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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439347 / 416쪽 141 x 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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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영어로 쓰여진 최초의 젓가락 연구서. 한국에서 출간된 최초의 젓가락 책! 젓가락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쓰였을까? 젓가락을 가리키는 영어는 chopsticks다. 그런데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유럽/미국에서, 젓가락을 가리키는 영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젓가락 ― 동아시아 5,000년 음식문화를 집어 올린 도구》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기에 궁금해한 적도 없었던 식사도구, 젓가락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젓가락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1993년 중국 장쑤성의 신석기 유적지인 롱치우장에서... 영어로 쓰여진 최초의 젓가락 연구서. 한국에서 출간된 최초의 젓가락 책! 젓가락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쓰였을까? 젓가락을 가리키는 영어는 chopsticks다. 그런데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유럽/미국에서, 젓가락을 가리키는 영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젓가락 ― 동아시아 5,000년 음식문화를 집어 올린 도구》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기에 궁금해한 적도 없었던 식사도구, 젓가락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젓가락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1993년 중국 장쑤성의 신석기 유적지인 롱치우장에서는 동물 뼈로 만든 각종 도구가 발굴됐는데, 여기서 발견된 가느다란 뼈막대 42개는 최초의 젓가락으로 추정된다. 이 뼈막대들이 항아리, 농기구 등과 같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6600년에서 기원전 5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당시에 이미 젓가락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지금처럼 식사도구가 아니라 조리도구로 먼저 사용되었음도 함께 보여준다. 젓가락은, 지금도 그런 것처럼, 음식 재료를 집어서 옮기고, 휘저어 섞고, 조리 중인 음식을 집어서 상태를 살피는 데 먼저 쓰였고, 심지어 땔감을 헤집는 데도 쓰였을 것이다. 《젓가락 - 동아시아 5,000년 음식문화를 집어 올린 도구》의 저자 Q. 에드워드 왕은, 북중국의 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음식을 뜨겁게 끓여서 먹는 걸 선호한 중국인의 음식문화가 젓가락이라는 조리도구를 사용하게 했을 것이라 말한다. 고깃덩이를 불에 구워서 식탁 위에서 잘라 먹는 서양의 식습관이 포크와 나이프라는 식사도구를 선택했다면, 고기와 채소를 미리 자른 후 국물과 함께 끓여서 건져 먹는 식습관은 그에 최적화된 젓가락이라는 식사도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주식은 곡물음식, 즉 밥이다. 중국 상류계급의 예절 해설서라 할 수 있는 《예기》에서는 “‘판’(밥)을 함께 먹을 때는 손을 씻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고, 또 “판을 공처럼 둥글게 말지 마라. …… 기장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쓰지 마라.”고 했다. 이는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말고 손으로 먹을 것이며, 식탁에서 손을 닦는 일이 없도록 미리 깨끗하게 씻으라는 의미다. 당시 중국의 중심부인 북중국의 주곡은 기장이며, 찰기가 없는 기장으로는 시루에 찌거나 물을 많이 부어 죽처럼 끓여 먹어야 했다. 즉 당시까지 식사도구는 손과 젓가락, 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사용되었다. 남중국의 주곡인 쌀이 확산됨으로써, 점착성이 있는 쌀밥을 먹는 데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젓가락만으로 밥과 반찬을 모두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숟가락과의 경합에서 젓가락이 주된 식사도구로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은 밀가루음식의 확산, 즉 국수와 만두 같은 음식이 중국에서 대유행을 하면서부터다. 한중일 젓가락 사정 몇몇 역사학자는 세계 문명을 세 개의 문화권으로 나눈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문화권, 그리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권이다. 한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이루어진 중국 농업과 음식문화의 변동으로 젓가락이 지배적인 식사도구가 되었고, 이웃 나라에 대한 당나라의 영향력으로 인해 한반도와 일본 열도, 동남아시아 북부까지 젓가락문화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 젓가락문화권 안에서 젓가락의 모양과 재질, 그것을 사용하는 식사 예절은 서로 다르게 발달했다. 여러 역사책과 전기에 따르면, 고대인은 음식을 먹을 때 숟가락과 젓가락을 둘 다 썼다. 조선 또한 이런 관습을 따랐다. 그러나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수많은 장수가 그곳을 떠나 동쪽으로 갔다. 그들은 어떻게 조리된 음식이든 상관없이, 그것을 먹을 때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사용했다. 이런 식습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옛날에 명나라 태조가 진우량을 격퇴하기 전에는 음식을 먹고 마실 때 숟가락을 절대 쓰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는 말이 있다. 그는 자신의 결의를 만방에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때부터 숟가락 없이 밥을 먹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믿을 만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조선의 문신 윤국형尹國馨이 17세기 초 중국에 갔을 때 쓴 수상록 《갑진만록甲辰漫錄》에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명나라 사람들이 젓가락만 써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위와 같이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은 젓가락문화권 중에서 유일하게 여전히 숟가락이 주된 식사도구로, 늘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한편,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젓가락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제 젓가락으로, 한국은 유독 금속 수저를 선호하는 나라다. 저자는 이에 관해,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 금, 철, 구리 등의 풍부한 매장량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한다. 중국에서는 식사 방식이 바뀌면서 젓가락의 길이와 놓는 위치가 바뀌었다. 한 상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먹는 ‘공동 식사 방식’이 정착하면서 식탁과 의자가 필요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젓가락의 길이가 길어졌다(평균 25센티미터 이상으로). 또한 원래 상 위에 가로로 놓던 젓가락이 식탁 가운데 음식들을 향해 세로로 놓이게 되었다. 반면 여전히 개별 식사 방식을 선호하는 일본에서는 젓가락의 길이가 짧고 상 위에 가로로 놓인다. 한편, 한 번 입에 들어갔다 나온 젓가락에는 사람의 영혼이 붙는다고 생각한 일본에서는 쓰고나서 버릴 수 있는 나무젓가락을 쓴다. 젓가락은 늘 똑같이 생긴 한 쌍을 사용한다. 이런 특성은 젓가락과 관련된 많은 상징과 비유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이라는 특성은 젓가락을 최적의 약혼이나 결혼 선물로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부부 젓가락을 가리키는 ‘메오토바시’를 신사나 일반 가게에서 살 수 있는데, 남자 젓가락이 여자 젓가락보다 조금 길다. 중국 산시성에서는 신부 아버지가 젓가락을 빨간 실로 묶어 신혼부부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젓가락은 그 재질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기도 했다. 한비자는 주왕의 사례를 빗대 상아 젓가락을 사치와 방탕, 그로 인한 몰락의 상징으로 썼다. 마찬가지로 귀금속인 금 젓가락은 신하의 강직하고 곧은 성격을 비유하는 데 쓰였다. 중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재질이지만 실제로 사용하기는 힘들었을 옥 젓가락은 주로 문학적 비유로 쓰였다. 이백은 “옥 젓가락 같은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거울 위로 뚝뚝 떨어진다.”라고 노래했다. 옥 젓가락의 옅은 색이 여인의 눈물을 연상시키는 탓이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젓가락 아시아를 여행했던 수많은 서양인이 이 인상적인 식사도구에 관해 저마다의 비평을 남겼다. 19세기 중반 중국을 찾은 영국의 외교가 로런스 올리펀트Laurence Oliphant는 젓가락에 더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 음식을 먹기에는 서양의 품위 없는 포크와 나이프보다 고상한 젓가락이 제격이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매우 우아한 식습관에 확실히 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접시에 큰 고깃덩어리를 놓고 베어 먹지는 않지만,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더 이상 접시에서 고기를 잘게 썰어 먹는 것도 안 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Isabella Bird는 “식탁마다 악취가 풍기는 젓가락들이 한 뭉치씩 대나무 용기에 꽂혀 있었다. 물이 담긴 질그릇과 더러운 수건이 여행자들을 위해 밖에 놓여 있고, 그들은 자주 뜨거운 물로 입을 헹구곤 한다.”라고 혹평했다. 17세기에 남중국을 여행한 피터 먼디Peter Mundy도 젓가락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chops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서양의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전 세계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젓가락문화권의 본거지들은 여전히 온전하게 건재하고 있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젓가락은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서 온 방문객도 그 도구를 쓰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음식점 식탁 위에 늘 얹혀 있는 유일한 식사도구가 젓가락이다. 아시아 지역 밖에 있는 중국음식점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 음식점에 가면, 젓가락을 넣은 봉지나 식탁용 종이깔개 위에 젓가락 사용법을 표시한 간단한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그것을 본 모든 손님은 젓가락을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51쪽)
주나라에서 한나라까지의 역사 기록들은 대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가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젓가락의 주재료였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 기록들에서 젓가락을 의미하는 중국 문자로 쓰인 ‘箸’와 ‘筯’(둘 다 중국어로 ‘쭈’라고 읽음), 또는 ‘䇲’와 ‘梜’(둘 다 중국어로 ‘지아’라고 읽음)은 모두 대나무와 나무를 나타내는 어근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젓가락의 원재료로 대나무와 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87쪽)
당시 중국인은 젓가락을, 국그릇 속의 내용물을 휘젓고 섞고 움켜쥐고 맛보고 먹는 데 썼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음식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젓가락의 발명이 국을 끓여 먹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국 건더기를 골고루 섞는 용도였다가 집어 먹는 도구로 발전했으리라 보았다. (106쪽)
곡물음식을 먹을 때, 특히 곡물과 곡물이 아닌 것이 섞인 형태의 음식을 먹을 때도 젓가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한나라 때와 그 이후까지 국수와 만두의 인기가 식지 않은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서문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형태의 밀가루음식들이 새로 생겨나자마자 그때부터 전통적인 ‘판’과 ‘차이’의 구분, 즉 곡물음식과 곡물이 아닌 음식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만두를 빚을 때, 곡물음식과 곡물이 아닌 음식을 서로 뒤섞어 하나로 만든다. 또한, 국수를 먹을 때도 사람들은 면에 다양한 양념을 뿌리거나 국물을 붓는다. 따라서 젓가락은 이 만두와 국수를 집어 먹기에 매우 적합하다. 한편, 국수 국물을 마실 때 그냥 젓가락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보조 도구로 숟가락을 써서 떠먹기도 한다. 젓가락을 쓰면 그릇을 들어 직접 입에 대고 국물을 후루룩 마셔야 하는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다. (142쪽)
한편, 한반도에서 젓가락을 사용한 것은 일본보다 역사가 더 길다. 한국인에게 젓가락은 식사도구로서 최초의 도구가 아니었다. 고고학 유물에 따르면, 한반도 사람들이 식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한 식사도구는 숟가락이었다. 한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숟가락은 뼈로 만든 것이었다. 그것이 발굴된 곳은 오늘날 북한의 함평군 나진 유적지로, 기원전 700년에서 기원전 6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고고학 유적지인 평양 인근의 낙랑 구역에서는 옻칠을 한 나무젓가락이 발견되었는데, 낙랑군樂浪郡은 중국의 한무제가 기원전 108년에서 서기 313년까지 한반도의 위만조선 지역에 설치했던 행정단위였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젓가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 시대(53~668)인 6세기 초 것으로 보이는 청동 젓가락이다. 그것은 501년에서 523년까지 백제를 통치했던 왕(무령왕)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190~191쪽)
한 그릇에 담긴 음식, 특히 전골요리를 함께 나눠 먹을 때 젓가락이 숟가락보다 더 유리하다는 것이 판명난 뒤, 식탁 위에서 그 둘의 중요성 또한 바뀌었다. 당나라 때 벽화들에 나타난 것처럼, 중국인은 젓가락을 식탁 위에 가로로 놓았다. 그러나 명나라 때 그림들에서는 젓가락이 식탁 중앙에 있는 음식 접시들을 향해 세로로 놓였다. 마치 음식을 금방 집어 나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젓가락 배치는 오늘날 그 정도는 다르지만 공동 식사 방식을 취하는 중국, 한국, 베트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개별 식사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인은 젓가락을 도시락 통에 넣을 때처럼 식탁 위에도 여전히 가로로 놓는다. 그들은 젓가락으로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 먹을 때, 대개 젓가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수평으로 이동한다. 전통적으로 젓가락을 오른손으로 잡고 쓸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샤부샤부나 스키야키를 먹을 때는 식탁 한가운데 있는 식재료들을 향해 젓가락을 세로로 놓았다 들었다 하기도 한다. (230~231쪽)
일본말로 ‘하시’라고 말하는 젓가락은 다리를 뜻하는 ‘橋’와 발음이 같다. 일본인에게 젓가락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실제로 사람과 사람,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 현세와 내세 사이의 영적 소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군인이 전쟁터에 나간 것처럼 누군가가 집을 멀리 떠나 있을 경우, 나머지 가족 구성원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밥상에 그의 젓가락도 놓고 음식도 차려놓고는 한다. 이렇게 차려진 밥상을 ‘가게젠陰膳’이라고 부르는데, 객지에 나간 사람의 안전과 안녕을 비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일본인은 어떤 사람이 쓰던 젓가락에 그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의 안전을 기원하는 가족의 소망이 그 ‘다리’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63~264쪽)
당나라 사람들은 당시에 대부분의 식사도구가 한나라 때와 그 이전 시기처럼 청동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도기나 자기로 만든 것이어서, 젓가락으로 쟁반이나 그릇을 두드려 음악을 연주하였다. 따라서 수隋나라 궁중에 예속된 음악가였던 만보상万宝常(?~595)이 궁중 만찬에서 이런 방식으로 연주했다는 전설이 있다. 한번은 만보상이 막 밥을 먹으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음악에 관해 물었다. 만보상은 설명을 위해 적당한 악기를 찾다가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다양한 크기의 그릇을 두드려 모든 음을 표현했다. 그의 음악성은 황제를 포함해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280쪽)
젓가락의 색깔과 모양을 문학에서 은유적으로 사용하듯이, 젓가락의 크기와 길이를 어떤 것의 치수를 나타내는 데 비유하기도 한다. 예컨대, 두보는 한 친구가 준 쪽파를 그런 말로 칭송한다. “이 신선한 한 다발의 쪽파는 옥 젓가락처럼 둥글고 키가 크다.” 가사협 또한 《제민요술》에서 지난 200년에 걸친 국수 길이의 변화를 젓가락의 길이와 비교했다. 그는 식물과 채소의 길이와 모양을 묘사할 때에도, 아마 독자나 농부들이 자신의 글을 잘 이해할 수 있
도록 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젓가락의 길이와 모양에 대비해 표현했다. (286~287쪽)
중국의 일반 대중이 공동 식사에 따른 보건상의 위험에 대해 교육받기 전인 20세기 초에 일부 의료 전문가는 그런 타협을 시도했다. 1910년대 말,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의 의사 우롄더伍連㯖(1879~1960)는 자신이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위생 식탁’─중국인은 ‘게으른 수전lazy Susan’이라고 부르는─을 중국에 소개했다. 가장 위생적으로 식사하는 방법은 저마다 따로 밥을 먹는 것─모든 사람이 자기 밥그릇이나 접시에 담아준 (혹은 서빙용 젓가락으로 각자 덜어 온) 음식만 먹는 것─이라는 점을 그도 인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인이 식사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모든 사람이 공동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덜어 먹되, 먼저 서빙용 젓가락으로 자기 그릇에 음식을 가져간 다음에 개인 젓가락으로 먹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번거롭고 혼동을 일으켜서(개인 젓가락과 서빙용 젓가락의 교체를 깜박하고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먹는 기쁨을 빼앗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우롄더는 게으른 수전을 이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해법임을 보여주었다. (315~316쪽)
그러나 일회용 젓가락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항상 깨끗한 것은 아니다. 공장에서 일회용 젓가락을 만들 때, 최종적으로 개별 포장을 하기 전에 살균 처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제는 바로 그 살균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다. 제작된 젓가락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과정에서 등유나 과산화수소, 방충제 같은 다양한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그리고 젓가락이 누렇게 또는 검게 변색하거나 곰팡이가 피는 것을 막고 늘 신상품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일부 제조업체는 젓가락에 윤을 내는 이산화황을 사용한다. 이 모든 화학물질은 말할 것도 없이 인체에 해롭다. 특히 적절한 감독 없이 사용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326쪽)
연대표 36
옮긴이 서문 39
1장 서문 45
중국은 전국 시대 때 젓가락을 처음 발명했다. 두 개의 막대기는 매우 단순하지만 완벽하게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다. 젓가락은 사람의 손가락을 연장한 것이다.
2장 왜 젓가락을 썼을까: 식사도구의 기원과 기능 73
고대 중국에서 끓이거나 찌는 조리법이 발달하면서, 죽과 국을 먹기 위해 식사도구가 일반화되었다. 젓가락은 국에 들어 있는 건더기를 건져 먹는 용도로 부차적으로 쓰였다.
3장 쌀밥을 먹을까, 국수를 먹을까: 젓가락 사용의 변천 과정 117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중국 농업에 일어난 변화는 음식문화와 식사도구에도 영향을 끼쳤다. 밀의 재배와 제분 기술의 발달로 젓가락의 활용도가 숟가락보다 높아졌다.
4장 젓가락문화로 묶이다: 베트남, 일본, 한국 그리고 그 너머 161
14세기경 오늘날의 중국, 베트남, 한국, 일본에 젓가락문화권이 확립되었으나, 각 지역에서 그 양상은 민족의 전통에 따라, 음식문화에 따라, 중국 문화의 영향력에 따라 달랐다.
5장 젓가락 사용: 풍습, 사용 방식과 예절 205
각 나라에서는 식사 방식에 맞는 식탁 예절이 발달했다. 젓가락의 길이, 놓는 방식, 숟가락의 역할 등에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함께 먹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는 공통점이 있다.
6장 떨어질 수 없는 한 쌍: 선물, 은유와 상징으로서 젓가락 251
젓가락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날마다 쓰는 식사도구가 된 이래 문인과 시인, 사상가들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7장 전 세계 음식문화를 이어주는 ‘가교’ 293
아시아음식은 전 세계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고, 그것을 먹기 위해 젓가락을 사용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 이로써 늘어난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관계된 환경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결론 331
젓가락과 젓가락질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마침내 하나의 살아 있는 전통이 되었다.
출처 및 주석 340
그림 출처 371
참고문헌 373
찾아보기 389
표기 일람 400
감사의 말 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