선해주기도 하였으며, 후원을 해줄만한 사람에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또 실레를 분리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비엔나 워크샵에도 소개하였다. 실레는 클림트를 스승 삼아 실력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곧 스무 살에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어린 소녀들을 그린 누드화가 문제가 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내 그림과 드로잉이 에로틱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로틱한 그림도 언제나 예술이었다. 이제껏 에로틱한 그림을 그린 화가가 나 한 명인가?”?
죽어서까지 끊임없이 논란을 몰고다닌 그의 작품 세계를 '비틀림의 미학'이라 부르기도 한다.?에로틱한 누드화를 주로 그리기는 했으나, 그는 풍경화에도 재능이 뛰어났고,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15살에 그렸다는 그의 풍경화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의 2월 편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는 에곤 실레의 그림과 시를 엄선하여 조화롭게 엮은 시화집이다. 노천명의 <고독>, 윤동주의 <길>, 변영로의 <이월 햇발> 등 겨울 끝자락을 노래하는 시와,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한 실레의 그림이 감상의 격을 높인다. 매일 한 편의 시와 한 점의 그림을 느끼는 여유를 선사하는 시화집이다.

저자 소개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다.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했으며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 영문과 학생으로 입학했다.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짧은 생을 마친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옥중에서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은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는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시인이었다. 자신의 작품들을 모아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숙 친구였던 정병욱이 자필로 쓴 시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그의 사후에 묶어 출간하였다. 이때 그의 유작인 <쉽게 쓰여진 시>가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인간됨과 사상을 반영하는 아름다운 시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그의 유해는 용정에 묻혀 있으며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 
1890~1918.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의 표현주의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공포와 불안에 떠는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고, 성적인 욕망을 주제로 다루어 20세기 초, 빈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죽음과 소녀》는 실레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친구이자 피후견인이었던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표현주의적인 선들을 더욱 발전시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주제로 다뤘다. 빈 공간을 배경으로 툭툭 튀어나온 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르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한 실레의 자화상은 고뇌하는 미술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편 실레의 도시 풍경화들은 역동적이며, 인파로 넘쳐나는 도시 모습의 이면에는 어떤 긴장감이 감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실레가 그린 장인의 초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그린 초상화들은 감정이입의 표현이 훌륭하며, 가장 뛰어난 초상화 작품들에 속한다.
실레는 열여섯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만, 그곳의 교육이 케케묵고 인습적이라고 생각되어 곧 그만두었다.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신미술가협회’를 창립했다. 그 후 그는 여인들과 소녀들의 누드화를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드로잉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드로잉들은 실레가 크루마우로 이주한 후인 1911년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모델이자 동거녀었던 발레리 ‘발리’ 노이칠과의 자유분방한 생활과 미성년자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 때문에 크루마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노이렝바흐에서는 더욱 이해받지 못했다. 1912년 실레는 그곳에서 어린 모델들을 데려다가 부도덕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으로 잠시 동안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다.
1915년 실레는 발리와의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다. 1918년이 되자 실레는 지난 몇 년간에 비해 훨씬 더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다. 아내인 에디트는 임신한 상태였다. 실레는 빈 분리파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해에 사망한 클림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된다는 기대감으로 《가족》(1908)을 완성했다. 새롭게 발견한 희망을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에서 실레와 아내, 아이는 모두 나체로 묘사되어 있으며 특히 인물들의 행복한 표정이 눈에 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실레의 아내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아내와 배 속의 아기를 잃고 슬퍼하던 실레도 스페인 독감으로 3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책 속에서

목차

1일. 길 _윤동주
2일. 아우의 인상화(印象畵) _윤동주
3일. 숨ㅅ기 내기 _정지용
4일. 노래 - 내가 죽거든 _크리스티나 로세티
5일. 이월 햇발 _변영로
6일. 못 잊어 _김소월
7일. 잠 놓친 밤 _변영로
8일. 사랑하는 까닭 _한용운
9일. 슬픈 족속(族屬) _윤동주
10일. 하이쿠 _료칸
11일. 모란봉에서 _윤동주
12일. 여우난골족 _백석
13일. 비로봉 _윤동주
14일. 하이쿠 _고바야시 잇사
15일. 두보나 이백같이 _백석
16일. 십자가 _윤동주
17일. 산협(山峽)의 오후 _윤동주
18일. 목구(木具) _백석
19일. 하이쿠 _가가노 지요니
20일.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_홍사용
21일. 시계 _권환
22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_백석
23일. 기다리는 봄 _윤곤강
24일. 새벽이 올 때까지 _윤동주
25일. 팔복(八福) _윤동주
26일. 달 좇아 _조명희
27일. 이별 _윤동주
28일. 묻지 마오 _장정심
29일. 고독 _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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