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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이광수 저 | 북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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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645022 / 499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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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자신의 제국에서 허망하게 소멸해야 했던 한 어린 왕의 생애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비극적 삶을 고졸한 문체로 복원해낸 춘원 이광수의 역작 춘원 이광수의 는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예리한 문체로 애틋하게 그려낸 이광수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1년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일제의 탄압 아래 신음하던 조선의 민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은 왕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을 일본제국주의에, 임금의 자리를 빼앗긴 채 귀양을 떠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마... 자신의 제국에서 허망하게 소멸해야 했던 한 어린 왕의 생애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비극적 삶을 고졸한 문체로 복원해낸 춘원 이광수의 역작 춘원 이광수의 는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예리한 문체로 애틋하게 그려낸 이광수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1년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일제의 탄압 아래 신음하던 조선의 민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은 왕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을 일본제국주의에, 임금의 자리를 빼앗긴 채 귀양을 떠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마는 단종을 자신의 처지에 빗대면서 이광수의 소설을 남다른 감회로 소화했던 것이다. 훗날 이광수가 『단종애사』를 집필하던 초심을 잃고 친일 행적으로 민중의 지탄을 받게 된 것은 적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어린 아들을 남기고 눈을 감아야 했던 문종이 죽기 전 성삼문과 신숙주에게 남긴 유언과, 다른 한편으로 수양대군과 권람의 밀의(密議)를 다룬 고명편(顧命篇),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비롯한 수많은 정적을 죽인 뒤 권력을 차지하는 실국편(失國篇), 세조가 등극한 뒤 성삼문, 하위지,유응부, 박팽년, 이개, 유성원 등 사육신(死六臣)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킨 충의편(忠義篇), 노산군이 된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떠나 그곳에서 죽음을 당하는 혈루편(血淚篇) 등 총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머나먼 곳에 유배되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단종의 삶을 고졸하고도 애틋한 문체로 복원해낸 춘원의 『단종애사』는 후대에 의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가히 역사소설의 백미라 불릴 만하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목차

서문/ 4
顧命篇/ 9
失國篇/ 87
忠義篇/ 303
血淚篇/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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