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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요가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Kundalini Yoga

칼 구스타프 융 저 | 정명진 역 | 부글북스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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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200779 / 196쪽 225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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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쿤달리니 요가의 수행법을 심리학으로 해석하다 독일의 인도 전문가 빌헬름 하우어는 1932년 10월 3일부터 8일까지 취리히의 심리학 클럽에서 요가에 대해, 특히 쿤달리니 요가의 차크라 시스템에 대해 6회에 걸쳐 강연을 했다. 이어 칼 융이 4회에 걸쳐 쿤달리니 요가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강연을 했다. 융의 이 강연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융은 일찍부터 동양사상에 관심이 깊었다. 1912년에 발표한 책 『리비도의 변형과 상징』을 보면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와 ‘리그베다’의 구절을 해석하는 부분이 많다. 당시의 정신분석 분야에선 정신분석이 고대 인도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던 것을 재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융은 그 후에도 동양 사상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일 등을 통해 동양에 대한 깊은 관심을 결코 놓지 않았다. 이런 경향 때문에 융은 1960년대 서구에서 일어난 뉴 에이지 운동 때엔 구루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온갖 형식의 요가가 스포츠와 건강관리 프로그램의 일부로 소개되면서 요가가 고대에 정신적 수양이었다는 사실이 많이 잊히게 되었지만, 요가는 분명 수행의 한 형식이다. 그 목적은 우주적인 존재를 이룸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탄트라 요가로도 불리는 쿤달리니 요가는 힌두교 경전 ‘탄트라’가 제시하는 요가 수행법을 따른다. 쿤달리니 요가의 관점은 우주적이며, 이 요가의 차크라 체계는 개인을 초월하는 삶의 발달 단계를 상징한다. 말하자면 차크라는 개인의 심리와 인류의 심리를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차원의 관점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칼 융은 이 강연에서 차크라에 관한 것들을 서양의 심리학으로 바꾸고 있다. 그는 각 차크라를 의식이 한 단계씩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저자 소개

(1875년-1961년)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며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연보>
* 1875년 7월 26일= 스위스 투르가우 주 케스빌에서 태어나다. 아버지 요한 폴 융은 스위스 개혁 교회의 목사였으며, 어머니 에밀리에 프라이스베르크는 돈 많은 명문가의 딸이었다. 칼 융은 이 부부의 넷째로 태어났으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녀였다. 
* 1876년= 융의 아버지, 라우펜으로 발령을 받다. 융의 어머니 에밀리에가 정신적 혼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에밀리에가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말을 곧잘 한 탓에 칼 융은 어릴 때부터 공포에 시달렸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병으로 자주 입원함에 따라 아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런 현실이 융의 여성관에 영향을 강하게 미친다.
* 1879년= 융의 아버지가 클라인위닝겐으로 발령을 받는다. 에밀리에가 친정과 가까운 이곳으로 옮기면서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다. 
* 1987년= 칼 융, 바젤 인문 김나지움에 입학하다. 
* 1895년= 과학과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바젤 대학에 입학하다.
* 1900년= 바젤 대학을 졸업한 뒤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에서 오이겐 블뢸러 교수 밑에서 일하다. 여기서의 활동은 1909년까지 이어진다. 
* 1902년= 취리히 대학에서 ‘소위 신비현상의 심리학과 병리학에 대해’(On the Psychology and Pathology of So-Called Occult Phenomena)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다. 
* 1903년= 스위스의 부자가문 출신인 엠마 로첸버그와 결혼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다섯 태어났다. 엠마가 199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둘의 결혼관계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융은 몇몇 여자와 염문을 뿌렸다. 러시아 출신으로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학자였던 사비나 스피렐레인(Sabina Spirelrein)과 동료였던 토니 볼프(Toni Wolff)와 깊은 관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 1905년=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 강의를 맡다. 이 강의는 1913년까지 이어졌다. 
* 190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서신 교환을 시작하다. 이듬해 빈에 있던 프로이트를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꼬박 13시간 동안 프로이트와 대화를 나눴다. 
* 1907년= 『조발성 치매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Dementia Praecox)을 쓰다. 
* 1909년= 취리히의 부르크횔츨리 정신병원을 그만두고 프로이트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다. 그러나 융이 『무의식의 심리학』(Psychology of the Unconscious)을 집필하는 사이에 프로이트와의 관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둘은 리비도와 종교의 본질에 대해 의견대립을 보였다. 또한 융은 1909년에 스위스 퀴스나흐트에 정신분석 의료기관을 열고 죽을 때까지 열정적으로 운영했다. 
* 1910년= 세계정신분석협회(IPA) 회장에 선출되다. 『변용의 상징들』(Symbols of Transformation)을 쓰고 미국 뉴욕의 포드햄대학에서 강연을 하다. 
* 1912년= 칼 융이 자신은 프로이트와 학문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했다. 『무의식의 심리학』 발표하다. 
* 1913년= 세계정신분석협회 회장직을 내놓다. 이로써 프로이트와 최종적으로 결별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이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레드 북』의 집필을 시작하다. 융은 이 책을 16년 동안 쓰다가 옆으로 밀쳐놓은 뒤 틈틈이 손질을 했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된다. 
* 1919년= ‘원형’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다. 
* 1920년= 영국 콘월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다. 이후 두 번 더(1923년, 1925년) 영국에서 세미나를 연다. 
* 1921년= ‘심리유형’을 발표하다. 
* 1923년= 북미의 푸에블로 인디언 방문하다. 
* 1925년= 동아프리카로 심리학적 탐험을 떠난다. 케냐와 우간다 등을 돌면서 그곳 원주민들의 심리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 1929년= 중국 도교 서적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에 대해 언급하다. 
* 1932년= 취리히 국립폴리테크닉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취임하다. 이 학교에서 칼 융은 1940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친다. 
* 1937년= 인도를 여행하다. 힌두철학은 상징의 역할과 무의식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 1944-1945년= 바젤대학 의료심리학 교수가 되다. 『심리학과 연금술』(Psychology and Alchemy)출간하다. 
* 1948년= 취리히에서 칼 구스타프 융 연구소 설립하다. 
* 1950년= 『욥에 대한 회신』(Answer to Job)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 1957년= 자서전 『기억 꿈 회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출간. 
* 1958년= 『인간과 상징』(Man and his Symbols) 집필 시작. 이 책은 1961년 융의 사후에 출간됨. 
* 1961년= 취리히 근처의 퀴스나흐트에서 세상을 떠나다. 향년 85세.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우주적인 차크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아주 낮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우리 문화는 아직 ‘물라다라’ 차크라에 있는 문화라는 것을, 아직 신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그런 개인적인 문화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들의 빛이 우리 각자의 의식의 불꽃 앞에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쿤달리니를 깨워야 합니다. 생각의 세계에서, 우리는 이처럼 다른 마음 상태에 닿을 수 있으며, ‘수크슈마’의 측면에서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구멍 같은 것 안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또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과 어떤 연결을 가짐으로써 위쪽으로 발달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의식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신성(神性)을, 쿤달리니를 깨운다는 뜻이지요. 말하자면, 신들의 빛에 불을 붙이기 위해 각자의 내면에 있는 초개인적인 것을 발달시키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물과 하나가 될 때에는 그것과 똑같아지고, 그런 상태에서는 그것을 비교하지도 못하고 식별하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합니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길 원한다면, 여러분은 언제나 기준점을 여러분의 밖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많은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 사람이 최고의 이해력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밖에서 사물을 보는 관점을 갖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세상을 절대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기억하는 데 성공한다면, 다시 말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과 열정의 폭발을 구분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자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개체화하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아나하타’ 차크라에서 개성화기 시작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다시 여러분이 자아 팽창을 겪을 위험이 있습니다. 개성화는 여러분이 자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 여러분은 개인주의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개인주의자는 개체화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철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이기주의자이지요. 개성화는 자아가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목차

1강 1932년 10월 12일
2강 1932년 10월 19일
3강 1932년 10월 26일
4강 1932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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