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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이 본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원제 : Freud and Psychoanalysis
시리즈 :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20]

칼 구스타프 융 저 | 정명진 역 | 부글북스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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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200793 / 192쪽 225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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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모든 심리학은 심리학자 본인의 고백이다! 칼 구스타프 융 전집 4권 중 일부를 옮겼다. 칼 융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서신을 교환하던 1906년부터(서신 교환은 1914년에 끝났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관해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이다. 따라서 융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거쳐 분석심리학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와 과정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칼 융의 분석심리학의 차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칼 융의 두드러진 관점은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심리학은 각자의 심리를 고백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심리학자 본인의 인격이 배제된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을 가진 융에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나 똑같이 저자의 유형과 일치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근본적인 견해 차이가 양자 관계까지 맺었던 두 사람이 서로 결별하게 만들었고, 융은 그 후로 프로이트의 쾌락 원리와 아들러의 권력 원리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 공존한다는 식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인간 정신에 접근하면서 동양 사상은 물론이고 신화와 연금술, 종교, 문학 등의 분야로 연구를 확장해 나갔다.

저자 소개

(1875년-1961년)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며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연보>
* 1875년 7월 26일= 스위스 투르가우 주 케스빌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요한 폴 융은 스위스 개혁 교회의 목사였으며, 어머니 에밀리에 프라이스베르크는 돈 많은 명문가의 딸이었다. 칼 융은 이 부부의 넷째로 태어났으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녀였다. 
* 1876년= 융의 아버지, 라우펜으로 발령을 받다. 융의 어머니 에밀리에가 정신적 혼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에밀리에가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말을 곧잘 한 탓에 칼 융은 어릴 때부터 공포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병으로 자주 입원함에 따라 아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현실이 융의 여성관에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
* 1879년= 융의 아버지가 클라인위닝겐으로 발령을 받는다. 에밀리에가 친정과 가까운 이곳으로 옮기면서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다. 
* 1987년= 칼 융, 바젤 인문 김나지움에 입학하다. 
* 1895년= 과학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바젤 대학에 입학하다.
* 1900년= 바젤 대학을 졸업한 뒤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에서 오이겐 블뢸러 교수 밑에서 일하다. 여기서의 활동은 1909년까지 이어진다. 
* 1902년= 취리히 대학에서 ‘소위 신비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에 대해’(On the Psychology and Pathology of So-Called Occult Phenomena)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다. 
* 1903년= 스위스의 부자가문 출신인 엠마 로첸버그와 결혼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다섯 태어났다. 엠마가 19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둘의 결혼관계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융은 몇몇 여자와 염문을 뿌렸다. 러시아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학자였던 사비나 스피렐레인(Sabina Spirelrein)과 동료였던 토니 볼프(Toni Wolff)와 깊은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 1905년=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 강의를 맡다. 이 강의는 1913년까지 이어졌다. 
* 190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서신 교환을 시작하다. 이듬해 빈에 있던 프로이트를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꼬박 13시간 동안 프로이트와 대화를 나눴다. 
* 1907년= 『조발성 치매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Dementia Praecox)을 쓰다. 
* 1909년=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을 그만두고 프로이트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다. 그러나 융이 『무의식의 심리학』(Psychology of the Unconscious)을 집필하는 사이에 프로이트와의 관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둘은 리비도와 종교의 본질에 대해 의견대립을 보였다. 또한 융은 1909년에 스위스 퀴스나흐트에 정신분석 의료기관을 열고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운영했다. 
* 1910년= 세계정신분석협회(IPA) 회장에 선출되다. 『변용의 상징들』(Symbols of Transformation)을 쓰고 미국 뉴욕의 포드햄대학에서 강연을 하다. 
* 1912년= 칼 융이 자신은 프로이트와 학문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했다. 『무의식의 심리학』 발표하다. 
* 1913년= 세계정신분석협회 회장직을 내놓다. 이로써 프로이트와 최종적으로 결별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이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레드 북』의 집필을 시작하다. 융은 이 책을 16년 동안 쓰다가 옆으로 밀쳐놓은 뒤 틈틈이 손질을 했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된다. 
* 1919년= ‘원형’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다. 
* 1920년= 영국 콘월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다. 이후 두 번 더(1923년, 1925년) 영국에서 세미나를 연다. 
* 1921년= ‘심리유형’을 발표하다. 
* 1923년= 북미의 푸에블로 인디언 방문하다. 
* 1925년= 동아프리카로 심리학적 탐험을 떠난다. 케냐와 우간다 등을 돌면서 그곳 원주민들의 심리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 1929년= 중국 도교 서적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에 대해 언급하다. 
* 1932년= 취리히 국립폴리테크닉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취임하다. 이 학교에서 칼 융은 1940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친다. 
* 1937년= 인도를 여행하다. 힌두철학은 상징의 역할과 무의식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 1944-1945년= 바젤대학 의료심리학 교수가 되다. 『심리학과 연금술』(Psychology and Alchemy)출간하다. 
* 1948년= 취리히에서 칼 구스타프 융 연구소 설립하다. 
* 1950년= 『욥에 대한 회신』(Answer to Job)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 1957년= 자서전 『기억 꿈 회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출간. 
* 1958년= 『인간과 상징』(Man and his Symbols) 집필 시작. 이 책은 1961년 융의 사후에 출간됨. 
* 1961년= 취리히 근처의 퀴스나흐트에서 세상을 떠나다. 향년 85세.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취리히 학파의 방법은 분석적이고 인과적일 뿐만 아니라 통합적이고 미래를 내다보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엔 원인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심리에 두 가지 유형이 있기 때문에,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두 유형 중 하나는 쾌락의 원리를 따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원리를 따른다. 전자의 철학적 대응물은 과학적 유물론이고, 후자의 철학적 대응물은 니체의 철학이다. 프로이트 이론의 원리는 쾌락인 반면, 아들러의 이론은 권력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취리히 학파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견해가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으며 거기에 해당하는 유형 안에서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원리는 서로 비중이 다를 뿐, 모든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심리학적 상징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으며 당연히 두 가지 원리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모든 단어에는 나 자신의, 말하자면 특별한 역사와 특별한 세계를 가진 나 자신의 특별하고 독특한 무엇인가가 들어 있다. 심지어 경험적인 자료를 다룰 때조차도, 나는 분명 나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라는 대의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같은 사실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해진다.”

“프로이트나 아들러와 달리, 나는 건설적이거나 통합적인 설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내일이 어제보다 실용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고, ‘어디서’라는 기원보다 ‘어디로’라는 목표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실제 모습과 다르게 느낀다는 사실 외에, 처음부터 집단 암시에 의해 눈이 어두워져 있다. 그런데 이 원칙은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그런 특이성을 갖고 있다.”

“정신분석은 지적 노력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정신분석 방법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도덕적 노력을 더 많이 요구한다. … 나는 분석가가 도덕적 발달을 이룬 딱 그만큼만 치료에서 성공을 거두는 예를 많이 보았다.”

목차

1장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이론을 위한 옹호(1906)
2장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이론(1908)
3장 꿈의 분석(1909)
4장 모턴 프린스의 ‘꿈의 메커니즘과 해석’에 관하여(1911)
5장 정신분석에 관하여(1912)
6장 정신분석과의 인연에 관하여(1913)
7장 빈 학파와 취리히 학파의 차이(1916)
8장 정신분석 비판(1930)
9장 프로이트와 융(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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