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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문장 우리가 가졌던 황홀한 천재 이상 다시 읽기

이상 저 | 판테온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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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943404 / 304쪽 122 x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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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우리가 가졌던 ‘황홀한 천재’ 이상 산문의 정수
읽을수록 새롭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그의 문장들


1934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상이 썼던 산문 42편(서간문 포함). 이상 산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수많은 문인 가운데서 이상만큼 자신의 존재를 글 속에 각인해 넣은 사람도 드물다. 이는 그만큼 그가 자의식이 강했음을 뜻한다. 그런 자의식은 산문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마치 그의 일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의 생각과 의식,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원문을 토대로 하되, 한자어와 어렵고 난해한 단어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 글의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인 것이 특징으로 그동안 이상의 글을 읽고 싶지만, 그 난해함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의 발표 시기와 주제를 중심으로 ‘제비’, ‘금홍’, ‘오감도’, ‘멜론’, ‘거울’ 등으로 목차를 나눈 것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출판사 리뷰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쓰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던 불세출의 문인 이상의 삶과 문학


“태어나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우리 문학사를 50년 후퇴시켰다고 말해도 될 존재”,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김기림과 박용철의 이상에 관한 평가다. 그만큼 그는 우리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이요, 소설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글은 매우 기괴하고 낯설다. 그 출현 이전 이후에도 그와 같은 글을 쓰는 문인은 없었다. 그러니 80여 년 전 그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이 그의 글을 가리켜 ‘정신이상자의 잠꼬대’나 ‘어린아이의 유치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를 죽이겠다며 신문사에 항의한 사람도 있었다. 이에 그는 ?오감도 작자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이 책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웠던 불세출의 문인 이상의 삶과 문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시인 김기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태어나서 우리 문학을 50년 앞당겼고, 죽어서 50년 후퇴시킨 존재”─ 시인 김기림
“인류가 있은 이후 가장 슬픈 소설을 쓴 사람”─ 시인 박용철


이상.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천재’다. 그러나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고 했던 그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절망했고, 거울 속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심지어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성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일천구백삼십칠 년 정축 삼월 삼일 미시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한 생애를 끝맺고 문득 卒하다.”

사실 이 땅의 수많은 문인 가운데서 이상만큼 자신의 존재를 글 속에 각인해 넣은 사람도 드물다. 이는 그만큼 그가 자의식이 강했음을 뜻한다. 특히 그런 자의식은 산문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마치 그의 일기를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의 생각과 의식,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34년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그가 썼던 산문 42편(서간문 포함)을 모은 것으로, 가히 그의 산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급적 원문을 토대로 하되, 한자어와 어렵고 난해한 단어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 글의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였다. 기획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이상의 글을 읽고 싶지만, 그 난해함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의 발표 시기와 주제를 중심으로 ‘제비’, ‘금홍’, ‘오감도’, ‘멜론’, ‘거울’ 등으로 목차를 나눈 것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제비’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관한 절망을, ‘금홍’에는 사랑과 관련된 글을, ‘오감도’에는 도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부조리에 관한 글을, ‘멜론’에는 죽기 직전까지 일본에서 썼던 글을, ‘거울’에는 서간문에 나타난 지독한 고뇌와 고독을 담았다. 이를 통해 역설과 위트, 독설과 슬픔이 빚은 이상 특유의 문학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일기를 읽는 듯 이상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산문의 정수!
시대를 앞선 날카로운 문학적 촉수와 세련된 문체,
역설과 위트, 독설과 슬픔이 빚은 특유의 문학 에스프리


알다시피, 이상은 1929년 경성고공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건축이 아닌 문학과 미술이었다. 1930년 첫 장편소설 《12월 12일》을 발표한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살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다. … 모든 것이 다 하나도 무섭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 가운데에도 이 ‘죽을 수도 없는 실망’은 가장 큰 좌표에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선 예리한 문학적 촉수와 세련된 문체는 기실 이상의 장점이 아닌 아픔이자 고통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그의 글에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기쁨과 행복, 즐거움보다는 역설과 위트, 독설과 비애, 권태가 가득하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책 속에서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 하느냐. 열아문(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 〈오감도 작자의 말〉에서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에서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 〈어느 시대에도〉에서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
- 〈꿈은 나를〉에서

나는 돈을 벌 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요? 못 법니다, 못 법니다. 동무도 없어졌습니다. 내게는 어른도 없습니다. 버릇도 없습니다. 뚝심도 없습니다.
- 〈슬픈 이야기〉에서

나는 술이 거나 ─ 하게 취해서 어떤 여자 앞에서 몸을 비비 꼬면서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사는 몸이오.’하고 얼러보았더니 얼른 그 여자가 내 아내가 되어 버린 데는 실없이 깜짝 놀랐습니다. 얘 ─ 이건 참 땡이로구나 하고 삼 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 여자는 삼 년이나 같이 살아도 이 사람은 그저 세계에 제일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고 그만둔 모양입니다.
- 〈약수〉에서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즉 애완용 가축처럼 귀여움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다.
- 〈공포의 성채〉에서

근심이 나를 제한 세상보다 큽니다. 내가 갑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는 않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돌며 그러는 동안에 이 육신은 풍마우세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 〈산촌여정〉에서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等待)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권태〉에서

나는 세상의 불행을 짊어지고 태어난 것 같은 오욕에 길든 일족을 경성에 남겨두고 왔다. 그들은 차라리 불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늘 저녁에도 맛없는 식사를 했을 테지. 불결한 공기에 땀이 배어 있을 테지.
- 〈첫 번째 방랑〉에서

암만해도 나는 십구 세기와 이십 세기 틈바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이십 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는 너무도 많은 십구 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 〈김기림에게 6〉에서

상(箱)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의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 김기림, 〈故 이상의 추억〉에서

목차

서문을 대신하여 _ 산묵집 ─ 〈오감도〉 작자의 말

1부 제비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어느 시대에도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나의 애송시
서망율도
내가 좋아하는 화초와 내 집의 화초
아름다운 조선말
가을의 탐승처
모색

2부 금홍

여상 사제
약수
Epigram
행복
십구 세기식
슬픈 이야기
실낙원

3부 오감도

산책의 가을
산촌여정
조춘점묘
추등잡필
병상 이후
동경(東京)
공포의 성채

4부 멜론

혈서삼태
권태
최저 낙원
어리석은 석반
이 아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
첫 번째 방랑
객혈의 아침
야색(夜色)

5부 거울

정희에게
김기림에게 1
김기림에게 2
김기림에게 3
김기림에게 4
김기림에게 5
김기림에게 6
김기림에게 7
H형에게 보낸 편지
동생 옥희 보아라
남동생 김운경에게

부록

故 이상의 추억 ─ 김기림
이상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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