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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평준화 교육에 반대하다

원제 : On the Future of Our Educational Institutions

프리드리히 니체 저 | 정명진 역 | 부글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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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200496 / 236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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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적어도 교육에서는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아!” 프리드리히 니체는 1869년 1월에 24세의 나이로 바젤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었다. 고전 문헌학이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대학에서 한 주에 8시간 강의하고, 현지 김나지움에서 한 주에 6시간 가르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니체는 강단에 서면서 금방 회의를 느꼈다. 학생 시절에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쇼펜하우어와 비교할 때, 무엇보다도 당시 학계의 글이 너무 형편없는 수준인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니체는 문헌학을 포기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 “적어도 교육에서는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아!” 프리드리히 니체는 1869년 1월에 24세의 나이로 바젤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었다. 고전 문헌학이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대학에서 한 주에 8시간 강의하고, 현지 김나지움에서 한 주에 6시간 가르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니체는 강단에 서면서 금방 회의를 느꼈다. 학생 시절에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쇼펜하우어와 비교할 때, 무엇보다도 당시 학계의 글이 너무 형편없는 수준인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니체는 문헌학을 포기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면서 1870년에 프러시아의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계획을 세웠다. 그 결실이 이 책에 담긴 다섯 차례의 강연이었다. 강연은 바젤의 시립 박물관에서 열렸다. 니체의 나이 27세에 한 강연이지만, 훗날 꽃을 피우게 될 그의 사상을 엿보게 한다. 니체가 강조하는 바는 교육기관이 진정한 교양인을 배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교양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귀족주의적 관점을 보인다. 당시의 교육기관이 모든 학생에게 교육의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는 것이 무슨 사명인 것처럼 매달리고 있었지만, 실상을 보면 문화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교육기관의 숫자를 줄이지 않고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니체의 지론이다. 그에게 당시 교육기관들은 학생들이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생존 투쟁에 성공적으로 임하고 국가에 유익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비쳤다.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교육은 물론이고 진정한 문화를 가꿔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니체는 보았다. 그러면서 진정한 문화는 극소수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가꿀 수 있는데, 국가는 감독관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이 극소수의 천재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세기 하고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더 흐른 시점에 읽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교육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읽히지 않는다. -책속으로 추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명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선생이 되었다. 이런 선생들이 압도적인 숫자와 유유상종의 본능을 무기로 교육기관의 정신을 규정하고 있다. 숫자를 줄이지 않고도 법이나 정책을 통해서 현재 지나치게 많은 김나지움과 선생의 숫자를 질의 과잉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육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숫자를 줄이지 않고 질을 높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국가는 문화의 국경순찰관이나 규제자, 파수꾼이나 감독관이 될 것이 아니라 문화의 든든한 동료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존경스럽고 고귀하고 탁월한 친구가 거친 현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그 친구가 노력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 것이다.” “독일의 깊은 학식이나 독창력, 지식에 대한 정직한 욕구, 어떠한 희생도 감내하려 드는 근면 등은 예외 없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많은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아름답고 장엄하려면 그것들 위로 진정한 독일 정신이 검은 구름처럼 넓게 펼쳐져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서 독일 정신이 번개와 천둥과 함께 결실의 비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반대로 그런 정신을 무서워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류의 구름이 대학교 주변에 무겁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런 악영향 속에서 고귀한 젊은 학자들은 힘들게 호흡하게 되며, 그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다가 그만 사라지고 만다.” “요즘 학생들 가까이 있으면 불쾌해지는 이유가 바로 학생들의 독립심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 학생들의 판단력이 어떤 자유와 확실성을 보여준다는 거야? 너희들의 통찰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신선하다는 거야? 너희들은 지금 심판석에 앉은 것처럼 굴고 있어. 너희들 앞에 모든 시대의 문화들이 놓여 있어. 너희들의 과학적 감각이 일깨워져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어. 그런데 너희들이 피우는 불꽃에 데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판이야.”

저자 소개

1844~1900.


독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시인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년 독일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 목사인 아버지를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14세에 슐포르타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고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였다. 1865년 스승인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바그너를 알게 되어 그의 음악에 심취하였다. 이 두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어문학을 공부했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어문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함으로써 철학적 사유에 입문했다. 
28세 때 최초의 저작『비극의 탄생』을 펴냈으며 이 저작에서 니체는 아폴론적인 가치와 디오니소스적인 가치의 구분을 통해 유럽 문명 전반을 꿰뚫는 통찰을 제시한다. 1873년부터 1876년까지는 독일과 독일 민족, 유럽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며, 위대한 창조자인 ‘위버멘쉬’를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 『반시대적 고찰』을 집필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재직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하고, 이후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1888년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이후 병마에 시달리다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음악의 정신에서 생겨난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과 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학』, 『힘에의 의지』, 『바그너의 경우』, 『디오니소스 찬가』,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등이 있다.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본질적으로 학교들은 아주 신성하고 존경스런 유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의 미래에 대해 논할 때 나는 단지 학교들을 탄생시킨 이상적인 정신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가 시대의 흐름에 맞춘다는 명분 아래 학교에 가한 많은 변화들은 대개 학교들을 처음 설립할 때 보였던 그 고매한 욕망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이고 퇴보하는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진정한 교양인이 되었거나 교양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터무니없을 만큼 작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무도 교육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많은 사람들이 속거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본성에 맞지 않는 교육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교양인이 극소수 나오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그러기에 진정한 교양인의 숫자와 괴물처럼 과도하게 커져 버린 교육 시스템의 규모 사이의 터무니없는 불균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교육의 진짜 비밀이다.”

“교육을 확대하면서 교육과 돈벌이를 연결시키는 분위기가 너무 강하다. 이는 무시무시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대중이 아마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곧장 세속의 물질적 행복만을 좇아 내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사회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보편적 교육을 위한 노력은 결국엔 교육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교육이야말로 곧 야만이 아닐까?”

“현재의 교육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교육 문제에 손을 대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당연히 그 반대가 원칙이다. 애석하게도,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겁을 먹고 달아나는 반면에, 공포를 느낄 줄 모르는 무딘 사람들만이 어떤 분야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교육의 과정에 거칠기 짝이 없는 손을 거칠게 마구 대고 있다.”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하라! 언어 사용에서 신성한 의무를 느끼지 못하면, 내면에 보다 세련된 문화의 씨앗을 뿌리지 못해! 모국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보면, 너희들이 예술을 어느 정도 존경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또 너희들이 모국어에 얼마만큼 애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알 수 있어. 만약에 오늘날 대중 매체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나 표현 방식에 아무런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문화를 추구할 생각을 아예 포기하는 게 나아.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삶을 살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교양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야. 또 진정한 교양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해.”
 
 “젊은 학생들의 안내자가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선각자를 자처하고 나서는 마당에, 어떻게 학생들이 문화의 진정한 향기를 맡을 수 있겠는가? 학생들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 홀로 더듬도록 격려하고, 훌륭한 예술 작품을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때 혼자 힘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고무하고, 위대한 사상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혼자 힘으로 철학하도록 격려하는 교육 방식으로 학생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예술의 성스러움과 진지함에 눈을 뜨는 단계까지 오를 수 있겠는가? 학교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을 채택한 결과, 학생들은 예술의 고고한 향기를 맡지 못한 채 단순히 현재의 노예로 만족하고 있어.”

“에세이 시간에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주제들을 보면 학생들이 시 작품을 놓고 순위를 매기도록 강요하고, 역사 속의 인물들을 대략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분류해서 서로 묶고, 진지한 윤리적인 문제들을 독립적으로 타파하게 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 쪽으로 각광을 돌리면서 자신의 발달을 묘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보고를 하도록 한다. 한마디로 말해, 지극히 지적이고 자기성찰적인 과제들이 그때까지 자기인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안겨지고 있는 것이다.”

“에세이는 정신이 성숙한 뒤에도 오직 극소수의 사람만이 습득할 수 있는 형식적인 교육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진정한 교육이라면 어린 학생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가능한 한 억누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서 대신에 학생들에게 천재들의 권위에 철저히 복종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진정한 교육자라면,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는 문장마다 야만적이고 무례한 감정이 배어나오기 마련인 연령의 학생들에게 개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보다 큰 틀에서 생각을 담아내라고 요구해야 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명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선생이 되었다. 이런 선생들이 압도적인 숫자와 유유상종의 본능을 무기로 교육기관의 정신을 규정하고 있다. 숫자를 줄이지 않고도 법이나 정책을 통해서 현재 지나치게 많은 김나지움과 선생의 숫자를 질의 과잉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육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숫자를 줄이지 않고 질을 높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국가는 문화의 국경순찰관이나 규제자, 파수꾼이나 감독관이 될 것이 아니라 문화의 든든한 동료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존경스럽고 고귀하고 탁월한 친구가 거친 현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보호하고 그 친구가 노력한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 것이다.”

“독일의 깊은 학식이나 독창력, 지식에 대한 정직한 욕구, 어떠한 희생도 감내하려 드는 근면 등은 예외 없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들이다. 많은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아름답고 장엄하려면 그것들 위로 진정한 독일 정신이 검은 구름처럼 넓게 펼쳐져 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서 독일 정신이 번개와 천둥과 함께 결실의 비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반대로 그런 정신을 무서워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류의 구름이 대학교 주변에 무겁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런 악영향 속에서 고귀한 젊은 학자들은 힘들게 호흡하게 되며, 그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다가 그만 사라지고 만다.”

“요즘 학생들 가까이 있으면 불쾌해지는 이유가 바로 학생들의 독립심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 학생들의 판단력이 어떤 자유와 확실성을 보여준다는 거야? 너희들의 통찰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신선하다는 거야? 너희들은 지금 심판석에 앉은 것처럼 굴고 있어. 너희들 앞에 모든 시대의 문화들이 놓여 있어. 너희들의 과학적 감각이 일깨워져 불꽃처럼 피어오르고 있어. 그런데 너희들이 피우는 불꽃에 데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판이야.”

목차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말
1강- 1872년 1월 16일
2강- 1872년 2월 6일
3강- 1872년 2월 27일
4강- 1872년 3월 5일
5강- 1872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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